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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니체의 『유고 (1870년-1873년)』 : 예술의 탄생·디오니소스적 세계관

by 이우 posted May 29, 2019 Views 1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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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들의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런 이론을 자신들의 신을 통해 말하고 동시에 숨겼던 그리스인들은 예술의 이중적 원천으로 아폴론디오니소스 두 신을 내세웠다. 예술의 영역에서 이 이름들은 대립되는 양식들을 대변한다. 이 양식들은 상호투쟁 속에서도 거의 항상 나란히 등장하며, 오직 한 번 그리스의 '의지'가 꽃피웠던 절정의 순간에 아티카 비극의 예술작품으로 융해되어 나타난다. 요컨대 인간은 두 상태, 즉 도취 속에서 실존의 환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완전한 예술가로 존재하는 꿈의 세계의 아름다운 가상은 모든 조형예술의 아버지이며, 또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절반의 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형태를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즐기게 되고 모든 형식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중략)

  아폴론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의 신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오로지 꿈의 표상을 상징하는 신으로 존재하는 한에서만 그렇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빛을 발하면서 나타나는 자'이다. 그는 아주 깊은 근원에서부터 빛나는 광채를 통해 현현하는 태양과 빛의 신이다. '아름다움'이 그의 요소이며 영원한 젊음이 그에게 주어졌다. (중략) 아름다운 가상의 신은 곧 참된 인식의 신이기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적인 격정의 영향을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가상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또 기만시키지도 않게 하려면 꿈의 환상이 넘어서는 안 될 저 부드러운 경계선 또한 아폴론의 존재에 꼭 필요하다. 알맞은 한계. 저 거친 격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형가 신의 지혜와 안정이. 그의 눈은 '태양처럼' 고요해야 한다. (중략)

  이에 반해 디오니소스적 예술도취, 황홀과의 유희에 기반을 둔다. 천진난만한 자연인을 도취의 자기망각으로까지 고취시키는 것은 바로 두 가지 힘, 봄의 충동과 도취의 영약이다. (중략) 디오니소스 축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유대를 맺어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화해시킨다. 땅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선물을 내놓고, 가장 광폭한 야수들마저도 평화롭게 서로 가까워진다. 표범과 호랑이들은 꽃으로 장식한 디오니소스의 마차를 끈다. 궁핍과 자의가 인간들 사이에 그어놓았던 세습적 신분과 같은 경계들은 사라진다. 노예자유인이 되고, 귀족과 천민이 같은 바쿠스 합창단원으로 화합한다. '세계들의 조화'를 알리는 복음은 점점 더 불어나는 무리들을 통해 이곳에서 저곳으로 급속히 퍼져나간다. 노래하고 춤추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좀더 높은 이상적인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천명한다. 그는 걷는 법과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느끼며, 그는 실제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짐승들이 말하고, 땅이 우유와 꿀을 주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역시 초자연적인 것이 울려 나온다 그는  스스로를 신으로 느낀다. 평상시에는 오직 상상력 속에서만 살아 숨쉬고 있던 것, 그는 지금 그것을 자기자신에서 느낀다. 지금 그에게 상징과 입상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은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예술작품이 되어버렸다. (중략)

  쇼펜하우어의 궤도에 따르는 철학은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무의식적 표상의지 상태의 복합체로 파악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의지의 추구는 쾌락이나 불쾌로 표현되고, 이 표현을 통해서는 단지 양적 차이만을 드러낼 뿐이다. 쾌락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며, 수반하는 표상들이 다수일 뿐이다. 우리는 쾌락을 하나의 의지가 충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불쾌는 불충족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 부분적으로, 극히 부분적으로 감정은 사상, 즉 의식화된 표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물론 수반하는 표상들의 일부에 해당된다. 감정의 이 영역에서도 풀 수 없는 부분은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다. 언어, 즉 개념과 연관된 것만이 해결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시'의 경계는 감정의 표현 가능성 속에서 규정된다.

  다른 두 가지 전달 방식들은 대체로 본능적이며, 무의식이긴 하지만 합목적적으로 작용하는 방식들이다. 그것은 몸짓언어음성언어이다. 몸짓언어는 일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상징으로 구성되며, 반사운동을 통해 산출된다. 이 상징들은 가시적이다. 즉 이들을 보는 눈은 몸짓이 산출하고 상징하는 상태를 즉각 매개한다. 보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지각하는 운동이 이루어지는 동일한 얼굴 부위 또는 신체적 교감 신경자극을 느낀다. 상징은 여기서 전적으로 불완전한 부분적 묘사를 의미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지 합의해야만 하는 암시적 기호를 의미한다. (중략) 회화조형미술은 특정한 몸짓을 하고 있는 사람을 서술한다. 즉 이들은 상징을 모방하며, 우리가 이 상징을 이해할 때 효과를 성취하는 것이다. 직관의 쾌락은 그것이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상징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에 반해 배우는 상징을 가상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서술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미치는 배우의 영향력은 그 상징을 이해하는 데 근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상징화된 감정 속으로 침잠하지, 가상에 대한 쾌락, 아름다운 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에서 장식은 결코 가상의 쾌락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는 장식을 상징으로 파악하고, 이 상징을 통해 암시된 현실을 이해한다. 밀랍인형과 실제 식물들은 그려진 온갖 다른 장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기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지 인위적 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한다. 여기에서 과제는 개연성이지,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장미는 아름답다'는 문장이 뜻하는 바는 오직 장미훌륭한 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뿐이다. 장미는 우리 마음에 드는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것으로는 장미의 본질에 관해 말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장미는 마음에 들고, 가상으로서의 쾌락을 자극한다. 다시 말해 의지는 빛나는 장미의 가상을 통해 충족되고, 실존에 대한 쾌락이 이로써 증진된다. 장미는 빛나는 가상에 따라 자신의 의지의 충실한 모사물이다. 이는 아름다움의 형식과도 일치한다. 장미는 자신의 가상에 따라 종(種)의 규정에 일치한다. 장미가 가상을 통해 자신의 종에 일치하면 할수록 장미는 더욱 아름답다. 만약 장미가 본질에 따라 종의 규정에 일치한다면, 장미는 '좋은(선한)'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우리가 어떤 그림에서 가지는 표상이 여기서 충족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그림을 '좋다'고 부른다면, 우리는 그 그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그림의 본질에 부합하는 표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아름다운 어떤 것을 서술하는 그림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문외한의 판단이다. 이들은 주로 질료의 아름다움을 향유한다. 이렇게 우리는 드라마 속의 조형예술을 즐겨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오직 아름다운 것만 서술하는 것이 과제가 될 수 없다. 드라마가 참으로 보이면 충분한다. 서술된 대상은 가능한 한 감각적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즉 진리라는 인상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상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주장의 반대가 요구된다. (중략)

  음성의 전달. 엄밀하게 말하면, 음성이 상징하는 것은 어떤 표상도 수반하지 않은 쾌락과 불쾌의 다양한 방식들이다. 우리가 다양한 불쾌감을 특정짓기 위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몸짓의 상징을 통해 분명해진 표상들의 영상이다. 예컨대 갑작스러운 공포를 말할 때, 우리는 고통의 '두근거림, 욱신거림, 경련, 콕콕 쑤심, 베는 듯이 아픔, 간지럽힘'을 말한다. 이로써 의지의 간헐적 신경자극의 형식들이 표현된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말하면 음성언어의 상징론 속에는 운율론이 표현되어 있다. 의지가 증가하는 정도와 쾌락과 불쾌의 변화하는 양을 우리는 소리의 역학에서 다시 인식한다. 그러나 소리의 본래적 본질은 비유적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지 않고 화음 속에 은폐한다. 의지와 그것의 상징인 화음, 이 양자는 궁극적으로 순수 논리학이 아닌가! (중략)

  이제 우리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작품에 대한 몸짓언어음성언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봄축제에서 부르는 민중의 야생적 디오니소스 찬가에서 인간은 자신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유적 인간으로 말하고자 한다. 인간이 개별적 인간이기를 멈춘다는 사실은 눈의 상징론과 몸짓언어를 통해 표현되어, 그는 이제 사티로스로서, 즉 자연존재 중의 자연존재가 되어 몸짓으로 말한다. 그것도 고양된 몸짓언어인 춤의 몸짓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는 소리를 통해서는 자연의 가장 내면적이 사상을 표현한다. 몸짓에서처럼 단지 유적 존재의 수호신만이 아닌 실존 자체의 수호신, 즉 의지가 여기서 스스로를 직접 이해시킨다. 그러므로 그는 몸짓을 가지고는 유적 존재의 한계, 즉 현상 세계의 한계 내에 머물지만, 소리로써 현상의 세계를 원천적 통일성으로 해체시킨다. 소리의 마법 앞에서 마야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인은 언제 소리의 상징에 이르게 되는가? 몸짓언어가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은 언제인가? 무엇보다도 의지가 최고의 쾌와 불쾌의 상태에 있을 때, 환호하는 의지로서 또는 죽음의 불안에 떨고 있는 의지로서, 간단히 말해 감정의 도취에서, 다시 말해 절규할 때 그렇다. 절규는 시선보다 얼마나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가! 그러나 좀더 부드러운 의지의 감동도 역시 나름의 소리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몸짓에 하나의 소리가 나란히 짝을 이룬다. 그러나 소리를 순수한 음향으로 고양시키는 것은 오직 감정이 도취에서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일종의 몸짓상징술소리 사이에서 가장 자주 이루어지는 내면적 융합을 사람들은 언어라고 명명한다. 낱말 속에서 소리와 그 변동, 그리고 소리가 울리는 강도와 운율을 통해 사물의 본질이 상징화된다. 그리고 입의 몸짓을 통해서는 표상, 영상, 분질의 현상이 상징화된다. 그러나 상징들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현명한 법칙성을 거지고 자라난다. 인지된 상징은 하나의 개념이다. 기억으로 붙잡는 순간 소리의 울림은 완전히 소멸되기 때문에, 개념 속에는 오직 수반하는 표상의 상징만 보존될 뿐이다. 우리가 기호로 표시하고 구별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사람들은 '파악한다.'

  감정이 고양되는 상태에서의 낱말의 본질이 소리의 상징을 통해 더욱 명료하고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이 더욱 많이 울려나온다. 서창(敍唱)은 흡사 자연으로의 회귀와 같다. 사용하는 가운데 점점 뮤뎌지고 무감각해지는 상징은 자신의 원천적 힘을 다시 얻는다.

  이제 언어의 배치, 즉 일련의 상징들을 통해 무엇인가 새롭고 위대한 것이 상징적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이 잠재력에는 다시금 운율화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좀 더 높은 영역들이 지금은 개별 낱말의 좁은 영역을 지배한다. 이제 낱말을 선택하고, 새롭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문장의 서창은 전적으로 상대적인 소리만을 가질 뿐인데 그 이유는 낱말의 본질과 상징을 통해 서술된 낱말의 내용은 자리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낱말의 개별 상징은 문장과 이를 통해 상징화된 본질의 더욱 높은 통일성에서 지속적으로 새롭게 규정되기 때문이다. 개념들의 연쇄고리가 사상이다. 따라서 사상은 수반하는 표상들의 좀 더 높은 통일성이다. 사상은 사물의 본질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사상이 우리에게 모티브의지의 충동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이미 의지현상, 의지의 자극과 현상에 대한 인지된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은 말로 표현되면, 즉 소리의 상징을 통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지고 직접적이 된다. 선율이 의지의 이해될 수 있는 상징이라면, 사상노래로 불려질 때 최고의 효과를 얻는다. (중략)

  낱말이 주로 수반하는 표상의 상징으로 작용하는지 아니면 원래의 의지활동의 상징으로 작용하는지에 따라, 또 영상이나 감정이 상징화되어야 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시의 길은 두 갈래, 즉 서사시서정시로 연결된다. 현상에 대한 쾌락이 서사시를 지배한다면, 의지가 서정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사시가 음악에서 스스로를 분리하는 반면, 서정시는 음악과의 연대를 지속시킨다.

  그런데 디오니소스 송가에서 디오니소스에서 열광하는 자들은 자신이 지닌 모든 상징적 능력을 최고로 고양시키도록 자극받는다. 이제까지 지각하지 않았던 그 무엇이 강력하게 표출되고, 개인화의 파괴와 유적 존재의 수호신인 자연과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이제 자연의 본질이 표현된다. 새로운 상징의 세계가 필요하고, 수반하는 표상들은 고양된 인간 존재의 영상을 통해 상징화된다. 그 표상들은 온갖 신체적 상징술과 춤의 몸짓을 통해 아주 강렬한 물리적 에너지로 서술된다. 그러나 의지의 세계 역시 전대미문의 상징적 표현을 요구한다. 화음, 강약법, 운율의 여러 힘들이 갑자기 격렬해진다. 이 두 세계로 나뉜 시 역시 새로운 영역을 얻게 된다. 서사시에서와 같이 영상의 감각서성시에서와 같이 소리의 감정 도취를 말이다. 모든 상징적 힘을 전체적으로 방출하기 위해서는 이 힘들을 창조한 본질을 고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디오니소스 송가에서 디오니소스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은 오직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해된다. 또한 그로 인해 낯설고 매혹적으로 기묘한 이 새로운 예술 세계는 아폴론적 그리스 정신이 야기한 무서운 투쟁 속에서 수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

  - 『유고 (1870년-1873년)』(니체전집 3 ·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01년) <디오니소스적 세계관> p.5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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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ct 2019
    12:53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서문

    (...) 시간은 유한한 존재의 진정한 한계인가, 아니면 유한한 존재의 신(神)과의 관계인가? 시간은 유한성과 반대로 무한성을, 결핍에 반대하여 자족성을 존재자에게 보장해 줄 수 없는 관계, 하지만 만족과 불만을 넘어서 덤으로서의 사회성을 뜻하는 관계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35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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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4
    Oct 2019
    19:23

    [철학] 『말과 사물』 : 서문 · 분절(分節, articulation)의 문제

    (...) 이 책의 탄생 장소는 보르헤스의 텍스트이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에게 존재물의 무질서한 우글거림을 완화해 주는 정돈된 표면과 평면을 모조리 흩뜨리고 우리의 매우 오래된 관행인 동일자와 타자의 원리에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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