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것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것을 내 것으로 하고 이것을 보호하고 모든 사람에게서 지키고자 한다"고 말하는 사람, 일을 이끌고, 결단을 수행하고, 하나의 사상에 충실하고, 한 여성에 매달리고, 무모한 사람을 벌주며 진압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분노와 칼을 가지고 있고, 약자, 고통받는 자, 학대받는 자, 그리고 동물마저도 기꺼이 그의 소유가 되고 천성적으로 그에게 속하는 인간, 간단히 말해 천성적으로 주인인 인간 -- 그러한 인간이 동정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이다! 이러한 동정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고통받는 자들의 동정이 무엇이 중요한가! 또는 더욱이 동정을 설교하는 자들의 동정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오늘날 거의 유럽 전역에서 고통에 대한 병적인 민감성과 신경과민이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탄식에서의 불쾌한 무질서와 종교나 철학적 허튼 소리로 스스로 어떤 뛰어난 것으로 꾸미고 싶어하는 나약함이 있다. -- 어떤 형식에 맞는 고통의 우상화가 있다. 그러한 열광자 그룹에서 '동정'이라 불리는 유약함이, 내 생각에는 언제나 제일 먼저 눈에 뛴다--우리는 이러한 가장 새로운 종류의 악취미를 강력하고도 근본적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이 사버(gai saber)라고 하는 훌륭한한 부적을--독일인들에게 명료하게 설명한다면, '즐거운 학문'을 가슴과 목에 걸었으면 하는 것이다. (...)
나에게 인간이란 지상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어떤 미궁에 있어도 여전히 가야할 길을 찾아낸다. 나는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 나는 종종 그에게 현재의 그보다 어떻게 하면 그를 앞으로 진전시키고 그를 좀더 강하게, 좀더 악하게, 좀더 깊이 있게 만들 것인가를 숙고하곤 한다."--"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게라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렇다.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고, 또한 아름답게" ....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ose)> 29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