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모든 귀속의 조건을 거부하는 임의적 특이성

by 이우 posted May 02, 2018 Views 1429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도래하는 공동체_900.jpg


  (...) 중국의 5월 시위(천안문 광장의 반정부 시위)에서 가장 인산적이었던 점은 그들의 요구 사항에서 확실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자유는 실제 투쟁 대상이 되기에 너무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개념들이었고 유일하게 구체적인 요구였던 '후야오방의 복권'은 즉가 수용되었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국가가 보인 폭력적인 반응은 더욱더 불가해 보인다. (...)

  도래하는 정치가 새로운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 국가의 정복이나 통제를 쟁취하는 투쟁이 아니라 국가와 비국가(인류) 사이의 투쟁이며 임의적 특이성과 국가 조직 사이의 극복될 수 없는 괴리가 될 것이다. (...) 임의적 특이성들은 아무런 사회도 형성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임의적 특이성들이 옹호해야할 아무런 정체성도, 인정받아야 할 아무런 사회적 귀속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결국에는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용인할 수 없는 것은 특이성들이 어떤 정체성을 확언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자 인간들이 재현하고 대표될 수 없는 귀속의 조건 없이도 함께 귀속된다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가 보여주었듯 국가는 자신이 곧 그것의 표현인 사회적 결속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금지하는 것인 해체와 해소를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국가에게 중요한 것은 결코 특이성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그 특이성을 어떤 정체성 안에, 임의의 정체성 안에 포함시키는 무제이다. 하지만 어떤 정체성으로 확정되지 않은 임의성 그자체의 가능성은 국가가 대응할 수 없는 위협이 된다.

  대표·재현될 수 있는 아무런 정체성도 갖지 않은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와 완전히 무관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문화에서 인간 생명의 신성함이란 우선적 도그마와 공허한 인권 선언이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케르(sacer)*는 ‘인간세계에서 배제된 자이며 사람들은 그를 희생물로 바쳐서는 안되지만 죽일 수 있었고 그것은 살인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볼 때 유대인 학살을 두고 학살자들이나 그들의 판사 모두 그것을 살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판사들은 도리어 유대인 학살을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평가했다는 사실, 또 승전국들은 이러한 정체성의 결여를 어떤 국가 정체성을 승인함으로써 보완하고자 했던 사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학살을 불러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귀속성 자체, 자신의 언어 속 존재 자체를 전유하기 위해 모든 정체성과 모든 귀속의 조건을 거부하는 임의적 특이성은 국가의 주적이 된다. 이러한 특이성들이 자신의 공통적 존재를 평화롭게 시위하는 곳 어디에나 텐안먼을 발생할 것이며 머지 않아 탱크는 등장할 것이다. (...)

- 『도래하는 공동체』(조르조 아감벤 · 꾸리에 · 2014년) p.117~120



   ...........................

  *사케르(sacer) : 사케르(Sacer)는 라틴어로 '신법의 영역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인간의 법정 밖으로 내쫓긴 존재'를 의미한다. 사케르의 삶은 인간적 관점에서 보나 신의 관점에서 보나 아무런 가치도 없다. 호모 사케르를 죽이는 것은 법으로 처벌받는 범죄가 아니었고, 호모 사케르의 생명은 종교적 제물로도 쓰일 수 없었다. 오직 법이 부여하는 인간적 의미를 박탈당하고 신적인 의미도 박탈당한 사케르의 생명은 무가치한 것이다. 사케르를 죽이는 것은 신성 모독도 아니지만 같은 이유로 사케르는 제물로도 봉헌할 수 없었다.









  1. 10
    Apr 2020
    00:23

    [철학]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베르그손에 있어서의 차이의 개념·엘랑비탈(elan-vital, 생의 약동)

    (...) 지속, 즉 나눌 수 없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스스로를 나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스스로를 나누면서 본성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본성을 바꾸는 것이 곧 잠재적인 것 또는 주체적인 것을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점에 대해서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1595 file
    Read More
  2. 09
    Apr 2020
    17:51

    [철학] 『마르크스 평전』 : 포이어바흐·생시몽·시스몽디·푸리에·프루동·엥겔스·바우어·루게·예니·헤스를 만나다

    (...) 젊은 헤겔학파들의 운동을 지칭하기 위한 것으로서 마르크스 그륀(에른스트 폰 히이데의 가명)에 의해 '진정한 사회주의'라는 이상한 표현이 생겨났다. 젊은 헤겔학파들의 운동은 당시 <사회의 겨울>이나 <트리어지> 같은 잡지들을 통해 주로 표현되었...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765 file
    Read More
  3. 31
    Mar 2020
    03:29

    [철학] 푸코의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 : 형벌과 사회구조 · 권력과 지식②

    (...) 신체형이 없는 징벌의 이러한 필요성은 우선 심정적 외침으로, 혹은 분노하는 인간 본성의 외침으로 나타났다. 즉,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의 경우에도 글르 처벌할 때에는 하나의 사실을 존중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244 file
    Read More
  4. 21
    Mar 2020
    16:10

    [철학] 푸코의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 : 형벌과 사회구조 · 권력과 지식①

    (...) 루쉐와 키르히하이머 공저의 대작1)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중요한 기준을 포착할 수 있다. 우선 형벌제도가 무엇보다도 먼저 위법행위를 응징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하고, 또 그 역할에서 형벌제도가 사회 형태나 정치제도, 혹은 신앙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2241 file
    Read More
  5. 19
    Mar 2020
    03:37

    [철학] 푸코의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 : 신체 권력·지식권력(규율권력)

    (...) 1757년 3월 2일, 다미엥1)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중략) 상기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3856 file
    Read More
  6. 14
    Mar 2020
    02:14

    [문학]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 백조

    백조 LE CYGNE 빅토르 위고에게 I. 앙드레마크1), 나는 그대를 생각하오! 그 작은 강물은 그대의 끝없이 장엄한 과부의 괴로움을 일찌기 비추던 가엾고 서글픈 거울, 그대의 눈물로 불어난 그 가짜의 시모이 강2)은, 내가 새로 생겨난 카루젤 광장3)을 지나고...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2908 file
    Read More
  7. 12
    Mar 2020
    22:34

    [문학]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 빨간 머리 거지 계집애에게

    빨간 머리 거지 계집애에게 A UNE MENDIANTE ROUSE 빨간 머리, 흰 살결의 계집애여 네 헤어진 옷 구멍으로 가난과 아름다움이 내비친다. 보잘 것 없는 시인 나에게는 주근깨투성이인 네 허약한 젊은 몸이 사랑스럽다. 넌 소설 속의 여왕이 빌로도 반장화를 신...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6397 file
    Read More
  8. 09
    Mar 2020
    07:00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타자와의 관계, 여성성

    (...) 문명화된 삶 가운데는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것이 원래 어떤 형식으로 주어졌는가 하는 것을 탐구해 보아야 한다. 타자성이 순수한 상태로 나타나는 그러한 상황이 존재하는가? 타자성이 타자에게 자신의 동일성의 다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8978 file
    Read More
  9. 09
    Mar 2020
    05:05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타자와의 관계, 비상호성·비대칭성

    (...) 시간에 대해 좀더 기술해 보자. 죽음의 미래, 그것의 낯설음은 주체에게 어떠한 주도권도 허용하지 않는다. 현재와 죽음, 자아와 신비의 타자성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다. 죽음은 존재에 종말을 가져온다는 사실, 죽음은 끝이고 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302 file
    Read More
  10. 08
    Mar 2020
    04:24

    [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주체의 철학 VS 타자의 철학

    (...) 일상적 삶 속에서, 세계 안에서, 주체가 지닌 물질적 구조는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아(le moi)와 자기(le soi) 사이에 사이(intrevalle)가 나타난다. 동일한 주체는 즉시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허이데거 이후, 우리는 세계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79438 file
    Read More
  11. 06
    Mar 2020
    03:15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자연의 신비화, 사회주의(독일 사회철학)

    (...) 다음의 논문*에서는 독자에게 우선 하나의 순수문학적인 서시를 통해 '진정 사회주의자'**의 더욱 무거운 진리가 마련된다. 서시는 그리하여 행복을 지난 수천 년간 기울여온 '모든 노력의, 모든 운동의, 무겁고 지칠 줄 모르는 노고의 궁극 목적'으로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971 file
    Read More
  12. 04
    Mar 2020
    23:20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공동체

    (...) 교류 형태에 대한 생산력의 관계는 개인들의 활동 또는 실행에 대한 교류 형태의 관계와 같다. 이 활동의 기초 형태는 당연히 물질적이며, 다른 모든 정신적·정치적·종교적인 것등으로부터 독립된 것이다. 물론 물질적인 생활의 상이한 형태들은 이미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370 file
    Read More
  13. 04
    Mar 2020
    18:03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생산도구와 소유 형태

    (...) 개인들은 주어진 생산도구와 마찬가지로 생산도구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자연발생적 생산도구와 문명에 의해 창조된 생산도구 사이의 차이점이 나타난다. 경작지(물 따위)는 자연발생적인 생산도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토지 소...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730 file
    Read More
  14. 02
    Mar 2020
    02:06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소유에 대한 국가와 법의 관계

    (...) 고대 세계 및 중세에서 최초의 소유 형태는 부족 소유였는데, 로마인의 경우에는 주로 전쟁이, 게르만인의 경우에는 주로 목축이 그 조건이 되었다. 고대 민족들은 몇몇 부족들끼리 한 도시에 함께 살았기 때문에, 부족 소유가 국가 소유로 나타났고,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468 file
    Read More
  15. 28
    Feb 2020
    21:21

    [사회] 『하멜표류기』 : 기독교와 제국주의 · 식민정책

    1653년. 타이완의 항구로 가라는 인도 총독 각하와 평의회 의원들의 지시를 받고 우리는 바타비아*를 떠났다. 코넬리스 케자르 총독 각하는 우리와 함께 승선했다. 총독 각하는 그곳에 주재 중인 니콜라스 베르버그 총독 대행의 후임으로 포르모사**외 그 속...
    Category역사 By이우 Views18194 file
    Read More
  16. 25
    Feb 2020
    19:59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유물론적 역사관

    (...)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각 개인들은 자신의 활동이 세계사적 활동으로 확대됨에 따라 점점 자신들에게 낯선 힘(그들이 이른바 세계정신 따위의 잔꾀 정도로 생각해 왔던 하나의 힘) 아래 굴복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확실히 하나의 경험적 사실이나 다름...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1500 file
    Read More
  17. 25
    Feb 2020
    02:10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맑스 철학의 시작

    (...) 독일의 이데올로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독일은 최근 수년 동안에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변혁을 겪었다. 슈트라우스로부터 시작된 헤겔 체계의 분해 과정은 일대 세계적인 소요로까지 발전했고, 과거의 강자들이 모두 이 와중에 휩...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3445 file
    Read More
  18. 23
    Feb 2020
    05:25

    [철학] 마르크스·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카를 마르크스 1. 이제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것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단지 객체 또는 직관의 형식하에서만 파악되고, 감성적인 인간의 활동, 즉 실천으로서, 주체로서 파악되지 못한 점이다. 따...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569 file
    Read More
  19. 17
    Feb 2020
    07:26

    [철학] 알튀세르 『철학과 맑스주의』 : 독특한 유물론적 전통, 스피노자

    (...) 스피노자의 논의에서 나를 또한 매혹한 것은 그의 철학적 전략이었다. 자크 데리다는 철학상의 전략에 대해 많이 말했는데, 그는 전적으로 옳다. 왜냐하면 모든 철학은 적이 장악하여 진지를 구축한 이론적 지역을 포위하기 위해 그 전략적 목표와 전략...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333 file
    Read More
  20. 17
    Feb 2020
    04:48

    [철학] 알튀세르 『철학과 맑스주의』 : 이데올로기(idelogie)

    (...) 정치의 중심과 정치의 전략을 파악하고 식별하고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공장 안에도 있고, 가족 안에도, 일 안에도 있으며, 멍청이 타조와 같은 우리의 자유주의자들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쇠퇴하고 국가 안에도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827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