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회] 놀이는 감각과 정신 사이 ·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는 중간 지층

by 이우 posted Mar 27, 2017 Views 305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호모루덴스.jpg


   (...) 우리의 시대보다 더 행복했던 시대에 인류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감히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우리 인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인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물건을 만들어내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faber(물건을 만들어내는)라는 말이 sapience(생각하다)라는 말보다는 보다 명확하지만, 많은 동물들도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말 역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모든 인간의 행위를 "놀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대의 지혜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을 천박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형이상적 결론(놀이는 천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리라. (...)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문화의 정의는 다르다. 아무리 개략적으로 문화를 정의한다 할지라도 인간사회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문화가 있다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 사회가 놀이를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놀이를 해왔다. 우리는 아주 안전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놀이의 일반적 개념을 놓고 볼 때, 인간의 문명은 아무런 본질적 특징을 보태준 것이 없다.

  동물들은 인간과 똑같이 놀이를 한다. 강아지들이 즐거운 놀이를 유심히 지켜보면  거기에 인간의 놀이에 깃든 본질적 측면이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아지들은 어떤 일정한 자세와 동작을 취하면서 상대를 놀이에 끌어들인다. 네 형제의 귀를 물어서는 안 된다. 물더라도 세게 물어서는 안 된다 등의 규칙을 지키면서 즐겁게 논다. 강아지들은 짐짓 화난 체하기도 한다. (..) 개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기적으로 경주를 하거나 멋진 공연을 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동물 수준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 할지라도 놀이는 생리적 현상 혹은 심리적 반사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놀이는 순수한 신체적 · 생물적 활동의 영역을 훌쩍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심장한' 기능인데, 부연해서 말해 보자면 놀이에는 어떤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 놀이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놀고 있는데(작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생활의 즉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 행동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모든 놀이는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놀이의 본질이 '본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에 놀이를 가리켜 "의지", 혹은 "의도"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무 많이 말해 버린 것이 된다. (...)

  심리학과 생리학은 동물, 아이, 어른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묘사하고, 설명한다. 이 학문들은 놀이의 본질과 의미를 결정하고 그것이 일상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부여한다. (...) 놀이를 특정 기능을 구사하려는 내적 충동, 혹은 남을 지배하고 경쟁하려는 욕망 등으로 해석했다. 다른 학자들은 해로운 충동을 발산시키는 배출구 역할을 하는 "발산"으로 정의했다. 일방적인 행위로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는 것. "소망 충족". 개인적 가치의 느낌을 유지시켜 주는 허국적 개념 등으로 보는 해석들도 있다.  이러한 가설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놀이는 놀이 자체가 '아닌' 어떤 것에 봉사하고, 생물적 목적을 갖고 있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

  위에 제시한 여러 설명들에 대하여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알겠다. 하지만 놀이하기의 '재미'란 어떤 것인가? 왜 어린아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가? 왜 도박사는 도박에 몰두하는가? 생물학적 분석으로는 이런 놀이의 열광과 몰두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열광, 몰두, 광분 등에 놀이의 본질 혹은 원초적 특징이 깃들어 있는데 말이다.

  자연은 잉여에너지의 발산, 힘든 일 이후의 긴장 완화, 장래의 일에 대비한 훈련, 충족되지 못한 동경의 보상 등을 위해서라면 기계적 운동이나 반응 등을 그 자녀들에게 제공하고 만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자녀들에게 진장, 즐거움, 재미 등을 갖춘 놀이를 제공했다. 이 나중에 언급된 요소, 즉 놀이의 '재미'는 각종 분석과 논리적 해석을 거부한다.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볼 때, 어떤 심리적 범주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놀이가 벌어지는 현실은 인간 생활의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합리성에서 그 기반을 찾으려는 것은 무리이다. (...) 놀이라는 현상은 문명의 특정 단계나 특정 세계관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요한 하위징아 · 연암서가 · 2010년 · 원제 : Homo Ludens : a study of the play element in culture, 1938년) p.20~33












  1. 12
    Oct 2019
    02:53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제7판 서론* :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교차점, 기억

    (...) 이 책은 정신(esprit)과 물질(matiers)의 실재성을 주장하고, 전자와 후자와의 관계를 하나의 정확한 예증, 즉 기억이라는 예증 위에서 규정하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이 책은 분명히 이원론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책은 물체(corps)와 정신을, 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174 file
    Read More
  2. 09
    Aug 2019
    02:22

    [철학] 니체의 「아침놀」 : 철학자

    468. 아름다움의 나라는 더 크다―우리는 모든 것에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즉 그 아름다움을 현장에서 붙잡기 위해 자연 속을 교활하면서도 유쾌하게 돌아다닌다. 또한 우리는 어떤 때는 햇볕 아래서, 어떤 때는 폭풍우가 올 것 같은 하늘 아래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5610 file
    Read More
  3. 31
    Jul 2019
    08:43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사르트르와 카뮈가 본 미국 사회

    (...) 1945년 초부터 1946년 여름 사이에 사르트르는 미국을 두 번 방문했다. 합쳐서 거의 6개월을 보냈고 뉴욕에 여자 친구도 있었고, 전국을 돌며 최고 명문대학 여러 곳에서 강연했다. (중략) 사르트르는 미국에 심취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 문학, 영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268 file
    Read More
  4. 31
    Jul 2019
    06:15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보부아르가 본 미국 사회

    (...) 리처드 라이트는 미국 순회강연의 첫 행선지인 뉴욕에 오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환영하고 그녀와 정치를 논할 일을 고대했다. 그녀는 미국 여행을 위해 열을 내며 짐을 쌌다. 생애 처음으로 그녀는 경솔하게 행동했고 그 때문에 자신이 미웠다. 미국 여...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5112 file
    Read More
  5. 30
    Jul 2019
    23:19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사회민주주의·초현실주의, 혹은 추상미술

    (...) 1945년 10월 총선에서 프랑스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으며, 알베르 카뮈는 <<콩바>> 독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이 없으므로 비공산 계열 사회주의자들에게 투표하기를 촉구했다. 그는 샤를 드골을 존경했지만 평화의 시기에 군 장성이 정치에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545 file
    Read More
  6. 25
    Jul 2019
    11:17

    [철학] 니체의 「아침놀」 : 노동과 자본

    203. 나쁜 식사법에 대한 반대―호텔에서든 사회의 상류층이 사는 어느 곳에서든 현재 사람들이 하는 식사는 엉망이다! 크게 존경받을만한 학자들이 모일 경우에조차 그들의 식탁은 은행가의 식탁과 동일하게 가득 채워진다. 다량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이것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495 file
    Read More
  7. 21
    Jul 2019
    19:54

    [사회]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 수집가

    (...) 이러한 아케이드의 내부 공간은 종종 시대에 뒤쳐져가는 업종들의 피신처가 되는데,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장사도 그러한 공간에서 왠지 낡고 허름한 분위기를 띠게 될 것이다. 이곳은 기업 상담소와 흥신소의 소굴로, 이들은 2층의 갤러리에서 내리비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8048 file
    Read More
  8. 18
    Jul 2019
    21:17

    [철학] 니체의 「아침놀」 : 사회·국가·경제·정치·노동·법·예술, 그리고 고독

    171. 근대인의 음식물―근대인은 많은 것을, 아니 거의 모든 것을 소화할 줄 안다. 이것이 야심의 근대적인 형태다. 그러나 그가 거의 모든 것을 소화할 줄 모른다면 그는 좀더 고차적일 것이다. 모든 것을 먹는 인간(Homo pamphagus)은 가장 세련된 종이 아니...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951 file
    Read More
  9. 13
    Jul 2019
    15:05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1940년~50년 파리의 풍경

    (...) 『파리 좌안 1940-50』은 1905년~30년 사이에 태어나 1940~50년 사이에 파리에서 살고, 사랑하고, 싸우고, 놀고, 활약했으며 그때 내놓은 지적, 예술적 산출물로 지금까지 계속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심지어 옷 입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851 file
    Read More
  10. 06
    Jul 2019
    23:07

    [철학]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 철학

    (...) 철학적 체계들은 오직 그 창설자에게만 전적으로 참이다. 훗날의 모든 철학자에게 그것은 으레 위대한 오류이고, 우둔한 사람들에게는 오류와 진리의 합계이다. (중략) 많은 사람들은 어떤 철학자라고 할지라도 비난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목표가 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3735 file
    Read More
  11. 04
    Jul 2019
    16:37

    [철학]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 경쟁 · 시기 · 질투 , 그리고 국가

    (...) 우리가 인간성에 관해 말할 때는 그것이 이미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시켜 특정짓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적 특성들과 본래 인간적인 것으로 불리는 것들은 떼어놓을 수 없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55159 file
    Read More
  12. 03
    Jul 2019
    02:14

    [철학]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 노동존엄성과 노동, 폭력과 국가, 그리고 전쟁의 비밀스러운 상관관계

    (...) 신세대들인 우리는 그리스인들보다 두 가지 개념을 더 가지고 있는데, 이 개념들은 말하자면 완전히 노예처럼 행동하면서도 '노예'라는 낱말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세계를 위로하는 수단으로 주어져 있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존엄'에 관해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322 file
    Read More
  13. 25
    Jun 2019
    02:51

    [철학] 니체의 「아침놀」 : 서문 · 당신은 왜 고독한가?

    1. 이 책에서 사람들은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뚫고 들어가며,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사람이다. 그렇게 깊은 곳에서 향해지는 일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지만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54474 file
    Read More
  14. 22
    Jun 2019
    02:33

    [문학] 시인 김수영, 「詩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詩의 존재」

    (...)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 물음이 포괄하고 있는 원주가 바로 우리들 오늘의 세미나*의 주제인,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와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8578 file
    Read More
  15. 29
    May 2019
    18:32

    [철학]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 비극의 탄생 · 비극적 사유의 탄생

    (...) 자신들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런 이론을 자신들의 신들을 통해 동시에 숨겼던 그리스인들은 예술의 이중적 원천으로 두 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내세웠다. 예술의 영역에서 이 이름들은 대립되는 양식들을 대변한다. 이 양식들은 상호투쟁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103 file
    Read More
  16. 29
    May 2019
    08:05

    [철학]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 예술의 탄생·디오니소스적 세계관

    (...) 자신들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런 이론을 자신들의 신을 통해 말하고 동시에 숨겼던 그리스인들은 예술의 이중적 원천으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두 신을 내세웠다. 예술의 영역에서 이 이름들은 대립되는 양식들을 대변한다. 이 양식들은 상호투...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474 file
    Read More
  17. 17
    May 2019
    00:56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자연의 최종 목적

    (...) 우리는 앞 조항에서, 우리가 인간을 모든 유기적 존재자들들과 같이 한낱 자연목적으로뿐만 아니라, 이성의 원칙들에 따르면, 여기 지상에서는 그것과 관계해서 여타 모든 자연사물들이 목적들의 체계를 이루는, 자연의 최종목적으로, 비록 규정적 판단...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312 file
    Read More
  18. 16
    May 2019
    04:43

    [철학]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 : 유기체와 지층

    (...) 우리는 한 지층에서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무엇이 한 지층에 통일성과 다양성을 부여하는가? 질료, 고른판(또는 안고른판)이라는 순수 질료는 지층들 바깥에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한 지층 안에서 분자들은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798 file
    Read More
  19. 05
    May 2019
    01:05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자연의 외적 합목적성과 내적 합목적성

    (...) 한 사물이 오직 목적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그 사물의 기원의 원인성을 자연의 기계성이 아니라 그 작용능력이 개념들에 의해 규정되는 어떤 원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실이 요구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994 file
    Read More
  20. 25
    Apr 2019
    21:48

    [철학] 칸트의 『판단력 비판』 : 예술의 구분과 가치 비교

    $51. 미적기예(예술)들의 구분에 대하여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미를 자연미가 됐든 예술미가 됐든 미감적 이념들의 표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예술에서는 이 이념이 객관에 대한 하나의 개념에 의해 유발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222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