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프 프티 : 당신은 매번 글쓰기가 현실의 시간에 대항하는 형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장 보드리야르 : (...)글을 쓴다는 것은 화면과 텍스트, 이미지와 텍스트의 직접적인 분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의 시선이, 거리가 필요하죠. 타자기를 사용하면서도 나에게는 여전히 종이가 보이고, 나는 글쓰기와 물리적 관계를 갖습니다. 반면에 화면 위에서는 비록 어떤 텍스트와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상―이것은 분명한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생각과 글쓰기의 가상적 현실과 같은 것입니다―안에 있게 됩니다. 우리는 상호작용이라는 관계 속에, 심지어 상호 감각이라는 관계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글쓰기는 결코 상호작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 시간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무엇입니다. 즉 개별성인 것이죠. 나는 그것을 비릴리오처럼 저항으로, 구세계와 느림에 대한 옹호로 여지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개별성의 한 형태, 복종하지 않는 무엇이 될 것입니다. 글쓰기는 또 다른 세계, 적대적 세계의 창출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또 다른 작용입니다. 그것은 존재했을 세계를, 그리고 책과 의미, 문화를 가치로서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쓰기에는 보다 공격적인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예정된 프로그램 속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사건이 없는 세계에서 사건을 일으킵니다. 글쓰기는 저항이 아니라 일반 작용으로 축소시킬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와 같은 점은 다른 것들에도 많이 있습니다.
필리프 프티 : 당신이 다른 세계의 창조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이 세계가 완전히 몰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장 보드리야르 : 나는 랭보처럼 우리가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를 대신하게 된 동시 진행적이고 가상적 세계의 구축으로, 우리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우연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저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지하지 못합니다.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 속에 현존한다는 바도,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는 바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음모와 이 세계의 부재, 이 세계에 대한 환상과 이 세계와의 거리감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 <무관심의 절정(Le Paroxyste Indifferent)>(동문선 현대신서 80 · 장 보드리야르 · 동문선 · 2001년) <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허무가 있는가?> p.5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