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문학] 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초판 서문

by 이우 posted Oct 11, 2017 Views 958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가자장미여관으로s.jpg


  (...) '장미여관'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다. 장미여관은 내게 있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그네의 여정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다. 우리는 잡다한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그곳이 장미여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러브호텔'로서의 장미여관, 붉은 네온 사인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곳, 비밀스런 사랑의 전율이 꿈틀대는 도시인의 휴식공간이다.

  우리는 진정한 안식처를 직장이나 가정에서 구할 수 없다. 직장의 분위기는 위선적 체면치레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가정은 겉보기엔 단란하지만 사실상 갖가지 콤플렉스들이 얽혀서 꿈틀대는 고뇌의 장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잠깐만이라도 모든 세속적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어디론가 도피함으로써 자유를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장미여관―그 달콤한 음탕과 불안한 관능이 숨 쉬는 곳. 거기서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질서와 억압에 저항하는 '관능적 상상력'과 '변태적 욕구'를 감질나게나마 충족시킬 수 있고, 우리의 일탈욕구를 위안 받을 수 있다.

  이 시집의 표제로 쓴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쓴 1985년 여름을 전후하여 내 시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는 유미적 쾌락에의 욕구와 현실 상황에 대한 고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여인의 긴 손톱은 섹시하다. 그러나 그런 손톱은 '민중적 손톱'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공연히 '민중적 고뇌'로 괴로워하는 척하면서 지식인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초기작에서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는데 요즘 작품은 너무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해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나로서는 그 '치열한 고뇌의 정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게만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는 솔직하게 발가벗지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발가벗는 척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런 지식인의 위선을 떨쳐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런 단서나 변명 없이도, 여인의 긴 손톱은 아름답고 야한 여자의 고혹적인 관능미는 나의 상상력을 활기차게 한다. 모든 사람들을 다 민중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다 귀족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귀족들만이 누렸던 사치와 쾌락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지배계급에 대한 적의는 쾌락에 대한 선망일 뿐, 숭고한 평등의식의 소산은 아니다.

  누구나 잘사는 사회, 누구나 스스로의 야한 아름다움을 나르시스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을 안 해 '희고 고운 손'을 질투한 나머지 모든 여성의 손을 '거칠고 못이 박힌 손'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모든 여성의 손을 다 '길게 손톱을 기른 화사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괴로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즐거운 노동', 이를테면 화장이나 손톱 기르기 등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노동에서 진짜 관능적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미주의에 바탕을 둔 괘락주의, 또는 탐미적 평화주의가 요즘의  내 신조라면 신조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를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인류의 역사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적 실천을 가능케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상상이 설사 '생산적 상상'이 아니라 '변태적 상상'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시는 꿈이요, 환상이요, 상상의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하는 행위조차 윤리나 도덕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초라하고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시를 통해서 사랑의 배고픔과 사디스틱한 본능들을 대리배설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격노하는 본능과 위압적인 양심 사이에 평화로운 타협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실 속의 나는 여전히 외롭다, 외롭다. 진짜 관능적인 사랑, 진짜 순수하게 육체적인 사랑, 모든 이데올로기적 선입관과 도덕적 위선을 떨쳐버리고 솔직하게 발가벗을 수 있는 사랑이 내 앞에 펼쳐지기를 나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누가 나의 이 허기증을 달래줄 수 있을는지? 그 어느 날에나 나는 상상 속의 장미여관이 아니라 진짜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장미여관에 포근하게 정착할 수 있을는지?

  1989년 4월
  마광수

-  『가자, 장미여관으로』(마광수 · 책읽는귀족 · 2013년 · 초판 출간 1989년) p.8~11













  1. 18
    Apr 2019
    07:51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숭고미와 전쟁, 그리고 종교

    (...) 사람들은 어떤 대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대상을 두려운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곧 우리가 순전히, 가령 어떤 대상에 저항을 해보려는 경우를 생각하고, 그 경우에 모든 저항이 어림없는 허사가 될 것으로 어떤 대상을 판정한다면 말이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948 file
    Read More
  2. 15
    Apr 2019
    20:28

    [철학]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 : 자유·실천이성의 문제

    (...) 이성이 순수 이성으로서 실제로 실천적이라면, 이성은 자기의 실재성과 자기 개념들의 실재성을 행위를 통하여 증명할 것이고, 그런 가능성에 반대되는 일체의 궤변은 헛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순수 실천 이성 능력)과 더불어 초월적 자유도 바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2189 file
    Read More
  3. 12
    Apr 2019
    04:39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상상력 · 지성 · 자연

    (...) 경험 일반의 가능성 및 경험 대상들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이 근거하는 주관적인 세 인식 원천이 있는데, 그것은 감각기능(감각기관, 감관), 상상력, 그리고 통각이다. 이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주어진 현상들에 대한 적용에서 고...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930 file
    Read More
  4. 11
    Apr 2019
    15:06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선험적 인식 · 자연의 합목적성

    (...) 모든 지각들이 일관되고 합법칙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표상되는 오직 하나의 경험만이 있다. 그것은 거기에 현상들의 모든 형식과 존재 · 비존재의 모든 관계가 생기는 오직 하나의 공간 · 시간만이 있는 이치와 같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경험들을 이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773 file
    Read More
  5. 11
    Apr 2019
    01:48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칸트의 기획

    (...) 모든 경험들은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가 주어지는 감관의 직관 외에 또한 직관에 주어지는, 다시 말해 현상하는 대상에 대한 개념을 함유한다. 그러므로 대상들 일반에 대한 개념들은 선험적인 조건으로서 모든 경험인식의 기초에 놓여 있을 것이다. 따...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652 file
    Read More
  6. 07
    Apr 2019
    01:34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초월적 논리학 · 진리의 문제

    (...)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 다시 말해서 인식의 대상과의 모든 관계 맺음을 도외시하고, 인식들 상호간의 관계에서의 논리적 형식, 다시 말해 사고 일반의 형식만을 고찰한다. 그런데 초월적 감성학이 밝혀주듯이 순수한 직관 뿐만 아니라 경험적...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171 file
    Read More
  7. 04
    Apr 2019
    07:21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초월적 감성학

    (...)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 언제나 인식이 대상들과 관계를 맺든지 간에, 그로써 인식이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고 모든 사고가 수단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직관이다. 그런데 직관은 오로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한에서만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926 file
    Read More
  8. 30
    Mar 2019
    23:41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인식 · 순수 지성

    (...) 모든 인식은 재료(내용, Materie)와 이 재료를 정리 정돈하는 형식(틀, Form)을 요소로 해서 이루어지거니와, 인식이 사고의 산물인 한에서 인식의 형식은 사고의 형식이며, 이 사고의 형식은 이미 지성에 "예비되어 놓여 있다"(A66=B91). 그러므로 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796 file
    Read More
  9. 25
    Mar 2019
    19:34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감성세계-판단력-초감성세계

    (...) 지성은 감관의 객관인 자연에 대해서 선험적으로 법칙수립적이며, 가능한 경험에서 자연의 이론적 인식을 위한 것이다. 이성은 주관에서의 초감성적인 것인 자유 및 자유의 고유한 원인성에 대해서 선험적으로 법칙수립적이며, 무조건적으로 실천적인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4362 file
    Read More
  10. 19
    Mar 2019
    14:58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판단력

    (...) 선험적 개념들이 적용되는데까지가, 원리에 따른 우리 인식 능력의 사용이 닿는 범위이며, 그와 함께 철학이 미치는 범위이다. 그러나 가능한 그 대상들에 대한 인식을 성취하기 위해 저 개념들이 관계 맺는 모든 대상의 총괄은 우리의 능력이 이 의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5301 file
    Read More
  11. 13
    Mar 2019
    18:04

    [철학]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 결론

    (...) 다수가 비천함과 가난 속에서 살 때 소수의 권력자와 부자가 권세와 부의 절정을 누리는 것은, 후자의 인간들이 자신이 누리는 것을 전자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며, 만일 민중이 비참하지 않게 되면 상황...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9727 file
    Read More
  12. 12
    Mar 2019
    04:15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순수 이성 · 실천 이성 · 판단력

    (...) 우리는 선험적 원리들에 의한 인식의 능력을 순수 이성이라 부르고, 이 순수 이성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연구를 순수 이성 비판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저런 명칭을 가진 첫번째 저작(순수 이성 비판)에서 그렇게 했듯이, 이 능력을 실천 이성으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098 file
    Read More
  13. 17
    Feb 2019
    00:38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이 책의 결론, '공감(sympathy)'

    (...) 인간 정신의 주요 원천 또는 인간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주요 원인은 쾌락과 고통이다. 이런 감각적인 감정이 우리의 사유나 감정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대개 정서도 느낄 수 없고 행동할 수도 없으며, 욕구나 의욕 역시 보나마나 불가능해질 것이다. 쾌...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009 file
    Read More
  14. 14
    Feb 2019
    06:43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목적론 · 신학 · 교화와 훈육 · 도덕

    (...) 칸트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유기적 존재자들이 목적인의 "실마리"에 따라 판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B319~V389) (중략) '자연의 기술'이라는 개념은 곧 자연목적을 설명할 수 없음을 근거로 해서 "교조적"($74)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2938 file
    Read More
  15. 14
    Feb 2019
    05:07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자연목적론 · 목적론적 판단력

    (...) 과연 자연 안에 객관적 합목적성이 나타나는가? (중략) 자연은 목적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지적 존재자가 아니므로, 자연 안에서 발생되는 합목적성은 특수한 것임에 틀림없다. 구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모든 대상들은 어쨌든 작용 연결(nexus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719 file
    Read More
  16. 13
    Feb 2019
    18:12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예술 · 예술가 · 변증성 · 판단력

    (...) 미감적 판단은 보편적 동의를 요구하지만, 독창적 예술가만이 미적인 것을 산출할 수 있다. 예술 작품들은 자유에 의해 산출된다($43) 실천적 '할 수 있음'이 이론적 앎과 구별되듯이, 숙련의 기예는 학문과 구별된다.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자유로운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127 file
    Read More
  17. 13
    Feb 2019
    05:50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미의 감정(우아미)과 숭고의 감정(숭고미)

    (...) 미의 감정과는 달리 숭고의 감정은 질의 면에서 상상력과 이성의 부조화에 의거한다.($27) "미적인 것의 판정에 있어서 상상력과 지성이 그들의 일치에 의해 그렇게 하듯이, 이 경우에는 상상력과 이성이 그들의 상충에 의해 마음의 능력들의 주관적 합...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9240 file
    Read More
  18. 07
    Feb 2019
    00:21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자연과 인간의 합목적적 관계·역사

    (...) 마지막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궁극 목적은 또한 자연의 최종 목적인가? 다시 말해, 오로지 초감성적 존재로서, 또 가상체로서만 궁극 목적인 인간이 어떻게 감성적 자연의 최종 목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초감성계가 감성계와 통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9651 file
    Read More
  19. 06
    Feb 2019
    21:59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 자연목적론·합목적성·도덕목적론·신학

    (...) 세 개의 비판은 진정한 전환의 체계를 보여준다. 첫째, 능력들은 표상 일반(인식함, 욕구함, 느낌)의 관계에 따라 정의된다. 둘째, 능력들은 표상의 원천(상상력, 지성, 이성)으로서 정의된다. 첫번째 의미의 능력들 각각마다 반드시 두 번째 의미의 능...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494 file
    Read More
  20. 05
    Feb 2019
    20:16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 실천이성비판 · 도덕법칙 · 자유의지 · 입법

    (...) 욕구 능력이 감정적이거나 지성적인 대상의 표상을 통해 규정되지 않고, 또 의지에다 이런 종류의 표상을 연결 짓는 즐거움이나 고통의 느낌을 통해 규정되지 않고, 순수의 표상을 통해 규정될 경우 욕구 능력은 상위 형식을 이룰 수 있다. 이 순수 형...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9319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