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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자아, 혹은 인격의 동일성에 대하여

by 이우 posted Dec 25, 2018 Views 1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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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철학자들(데카르트나 로크 등)이 상상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매순간마다 이른바 자아를 가까이 의식하고 있으며, 자아의 존재와 자아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등을 느끼고, 자아의 완전한 동일성과 단순성을 모두 논증의 명증성 이상으로 확실하다상상한다. 그들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감각과 가장 격렬한 정념도 우리를 이런 자아관에서 벗어나도록 하지 않는다. 이런 자아관에 더욱 열정적으로 매달리게 할 뿐이다. 또 감각과 정념에 따르는 고통이나 쾌락을 통해 감각과 정념이 자아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찰하도록 한다. 이 자아라는 존재에 관한 더 이상의 증거를 모색하는 것은 그 사실의 명증성을 약화시킬 뿐이다. 우리가 그 이상 가깝게 의식하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어떤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것을 의심하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모든 긍정적 주장들은 그 주장들을 옹호하는 실제 경험과 상반되며, 따라서 여기서 설명된 것과 같은 자아 관념은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관념은 어떤 인상에서 유래될 수 있는가? 명백한 모순이나 불합리 없이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아 관념을 명료하게 이해하려면 그것은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물음이다. 모든 실제적 관념들마다 그 관념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하나의 인상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자아 또는 인격은 하나의 인상이 아니며, 우리의 여러 인상들과 관념들이 그와 같은 인상에 관계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어떤 인상이 자아 관념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 인상은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통하여 동일함을 지속해야 한다. 자아는 그와 같은 방식에 따라 존재한다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적이고 변하지 않는 인상은 없다. 고통과 쾌락, 슬픔과 기쁨, 정념과 감각은 잇따라 일어나며 모두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인상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도, 또는 다른 어떤 것에서도 자아의 관념은 유래할 수 없다. 따라서 그와 같은 관념은 없다. (중략)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이른바 나 자신이라는 것의 심층에 들어갔을 때, 나는 언제나 특수한 지각들, 즉 뜨거움, 차가움, 빛 또는 그림자, 사랑 또는 증오, 고통 또는 쾌락 등과 만나게 된다. 나는 지각 없이는 나 자신을 잠시도 포착할 수 없다. 지각 없이는 어떤 것도 관찰할 수 없다. 깊은 잠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지각이 모두 없어진다면, 나의 신체가 죽은 뒤 생각할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면, 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중략)

  인간이란 서로 다른 지각들의 다발 또는 집합일 뿐이다. 이 지각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잇달아 계기하며 영원히 흐르고 운동한다. 우리 눈이 눈구멍에서 운동하면 지각의 모양은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유는 지각보다 더 가변적이다. 그리고 모든 감각과 직능은 이 변화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정신에 어떠한 능력이 있다 한들 단 한 순간이라도 변화하지 않고 동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정신은 일종의 극장이다. 거기서는 여러 지각들이 계속하여 나타나고, 지나가며, 다시 날아가고 미끄러지듯 사라지며 무한히 다양한 사태와 상황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정신의 단순성과 동일성을 상상하는 자연적 성향을 지닐 수도 있지만, 아마 정신에는 단 한 순간도 단순성이 없을 것이며 서로 다른 순간에도 동일성이 없을 것이다. (중략)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을 통해 불변적이고 영속되는 존재를 우리가 소유하는 것으로 가정할 만큼 엄청난 성향은 무엇으로 인해 우리에게 부여되었을까? (중략)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독립적 관념을 갖는다. 이것은 시간의 가상적 변화를 거치면서 불변적이고 부단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이 관념을 동일성의 관념 또는 같음의 관념이라고 일컫는다. 또한 우리는  계기적으로 존재하며 밀접한 관계에 따라 연관된 서로 다른 여러 대상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독립적 관념을 갖는다. 그리고 이 관념을 정확히 살펴보면 이것은 사물 사이에 어떠한 관계도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다양성의 관념을 제공해 준다. (중략) 우리의 일상적 사고 방식에서는 그 관념들이 대개 서로 혼동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상상력의 활동에 따라 부단하고 불변적인 대상들을 고찰하며 또 관계된 대상들의 계기에 대해 반성(reflection)한다. 그런데 이 활동들은 거의 같다고 느껴지며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뒤의 경우에서도 많은 사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관계는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는 것을 촉진하며, 정신이 마치 지속적인 하나의 대상이라도 보고 있는 듯이 거침없이 옮겨 가도록 해준다. 이 유사성은 혼동과 오해의 원인이며, 우리가 동일성이라는 관념을 관계된 대상들에 대한 관념에 대체하도록 한다. (중략)

  동일성에 관한 논쟁은 단순한 언어적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타당하지 못한 의미에서 우리가 동일성을 가변적이고 단속적인 대상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오류는 그 표현에 국한되지 않고 대개 허구를 수반한다. 이 허구는 불변적이고 부단한 어떤 것이거나 신비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왜냐하면 그와 같은 계기는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부합하므로, 우리는 오해를 통해서만 그 계기에 동일성을 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오해로 유인하는 부분들의 관계는 사실 일종의 성질일 뿐이다. 이 성질이 관념들의 연합을 산출하고 하나의 관념에서 다른 관념으로 상상력이 거침없이 전이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략)

  어떤 물질 덩어리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우리가 이 물질 덩어리 전체나 부분들에서 운동과 장소의 변화를 발견하더라도 모든 부분들이 불변적이고 부단하게 동일함을 지속한다면, 이 덩어리에 완전한 동일성이 속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작건나 사소한 부분이 그 덩어리에 더해지거나 또는 덜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엄밀히 말하여 전체의 동일성을 절대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처럼 정확하게 사고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소한 변화를 발견하는 데 그친다면 주저 없이 그 물질 덩어리는 동일한 것으로 단언한다. 변하기 전의 대상에서 변한 후의 대상으로 사유가 옮겨가는 것은 매우 원할하고 쉽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런 전이를 거의 자각하지 못하며 그처럼 사유가 옮겨가는 것을 동일한 대상을 지속적으로 조망하는 것일 뿐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중략)

  물체의 상당 부분에서 발생한 변화는 그 물체의 동일성을 파괴한다. 그런데 그 변화가 점차적이고 감지할 수 없게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변화에서 동일한 결과가 기인한다고 본는 경향이 덜하다. 그 이유는 물체의 계기적 변화를 따라가는 정신은 어떤 순간에 그것의 상태를 조망하는 데서 다른 순간에 그 상태를 조망하는 것으로 거침없이 옮겨가는 것을 느끼며, 또 어떤 개별적 시간에서도 그 작용의 단속을 지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지각의 이러한 지속성 때문에 정신은 지속적 존재와 동일성이 그 대상에서 기인한다고 간주한다. (중략)

  부분들이 서로 모든 활동과 작용에서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를 맺는다고 가정할 때 더욱 중요하다. 여러 부분들이 공통 목적에 따라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서로 의존하여 연관을 짓는 경우는 모든 동물과 식물에도 해당된다. 동물과 식물이 모두 단 몇 년 동안 전체적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바이다. 그런데 그 동식물의 형태, 크기, 그리고 실체가 온전히 변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그 동식물들 안에 동일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처럼 강력한 관계의 결과이다. 묘목에서 거목으로 자란 떡갈나무는 물질의 입자나 부분들의 형태가 동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떡갈나무이다. 어린이는 어른이 되고 때로 뚱뚱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야위기도 하지만 그의 동일성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한 두 종류의 현상을 고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는 일상적으로 수적 동일성유적(類的) 동일성을 매우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 동일성을 혼동하여, 사유나 추론에서 수적 동일성 대신 유적 동일성을 쓴다. 예를 들어 자주 끊겼다가 다시 나타나는 소음을 듣는 사람은 그것이 여전히 같은 소음이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옛날에 벽돌로 지어졌던 교회가 폐허로 되었고, 교구에서는 근대의 건축 양식에 따라 사암으로 된 동일한 교회를 재건했다고 어법에 틀리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형식이나 재료 어느 것도 동일하지 않으며, 교구의 신도들에 대한 두 대상들의 관계를 제외하면 그 대상들에게 공통된 것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익서만으로도 우리가 그 대상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단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두 사례들에서 첫번째 대상은 두번째 대상이 존재하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한 시점에서 차이나 다수성의 관념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그 대상들이 동일한 것이라고 주저없이 일컫는다. (중략)

  이제 계속해서 인격의 동일성을 본성을 설명하겠다. (중략) 우리가 인간의 정신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동일성은 허구적인 것일 뿐이며, 우리가 동물과 식물의 신체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동일성과 같은 종류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동일성도 다른 기원에서 비롯될 수 없으며, 유사한 대상들에 대한 상상력의 유사한 작용에서 발생해야 한다. (중략)

  우리가 인간의 정신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동일성을 아무리 완전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동일성이 서로 다른 지각을 하나로 만들어 그 직가들에서 본질적인 구별과 차이의 특성을 상실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신의 구성에 참여하는 모든 독립적인 지각들은 언제나 독립적인 존재이며, 또한 공시적이든 계기적이든 간에 다른 모든 지각들과 다르며 구별되고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별과 분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각의 전체 계열이 동일성을 통해 합일된다고 가정하므로, 자연히 동일성이라는 이 관계에 관해서는 다음의 물음이 발생한다. 즉, 동일성은 실제로 우리의 여러 지각을 결속하는가, 아니면 단지 상상력 안에서 그 관념들을 연합하는 것인가? 즉 바꾸어 말한다면 어떤 사람의 동일성에 관해 단언할 때, 우리는 그의 지각들 사이에서 어던 실재적 결속을 관ㄴ찰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그의 지각들에 관해 형성한 관념들 사이의 어떤 결속을 느낄 뿐인가?

  이미 증명된 것을 돌이켜 본다면, 이 물음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즉 오성은 대상들 사이의 실재적 연관을 결코 관찰할 수 없고, 엄밀히 검토해 보면 원인과 결과의 합일조차도 관념의 습관적 연합으로 환원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동일성은 서로 다른 지각들에 속하는 것일 수 없으며 그 지각들을 함께 합일하는 것도 아니다. 동일성은 우리가 지각들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성질일 뿐이다. 우리가 지각에 대해 반성(reflection)할 때, 그 지각의 관념들은 상상력 안에서 합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관념들을 상상력 안에서 합일할 수 있는 유일한 성질들은 앞에서 말했던 세 관계들(유사, 인접, 인과)뿐이다. 이 관계들은 관념의 세계에서 합일하는 원리들이다. 이 원리들이 없다면 정신은 저마다 독립적인 대상들을 분리할 수 있고 분리하여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동일성은 유사, 인접, 인과 등과 같은 세 가운데 어떤 것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 세 관계의 실제 본질은 그 관계들이 관념들의 거침없는 전이를 낳는데 있다. 앞에서 설명한 원리들에 따르면 당연히 인격의 동일성이라는 우리의 관념도 연관된 관념들의 계열을 따르는 사유의 거침없고 부단한 진행에서 유래한다. (...)

  -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지은이 : 데이비드 흄 · 옮긴이 : 김성숙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 원제 : Treatise of Human Nature, 1740), 제1편 오성, p.275~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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