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옥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년)은 미셸 푸코의 사상적 변화 과정에서뿐 아니라 서구 지성사의 전개과정에서도 새롭고 큰 변화를 보여준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의 작업들과 이 책의 의미를 구별짓기 위해서 "이것은 나의 첫번째 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학문적 성과를 스스로 보존하려려 하거나 자신의 거창한 학문적 체계를 구축하려는 지식인들의 야심과는 달리, 그는 전문적인 작가나 체계적인 학자 혹은, 사상가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책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쓰일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기를 바랐다. 그 연장통에는 물론, 부르조아와 사회의 벽과 틀을 보다 안전하고 보다 튼튼하게 수리할 수 있는 도구들이 담겨 있지 않고, 현재의 사회를 폭파할 수 있는 위험한 폭약장치들이 담겨 있다. 보이건 보이지 않는 감옥이건, 국가 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장치라 할 수 있는 감옥의 문제를 다루면서, 푸코는 이 책이 권력의 정체를 폭로하고, 거대한 권력구조를 폭파할 수 있는 폭탄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인 것이다.
흔히 감옥의 역사를 연상하게 되는 이 책은 사실상 그러한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언급된 것처럼, "근대정신과 새로운 재판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목표로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감옥, 죄수복, 쇠사슬, 처형장 등의 물질적 형태뿐 아니라 범죄, 형벌, 재판, 법률 등의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푸코는 감옥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감옥과 감시의 체제를 통한 권력의 정체와 전략을 파헤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감시와 처벌』은 권력이 인간과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적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기술한 책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간을 처벌하고 감금하는 권력에 대한 서술이자 근대적 도덕과 영혼의 계보학이기도 하고, 권력의 역사이자 권력에 대한 철학적 이론이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가지 의도가 이 책에서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보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정치·경제의 직접적인 영향이나 연결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즉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나 '신체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독특한 탐구로 이뤄진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이 책의 중심적인 방법은 계보학적 방법이고, 이런 점에서 그의 책은 계보학적 방법으로 씌어진 첫번째 책인 것이다.
푸코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서 큰 시사를 받았음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방법론을 계보학적 방법이라고 명명하였다. 『감시와 처벌』 이전의 책들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과 관련지어 고고학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과 사물』은 인문과학의 발생을 탐구하는 고고학이었고, 『지식의 고고학』은 한 시대 지식의 토대와 구조, 지적 담론의 규범과 법칙, 체계를 밝혀내기 위한 고고학적 연구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고고학적 탐구를 수행하지 않고, 계보학적인 사유의 지평으로 옮겨간다. 계보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법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역사에 있어 고정된 본질이나 심층적 법칙, 형이상학적 결말,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진리의 의미가 있다는 논리를 부정한다. 그것은 의미, 가치, 진리, 도덕, 선 등의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들 속에 감춰진 권력의 전략, 지배와 복종, 억압과 전투의 관계를 파헤친다. 그것은 지식의 담화, 추상적인 언술행위 속에 이루어진 권력의 개입과 작용을 파악한다. 푸코의 설명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계보학은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한 모습이다. 그것은 매사에 꼼꼼하고 끈질기게 자료를 섭렵한다. 그것은 뒤엉켜 있고 긁혀 있고 여러 번 다시 쓴 양피지들 위에서 작업한다. (...) 계보학은 세밀한 지식과 엄청난 양의 자료들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것은 거창한 오류의 작업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방법론에 의거하여 확립된 사실과 일치하는 작은 진실을 축적해 가야 한다. 요컨대 박학함과 함께 끈질김이 있어야 한다. 계보학은 철학자의 오만하고 깊이 있는 시선이 학자의 두더지 같은 시선과 대비되듯이 그렇게 역사와 대립되지는 않는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관념적인 의미 현상이나 불확실한 목적론들로 된 메타역사학적인 전개와 대립된다. 그것은 '기원'의 추구와 대립된다.(니체, 『계보학의 역사』)
푸코의 계보학은 역사적 시각을 갖되 역사학과 구별되는 것이며, 개별적인 사건들의 뿌리를 추적하되 그것들이 과거와 현재의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원인과 결과를 이룬다는 결정론적 시각을 거부한다. 그것은 궁극적 진리나 절대적 앎을 전제로 한 헤겔적 이성의 계보학이 아니라 해석의 가능성이 끊임없이 열릴 수 있는 니체적인 계보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감옥과 처벌의 문제를 보자면, 감옥이라는 권력의 처벌수단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감옥을 통해서 인간-신체에 관한 정치적 기술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된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 감옥이 현대화되고, 형벌이 완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죄수에 대한 권력의 인간적 처벌이나 처벌방법의 근대화로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전략이 바뀐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
-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미셸 푸코 · 나남출판 · 2003년 · 원제 : Surveiller et Punir : Naissance de la prison, 1975년 ) <역자 오생근의 서문 중에서>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