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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모순은 언어에 기원을 둔다

by 이우 posted May 02, 2018 Views 1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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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도래하는 공동체_900.jpg


  (...)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모순은 언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실제로 '나무'란 단어가 모든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지칭할 수 잇는 것도 그 단어가 특이한(singular) 불가언적적 나무들 대신에 그들의 보푠적 의미를 가장하기 때문이다. (...) 

  보편자와 특수자 사이의 이율배반에 사로잡히지 않은 개념 하나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이 바로 '예'이다. '예'는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든 간에 언제나 같은 유형에 속하는 모든 겨우를 대표하면서도 동시에 이 경우들 가운데 하나라는 특징을 보인다. '예'는 다른 것들 가운데 하나인 특이성이면서도 다른 것을 대신하고 전체를 대변한다. '예'는 한편으로는 실상 특수 사례로 다루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특수자로서의 효력을 잃을 수 있다고 전제된다. 즉 '예'는 특수하지도 일반적이지도 않으며 그런 것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하는, 자신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특이한 대상이다.

  이로써 희랍어로 '예'를 의미하는 단어에 숨겨진 보다 심오한 의미가 드러난다. 즉 파라 데이그마(para-deigma)는 곁에서 스스로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의 고유한 자리는 항상 자신의 곁자리이며, 자기 자신의 무규정이며, 잊혀지지 않는 삶이 펼쳐지는 텅 빈 공간 속에 있다. 이 삶은 순전히 언어적인 삶이다. 삶이 무규정이며 일져지지 않는 것은 오직 말 속에서이다. 범례적 존재는 순전히 언어적인 존재이다. 범례적이라 함은 불린다는 속성 외에 아무런 속성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붉은 것'이 아니라 '붉다고 불린다'는 것이 예를 규정한다. 바로 여기에 '예'를 진지하게 고찰하자마자 필히 드러나는 '예'의 애매한 성격의 근거가 있다. 고로 모든 귀속 가능한 것을 확립하는 속성인 '불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급진적 의문에 부치며 철화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다. 

  모든 현실 공동체를 제한하는 것은 가장 공통적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임의적 존재의 무력한/비잠재적인 보편타당성이 비롯된다. 그 보편타당성은 무각각도 아니고 난혼(亂婚)도 아니며 체념도 아니다. 이 순수한 특이성들은 어떠한 공통 속성과 정체성으로도 묶이지 않은 채 오직 '예'가 보여주는 그 텅빈 공간 속에서만 소통할 수 있다. 그 특이성들은 기호 ∈, 즉 귀속 그 자체를 전유하기 위해 모든 정체성을 박탈한다. '트릭스터'나 게으름뱅이, 조수, 만화 속 인물들, 그것들이 도래하는 공동체의 범례들이다. (...)

- 『도래하는 공동체』(조르조 아감벤 · 꾸리에 · 2014년)  p.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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