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겔은 개인적 의지가 자신을 살아 있는 주체로 경험할 수 있는 첫 번째 발전단계, 즉 사랑이라는 인정 관계 또한 그 내적 경험 잠재력을 확장하는 두 가지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에로틱한 사랑 관계가 확립되면서 '타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인식'은 두 당사자의 공통된 인식으로 발전한다. 이제 상호 주관적으로 공유된 인식은 제도적인 부부관계에서 나타나는 협동적 행위를 통해 다시 한 번 반성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식은 대상적인 '제삼자'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도구를 통한 개인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부부간의 사랑에서 '가족 소유'는 이 사랑을 '지속적 존속 가능성'으로 보게 하는 매체이다. 물론 노동 도구와 마찬가지로 가족 소유에는 한계가 있다. 즉 가족 소유라는 매체는 그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경험 내용을 생명력 없게, 무감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하지 못하다. 즉,
"그러나 이 대상은 아직 그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사랑은 극점들로 나누어져 있다. (...) 사랑 자체는 아직 대상이 되지 못한다."(Hegel, Jenaer Realphilosophie, p.203)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외적인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제한 없이 느끼기 위해서 공동의 대상화라는 단계를 필요로 한다. 즉 후손의 탄생을 통해 '인식하는 인식'이 된다. 왜냐하면 부부는 아이를 통해 상대방의 사랑을 서로 알고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헤겔은 여기서 완전히 고전적인 시민가족 이론가로서 자식을 남녀 간의 사랑이 낳은 가장 고차적인 구현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식 속에서 부부는 사랑을 직관한다. 자식은 그들이 스스로 의식한 자기 의식의 통일체이다."(Hegel, Jenaer Realphilosophie, p.204)
물론 헤겔에게는 사랑의 이러한 다양한 전개 형식 중 그 어느 것도 주관적 정신이 자신을 권리 인격체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험 맥락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물론 사랑 관계 속에서 성장한 최초의 상호 인정 관계는 이후의 모든 정체성 발전의 필연적인 전제이다. 왜냐하면 이 인격관계는 개인의 특수한 성향을 인정하고, 따라서 각 개인에게 포기할 수 없는 자기신뢰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협소하고 제한된 상호작용의 틀 속에서 주체가 한 사회의 사회적 맥락 속에 상호주관적으로 보증된 권리의 기능을 배우지는 못한다. (...) 왜냐하면 가족구성원에 대한 사랑관계 속에서 주관적 정신은 사회적 교류를 규율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규범들을 고려할 수밖에 만드는 식의 투쟁에 방해받지 않기 때문이다. (...) 따라서 헤겔은 주체의 형성과정을 세계에 대한 실천적 관계라는 추가적인 차원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주체는 가족이라는 인정관계 속에서 아직 자신을 권리 인격체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헤겔은 주체를 이론적으로 사회적 영역으로 옮겨 놓는다. 이 사회적 영역의 현 상태는 적어도 외적으로 볼 때는 자연상태론에서 확립된 상황에 부합한다. 헤겔은 여기서 현명하게도 새로운 의지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정신의 행위로 근거 지우려 하지 않고, 이를 오히려 단순한 방법적 조치라고 생각한다. 즉 한 가족에게 일련의 가족정체성은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공동생활의 최초 상태가 도출된다. 함께 현존하는 각각의 가족이 한 마지기 땅이라도 자신의 경제적 재화로 장악하려 하는 한, 필연적으로 한 가족은 다른 가족이 자기 땅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수많은 가족 사이에는 일종의 사회적 경쟁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은 일견 자연법적 전통 속에서 기술되었던 바로 그 경쟁 상태(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 상응한다.
"이러한 상태는 흔히 자연상태로 불린다. 여기서는 자유롭고 동등한 존재인 개인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여기서 자연법은 이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어떠한 권리와 의무를 상대방에 대해 갖고 있는가에 대해 대답해 주어야 한다."(Hegel, Jenaer Realphilosophie, p.205)
(...) 헤겔은 하 걸음 더 나아가 상호경쟁이라는 위협적 상황에서 주체들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과제를 인식시키기 위하여 홉스의 유명한 문장을 동조하는 투로 인용한다.
"그들의 유일한 상태는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상태를 지양하는 것이다. 즉 자연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 권리란 타인에 대한 행위 속에 있는 개인의 관계이며, 이들이 자유롭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 요소이거나 이들의 공허한 자유에 대한 규정 또는 제한이다. 이러한 관계 또는 제한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내거나 외부에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대상 자체는 권리 전체, 즉 인정관계의 산물이다."(Hegel, Jenaer Realphilosophie, p.205)
마지막 문장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전통이론과는 다르게 파악하는 설명 틀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헤겔의 생각이다. 우리는 그의 사고과정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만약 기존의 전통적 사고와는 달리 주체들이 적대적 경쟁이라는 사회 조건 아래서도 스스로 사회계약 이념에서 기술된 것과 같은 식의 법적 갈등 해결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규범적 동의를 사전에 보장해주는 상호주관적 사회관계에 대해 이론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관계의 토대를 이루는 계약 이전의 상호인정 관계만이 도덕적 잠재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적 잠재력은 자신들의 자유 영역을 서로 제한하려는 개인들의 자세를 통해 적극적으로 실현된다. (...) 자연 상태라는 사회적 상태에게 필연적으로 덧붙여 고려해야 하는 사실은, 주체들이 투쟁에 앞서서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이미 그가 인정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했던 문장과 다음과 같은 주장을 직접 연결한다.
"인정 행위 속에서 나는 개별자가가 아니다. 나는 당연히 인정 행위 속에서 존재하며, 더 이상 매개 없는 현존재가 아니다. 인정된 자는 이 존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유효하게 인정된 것이지만, 바로 이 존재는 개념상 산출된 것이며, 필연적으로 인정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필연성은 인간 본유의 것이며, 내용과 대립하는 우리 사고의 필연성이 아니다. 인간 자체는 인정 행위로서의 운동이며, 이러한 운동이 바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극복한다. 즉 인간은 인정 행위다."(Hegel, Jenaer Realphilosophie, p.205)
(...) 그가 제시하는 결정적인 논거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공동생활은 주체들 사이의 일종의 기초적인 상호 긍정을 전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어떠한 식의 '함께 존재함'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 긍정이 항상 어느 정도 개인의 자기 제한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아직 암묵적이지만 권리 의식의 최초의 형태가 대두한다. (...)
- <인정투쟁-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년, 원제 : Kampf um Anerkennung) p.9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