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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06]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

by 이우 posted Aug 03, 2014 Views 1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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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누스.jpg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는 3세기의 플로티노스가 발전시키고 그 후계자들이 수정해나간 그리스 철학의 마지막 형태로서, 6세기 후반 비그리스도교적인 철학이 금지될 때까지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의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존재의 위계질서가 있으며, 가장 낮은 단계는 시공 속에 존재하고 감각에 지각되는 물리적 세계이다(→ 색인 : 존재론). 둘째, 각 단계의 존재는 그보다 상위 단계로부터 파생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공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다. 셋째, 각각의 파생된 존재는 그보다 상위 단계로 귀환하려는 관상적 욕구의 운동 속에서 자신의 실재성을 확립한다. 이러한 욕구는 상위 단계로부터 받은 유출의 창조적 힘 속에 이미 잠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유출과 귀환이라는 이중의 운동으로 설명된다. 넷째, 각 단계의 존재는 낮은 단계에 비친 그보다 상위 존재의 영상 혹은 표현이다. 다섯째, 존재의 등급은 단일성의 정도를 보여주는 등급이기도 하다. 물리적 세계의 원자적 개별화에 이를 때까지 존재의 단계를 따라 내려가면, 다수성과 분리성, 그리고 한계는 더욱 증가한다. 여섯째, 최상위의 존재는 모든 실재성을 초월하는 궁극적 원리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에 '존재 너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어떤 한계도, 어떤 속성도, 어떤 부분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이름 붙여질 수 없으며 존재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완전한 단일성을 지칭하기 위해 '일자'라고 불릴 수는 있다. 그리고 모든 완전성의 원천이자 귀환의 종착점이기 때문에 '선'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일곱째, 이러한 최상의 원리는 하나의 대상(분리되고, 규정되고, 제한되는 사물)이 아니며, 어떠한 술어도 그것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그것 자체와 직접 합일될 때에만 알 수 있는 것이다.


□ 플로티노스와 그의 철학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는 플로티노스(AD 205~270)이다. 그의 저서로는 포르피리오스가 편집한 〈엔네아데스 Enneades〉(각각 9편의 논문들을 담고 있는 6부작의 모음집을 뜻함)가 있다. 그에게 철학은 추상적 사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의 저술들은 살아 있는 실재 세계가 '일자'의 영원한 자발적이며 필연적인 창조 활동으로부터 유출과 귀환의 이중운동에 의해 구성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동시에 이 설명은 인간 자신이 일자로 귀환하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그 길을 따르라는 윤리적 권고이다. 일자의 창조 활동으로부터 나온 최초의 것은 누스(Nous : 부적절하지만 '지성' [Intellect] 또는 '정신' [Spirit] 이라는 뜻)이다. 이것으로부터 다시 물질적 세계를 형성하고 질서짓는 영혼(Soul)이 생긴다. 그러나 그에게서 산출의 전체 과정은 초시간적이다. 왜냐하면 누스와 영혼은 영원하지만, 시간은 물리적 세계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혼의 삶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존재의 단계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 모두가 모든 곳에 그리고 모든 것 속에 현존한다. 따라서 혼으로부터 지성을 거쳐 일자로 상승하는 것은 공간적인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앎을 깨치는 것이다.

  지성은 사유하는 자이자 사유이며 동시에 사유대상이다. 대상으로서의 지성은 형상들의 세계이다. 또한 형상들은 지성과 함께 하나인 것으로서, 단순한 객체들이 아니라 살아서 사유하는 주체들이다. 이러한 형상들은 더 낮은 단계의 불완전한 실재들, 영혼들, 육체(물체)를 육체이게끔 하는 구조들의 원형이며 원인이다. 인간이 갖는 최상의 것은 지적 능력이다. 감각·지각뿐만 아니라, 추론을 넘어 영원한 실재들을 직접 파악할 때, 인간은 자신의 지적 본성을 깨닫게 된다. 영혼은 지성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 사이의 중간단계이다. 지성이 일자에 의해 산출되듯이, 영혼은 지성에 의해 유출과 귀환의 이중운동으로 산출된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플로티노스에게도 영혼의 삶이 갖는 특징은 다른 모든 운동의 원인이 되는 운동이다. 영혼은 상위에서 물질 세계를 형성·지배하여, 또한 더 낮은 단계, 즉 자연 속에서 생명과 성장의 내재적 원리로 작용하고, 육체와 같은 최하위 형태들을 산출한다. 그 아래로는 물질의 암흑만이 있을 뿐, 아무런 존재도 없으며, 우주의 팽창이 끝나는 절대적 한계이다. 이와 같은 절대적 부정성 때문에 물질은 악의 원리이다(→ 색인 : 자연철학 , 선과 악).

  인간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통해 우주적 영혼의 단계로 상승할 수 있으며, 그 영혼 속에서 지성 자체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또한 경험과 욕망 같은 본능적 관심들에 몸을 맡김으로써 자신을 더 낮은 단계에 고립시킬 수도 있다. 일자를 향한 상승의 단초가 되는 철학적 전환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노력으로 육체의 삶을 벗어나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또다른 인식의 길을 향해' 걸어갈 때 이루어진다. 플로티노스는 이 전환이 세속의 육체를 갖고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육체와 육체의 삶은 인간의 상승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육체와 감각에 관해 말하는 그의 언어는 매우 이원론적이며 피안적이다(→ 색인 : 심신이원론). 철학적 전환을 완전히 이루어 그가 지성이 되면, 인간은 일자와의 신비적 합일에 오를 수 있다. 이러한 합일에서 일자는 인간의 끊임없는 현존을 명백히 드러내며, 이것은 원천으로 귀환하는 힘의 가장 강력한 흐름 위에서 그리고 선에 대한 지성의 순수한 사랑 위에서 계속된다. 이 신비적 합일이 플로티노스가 기울인 노력의 초점이었다. 그에게서 철학은 선으로 귀의하는 위대한 힘을 인간 속에서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이었기 때문에 종교였으며, 종교는 선이 모든 단계의 실재성을 구성하는 것이었으므로 철학이었다. 그는 도덕적 순수화와 지적 계몽의 결합을 선과의 합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으며, 플라톤 철학만이 이 결합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후기 신플라톤주의자들

  후기 신플라톤주의의 발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포르피리오스(AD 234경~305경)는 플로티노스의 제자였다. 그의 사상은 '육체로부터 벗어남'을 강조하는 극단적 정신주의이다. 그는 존재·삶·지성으로 이루어진 수직적이자 '수평적'인 삼원관계(triads) 속에서 실재의 구조를 밝히려는 후기 플라톤주의적 경향의 최초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의 공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특히 범주론을 신플라톤주의 안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암블리코스(250경~330경)는 5, 6세기의 철학을 지배한, 극단적 실재론을 추구하는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였다. 이 성숙한 후기 신플라톤주의 체계에서 궁극적 일자는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초월성의 지위를 갖지만, 실재성의 제일원리는 완화된 형태로 표현되었다. 일자 아래에 성립하는 실재들의 거대한 삼원구조는 플로티노스의 존재·지성·혼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단계들을 포르피리오스의 수평적 삼원구조에 결합함으로써 구성되었다. 이암블리코스의 저술들은 대부분 소실되었으므로, 이러한 유형의 플라톤주의에 관해서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프로클로스(410~485)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지성적 우주를 구성하는 위계질서들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그의 〈신학요강 Elements of Theology〉은 후기 신플라톤주의의 기본적 형이상학에 관한 요약이다.

  후기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완벽한 형이상학적 체계 뿐만 아니라, 완전한 비그리스도교적 신학을 추구했다. 후기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주요관심사는 점차 지배력을 확장해가는 그리스도교에 맞서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종교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연구와 해석을 통해 신적인 진리의 완벽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플로티노스와는 다르게 인간의 영혼이 물질적 세계로 하강한 더 낮은 단계의 정신적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적인 것과의 합일을 위해서는 철학만을 통해서는 안 되며 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후기 신플라톤주의 학파들로는 우선 이암블리코스의 제자인 아이데시오스가 세운 페르가뭄 학파를 들 수 있다. 아테네에서는 아카데미가 4세기말 다시 문을 열어,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이암블리코스의 전통을 따라 신플라톤주의를 연구하고 가르쳤다. 아카데미는 프로클로스와 같은 후기 신플라톤주의의 뛰어난 해석가를 배출했다. 또한 5, 6세기에 아카데미와 긴밀하게 교류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탁월한 플라톤주의자였던 암모니오스(520경 죽음)는 프로클로스에게 배웠으며, 아테네에서 활동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 심플리키오스는 암모니오스와 함께 연구했다.


플로티노스(Plotinos, 205년~270년)

  고대 철학자, 3세기 로마의 영향력있는 지식인·문필가 집단의 중심인물. 플로티노스의 삶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는 그의 제자인 포르피리오스가 스승의 글을 모아 편집한 책 〈엔네아데스 Enneads〉에 서문으로 붙인 전기(傳記)가 유일하다. 이것 이외의 고대 자료는 거의 없는데, 이 점은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비록 포르피리오스의 〈플로티노스의 생애〉는 현존하는 최고의 자료이지만 중요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플로티노스의 삶을 설명하면서 설명의 틈을 메우는 데 독창적인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는 오늘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의 생애〉는 정직하고 꼼꼼하며 영웅을 떠받드는 진지한 정신을 지닌 동료이자 숭배자가 쓴 작품이다. 이 저작은 플로티노스 삶의 전반기에 대해 말해주는 몇몇 흥미로운 단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플로티노스의 생애 마지막 6년에 집중되어 있다. 이 6년 동안 포르피리오스는 스승과 함께 로마에서 살았다. 따라서 65세로 세상을 떠난 플로티노스의 삶을 제대로 그려볼 수 있는 기간은 바로 이 6년간이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플로티노스도 노년의 삶만이 알려져 있다. 플로티노스 자신의 저작은 어떤 자전적인 정보도 담고 있지 않으며 젊은시절의 정신이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간접적인 정보도 전혀 없다. 플로티노스는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에 모든 저작을 썼다.

  포르피리오스에 따르면, 플로티노스는 자신의 부모·동족·조국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4세기 후반에 활동한 에우나피오스와 그후의 작가들은 플로티노스가 태어난 곳이 이집트에 있는 리코 또는 리코폴리스라고 썼는데, 이곳은 현재 북이집트의 아슈트 또는 나일 강 연안 델타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인 듯하다.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플로티노스의 생애〉나 플로티노스 자신의 저작 어느 구석에도 이집트에 대해 특별히 말하거나 친밀감을 보여주는 대목이 없다. 그리고 플로티노스가 세계적인 대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철학을 연구했다는 사실도 그가 이집트인임을 입증할 증거는 되지 못한다. 그가 3세기에 라틴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가 어디 사람인지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되지 못한다. 매우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가 대체로 그리스 말을 사용했고 그리스어로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다. 플로티노스는 매우 독창적이지만, 사유방식과 지적·종교적 충실성으로 보면 헬레니즘 전통에 서 있다.

  플로티노스는 28세가 되던 해 철학을 연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그는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이름난 학자들의 강의를 들었지만 곧 실의에 빠졌다. 마침내 그를 잘 이해하고 있던 한 친구의 권고로 독학한 철학자 암모니우스 '사카스'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플로티노스는 암모니우스의 강연을 듣고 나서 이렇게 외쳤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다!" 그는 암모니우스와 11년 동안 함께 살았다. 암모니우스는 고대 철학사를 통해 가장 신비스런 인물이다. 그는 물론 아주 불확실한 사실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이단 교파를 신봉한 것 같다. 한두 마디 전해지는 그의 말을 보면, 그는 전통적인 플라톤주의와 아주 비슷한 사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플로티노스를 그처럼 사로잡을 수 있었고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오리게네스의 철학 스승이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제자들에게 많은 사상을 이야기했겠지만 확실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플로티노스가 그와 함께 11년 동안 살았다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당시에는 어떤 철학학파에 들어가 배움을 마치기까지 대부분 일생을 통해 진리와 선을 추구하고 마침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공동체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암모니우스와의 생활을 청산하고 난 다음 플로티노스는 페르시아와 인도철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242~243)에 참여했다. 그러나 고르디안 황제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고 아랍의 필립이 황제로 추대되는 일이 벌어져 원정은 비참하게 끝났다. 플로티노스는 간신히 도망쳐 안티코크로 되돌아왔다. 40세 되던 해에 다시 로마로 가서 거기에 정착했다. 그리스 철학자가 동방의 철학에 관심을 갖는 일은 흔했는데, 그 당시에는 특히 그러했다. 이 원정이 실패한 탓으로 동방의 현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그의 사상은 인도 종교철학과 놀랄 만큼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다. 종교적·철학적 전통 아래 교육받은 인도인과의 교류가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은 둘째치고라도 어쨌든 플로티노스의 사상이 지니고 있는 인도 사상과의 유사성은 플로티노스가 물려받은 그리스 전통의 자연스런 귀결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원로원 출신의 고르디안 황제가 지휘한 동방 원정에 플로티노스가 참여했다는 사실, 그가 로마로 갔다는 사실(로마는 대개 철학자들이 잘 정착하지 않던 도시였음), 그로부터 19년 후 포르피리오스가 원로원 귀족출신의 많은 친구들과 제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플로티노스를 만났다는 사실 등은 그 자신이나 그의 가문이 로마 원로원 귀족들과 매우 긴밀한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을 뜻한다고 해석되어왔다.

  처음 로마에 왔을 때부터 263년 포르피리오스와 만난 무렵까지 그의 환경이 어떠했든지간에 플로티노스는 상당히 검소한 생활태도를 지키면서 품위 있고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실제 사회활동과 가르치는 일로 사회에서 그의 명성은 높았다. 그는 논쟁에서 심판자처럼 행동했으며 그러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에 임박한 귀족가문의 친구들이 플로티노스를 자손들의 후견인으로 지목하는 일도 많았다. "그의 집은 언제나 어린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로 가득 차 있었다"라고 포르피리오스는 쓰고 있다. 그는 매우 양심적이고 로마 법률에 따라 친구 자손의 후견인 역할을 했으며, 재산을 관리해주었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플로티노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비록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움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친구 부인의 보석목걸이를 훔쳐간 자를 찾아내는가 하면, 포르피리오스가 우울증에 걸려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분위기를 바꾸어 새로운 교류를 쌓도록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보내기도 했다. 포르피리오스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자신과 타인에게 똑같이 충실하며, 그와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마음 편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많은 친구들의 세속적인 욕망에 눈감지 않으면서도 영원한 어떤 것과 통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사귄 친구들은 로마 제국의 동쪽 지역 출신자, 로마의 원로원 회원 및 그 부인들과 과부들로 이루어진 세계시민주의자였다. 포르피리오스에 따르면, 플로티노스를 존경하고 후원한 사람들 가운데는 갈리에누스 황제(253~68 재위)와 그의 아내 살로니나도 있었는데 이 덕분에 그는 한때 거창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고 했었다. 그는 황제에게 캄파니아에 있는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여 그 주변의 땅을 하사해주도록 청했다. 그는 복구된 도시를 플라토노폴리스라 부르고, 그 도시 주민을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법과 관습에 따라 살게 할 계획이었다. 플로티노스는 직접 거기로 가서 친구들과 함께 살겠노라고 공언했다. 플라톤 사상의 정치적 측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며, 또 공직 생활에서 은퇴하겠다고 설교하고 다니던 철학자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내키지 않더라도 사정이 닿는다면 플라톤이 말한 도시를 세우는 것이 플라톤주의 철학자인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황제는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사실 당시의 정치상황에서 그 제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갈리에누스 황제와 원로원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황제는 원로원으로부터 군사적 지휘권을 빼앗았으며, 원로원은 황제가 죽고 난 다음 황제를 먹칠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복수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황제가 플로티노스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몰라도, 플라토노폴리스를 장차 원로원의 세력 거점이자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반의 중심지로 본 것은 황제로서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플로티노스는 온 힘을 쏟아 가르치는 일에 매달렸고, 로마에서 첫 10년을 보내고 난 다음에는 저술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교수 방식이 다소 스콜라적이긴 하지만 그의 '학파'에는 아카데믹한 면이나 고도의 조직적인 면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앞선 철학자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붙인 주석서의 구절을 낭독하게 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은 친숙한 분위기에서 허물없이 진행되었으며, 플로티노스는 토론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일단 제기된 문제는 끝이 날 때까지 논의하곤 했다. 이 학파는 집단적인 조직을 갖추지 않고 가까운 친구와 숭배자로 이루어진 느슨한 형태의 모임이었다. 플로티노스는 이들을 위해 글을 썼으며, 이 글들이 바로 포르피리오스가 모아 편찬한 〈엔네아데스〉이다. 이 중 어떤 글은 그 난이도로 보아 학파 내부에서도 포르피리오스, 투스카니의 아멜리우스 겐틸리아누스(학파의 연장회원), 플로티노스의 의사였으며, 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그의 다른 저작들을 편집한 것으로 보이는 에우스토키우 등 절친한 친구와 공동 철학연구자를 위해 쓴 듯하다.

 〈플로티노스의 생애〉의 몇몇 이야기와 〈엔네아데스〉의 어떤 구절을 보면 플로티노스가 당대의 종교적·미신적 분위기 속에서 어떤 종교적 태도를 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플로티노스도 마술을 믿었으며, 별의 운행으로 미래의 일을 점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성술사에 대한 기괴하고 비도덕적인 맹신은 비난했다. 그가 비술(秘術)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철학적인 관심 때문이었으며, 그가 실제로 마술을 부렸다는 분명한 증거도 없다. 한번은 올림피우스라는 사람이 플로티노스에게 마술을 걸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마술을 부려 불러낸 저주의 힘은 오히려 플로티노스로부터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 플로티노스는 이집트의 이시스 사원을 방문해 주문을 외워 수호신령을 불러내려고 한 적이 있다. 포르피리오스에 따르면 보통의 수호천사 대신 신이 나타났는데, 주문을 잘못 외는 바람에 신에게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다고 한다. 플로티노스 개인이 주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거기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플로티노스가 전래의 이교도 집단에 대해 취한 태도는 그가 보여준 존경할 만한 초연한 자세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철학자인 아멜리우스는 경건한 사람으로서 제물을 바치는 의식에 참석하기를 좋아했다. 플로티노스는 그러한 제의에 참석하기를 거부했지만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멜리우스는 열렬한 신도였지만 변함없이 플로티노스의 친구였으며 협조자로 남았다. 플로티노스가 교류한 사람들 가운데는 그노시스 학파(이단적인 그리스도교 이원론자들로서 秘義的인 복음 지식을 강조했음)의 추종자들도 있었다. 이들에게서 자극을 받은 플로티노스는 이들의 신념을 공격하는 글을 줄기차게 썼을 뿐만 아니라, 포르피리오스와 아멜리우스를 중심으로 이들을 논박하는 논쟁집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플로티노스가 그노시스 학파를 공격한 이론적 근거는 어느 정도 정통 그리스도교에 의존해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교에 정통했다거나 로마 교회와 접촉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 그가 보기에 그노시스 학설은 야만적·통속적·비합리적·비도덕적·비그리스적이며, 정신 나간 오만한 미신에 지나지 않았다. 플로니노스에게 종교가 있었다면, 순수한 지성에 의지해 선(善)과 신비적으로 합일하려는 소망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굳건한 마음으로 이를 실천하고 가르쳤다.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건강이 매우 나빠진 플로티노스는 고통스럽고 비참한 투병생활을 계속했다. 포르피리오스가 묘사한 그의 증세는 너무도 모호해서 오늘날에는 의사에 따라 결핵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나병으로 보기도 한다. 플로티노스가 병에 걸리자 친구들은 그를 멀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한 친구가 소유하고 있는 캄파니아 지방의 시골농장에 은거했는데 거기서 1년도 못 되어 죽었다(270). 동료 모임은 이미 해체되었고, 포리피리오스는 우울증을 치유하도록 플로티노스 자신이 시실리로 떠나보낸 터였으며, 아멜리우스는 시리아에 머물고 있었다. 그를 치료하던 에우스토키우스만이 플로티노스의 죽음을 볼 수 있었다. 플로티노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너의 신이 만유(萬有)의 신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라", 또는 "나는 우리의 신이 만유의 신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하고 있다"라는 말이었다. 어느 경우든 그 말은 고대 후반기를 살았던 신앙심이 깊은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품고 있던 신념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 <플로티노스(Plotinos, 205년~270년)>는 A. H. Armstrong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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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가지 유사성 (...) 16세기 말엽까지 서양 문화에서 닮음의 역할은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텍스트에 대한 주석과 해석을 대부분 이끈 것은 바로 닮음이다. 닮음에 의해 상징 작용이 체계화되었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 사물의 인식이 가능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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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1
    Aug 2018
    18:07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생물정치의 전개(규율권력 · 생물권력 · 인종주의)

    (...) 생물정치는 규율적 메커니즘과 전혀 다른 메커니즘들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생물정치에 의해 작동된 메커니즘은 우선 예측과 통계, 그리고 전체적인 측정 다음에 그런 특정 현상이나 개별적인 개인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반적이고 글로벌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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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1
    Aug 2018
    16:17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미개인과 야만인, 그리고 교환

    (...) 역사 안에서 올바르고 진실된 구성의 시점을 찾으면서 불랭빌리에가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구성의 시점을 법 안에서 찾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 안에서 찾기도 거부하였다. 그것은 반법률주의이고 동시에 반자연주의였다. 불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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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1
    Aug 2018
    15:22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봉건제의 발생 · 절대왕정제의 탄생

    (...) 로마인 문제 다음으로 내가 불랭빌리에의 분석 예로서 들고 싶은 것은, 그가 프랑크족에 관해 제기한 문제이다. 골에 들어온 프랑크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가 방금 여러분에게 했던 질문, 즉 비교적 적은 숫자로 골에 침입하여 그때까지 강했던 제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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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9
    Aug 2018
    02:41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주권의 문제 · 홉스의 리바이어던

    (...) 오늘은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 어떻게 전쟁이 권력관계의 분석틀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겠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곧장 만나는 하나의 이름이 있다. 홉스의 이름이 그것이다. 그는 일견 전쟁관계를 권력관계의 원칙과 기초로 삼은 사람인 것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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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8
    Aug 2018
    06:49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계보학 · 인종주의적 담론의 역사

    (...) 내 생각에는 중세의 전통적인 세 축 안에서 역사적 담론의 이 두 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계보학적 축은 왕권의 유구함을 말해주고, 위대한 선조들을 일깨워주며, 제국이나 왕국의 개국 영웅들의 위엄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이런 식의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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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05
    Aug 2018
    12:45

    [철학] 『담론의 질서』 : 나눔의 문제, 분절(articulation)

    (...) 나눔의 문제는 학문의 세계에서나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의 철학적 사유가 처음으로 개화할 때 우리는 존재의 문제에 부딪힌다. '왜 존재할까?'라는 물음은 해결할 수 없는 궁극적인 물음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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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02
    Aug 2018
    17:49

    [철학] 『담론의 질서』 : 배제(exclusion)의 과정(금기, 분할과 배척, 진위의 대립)

    (...) 어떤 사회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그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그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그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 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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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01
    Aug 2018
    22:57

    [사회] 『아케이드 프로젝트』 : 보헤미안 · 여행 · 산책자 · 구경꾼

    (...) "내가 이해하기로 보헤미안들이란 사는 것이 문제이고,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신화이며, 재산은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는 개인들의 계층을 가리킨다. 그들은 도대체 정해진 거처도, 공인된 안식처도 없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어디에서든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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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30
    Jul 2018
    23:39

    [문학] 『아케이드 프로젝트』 : 보들레르

    (...) 나다르는 1843년~1845년에 보들레르가 살던 피모당 호텔 근처에서 그를 만났을 때의 복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반작반짝 윤이 나는 장화 위에 바짓가락을 바짝 댄 검은 바지, 농민과 서민들이 입던 조잡하고 헐렁한 옷, 인부들이 주로 입는 청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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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8
    Jul 2018
    14:24

    [사회] 『아케이드 프로젝트』 : 도시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휴가 강박증

    (...) 나플레옹 3세 치하에서 파리의 근본적인 개조는 무엇보다 콩코르드 광장과 시청을 연결하는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아마 70년전쟁(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파리의 건축상의 경관을 위해서는 하늘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플레옹 3세는 모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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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5
    Jul 2018
    12:25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양태(modus) · 변용(affections) · 감정(affectus, affects)

    (1) 변용들은 양태들 그 자체다. 양태들은 실체 혹은 그 속성들의 변용들이다(<윤리학>, 1부, 명제25, 보충 : 1부, 명제 30, 증명). 이 변용들은 필연적으로 능동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적합한 원인으로서의 신의 본성에 희해서 설명되는데, 신은 수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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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5
    Jul 2018
    11:09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추상(abstractions, abstractions)

    (...) 핵심은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확립하고 있는 추상 개념과 공통 개념 사이의 본성의 차이이다(2부, 명제 40, 주석1). 공통 개념은 서로 적합한 신체들, 다시 말해 법칙들에 따라 자신들의 각 관계를 결합하고 이 내적인 적합 혹은 결합에 상응하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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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4
    Jul 2018
    16:57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슬픔과 기쁨, 나쁨과 좋음, 그리고 윤리(Ethics)

    (...) 슬픔에는 부정적이지도 외적이지도 않은 환원불가능한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체험된 실제적인 이행, 지속이다. <나쁨>의 궁극적인 환원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행위 능력 혹은 변용 능력의 감소로서의 슬픔이다. 이 슬픔은 악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31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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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9
    Jul 2018
    09:27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③

    (...) 일어난 모든 것이 자신들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다음, 사람들은 모든 사물들 안에서 그들에게 가장 유용했던 것을 특별한 것으로 판단해야 했고, 또한 그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었던 것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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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9
    Jul 2018
    08:31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②

    (...) 이제는 자연이 자신 앞에 설정한 어떠한 목적도 없고 모든 목적인은 인간이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논의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며 정리161)과 정리 32의 따름정리2)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이 편견이 그 기원을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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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9
    Jul 2018
    06:56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①

    (...)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인간 때문에 만들었으며 또한 신이 자신을 공경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고찰할 첫번째 논점은 우선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편견에 만족해 하며 또한 모든 이들이 왜 같은 편견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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