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 『도덕의 계보』 : 망각과 기억, 그리고 책임

by 이우 posted Aug 19, 2016 Views 1014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도덕의계보_원전_360.jpg

  ... 망각이란 천박한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그렇게 단순한 타성력(vis inertiae)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일종의 능동적인, 엄밀한 의미에서의 적극적인 저지 능력이며, 이 능력으로 인해 단지 우리가 체험하고 경험하며 우리 앞에 받아들인 것이 소화되는 상태(이것을 '정신적 동화'라고 불러도 좋다)에 있는 동안, 우리 몸의 영양, 말하자면 '육체적 동화'가 이루어지는 수천 가지 과정 전체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우리의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다. 의식의 문과 창들을 일시적으로 닫는 것, 우리의 의식 아래 세계의 작동 가능한 기관이 서로 협동하든가 대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소음과 싸움에서 방해받지 않고 있는 것, 새로운 것, 특히 고차적 기능과 기관에 대해, 통제하고 예견하며 예정(우리의 유기체는 과두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하는 데 다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약간의 정적과 의식의 백지상태(tabula rasa)--이것이야말로 이미 말했듯이, 능독적인 망각의 효용이며, 마치 문지기처럼 정신적 질서와 안정, 예법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효용이다. 여기에서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이러한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건한 건강의 형식을 나타내지만, 이제 이 동물은 반대 능력, 즉 기억의 도움을 받아 어떤 경우, 말하자면 약속해야 하는 경우에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을 길렀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한 번 새겨진 인상을 다시 벗어날 수 없다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며, 단순히 한 번 저당잡힌 말(言)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소화불량도 아니고, 오히려 다시 벗어나지 않으려는 능동적인 의욕 상태, 일단 의욕한 것을 계속하려는 의욕, 즉 본래적인 의지의 기억인 것이다. 따라서 근원적인 "나는 하고자 한다", "나는 하게 될 것이다"와 의지의 본래적인 분출, 그 의지의 활동 사이에는 새로운 낯선 사물과 상황, 심지어는 의지적 행위 자체인 하나의 세계가 이러한 의지의 긴 연쇄 고리를 뛰어넘지 않고는 아무 걱정 없이 끼어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같이 미래를 미리 마음대로 처리하기 위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우연적인 사건과 구분하고 인과적으로 사고하며 먼 앞날의 일을 현재의 일처럼 보고 예견하며,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그 목적의 수단인지 확실히 결정하고 대략 계산하며 산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어야만 하지 않은가! 약속하는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듯이,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보증할 수 있기 위해서, 인간 자신은 우선 스스로 자기 자신의 관념에 대해서조차 예측할 수 있고 규칙적이며 필연적인 존재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야 말로 책임의 유래에 관한 오랜 역사이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도덕의 계보(Genealogie der Moral, 1887)』 259절<제2논문 '죄', '양심의 가책', 및 기타> 1절~2절








  1. 03
    Feb 2019
    03:26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 선험성과 보편성, 수동과 능동,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 선험성의 기준은 필연성과 보편성이다. 우리는 선험성을 경험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필연적인 것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언제나', '필연적으로' 혹은 '내일'이라는 말조차 경험 중...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9882 file
    Read More
  2. 03
    Jan 2019
    13:43

    [철학] 『권력에의 의지』 : 니힐리즘은 문 앞에 있다

    1. 니힐리즘은 문 앞에 있다. 모든 방문객 가운데 가장 기분 나쁜 이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회적 곤궁의 상태>, <생리학적 변질>, 나아가 부패를 가리켜 니힐리즘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은 오류이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의리 있고, 그럴 수 없...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762 file
    Read More
  3. 26
    Dec 2018
    07:20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고독한 흄

    (...) 내 앞에 놓인 철학의 저 끝없는 바다에 뛰어들기에 앞서, 나는 현재 자리에 잠시 머무르며 내가 떠맡은 항해를 숙고하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항해에서 다행스러운 결론에 이르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과 근면성이 필요하다. 그러자 내가 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345 file
    Read More
  4. 25
    Dec 2018
    14:35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자아, 혹은 인격의 동일성에 대하여

    (...) 어떤 철학자들(데카르트나 로크 등)이 상상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매순간마다 이른바 자아를 가까이 의식하고 있으며, 자아의 존재와 자아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등을 느끼고, 자아의 완전한 동일성과 단순성을 모두 논증의 명증성 이상으로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668 file
    Read More
  5. 25
    Dec 2018
    09:36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감관들에 관련된 회의론에 대하여

    (...) 앞에서 말한 것처럼 회의론자는 이성으로써 자신의 이성을 옹호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계속하여 추리하고 믿는다. 또 회의론자는 어떤 철학적 논변으로도 물체의 존재에 관한 원리가 참이라고 주장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규칙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130 file
    Read More
  6. 25
    Dec 2018
    07:50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이성에 관한 회의론에 대하여

    (...) 모든 논증적 학문들에서 규칙들은 분명하며 오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규칙들을 사용할 때, 오류를 범하기 쉽고 불분명한 우리의 기능들은 쉽게 규칙을 벗어나 오류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추론에서 최초 판단이나 신념에 대해 대조하고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0939 file
    Read More
  7. 08
    Dec 2018
    20:54

    [철학] 『에티카』 : 자연에 대하여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자연물이 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을 위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더욱이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825 file
    Read More
  8. 08
    Dec 2018
    18:40

    [사회] 위험사회 : 위험 사회의 도래 · 대항담론과 대항지식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당연한 시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세계보건기구가 홍역의 완전박멸을 선언하는 그 순간, 에즈볼라나 광우병이니 O-157이니 하는 신종 병역들이 화려하게 등단하여 그 같은 선언을 전혀 무색하게 만...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6536 file
    Read More
  9. 05
    Dec 2018
    16:39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전쟁과 폭력

    (...) 공습을 전하는 뉴스에서는 비행기를 생산한 회사들의 이름이 빠지는 적이 거의 없다. 이런 회사의 이름들, 포케-불프, 하인켈, 랑카스터는 저 옛날 갑옷 기병, 창기병, 경기병이 언급되던 자리에 나타난다. 삶의 재생산, 삶의 지배, 삶의 파괴라는 매커...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382 file
    Read More
  10. 04
    Dec 2018
    06:23

    [철학] 『안티오이디푸스』 : 정신분석과 재현 · 욕망 기계 · 탈영토화

    (...) 분열-분석의 테제는 단순하다. 즉 욕망은 기계이며, 기계들의 종합이며, 기계적 배치체, 즉 욕망기계들이라는 것이다. 욕망은 생산의 질서에 속하며, 모든 생산은 욕망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분석이 이러한 생산의 질서를 으깼고,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273 file
    Read More
  11. 25
    Nov 2018
    03:53

    [사회] 『아케이드 프로젝트』 : 패션 · 2

    물신 숭배에서 성(sexus)은 유기적인 세계와 무기적인 세계 사이의 장벽을 제거한다. 복장과 장식이 성과 결탁한다. 성은 죽은 것만큼이나 살아있는 육체도 편안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살아 있는 육체는 성에게 죽은 것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5726 file
    Read More
  12. 25
    Nov 2018
    01:03

    [사회] 『아케이드 프로젝트』 : 패션 · 1

    (...) 아케이드는 과거 사람들이 자전거를 배우던 실내 홀과 비슷하다. 이러한 홀에서 여성은 가장 유혹적인 모습을 띠었다. 자전거를 탄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포스터에는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셰례는 여성의 이러한 아름다움을 포...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8298 file
    Read More
  13. 12
    Nov 2018
    23:33

    [사회] 『유한계급론』 : 레저(leisure, 여가 활동)의 기원

    (...) 유한계급제도는 봉건시대 유럽이나 일본처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발달했던 야만문화에서 가장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 계급간의 구별이 매우 업격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계급 차이를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요인이었다. 그...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204 file
    Read More
  14. 06
    Nov 2018
    06:29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자본과 임금노동

    (...) 임금노동이 근대의 대중을 형성했다는 것, 실제로 노동자 자체를 생산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제시되었다. 일반적으로 '개인'은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일 뿐 아니라 사회 과정의 반성 형식이며, 스스로를 즉자적 존재로 여기는 의식은 수행 능력의 향상...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059 file
    Read More
  15. 06
    Nov 2018
    05:42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자본주의 정신과 수치심

    (...) 유럽에는 시민 시대 이전의 과거가 개인적 활동이나 호의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 데 수치심 속에 아직 살아 있다. 신대륙은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한다. 노인에게조차 아무도 공짜로 봉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것 자체가 오히려 상처로 느껴진다....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3907 file
    Read More
  16. 10
    Oct 2018
    06:01

    [철학]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오, 인간이여, 그대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떠 견해를 가지고 있든 내 말을 잘 들어보라. 내가 이제부터 서술하는 것은 거짓말쟁이인 그대의 동포들이 쓴 책 속에서가 아니라,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연 속에서 내가 읽었다고 믿는 그대로의 역...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8471 file
    Read More
  17. 30
    Sep 2018
    03:55

    [철학] 『한국 철학사』 : 원효(元曉)의 화쟁(和諍), '파도와 고요한 바다는 둘이 아니다'

    (...) 최근 돈황사본(敦煌寫本)에도 원효(元曉, 617년~686년)의 <대승신기론> 필사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이른바 돈황사본은 20세기 초반에 오럴 스타인(Aurel Stein)이라는 유대인 탐험가가 중국 돈황(둔황) 막고굴(幕高窟)에서 수도사를 속이고 영...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5075 file
    Read More
  18. 29
    Sep 2018
    21:41

    [철학]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서문 : 종교는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

    모든 일을 확실한 계획에 따라 행할 수 있거나 매순간 행운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사람들은 미신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어떠한 해결책도 없는 낭패를 당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믿을 것이 못 되는 재물에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495 file
    Read More
  19. 27
    Sep 2018
    02:00

    [철학] 조계종 표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반야바라밀경 요진 천축삼장 구마라습 역 姚秦 天竺三藏 鳩摩羅什 역 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 법회의 인연 여시 아문 일시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 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如是 我聞 一時 佛在舍衛國...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130 file
    Read More
  20. 21
    Sep 2018
    01:52

    [철학]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생산하는 몸체와 질료, 그리고 공백

    아이네아스*의 후손들의 어머니시여, 인간과 신들의 즐거움이시여, 생명을 주시는 베누스시여, 당신은 하늘을 미끄러지는 별들 아래 배들을 나르는 바다와 곡식을 가져오는 땅들을 그득하게 채워주십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목숨 가진 것들의 모든 종족이 수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488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