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회] 『젠더 트러블』: 젠더(gender)는 없다. 우리 모두가 퀴어(queer)일 수 있다.

by 이우 posted May 01, 2017 Views 1654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젠더트러블.jpg


  (...) 결국 버틀러는 모든 정체성은 문화와 사회가 반복적으로 주입한 허구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며, 그런 의미에서 섹스나 섹슈얼리티도 젠더라고 말한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젠더는 없다." 물론 이때의 젠더는 선험적, 근본적, 원래 주어진 젠더를 뜻한다. 모든 것은 법과 권력과 담론의 이차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구분되지 않을 뿐더러, 젠더마저도 명사로 고정하거나 규정할 수 없다. 몸도, 정체성도, 욕망마저도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의미에서는 모두 젠더이고, 그런 젠더는 안정될 수 없어 부표하는 인공물이자 언제나 진행중인 동사이다. 이런 젠더는 패러디이고 키치이고 캠프이다. 그것은 원본과 모방본이라는 두 항의 중간에 낀 사이공간(in-between) 같은 것이다.

  동일시나 정체성은 사실 환영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인식은 주체에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므로 완전한 인식의 불가능성은 주체 구성의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라는 것은 발화 속에서 '나'의 위치를 인용하는 것이며 그 위치는 삶과의 관계 속에서 우선 우선권과 익명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즉 그것은 '나'에 선행하여 '나'를 초과하는 역사적으로 역전될 수 있는 가능성의 이름이지만 그것 없이는 '나'를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동일시의 구성요소인 젠더 환영은 주체가 가진 자질의 일부가 아니다. 그 환영들이 구현된 심리적 정체성의 계보가 주체를 구성한다. 젠더 환영이야말로 젠더화된 주체의 특수성을 조건 짓고 구성하는 것이다. 젠더는 동일시에 의해 구성되는데 이런 동일시는 필연적으로 환영 안의 환영, 즉 '이중적 환영'이라면, 젠더는 육체의 의미화를 구성하는 몸의 양식을 통해, 또 그 양식에 의해 환영적으로, 허구적으로 구성된다.

  패러디, 수행성, 복종, 우울증으로서의 젠더 논의는 가면이라는 비유어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우선 가면은 배역의 연기를, 그 배역에 해당하는 인물의 본질을 모방한 것이 아니다. 실은 그 인물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간주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문화적 규범 안에서 그 본질적 특성처럼 보이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하는 것이다. 때문에 원본이라는 것은 언제나 규범에 의해 재탄생된 복사본이고,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며, 이에 따라 원본은 자신의 권위를 허문다.

  두번째로 "행위 뒤의 행위자는 없다." 배우가 맡은 배역은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것이지만, 그 연기를 하는 동안은 배역 뒤의 배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배역이 곧 그 역을 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수행적이다. '나'의 정체성은 무대 위의 어떤 배역을 하는 본질적인 배우로서가 아니라 그 배역의 행위를 통해 구성된다. 행위 뒤의 본질적 행위자는 없으며, 행위자는 행위를 통해서만 구성된다.

  세번째로 이런 배역의 수행은 반복된 규범에의 복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가나 제도가 개인을 호명할 때 그 개인은 주체로 거듭나듯이, 무대가 한 배우를 어떤 배역으로 호명할 때 배우는 그 배역으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배역이나 배우를 정하는 것은 무대이고 그 무대는 하나의 담론적 규범공간으로 주체를 구성한다. 이 무대를 벗어날 방법은 없지만, 배우는 규범화된 배역의 구현에 반복적으로 복종하면서, 그 반복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젠더 정체성은 우울증의 이중 전략을 취한다. 가면이 우울증이라는 것은 대상 포기를 거부했다는 의미에서 애도의 거부, 즉 상실의 거부이며 '거부의 거부'라는 이중 부정의 양식이다. 배우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나 배역을 완전히 애도하지 못해서, 즉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해서 그 대상을 자신의 에고로 합체한다. 그렇다면 배우가 연기하는 배역은 곧 사랑의 대상이다. 더 확대하면 '나' 자체가 상실했지만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대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사랑의 대상과 자아의 젠더 정체성은 모호해지고, 남성성이나 이성애를 분명하게 말할 수도 없으므로 동일자가 타자를 층하할 근거는 없다. 이 방식은 알레고리로 나타난다. 이성애적 남성은 게이 우울증자를, 동성애적 여성은 이성애 우울증자를 알레고리한다. (...) 

  퀴어는 티나 브랜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버틀러가 보기에는 고대 그리스의 빛나는 여성 영웅 안티고네도 퀴어 주체일 수 있고, 19세기 양성인간 에를퀼린 바르뱅도 퀴어일 수 있으며, XX나 XY라는 성염색체 범주에 들지 못하는 현대인의 10%가, 아니 비약하자면 매 순간 변모하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퀴어일 수 있다. 주체와 대상, 여성과 남성, 이성애와 동성애가 자신의 독자성이나 순수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이미 어느 정도는 내부에 부정을 위한 '구성적 외부(constitutive outside)'로서의 대립물을 안고 있는 것이라면, 이미 대립물은 부정의 방식으로 주체에 선취되어 있다. 타자는 이제 금기의 방식으로 동일자 안에 들어와 있다. (...)

  1987년 MIT공대의 페이지 박사는 인간의 성염색체 중 10% 가량이 기존의 XX나 XY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비단 염색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전사와 꽃미남이 각광받고 남성 같은 여성, 여성 같은 여성이 활보하는 현대의 젠더 주체는 모두 이분법적인 젠더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모든 젠더 주체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쩌면 젠더는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허무는 무대 위의 공연 행위이고 법의 무의식에 반복 복종하면서 재의미화에 열려 있는 타자를 안고 있는 가변적 주체이다. (...) 

  - <젠더 트러블-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주디스 버틀러 · 문학동네 · 2008년 · 원제 : Gender Trouble, 1990년) p.31~38 <옮긴이 조현준의 해제> 중에서
















  1. 18
    Apr 2019
    07:51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숭고미와 전쟁, 그리고 종교

    (...) 사람들은 어떤 대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그 대상을 두려운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곧 우리가 순전히, 가령 어떤 대상에 저항을 해보려는 경우를 생각하고, 그 경우에 모든 저항이 어림없는 허사가 될 것으로 어떤 대상을 판정한다면 말이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948 file
    Read More
  2. 15
    Apr 2019
    20:28

    [철학]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 : 자유·실천이성의 문제

    (...) 이성이 순수 이성으로서 실제로 실천적이라면, 이성은 자기의 실재성과 자기 개념들의 실재성을 행위를 통하여 증명할 것이고, 그런 가능성에 반대되는 일체의 궤변은 헛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순수 실천 이성 능력)과 더불어 초월적 자유도 바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2189 file
    Read More
  3. 12
    Apr 2019
    04:39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상상력 · 지성 · 자연

    (...) 경험 일반의 가능성 및 경험 대상들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이 근거하는 주관적인 세 인식 원천이 있는데, 그것은 감각기능(감각기관, 감관), 상상력, 그리고 통각이다. 이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주어진 현상들에 대한 적용에서 고...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930 file
    Read More
  4. 11
    Apr 2019
    15:06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선험적 인식 · 자연의 합목적성

    (...) 모든 지각들이 일관되고 합법칙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표상되는 오직 하나의 경험만이 있다. 그것은 거기에 현상들의 모든 형식과 존재 · 비존재의 모든 관계가 생기는 오직 하나의 공간 · 시간만이 있는 이치와 같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경험들을 이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773 file
    Read More
  5. 11
    Apr 2019
    01:48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칸트의 기획

    (...) 모든 경험들은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가 주어지는 감관의 직관 외에 또한 직관에 주어지는, 다시 말해 현상하는 대상에 대한 개념을 함유한다. 그러므로 대상들 일반에 대한 개념들은 선험적인 조건으로서 모든 경험인식의 기초에 놓여 있을 것이다. 따...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652 file
    Read More
  6. 07
    Apr 2019
    01:34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초월적 논리학 · 진리의 문제

    (...)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 다시 말해서 인식의 대상과의 모든 관계 맺음을 도외시하고, 인식들 상호간의 관계에서의 논리적 형식, 다시 말해 사고 일반의 형식만을 고찰한다. 그런데 초월적 감성학이 밝혀주듯이 순수한 직관 뿐만 아니라 경험적...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171 file
    Read More
  7. 04
    Apr 2019
    07:21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초월적 감성학

    (...)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 언제나 인식이 대상들과 관계를 맺든지 간에, 그로써 인식이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고 모든 사고가 수단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직관이다. 그런데 직관은 오로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한에서만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926 file
    Read More
  8. 30
    Mar 2019
    23:41

    [철학]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 인식 · 순수 지성

    (...) 모든 인식은 재료(내용, Materie)와 이 재료를 정리 정돈하는 형식(틀, Form)을 요소로 해서 이루어지거니와, 인식이 사고의 산물인 한에서 인식의 형식은 사고의 형식이며, 이 사고의 형식은 이미 지성에 "예비되어 놓여 있다"(A66=B91). 그러므로 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796 file
    Read More
  9. 25
    Mar 2019
    19:34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감성세계-판단력-초감성세계

    (...) 지성은 감관의 객관인 자연에 대해서 선험적으로 법칙수립적이며, 가능한 경험에서 자연의 이론적 인식을 위한 것이다. 이성은 주관에서의 초감성적인 것인 자유 및 자유의 고유한 원인성에 대해서 선험적으로 법칙수립적이며, 무조건적으로 실천적인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4362 file
    Read More
  10. 19
    Mar 2019
    14:58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판단력

    (...) 선험적 개념들이 적용되는데까지가, 원리에 따른 우리 인식 능력의 사용이 닿는 범위이며, 그와 함께 철학이 미치는 범위이다. 그러나 가능한 그 대상들에 대한 인식을 성취하기 위해 저 개념들이 관계 맺는 모든 대상의 총괄은 우리의 능력이 이 의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5301 file
    Read More
  11. 13
    Mar 2019
    18:04

    [철학]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 결론

    (...) 다수가 비천함과 가난 속에서 살 때 소수의 권력자와 부자가 권세와 부의 절정을 누리는 것은, 후자의 인간들이 자신이 누리는 것을 전자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며, 만일 민중이 비참하지 않게 되면 상황...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9727 file
    Read More
  12. 12
    Mar 2019
    04:15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순수 이성 · 실천 이성 · 판단력

    (...) 우리는 선험적 원리들에 의한 인식의 능력을 순수 이성이라 부르고, 이 순수 이성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연구를 순수 이성 비판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저런 명칭을 가진 첫번째 저작(순수 이성 비판)에서 그렇게 했듯이, 이 능력을 실천 이성으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098 file
    Read More
  13. 17
    Feb 2019
    00:38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이 책의 결론, '공감(sympathy)'

    (...) 인간 정신의 주요 원천 또는 인간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주요 원인은 쾌락과 고통이다. 이런 감각적인 감정이 우리의 사유나 감정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대개 정서도 느낄 수 없고 행동할 수도 없으며, 욕구나 의욕 역시 보나마나 불가능해질 것이다. 쾌...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009 file
    Read More
  14. 14
    Feb 2019
    06:43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목적론 · 신학 · 교화와 훈육 · 도덕

    (...) 칸트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유기적 존재자들이 목적인의 "실마리"에 따라 판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B319~V389) (중략) '자연의 기술'이라는 개념은 곧 자연목적을 설명할 수 없음을 근거로 해서 "교조적"($74)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2938 file
    Read More
  15. 14
    Feb 2019
    05:07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자연목적론 · 목적론적 판단력

    (...) 과연 자연 안에 객관적 합목적성이 나타나는가? (중략) 자연은 목적의 표상에 따라 행위하는 지적 존재자가 아니므로, 자연 안에서 발생되는 합목적성은 특수한 것임에 틀림없다. 구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모든 대상들은 어쨌든 작용 연결(nexus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719 file
    Read More
  16. 13
    Feb 2019
    18:12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예술 · 예술가 · 변증성 · 판단력

    (...) 미감적 판단은 보편적 동의를 요구하지만, 독창적 예술가만이 미적인 것을 산출할 수 있다. 예술 작품들은 자유에 의해 산출된다($43) 실천적 '할 수 있음'이 이론적 앎과 구별되듯이, 숙련의 기예는 학문과 구별된다.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자유로운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128 file
    Read More
  17. 13
    Feb 2019
    05:50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미의 감정(우아미)과 숭고의 감정(숭고미)

    (...) 미의 감정과는 달리 숭고의 감정은 질의 면에서 상상력과 이성의 부조화에 의거한다.($27) "미적인 것의 판정에 있어서 상상력과 지성이 그들의 일치에 의해 그렇게 하듯이, 이 경우에는 상상력과 이성이 그들의 상충에 의해 마음의 능력들의 주관적 합...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9240 file
    Read More
  18. 07
    Feb 2019
    00:21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자연과 인간의 합목적적 관계·역사

    (...) 마지막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궁극 목적은 또한 자연의 최종 목적인가? 다시 말해, 오로지 초감성적 존재로서, 또 가상체로서만 궁극 목적인 인간이 어떻게 감성적 자연의 최종 목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초감성계가 감성계와 통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9651 file
    Read More
  19. 06
    Feb 2019
    21:59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 자연목적론·합목적성·도덕목적론·신학

    (...) 세 개의 비판은 진정한 전환의 체계를 보여준다. 첫째, 능력들은 표상 일반(인식함, 욕구함, 느낌)의 관계에 따라 정의된다. 둘째, 능력들은 표상의 원천(상상력, 지성, 이성)으로서 정의된다. 첫번째 의미의 능력들 각각마다 반드시 두 번째 의미의 능...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494 file
    Read More
  20. 05
    Feb 2019
    20:16

    [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 실천이성비판 · 도덕법칙 · 자유의지 · 입법

    (...) 욕구 능력이 감정적이거나 지성적인 대상의 표상을 통해 규정되지 않고, 또 의지에다 이런 종류의 표상을 연결 짓는 즐거움이나 고통의 느낌을 통해 규정되지 않고, 순수의 표상을 통해 규정될 경우 욕구 능력은 상위 형식을 이룰 수 있다. 이 순수 형...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9319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