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회] 게으를 수 있는 권리 : 멈출 수 없는 기괴한 공장

by 이우 posted Jun 05, 2017 Views 906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게으를수있는권리_s.jpg


  (...) 때때로 나야말로 지난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 대중 레저시대(Age of Mass Leisure)가 금방이라도 도래할 듯이 일부 사회학자들이 온갖 상투적인 논거를 통원해 수많은 갑론을박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수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료 입장권이나 선전 전단에 잔뜩 매료되어 있었다. 아무튼 언론에서는 그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노동은 일상의 삶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었고 레저가 뉴 프론티어(new frontier)가 되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1980년대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빨간 실크 넥타이를 매고 정색을 한 얼굴로 "죽어라고 일만 함으로써, 그뿐이지 뭐"라고 대답했다. 또는 많이 논의되고 있는 서비스 경제의 맥락에서, '그저 노예거니 하지 뭐"라고 대답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블랙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급진적인 노동조합 조직가인 제임스 보그스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의 혁명 : 니그로 노동자의 노트로부터(The American Revolution: Pages from a Negro Worker's Notebook)>(1963)라는 저서에서 여가에 대한 순진한 예언자들의 가정들을 하나하나 논박해 보인 바 있다. 그는, 이들 해설가들은 미국이 실제로는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마치 사회주의 사회인 듯이 가정하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20년 전, 즉 풍족한 1960년대가 막 시작되던 때에 보그스는 경제 엘리트들한테 '시시한 시대(Mean Season)'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 실제로 보그스는 오늘날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무주택자의 폭발과 새로운 형태의 가난 문제를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이윤 착취 체제라는 제도는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사람들을 매정하게 사회 밖으로 쫓아낼 것이며, 제 멋대로인 데다 이윤 창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해고시켜 결국엔 굶겨 죽이려고 드는 사람들과 그같이 야만적인 잔학 행위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 여가가 아니라 실업자들이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생활 보호 대상자, 죄수, 집행 유예 기간에 있는 사람들, 노인, 학생이나 청소년, 징병기피자 등 실제로는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제공하는 무임 노동에 대한 주기적인 수요가 나타날 뿐이다. 이러한 일종의 강제 노동(command labor)의 일부는 공공연히 징벌적이지만, 일부는 자발적인 노동으로 선언되거나 다른 일부는 '사회 봉사'로 분류된다. (...)

  정기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도 '노동을 조장하는 복지정책'의 에토스(ethos, 사회 전체의 분위기나 도덕적 풍조)로부터 면제되어 있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가 중산 계급의 게으름뱅이나 법정 최저 임금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을 다루는 방식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면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표준 작업량과 성과(생산 증가)에 대한 혹독한 압력이 있으며, 이처럼 매일 매순간 총구 앞에서 꿈짝 못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들 남녀 임금 노예에게는 '생산성', '우수성', '경쟁', '팀워크', '작업 현장이 질', '스트레스 관리' 따위나 이와 비슷한 미덕을 널리 전파시키려는 끊임없는 과대 선전 공세가 가해진다. (...)

  특히 학생이나 청소년 문제는 현재 널리 횡행하고 있는 사업교(industrial religon)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보여주는 저주스런 증거이다. 최근 생산성 증가를 위해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커지면서, 미래의 경제적 착취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막대한 역점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압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미국 교육부는 끊임없이 교육 개혁이 아지도 부족하고 학생들에게 일을 하라는 압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교육 제도는 생산성의 깃발 아래 정말 심각하게 아이들을 동원하고 있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

  1950년대 말 이래 개인주의적인 사적 자본주의라는 단아한 구세계의 마지막 유물이 사라져가고 난 후 소위 '일의 세계(world of works)'가 서서히 개인과 사회적 삶의 영역 속으로 침투해 들어 왔다. 현대 자본주의는 본질상 전체주의적이며, 모든 인류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노동뿐만 아니라 '자유' 시간 마저도 전부 소유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모든 사회적 관계, 모든 사적인 무드(mood) 또는 개인적 습관까지 조작을 통해 국제 비즈니스계의 경쟁이 권하는 형태로 변질되어, 임금 노예들의 올림픽 게임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다. 여가와 심지어 어린 시절까지도 금융과 산업 그리고 정치계의 엘리트들이 제정하는 불문율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되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성문법뿐만 아니라 불문율까지 제정해 시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친 미국(crazy America)'에서의 삶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상화된 자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총기 난사, 엽기적인 살인은 이 사회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기괴한 공장으로 변해버렸음을 확인시켜주는 몇몇 상징적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

  - 조지프 야브론스키, 해리스버그, 펜실베이니아, 1989년 8월
  -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 · 새물결 · 2005년) p.161~167
















  1. 13
    Feb 2020
    09:29

    [철학] 알튀세르 『철학과 맑스주의』 : 마주침의 유물론

    (...) 에피쿠로스에서 맑스에 이르기까지 항상, 자신의 유물론적 기초를 어떤 마주침의 철학(따라서 다소간 원자론적인 철학. 원자는 '낙하' 중에 있는 개체성의 가장 단순한 현상이다) 속에서 찾은 하나의 심오한 전통이―그러나 자신의 발견 그 자체에 의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1588 file
    Read More
  2. 20
    Jan 2020
    13:33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⑦, 법의 외설 · 초자아(Super Ego)의 개인화

    (...) 학생들은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지루해져서 의자에 앉아 하품을 하고 허고을 바라본다. 문간에 앉아 있는 학생이 "선생님이 오신다"라고 외치자, 학생들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종이를 구겨서 던지고, 책상을 흔드는 떠들썩한 행동을 시작한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505 file
    Read More
  3. 19
    Jan 2020
    21:11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⑥, 성층화(成層化)·계급·분리와 단절

    (...)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려는 이 전투는 살아 있는 사람과 부유한 사람들의 계급 간 투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무책임하게 '계급 간 전쟁'을 정치에 도입했을 때, 워렌 버핏*은 흡족해하면서 "물론 계급 간의 투쟁이다. 그것은 맞지만, 전쟁을 일으킨 사...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108 file
    Read More
  4. 19
    Jan 2020
    19:41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⑤, 자유 · 정보

    (...) 두 개의 단어가 확인된다. 하나는 '추출된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통제된다'이다. 클라우드를 관리하려면 기능을 통제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사용자들로부터 숨겨진다. 역설적인 것은 손안에서 사용되는 작은 기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065 file
    Read More
  5. 19
    Jan 2020
    19:00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④, 부채

    (...) 오늘날 자본주의는 유령에 쫓기고 있다. 유령은 부채라는 이름의 악령이다. 자본주의 강대국은 하나같이 이 유령을 쫓기 위한 숭고한 동맹을 결성했다. 하지만 정말 부채를 정리하고 싶을까? 마리치오 라자라토*는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931 file
    Read More
  6. 19
    Jan 2020
    01:51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③, 미국식 개인주의와 공적 자금 · 세금

    (...) 미국의 유명 가스 프랭크 시나트라의 대표적인 노래인 '마이 웨이(My Way)'가 미국적 개인주의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일반적' 혹은 '관습에 맞게'란 뜻의 프랑스 샹송 '콤 다비튀드(Comme d'habitude)'가 '마이 웨이'의 원곡이라는 사실은 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51658 file
    Read More
  7. 18
    Jan 2020
    23:31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②, 금융 위기(부채의 역설)

    (...) 미국은 생산한 것보다 다 많이 소비하면서도 수십 년동안 풍족한 삶을 누렸다. 더 근본적인 수준을 살펴보면, 부채의 역설적인 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해서는 안된다'는 슬로건의 문제점은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061 file
    Read More
  8. 15
    Jan 2020
    22:32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동일성과 다양성 · 일반성과 특이성, 꿈의 평면과 행동의 평면(원뿔형 도식)

    (...) 신경계와 목적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우 다양한 지각의 기구들이 중추들을 매개로 해서 동일한 운동 기구들에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본다. 감각은 불안정하다. 즉 그것은 매우 다양한 뉘앙스를 취할 수 있다. 반대로 일단 만들어진 운동기...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760 file
    Read More
  9. 14
    Jan 2020
    15:37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과거와 현재의 관계(원뿔형 도식)

    (...) 우리는 커다란 실용적 이점 때문에 사실들의 실제 순서를 역전시키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공간에서 이끌어낸 이미지들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기억이 어디에 보존되는 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물리화학적인 현상들이 뇌 속에서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357 file
    Read More
  10. 14
    Jan 2020
    00:43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이미지 · 시간과 공간

    (...) 순수 기억이 어떻게 잠재적 상태로 보존되는가 하는 것은 그것의 근본적인 무력함(impuissance)을 볼 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무의식적 심리 상태들을 생각하는 데서 갖는 혐오감은 무엇보다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252 file
    Read More
  11. 13
    Jan 2020
    09:57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기억·지속·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생성

    (...) 우리는 순수기억, 이미지-기억, 지각이라는 세 항들을 구별하였는데, 이 항들 중 어느 것도 사실상 단독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지각은 결코 현재적 대상과 정신의 단순한 접촉이 아니다. 지각에는 항상 그것을 해석하면서 완결시키는 이미지-기억들이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5134 file
    Read More
  12. 10
    Jan 2020
    20:02

    [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①, 실업

    (...)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면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의 유명한 도입부가 절로 생각난다. '그때는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585 file
    Read More
  13. 09
    Jan 2020
    17:18

    [철학] 푸코의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 : 계보학 · 권력의 미시물리학 · 신체의 정치경제학

    (...) "감옥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년)은 미셸 푸코의 사상적 변화 과정에서뿐 아니라 서구 지성사의 전개과정에서도 새롭고 큰 변화를 보여준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072 file
    Read More
  14. 30
    Dec 2019
    09:22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신체의 능동성, 기억(mories)

    (...) 식별이 주의적인 경우에, 즉 이미지-기억들이 현재적 지각에 규칙적으로 결합하는 경우에, 지각은 기억들의 출현을 기계적으로 결정하는가, 아니면 기억들이 지각 앞으로 자발적으로 향해 가는가? (...) 외적 지각이 실제로 우리에게 그것의 핵심적 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978 file
    Read More
  15. 19
    Dec 2019
    21:41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사물의 실재성·기억·현대 유물론의 탄생

    (...) 우리 지각의 현실성(actuality)은 그것의 활동성(activities)으로, 즉 그것을 연장하는 운동들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더 큰 강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단지 관념에 불과하고, 현재는 관념-운동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고집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902 file
    Read More
  16. 18
    Dec 2019
    16:48

    [철학]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 감각, 지각, 정념, 그리고 기억

    (...) 사람들은 모든 감각이 자연적이고 필연적으로 비연장적이며, 감각이 연장에 덧붙여지고, 지각 과정이 내적 상태들의 외재화로 이루어진다고 결론짓는다. 사실상 심리학자는 자신의 신체로부터 출발하며, 이 신체의 주변에서 받은 인상들이 그에게는 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212 file
    Read More
  17. 21
    Nov 2019
    06:56

    [철학] 『사생활의 역사』 : 사생활의 경계와 공간(응접실·사생활·공적 생활·공간의 분절·사회적 성층 작용·노동)

    (...) 사생활은 태초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현실이다. 따라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러므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경계선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사생활은 공적 생활과 관련해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1302 file
    Read More
  18. 12
    Nov 2019
    03:24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주체의 죽음, 해체와 탈중심화

    인간 주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현대철학의 쟁점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현대철학은,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절대화된 주체, 이성적 주체, 세계 의미 부여자로서의 주체는 더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252 file
    Read More
  19. 29
    Oct 2019
    12:53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서문

    (...) 시간은 유한한 존재의 진정한 한계인가, 아니면 유한한 존재의 신(神)과의 관계인가? 시간은 유한성과 반대로 무한성을, 결핍에 반대하여 자족성을 존재자에게 보장해 줄 수 없는 관계, 하지만 만족과 불만을 넘어서 덤으로서의 사회성을 뜻하는 관계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373 file
    Read More
  20. 14
    Oct 2019
    19:23

    [철학] 『말과 사물』 : 서문 · 분절(分節, articulation)의 문제

    (...) 이 책의 탄생 장소는 보르헤스의 텍스트이다. 보르헤스의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에게 존재물의 무질서한 우글거림을 완화해 주는 정돈된 표면과 평면을 모조리 흩뜨리고 우리의 매우 오래된 관행인 동일자와 타자의 원리에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오래...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413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