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더 특성은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적인 것이다. 젠더 특성, 행위, 그리고 몸이 그 문화적 의미를 보여주고 생산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수행적이라면 행위나 속성을 가늠할 수 있는 선재하는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위도, 진정하거나 왜곡된 젠더 행위도 없을 때, 진정한 젠더 정체성에 대한 가정은 허구로 드러나게 된다. 수행성에는 연극적 수행성과 언어적 수행성이 있기 때문에 때로 이것은 반대되는 것을 함축하는 관계를 서술하기도 한다. 성적 실천과 젠더는 그 구조 자체가 다른 것과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둘을 사고하게 만드는 이성애적 전제의 안정성을 교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래그를 수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비유하는 몸과 같은 기호가 아니라 그 몸 없이는 읽어낼 수 없는 젠더의 기호이다. 여기서 규범은 그 자체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초조하게 자신의 사법권을 설정하고 증대하기 위한 반복적인 노력이 수행되는 것이다. 드래그가 그려내는 것은 젠더가 수행되는 젠더 재현의 '정상적인' 구성이 여러 방법으로 '비수행적인' 타 영역을 구성하는 일련의 부인된 집착이나 탈동일시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연극적 수행성은 공연하는 배우 뒤의 본질적인 행위자를 부정하는 것과 관련되고, 언어적 수행성은 모든 언어가 '부적절한 수행문'이라는 인식과 연관된다. 즉 니체가 말하듯 '행위 뒤의 행우자'는 없으며, 데리다가 말하듯 모든 수행물은 '반복'과 '인용'에 근간하기 때문에 언제나 '부적절'하다. 연극적 수행성과 언어적 수행성이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현재의 연극 행위, 현재의 발화 행위를 통해 '가변적으로 구성되는 주체'라는 부분이고, 둘 다 어떤 방식이건 본질적인 의미의 주체의 기원이나 근원을 거부한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성적으로 비수행적인 것을 구성하는 일은 젠더 정체성으로 대신 수행된다고 할 수 있다. 바틀러의 수행성 개념은 정체성의 성격과 그 정체성이 어떻게 산출되고 있는가의 문제, 사회적인 규범의 기능, 오늘날 우리가 행위자라고 부르는 것의 근본적인 문제. 개인과 사회 변화 사이의 관계 등에 질문을 제기한다. (...)
- <젠더 트러블-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주디스 버틀러 · 문학동네 · 2008년 · 원제 : Gender Trouble, 1990년) p.25~27 <옮긴이 조현준의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