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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07] 스콜라철학(Scholasticism)

by 이우 posted Aug 03, 2014 Views 1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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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아퀴나스.jpg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은 중세 유럽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의 철학체계이다. 1~8세기경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리(敎理)를 그리스 철학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한 철학이다. 중세 유럽의 ' 그리스도교 학교'에서 가르친 철학으로 스콜라는 라틴어로 학교라는 뜻이다. 스콜라 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철학의 목표인 '획득 가능한 진리 전체'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르침을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로크·스피노자·라이프니츠 등 근세 고전 철학자들이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르네상스 스콜라 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에 자극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대표자는 톰마소 데 비오(또는 카예타누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등이었다. 이들은 반종교개혁법에 깊이 관여하는 동시에 자기 시대의 문제, 즉 국제법, 식민주의, 부당한 정부에 대한 저항, 세계 공동체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종교 교리의 근원을 찾고 신앙과 이성, 의지와 지성, 실재론과 유명론, 신 존재의 증명과 같은 철학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르네상스에서 19세기초까지 스콜라 철학이나 중세라는 말은 경멸과 비난의 표현으로 쓰였다. 중세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와 근대 사이의 하찮은 막간극으로 여겨졌으며, 스콜라 철학은 단순히 교훈적 방법을 사용하여 전통적 가르침을 고수하고 쓸모없는 현학적 논의만 일삼는 철학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 시기가 진정한 철학전통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대와 근대에 견줄 수 있는 중요한 철학자들을 배출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스콜라(schola)는 고대 그리스어 스콜레(σχολη)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라틴어로는 "학교"로 번역되었고 지금은 "학파"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스콜라는 9~15세기에 유럽의 정신을 계승한 신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시기에 일어난 사상적 사조를 통틀어 "스콜라철학"이라고 부른다. 스콜라철학은 기독교의 신학에 기초하는 이유로 "스콜라신학"이라고도 하며, 스콜라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와 인식의 문제를 신앙과 연결하고 인간의 이성 또한 신의 계시와 전지전능적 차원에서 이해한다. 스콜라철학자들은 신의 존재와 계시, 신과 인간과의 관계와 신앙적 추구를 논리적으로 발전시킴으로서 조직신학의 산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스콜라철학은 기독교의 교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작업이 진척됨으로 하나의 완성 되어가는 철학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프랑크왕국의 샤를 대제는 유럽 각국에 신학원을 설립하고 신학적 학문육성을 통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스콜라철학의 명칭은 신학원 교수(doctores scholastici)들에 의하여 규정되었으며 4세기이후 서유럽 각국의 수도원과 주교좌 성당의 부속학교를 시작으로 조직화 세력화되었다. 
 
  스콜라철학은 중세학문연구의 방향과 목적을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를 기준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 각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문헌 등 다양한 학문적 탐구로 시작되었다. 스콜라철학은 이와같은 문헌들에 대하여 독해, 주석, 해석 등의 추가적인 작업들을 구체화 하였다. 교부와 신학자들의 저술서들 가운데 12세기 "페트루스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1095년~1160년)의 <명제집>(Quatuor libri Sententiarum, 1148년~1151년)은 조직신학은 교부와 중세신학자들의 교훈을 집대성한 것으로 삼위일체론, 천지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죄, 성육신과 구원, 십계명, 성례와 심판,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Petrus Abaelardus, 1079년~1142년)는 중세시대 작곡가이며 프랑스의 초기 스콜라 신학자로서 스콜라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아벨라르두스는 "변증법"을 통하여 신학적 논점을 긍정과 부적적 관점에서 양자로 분류함으로서 다양한 신학적 합의를 도출했다. 자연신학의 선구자이며 토마스학파의 아버지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74)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I, II 1266-1272, III 1272-73, 미완성)은 스콜라신학의 정점에 있는 저술로서 조직신학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완성적인 철학을 나타내 주는 지표가 되었다.
 
  샤를대제로 부터 12세기까지에 걸쳐 발현된 스콜라철학은 스콜라신학의 두번째 시조이며 중세 최고의 철학자인 켄터베리대주교 안셀무스(Anselmus, 1109년, 이탈리아)의 실재론에 의해 보편논쟁에 가속화를 일으켰다 안셀무스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신학적 가치들을 명료하고 명확하게 함으로서 애매모호한 표현들을 신앙의 가치속에서 보다 논리적으로 정립시켰다.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사상이 중세 스콜라철학의 기반이 되었다. 이것을 보다 체계화시킨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이며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하여 스콜라 철학은 학문적 완성을 이루었다. 14세기 신앙과 이성의 조화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명론자와 신비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축과 실재론자의 보편논쟁은 가속화 되었다.

  스콜라 철학은 아주 다양한 현상이어서 간단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중세 유럽에 ' 그리스도교 학교'에서 가르친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당시 미개인들이 '스콜라'(라틴어로 '학교'라는 뜻)를 필요로 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북쪽에서 고대세계로 침입해온 이른바 미개 민족들은 대개 그리스도교도가 되었고 자기들이 발견한 새로운 전통을 습득하려고 했다 . 교부신학, 그리스 철학, 로마인의 정치적 지혜 등이 바로 그런 전통이었다. 그래서 중세철학이 최초에 당면했던 과제는 풍부한 전통을 배우고 획득·보존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스콜라 철학은 무엇보다도 전례 없는 학습과정이었고 수백 년 동안 계속된 문자 그대로 광범한 '학교' 작업이었다.
 
  스콜라 철학의 발전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기존의 자료를 단순히 모으고 분류하고 배열하는 데서 출발하여 원문과 문제를 체계적으로 논의하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 획득 가능한 진리 전체에 관한 포괄적 견해(Summa)를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중세 후기에 오면 기존의 지식을 탐구하고 논의하는 절차는 광범위하게 제도화되고 고정되어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직접 경험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4세기에는 스콜라 철학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스콜라 철학의 역사를 크게 3단계로 나누면 '초기 스콜라 철학'(800~1200경), '전성기 스콜라 철학'(1150~1300경), '후기 스콜라 철학'(1300~1400경)으로 볼 수 있다. 또 스콜라 철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고대와 중세의 다리 구실을 하며 스콜라 철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는 ‘보이티우스’와 ‘위디오니시우스‘를 들 수 있다. 스콜라 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철학의 목표인 '획득 가능한 진리 전체'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르침을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표명한 인물이 바로 6세기초의 학자 보에티우스였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신앙을 이성에 결합하라"고 요구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이 요구를 실행했다. 이를테면 그의 <신성한 저작집(Opuscula sacra)>은 거의 신학적인 주제만을 다루지만 성서 인용은 단 한 군데도 없고 논리와 분석만 있다. 보에티우스가 선포한 신앙과 이성의 결합원리, 그리고 그 자신이 이 원리를 실행한 방식은 인간의 자연적 이성 능력에 대한 깊은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런 확신은 인간이성의 이해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계시의 신비까지를 포함하여 아무 것도 없다는 합리주의적 신념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실제로 스콜라 철학의 역사에서 이런 경향이 되풀이해서 나타나기도 했다.


□ 초기 스콜라철학

  다른 한편 합리주의의 위험을 일정한 한계 내에 묶어두려는 경향이 스콜라 철학이 출발할 때부터 있었다. 이른바 위디오니시오스의 '부정(否定) 신학'이 바로 이 경향이었다. 이 인물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부분의 역사가는 그가 시리아의 신플라톤주의자로서 보에티우스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으리라고 보고 있다. 그의 저술은 1,000년 이상이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거의 성서만큼이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영향력 덕분에 부정신학 또는 철학은 합리주의를 제한하는 평형추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 자신이 계시하지 않는 한 어떤 이름도 신에게 줄 수 없다. 그러나 계시된 이름마저도 인간의 유한한 오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신의 본성에 이르거나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신에 관한 모든 긍정적 진술은 부정이라는 교정수단을 필요로 한다. 신학자는 신을 '실재' 또는 '존재'라고 부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런 개념들은 신이 실재를 부여해준 사물들에서 이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자는 그가 창조한 것과 같은 본성을 가질 수 없다. 부정마저도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신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인간이 그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초월하기 때문이다.

  위디오니시오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초기 스콜라 철학의 주요 대표자로는 캔터베리의 성(聖) 안셀무스가 있다. 그의 사상은 위디오니시오스의 부정신학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도 조명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무한한 능력을 신뢰함으로써 일종의 합리주의에 도달했다.물론 "이해받기를 원하는 신앙"이나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는 그의 유명한 글귀는 계시의 신비가 모든 추론의 기초가 된다는 믿음을 표명한다. 그러나 안셀무스에서 이성과 신앙의 결합은 이론적인 것이라기보다 종교적인 것이어서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사실 스콜라 철학 내부에서 이성을 강조하는 관점과 신앙의 초이성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관점 사이에는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다. 12세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와 피에르 아벨라르 사이의 논쟁은 그 대표적 예이다.  베르나르는 무엇보다도 종교적 실천가이자 신비적 명상가였다. 그는 윈리적으로는 철학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아벨라르가 주로 논리적으로 신학에 접근하는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아벨라르는 인간 이성으로 신을 모조리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비난했다. 당시 논리학은 논쟁의 주요싸움터였다. 아벨라르는 논리학을 현대와 비슷하게 "언어적 표현에 기초하여 사유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런 언어논리학의 관점에서 이른바 '보편문제'를 날카롭게 논의했다. 보편문제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라는 고유명사뿐 아니라 '인간'과 같은 보통명사를 나타내는 외적·객관적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공통개념(보편)은 주관적 사유의 실재 또는 말소리의 실재만을 가질 뿐인가?  이 보편문제가 중세 스콜라 철학의 주요한 또는 유일한 관심사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스콜라 철학의 주요관심사는 처음부터 실재 및 존재 전체였다.

 
□ 전성기 스콜라 철학

  초기 스콜라 철학은 전체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바탕으로 체계화하고 제도화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때,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저작들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전통적 체계에 대항한 새로운 강력한 체계로서 '전성기 스콜라 철학'이 시작되었다.아리스토텔레스 저술 번역은 그리스어본을 옮긴 것이 아니고 아랍어 번역을 중역한 것이었으며 그의 저술과 함께 아랍 주석가들의 저작도 유입되었다. 가장 중요한 주석가로는 페르시아 출신의 11세기 철학자 이븐 시나, 스페인 출신의 12세기 철학자 아베로에스, 12세기 정통 유대인 철학자 모제스 마이모니데스를 들 수 있다.  새로 등장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도전을 대담하게 받아들인 중세 최초의 신학자는 13세기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사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였다. 그는 단지 책상물림의 학자가 아니라 직접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했다. 그는 "구체적 사물에 관한 철학은 있을 수 없다"라든가 "그런 문제에서는 경험만이 확실성을 준다"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적 원리를 내세웠다. 알베르투스에서 이성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성은 형식상으로 올바르게 사고하는 능력일 뿐 아니라 실재를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신앙과 이성의 결합"이라는 보에티우스의 원리는 신앙을 인간과 우주에 관한 늘어나는 자연적 지식과 끊임없이 통합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다.

  이 모든 새롭고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의 일관된 구조로 통합하려고 한 사람이 알베르투스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아퀴나스의 필생의 과업은 성서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아퀴나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란 인간의 신체와 인식능력을 포함하여 자연적 실재 전체를 긍정하는 특수한 세계관을 뜻했다.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은 이런 종합의 산물로서 거대한 지적 구조물이지만 결코 한정된 지식의 닫힌 체계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자연적 이성과 완전 일치한다는 안셀무스의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그동안 성서적 충동과 철학적·세속적 충동이라는 논쟁의 양극은 확연히 분리되었고 양극 모두 아퀴나스에게서 전거를 찾을 수 있었다. 아퀴나스는 파리에서 "신학적으로 기초된 세속성과 세계에 개방된 신학"이라는 자신의 관점을 시제르 드 브라방의 철학적 세속주의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신학자 보나벤투라의 전통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맞서서도 옹호해야 했다.보나벤투라는 아퀴나스가 모든 자연 사물의 권리를 옹호함으로써 신의 권리를 침해했으며, 신학자는 신학주제에 관련된 창조 부분만 알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학자가 자연 사물을 탐구하는 데서 얻는 이익은 미리 규정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신앙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필요로 한다. 창조에 관한 오해가 사람들을 신앙의 진리에서도 벗어나게 할 수 있다."이런 대답은 낙관적 합리주의처럼 들리지만 아퀴나스는 늘 부정신학의 교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무엇인지를 모를 뿐 아니라 사물의 본질도 모른다.
 
 
□ 후기 스콜라 철학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의 틈을 메우는 데 실패했다. 14세기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결합이 부정된다. 위디오니시오스의 부정신학은 이성의 과잉에 맞서기에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이성은 필연성의 관념을 함축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둔스 스코투스는 '자유'의 이름으로 2번째 교정을 가했다. 그는 자유를 주로 신과 관련시켰다. 구제·은총·창조 등은 신의 절대적 자유의 작업이므로 어떤 것에도 '필연적 이유'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신앙과 사변적 이성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쓸데없는 짓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오컴의 '이중진리설'이다. 오컴에 의하면, 개별 사실들만이 '실재적'이고 그것들의 정합성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은 계산하거나 연역할 수 없고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이성이란 구체적 실재를 만날 수 있는 능력에 불과하다.  오컴의 이런 토양에서는 오직 '긍정' 신학만 가능하다. 사변적 이성과의 협력은 비신학적인 것으로 거부된다. 신앙과 지식은 완전히 다르고 둘의 결합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로써 1,000년 이상 노력해온 이성과 신앙의 결합은 붕괴되었고 중세 스콜라 철학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세 스콜라 철학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뒷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선 데카르트·로크·스피노자·라이프니츠 등 근세 고전 철학자들이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나아가 스콜라 사상으로 되돌아가려는 두 가지 주요운동이 있었다. 하나는 르네상스 스콜라 철학(바로크 스콜라 철학)이고 또 하나는 19, 20세기의 신스콜라 철학으로, 둘 다 주로 아퀴나스의 저작에 관심을 가졌다.  르네상스 스콜라 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에 자극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대표자는 톰마소 데 비오(또는 카예타누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등이었다. 이들은 반종교개혁법에 깊이 관여하는 동시에 자기 시대의 문제, 즉 국제법, 식민주의, 부당한 정부에 대한 저항, 세계 공동체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스콜라 철학은 계몽주의 철학과 독일 관념론에 의해 소멸했고 이에 대응해서 19세기에 신스콜라 철학이 발생했다. 주요대표자는 독일의 예수회원 요제프 클로이트겐으로서 "토마스에 따른 그리스도교 철학의 부흥"을 내세웠다. 그결과 연구소와 대학 등지에서 스콜라 철학연구가 활발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쇠퇴해갔다.


□ 보편논쟁(普編論爭) : 실재론(實在論, Realism)과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보편(universality)이란 "우주나 존재의 모든 개별적인 보기에 해당되는 공통적인 속성이나 사항"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것에 공통되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논쟁은 보편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유로만 존재하는가에 관한 중세 스콜라 철학의 논쟁으로 이시기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가 플라톤(Platon) 사상을 수용하며 교부철학을 완성하였을때, 이슬람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사상이 전해짐으로서 보편논쟁이 시작되었다. 보편논쟁은 스콜라철학의 시대속에 함께하고 있었다. 스콜라철학의 초기 사상은 플라톤의 실재론 또는 실념론이 지배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관념론과 맥이 닿아 있다. 플라톤 사상이 정점에 이를 무렵 아리스토텔레스의 비신학적 사상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온건실재론이 부상하였으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범주속에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둔스 스코투스(Jean Duns Scot , 1265년~1308년)의 등장으로 보편논쟁은 본격화되고 실재론과 유명론은 대립을 이어갔다. 자연신학의 선구자이며 토마스학파의 아버지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년~1274년)와 근대 프란체스코 학파의 대표이자 "정교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명성으로 유명한 둔스 스코투스(Jean Duns Scot, 1265년~1308년)의 보편논쟁은 스콜라철학의 해체시점에서 일어난 철학사의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실재론(實在論,Realism)이란 "인식론에서, 인간이 인식하는 대상이 의식이나 주관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초기에는 개념실재론과 온건실재론으로 분류되었다. 플라톤의 개념실재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온건실재론은 모두 "보편은 실재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보편은 사물에 앞선다는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이므로 사물안에 존재한다고 본다. 보편이 사물에 앞선다는 플라톤의 사상은 보편이 사물 이전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피조물과 관계없이 질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초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물, 즉 피조물로 부터 분리되어 있고 이미 존재하며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러한 사상은 "진선미"와 "이데아"사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관점에서 사물이 없는 질서와 보편이 의미가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보편은 사물안에 존재함으로 함께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재의 본질인 보편개념이 실존을 소유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각 개개인과의 관련 속에 그들의 내면과 정신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편은 사물과 분리되어 외부에 존재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렐레스의 사상에서 보편의 실재는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과정이든 사물과 연결되어 있고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재론의 핵심철학이다. 실재론은 삼위일체론과 조직신학 등 교회의 기본교리를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으며 안셀무스(Anselmus, 1033년~1109년)와 보나벤투라(Bonaventura da Bagnoregio, 1217년~1274년)가 실재론을 대표하는 스콜라철학자들로서 이들은 실재로서의 우주적 보편개념이 구현화된 개체(사물) 이전에 존재한다고 정의하였다.
 
  유명론(唯名論,Nominalism)이란 "보편자(普遍者)는 개체에서 추상하여 얻은 명칭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으로 보편은 명칭이고 사물 다음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유명론은 보편개념의 실존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편은 사물에 앞설수 없고, 또한 사물안에 존재할 수도 없으며, 인식 주관에만 존재하는 사고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유명론자의 대표적인 스콜라신학자인 잉글랜드출신의 윌리엄 오캄(William of Ockham, 1285년~1349년)은 정신세계를 벗어나는 일반적인 진리나 사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단지 사물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서 정신세계의 성장과 발전을 통하여 이룩한 주관적 사상이며 하나의 추상적인 명칭일 뿐이라고 보았다. 유명론자들은 보편적인 사물보다 개별적인 사물, 즉 개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세계가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는 감각에 의해 체험되는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개개의 사물이라고 생각했다. 신앙의 진리는 신앙의 차원에서의 진리이고 종교적 본질의 진리는 직관적인 신앙에 의해서만 인지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유명론자들은 기독교 교리가 이성적 인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함으로서 기독교적 교리를 배제시켰다. 이것은 유명론이 신앙중심에서 인간중심의 휴머니즘(Humanism)으로 분리되고 신앙의 나라에서 지상과 자연주의 사상중심으로 분리되어 가는 경향을 구체화하며 교회철학으로 부터 완전히 분리되려는 것이었다. 유명론은 보편적 개념이란 인간 이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명칭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로서 윌리엄 오캄(William of Ockham, 1285년~1349년)과 요하네스 로스켈리누스(Johannes Roscellinus,  1050년~1125년)가 대표적인 유명론자들이다. 이들은 실재란 지적인 추상에 있지 않고 개체에 속하여 있다고 주장한다. 유명론은 실재론과 대립하며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나아갔으며 철학의 세속화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영향력은 보다 확산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실재론은 신앙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는데 기여하였다면, 유명론은 인간중심의 철학과 가치와 사상으로 발전함으로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에 기여하였다. 실재론은 교회와 국가와 가정은 초월적 실재에서 구현된 산물이므로 이것은 공동체적 관점에서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유명론은 교회와 국가와 가정은 약속에 의해 이루어진 약속의 결합이다. 실재론은 실재가 갖는 절대성의 가치에 의해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신앙하지만, 유명론은 유명론이 갖는 이론의 함의에 따라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삼신론 이단으로 규정한다. 스콜라철학의 핵심은 신학이 모든 학문의 상위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앙을 위해 지혜를 구하든 지혜로서 신앙을 구하든 모든 것은 신앙중심의 세계였다. 그러나 유명론의 대두로 인하여 스콜라 철학은 해체를 맞이했고 두 개의 철학으로 분리되어 가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철학으로 발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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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자연주의 철학자들 · 1 :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

    (...) 메소포타미아의 고대인들이 불멸의 것에 큰 가치를 둔 이유는 현세 이외에 어딘가 내세가 있으리라는 종교적 믿음 때문이다. 같은 시기의 이집트인들이 죽은 사람의 무덤에 내세의 길잡이인 <사자의 서>를 넣은 것과 같은 이유다. 고대인들에게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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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07
    Sep 2018
    12:29

    [철학] 힐링(Healing)과 쇼펜하우어. 현대인은 '쇼펜하우어'이거나 '키에르케고르'일 지 모른다

    (...) 헤겔이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시절에 헤겔과 같은 강의 시간에 자신의 강의를 배정할 만큼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세를 보였던―수강생의 수에서는 심하게 밀렸지만―쇼펜하우어(Althur Schopenhauser, 1788~1860)는 헤겔과 정반대인 비관주의적 입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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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4
    Aug 2018
    13:22

    [철학] 『말과 사물』 : 유사(類似)와 상사(相似), 그리고 기호(記號)

    1. 네 가지 유사성 (...) 16세기 말엽까지 서양 문화에서 닮음의 역할은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텍스트에 대한 주석과 해석을 대부분 이끈 것은 바로 닮음이다. 닮음에 의해 상징 작용이 체계화되었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 사물의 인식이 가능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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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1
    Aug 2018
    18:07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생물정치의 전개(규율권력 · 생물권력 · 인종주의)

    (...) 생물정치는 규율적 메커니즘과 전혀 다른 메커니즘들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생물정치에 의해 작동된 메커니즘은 우선 예측과 통계, 그리고 전체적인 측정 다음에 그런 특정 현상이나 개별적인 개인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반적이고 글로벌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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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1
    Aug 2018
    16:17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미개인과 야만인, 그리고 교환

    (...) 역사 안에서 올바르고 진실된 구성의 시점을 찾으면서 불랭빌리에가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구성의 시점을 법 안에서 찾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 안에서 찾기도 거부하였다. 그것은 반법률주의이고 동시에 반자연주의였다. 불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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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1
    Aug 2018
    15:22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봉건제의 발생 · 절대왕정제의 탄생

    (...) 로마인 문제 다음으로 내가 불랭빌리에의 분석 예로서 들고 싶은 것은, 그가 프랑크족에 관해 제기한 문제이다. 골에 들어온 프랑크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가 방금 여러분에게 했던 질문, 즉 비교적 적은 숫자로 골에 침입하여 그때까지 강했던 제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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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9
    Aug 2018
    02:41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주권의 문제 · 홉스의 리바이어던

    (...) 오늘은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 어떻게 전쟁이 권력관계의 분석틀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겠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곧장 만나는 하나의 이름이 있다. 홉스의 이름이 그것이다. 그는 일견 전쟁관계를 권력관계의 원칙과 기초로 삼은 사람인 것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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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8
    Aug 2018
    06:49

    [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계보학 · 인종주의적 담론의 역사

    (...) 내 생각에는 중세의 전통적인 세 축 안에서 역사적 담론의 이 두 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계보학적 축은 왕권의 유구함을 말해주고, 위대한 선조들을 일깨워주며, 제국이나 왕국의 개국 영웅들의 위엄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이런 식의 계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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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05
    Aug 2018
    12:45

    [철학] 『담론의 질서』 : 나눔의 문제, 분절(articulation)

    (...) 나눔의 문제는 학문의 세계에서나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의 철학적 사유가 처음으로 개화할 때 우리는 존재의 문제에 부딪힌다. '왜 존재할까?'라는 물음은 해결할 수 없는 궁극적인 물음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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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02
    Aug 2018
    17:49

    [철학] 『담론의 질서』 : 배제(exclusion)의 과정(금기, 분할과 배척, 진위의 대립)

    (...) 어떤 사회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그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그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그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 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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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01
    Aug 2018
    22:57

    [사회] 『아케이드 프로젝트』 : 보헤미안 · 여행 · 산책자 · 구경꾼

    (...) "내가 이해하기로 보헤미안들이란 사는 것이 문제이고,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신화이며, 재산은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는 개인들의 계층을 가리킨다. 그들은 도대체 정해진 거처도, 공인된 안식처도 없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어디에서든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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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30
    Jul 2018
    23:39

    [문학] 『아케이드 프로젝트』 : 보들레르

    (...) 나다르는 1843년~1845년에 보들레르가 살던 피모당 호텔 근처에서 그를 만났을 때의 복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반작반짝 윤이 나는 장화 위에 바짓가락을 바짝 댄 검은 바지, 농민과 서민들이 입던 조잡하고 헐렁한 옷, 인부들이 주로 입는 청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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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8
    Jul 2018
    14:24

    [사회] 『아케이드 프로젝트』 : 도시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휴가 강박증

    (...) 나플레옹 3세 치하에서 파리의 근본적인 개조는 무엇보다 콩코르드 광장과 시청을 연결하는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아마 70년전쟁(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파리의 건축상의 경관을 위해서는 하늘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플레옹 3세는 모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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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5
    Jul 2018
    12:25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양태(modus) · 변용(affections) · 감정(affectus, affects)

    (1) 변용들은 양태들 그 자체다. 양태들은 실체 혹은 그 속성들의 변용들이다(<윤리학>, 1부, 명제25, 보충 : 1부, 명제 30, 증명). 이 변용들은 필연적으로 능동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적합한 원인으로서의 신의 본성에 희해서 설명되는데, 신은 수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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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5
    Jul 2018
    11:09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추상(abstractions, abstractions)

    (...) 핵심은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확립하고 있는 추상 개념과 공통 개념 사이의 본성의 차이이다(2부, 명제 40, 주석1). 공통 개념은 서로 적합한 신체들, 다시 말해 법칙들에 따라 자신들의 각 관계를 결합하고 이 내적인 적합 혹은 결합에 상응하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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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4
    Jul 2018
    16:57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슬픔과 기쁨, 나쁨과 좋음, 그리고 윤리(Ethics)

    (...) 슬픔에는 부정적이지도 외적이지도 않은 환원불가능한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체험된 실제적인 이행, 지속이다. <나쁨>의 궁극적인 환원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행위 능력 혹은 변용 능력의 감소로서의 슬픔이다. 이 슬픔은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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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9
    Jul 2018
    09:27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③

    (...) 일어난 모든 것이 자신들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다음, 사람들은 모든 사물들 안에서 그들에게 가장 유용했던 것을 특별한 것으로 판단해야 했고, 또한 그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었던 것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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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9
    Jul 2018
    08:31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②

    (...) 이제는 자연이 자신 앞에 설정한 어떠한 목적도 없고 모든 목적인은 인간이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논의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며 정리161)과 정리 32의 따름정리2)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이 편견이 그 기원을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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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9
    Jul 2018
    06:56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①

    (...)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인간 때문에 만들었으며 또한 신이 자신을 공경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고찰할 첫번째 논점은 우선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편견에 만족해 하며 또한 모든 이들이 왜 같은 편견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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