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때로 나야말로 지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 대중 레저시대(Age of Mass Leisure)가 금방이라도 도래할 듯이 일부 사회학자들이 온갖 상투적인 논거를 통원해 수많은 갑론을박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수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료 입장권이나 선전 전단에 잔뜩 매료되어 있었다. 아무튼 언론에서는 그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노동은 일상의 삶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었고 레저가 뉴 프론티어(new frontier)가 되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1980년대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빨간 실크 넥타이를 매고 정색을 한 얼굴로 "죽어라고 일만 함으로써, 그뿐이지 뭐"라고 대답했다. 또는 많이 논의되고 있는 서비스 경제의 맥락에서, '그저 노예거니 하지 뭐"라고 대답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블랙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급진적인 노동조합 조직가인 제임스 보그스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의 혁명 : 니그로 노동자의 노트로부터(The American Revolution: Pages from a Negro Worker's Notebook)>(1963)라는 저서에서 여가에 대한 순진한 예언자들의 가정들을 하나하나 논박해 보인 바 있다. 그는, 이들 해설가들은 미국이 실제로는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마치 사회주의 사회인 듯이 가정하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20년 전, 즉 풍족한 1960년대가 막 시작되던 때에 보그스는 경제 엘리트들한테 '시시한 시대(Mean Season)'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 실제로 보그스는 오늘날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무주택자의 폭발과 새로운 형태의 가난 문제를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이윤 착취 체제라는 제도는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사람들을 매정하게 사회 밖으로 쫓아낼 것이며, 제 멋대로인 데다 이윤 창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해고시켜 결국엔 굶겨 죽이려고 드는 사람들과 그같이 야만적인 잔학 행위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 여가가 아니라 실업자들이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생활 보호 대상자, 죄수, 집행 유예 기간에 있는 사람들, 노인, 학생이나 청소년, 징병기피자 등 실제로는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공하는 무임 노동에 대한 주기적인 수요가 나타날 뿐이다. 이러한 일종의 강제 노동(command labor)의 일부는 공공연히 징벌적이지만, 일부는 자발적인 노동으로 선언되거나 다른 일부는 '사회 봉사'로 분류된다. (...)
정기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도 '노동을 조장하는 복지정책'의 에토스(ethos, 사회 전체의 분위기나 도덕적 풍조)로부터 면제되어 있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가 중산 계급의 게으름뱅이나 법정 최저 임금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을 다루는 방식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면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표준 작업량과 성과(생산 증가)에 대한 혹독한 압력이 있으며, 이처럼 매일 매순간 총구 앞에서 꿈짝 못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들 남녀 임금 노예에게는 '생산성', '우수성', '경쟁', '팀워크', '작업 현장이 질', '스트레스 관리' 따위나 이와 비슷한 미덕을 널리 전파시키려는 끊임없는 과대 선전 공세가 가해진다. (...)
특히 학생이나 청소년 문제는 현재 널리 횡행하고 있는 사업교(industrial religon)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보여주는 저주스런 증거이다. 최근 생산성 증가를 위해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커지면서, 미래의 경제적 착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막대한 역점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압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미국 교육부는 끊임없이 교육 개혁이 아지도 부족하고 학생들에게 일을 하라는 압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교육 제도는 생산성의 깃발 아래 정말 심각하게 아이들을 동원하고 있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
1950년대 말 이래 개인주의적인 사적 자본주의라는 단아한 구세계의 마지막 유물이 사라져가고 난 후 소위 '일의 세계(world of works)'가 서서히 개인과 사회적 삶의 영역 속으로 침투해 들어 왔다. 현대 자본주의는 본질상 전체주의적이며, 모든 인류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노동뿐만 아니라 '자유' 시간 마저도 전부 소유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모든 사회적 관계, 모든 사적인 무드(mood) 또는 개인적 습관까지 조작을 통해 국제 비즈니스계의 경쟁이 권하는 형태로 변질되어, 임금 노예들의 올림픽 게임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다. 여가와 심지어 어린 시절까지도 금융과 산업 그리고 정치계의 엘리트들이 제정하는 불문율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되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성문법뿐만 아니라 불문율까지 제정해 시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친 미국(crazy America)'에서의 삶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상화된 자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총기 난사, 엽기적인 살인은 이 사회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기괴한 공장으로 변해버렸음을 확인시켜주는 몇몇 상징적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
- 조지프 야브론스키, 해리스버그, 펜실베이니아, 1989년 8월
-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 · 새물결 · 2005년) p.161~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