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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공예가 길을 묻다_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를 걷다(2)

by 이우 posted Oct 02, 2011 Views 20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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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권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조사를 마친 일행이 두 번째 탐방으로 가는 곳은 경북 영덕과 경남 진주 · 통영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이다. 서울을 떠난 지 다섯 시간.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에서 기인을 만났다. 잠시 들른 청송 야송미술관에서 지역출신 한국화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던 한국화가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을 만난 것이다.

야송 이원좌 화백을 만나다

 

     야송미술관은 이원좌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 50여점, 미술관련 서적 1만여 점을 기증받아 2005년 청송군에서 지은 군립미술관이다. 미술관 1층 전시장에는 무토(撫土) 전성근 도예가의 이중투각 백자전이 열리고 있었다. 무토(撫土)라면 ‘흙을 어루만진다’는 뜻. 그가 흙을 만지면, 이중투각 백자가 나온다. 이중투각 도예는 속항아리와 겉항아리 두 개를 만들어 붙이고 겉항아리를 조각을 해 속항아리가 보이게 하는 도예기법. 많은 공을 들여 투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마에서 구울 때 수축률이 맞지 않아 터지는 일이 많은 까다로운 기법이다. 장인이 흙이 가지는 미세한 결 특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완성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동백문이중투각호, 칠보이중투각호 등 약 50점의 백자. 투각되어 겉을 둘러싼 항아리가 속항아리를 내비치듯 우리 마음도 성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행은 이중투각 백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행이 미술관 2층에 올랐다가 상설 전시된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의 산수화에 넋을 놓았다. 벽면 하나를 완전히 장악해버린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 이 산수화의 크기는 높이 6.8미터, 길이 48미터로 현존하는 동양화로는 세계 최대다. 일행들이 마치 산수화 안에 있는 듯 했다. ‘청량대운도’는 봉화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를 모습을 이원좌 화백이 1991년부터 1년여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크거나 작거나 전시되고 있는 이원좌 화백의 산수화에는 모두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봉우리가 있으며 물이 있었다.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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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주왕산 언저리 34번 국도변 청송 야송미술관
    ② 폐교를 이용해 지은 미술관 한 켠에 연꽃이 피었다.
    ③ 무토(撫土) 전성근의 이중투각백자
    ④ 야송(野松) 이원좌화백
    ⑤ 이원좌 화백이 그린 청량대운도와 무릉화운도
    ⑥ 이원좌 화백의 그림에는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산이 있다.


 

    젊은 시절, 이원좌 화백은 그림이 좋아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아내에게는 남편, 애들에게는 아버지일 텐데 이들을 버려두고 산과 나무, 구름을 따라 물처럼, 바람처럼 흘렀다. 애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입학금이 없다는 아내의 울먹임에 가슴이 먹먹했지만, 돈이 필요할 때면 그림을 알아주는 이름 모를 지인들이 딱 그만큼의 돈을 내놓고 가져가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이원좌 화백은 어쩔 수 없는 그림쟁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보드리야르가 사용, 교환, 기호, 상징이라고 사물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산이 없고 구름이 없고 물이 없으며 바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도 없다. 그의 그림 안에는 산이 있고 구름이 있으며 물이 있었고, 사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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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덕은 물과 산, 그리고 바람의 고장이다. 영덕 옹기전수교육관은 마을과 함께 있고 교육관에 숙박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차로 10여분이면 바닷가에 닿을 수 있어 좋다.




옹기장이 백광훈(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기능보유자)

      영덕은 물과 산, 그리고 바람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물은 대게와 은어를 기르고 산은 송이를 기르며 바람은 전국 최대 크기의 풍력발전기를 돌린다. 산은 흙을 품었고 사람은 흙을 만지며 옹기를 만들었다. 옹기전수관이 있는 경북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는 산과 물이 좋아 예로부터 약 16개의 옹기 공장이 있었고 사람들은 ‘옹기마을’이라고 불렀다.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그 많던 옹기공장이 없어지고 이제 옹기를 만드는 사람이 백광훈 옹기장뿐이지만 올 3월 옹기전수관이 마을 한가운데 들어섰다.

 

    옹기는 흙을 떠나지 못한다. 흙을 떠나지 못해 전수교육관은 원래 가마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올 3월에 개관한 이 전수관은 1,367㎡의 부지에 연면적 328㎡의 단층 건물로 작업장과 옹기 제작기술 전승보존을 위한 전수교육관, 작품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전통옹기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을 갖추고 있다. 도로를 벗어나 마을과 과수원을 지나야 하지만 그 덕분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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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옹기를 닮은 경북 영덕 옹기전수교육관.
    ② 옹기장이 백광훈(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③ 건조실에서 옹기가 말라가고 있다.
    ④ 영덕은 예로부터 옹기의 고장. 항아리에 <영덕옹기>라는 생산자 표시가 보인다.
    ⑤ 작업실. 옹기 만들기는 무게와 크기의 싸움이다.
    ⑥ 옹기 가마. 13통 가마로 한 번에 약 3천개 정도의 옹기가 들어간다.


    옹기는 흙을 닮아 질박하다. 옹기와 도자 모두 흙에서 나왔지만 옹기가 더 흙과 가깝다. 도자가 세련미를 갖춘 도시적인 느낌이라면 옹기는 질박한 산촌이나 농촌의 느낌이다. 도자가 아기자기하다면 옹기는 넉넉하고, 도자가 작고 가볍다면 옹기는 크고 무겁다. 좁고 폐쇄적으로 변해가는 도시적인 주거공간이 확대되고 있지만 가볍고 작은 도자보다는 무겁고 투박한 옹기가 더 사용가치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덕택에 4대째 옹기를 만들며 살고 있는 옹기장 백광훈은 스스로 ‘돈은 벌 만큼 벌었다’고 대놓고 말했다. 옹기를 만들며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공예품이 사용가치를 잃어가고 있는데 옹기는 아직 사용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사용가치가 있으려면 우수한 도구적 기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에는 유약이 사용되지만 옹기는 나뭇재와 약초를 섞어 비율을 맞춘 잿물을 사용한다. 자기에 사용하는 유약은 구조가 촘촘해 공기가 통과하지 못하는 반면에 옹기는 물 분자를 차단하고 공기 분자를 통과시킬 정도로 성글다. 이 때문에 옹기는 숨을 쉰다. 옹기 안에 음식을 넣으면 잘 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이로울 만큼 잘 숙성되어 김치와 장류 등의 보관용기로는 최적이다. 이 기능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과일이나 약초 보관용기로 그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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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체험실. 옹기 체험은 인기가 좋은 편이다.
    ② 교육장. 프레젠테이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③ 체험자들이 만든 작품들. 항아리도 있고 첨성대도 있다.
    ④ 전수교육관 한 켠에서 여름비를 맞고 있는 옹기.
    ⑤ 물레 위에서 말라가고 있는 체험자들의 작품.
    ⑥ 옹기 위에 빗물이 고여 있다.


    질박하고 소박해 편안해 보이는 옹기의 질감도 그 가치를 높이는데 한몫 했다. 옹기의 소박한 형태와 질감은 전통 가옥이나 도시형 구조의 집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는 우리 전통의 미학이다. 이 점에서 특히 옹기장이 백광훈은 영덕의 옹기를 사랑한다. 호남지방의 옹기가 흙을 말라 올리며 붙이는 방식이라면 영남지방의 옹기는 엇갈려 빗는 옹기. 호남지방의 옹기가 아래 부분이 큰 데 비하여 영남지방의 옹기는 세운 달걀의 위부분과 아래 부분을 잘라낸 듯한 이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어 예쁘다.

    투박하고 소박한 질감의 옹기지만 무겁고 크다보니 옹기 제작은 무게와 크기와의 싸움이다. 사용되는 흙의 양이 많아 흙 작업을 할 때면 이웃 주민, 사위와 딸 모두 모여서 작업을 하고, 물레질을 마친 독을 들어낼 때에도 혼자서는 힘들다. 크고 무겁다 보니 엉덩이 살이 헐 정도로 물레를 돌려야 한다. 백광훈 옹기장이 보유하고 있는 가마는 전통식 가마와 개량 가마. 가마 크기도 도자기 가마보다 훨씬 크다. 13통으로 이뤄진 한 가마에 약 3천개 정도의 옹기가 들어가고 불을 넣으면 한 번에 약 보름 동안 불을 때야 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흙일과 물레질을 해 항아리를 만들어 잘 말려두었다가 일 년에 한 번(10월말에서 11월말) 불을 넣는다. 가마는 가마 칸마다 균일하게 온도를 높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불꽃이 적고 숯이 오래가는 참나무보다 일시에 불꽃이 일고 일시에 삭는 소나무가 땔감으로 제격이다. 삶이 불꽃이라면, 소나무처럼 살다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경북 영덕에 있는 옹기전수교육관은 마을과 함께 있고 전수교육관에 숙박시설이 없어 불편하지만 차로 10여분이면 영덕 해맞이공원이나 강구항 등 동해안에 닿을 수 있어 좋다. 마을 전체를 옹기마을로 특화해 옹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전수관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일행은 진주로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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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진양호의 아침. 자리공이 꽃을 피우고 있다.
    ② 모를 생명이 생명을 기른다. 갈대 줄기를 둥글게 말아 만든 곤충의 알집.
    ③ 진양호에서 아침을 맞고 있는 해오라기



장도장1) 임장식 (장도 기능보유 후보자)

    다음날 아침 일찍 일행은 장도장과 두석장을 만나기 위해 진주 전수교육관으로 향했다. 일행이 머물렀던 물사랑 농촌체험농장 옆 진양호는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아직 물안개를 머금고 있다. 새벽녘 걸었던 진양호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생명이 갈대 줄기를 둥글게 말아 알집을 만들어 놓았고 해오라기는 연신 고개를 물 속으로 밀어넣으며 모이를 찾았다. 삶이란 생존을 위해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가. 문화를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체계’라고 했던 인류학자 B.J 매거스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하여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생물을 지배하는 자연선택법칙에 의해 규제된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연을 적응하고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는 ‘칼’이었다. 칼은 신체적으로 방어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이 맹수의 튼튼한 발톱과 이빨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도구. 사용하기 싫지만 사용해야 하는 것. 혹은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용가치로 본다면 칼은 장식될 필요가 없다. 사냥을 위해 사용하는 칼이 아름다우면 어떻고 아름답지 않으면 어떤가.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칼은 사용가치 중심의 도구인것이다. 그러나 장도(粧刀)는 말 그대로 ‘장식한 칼’. 칼이 장식된다는 것은 기호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칼이 장식되면, 소유한 사람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거나 사회적인 신분을 알려주는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장도의 역사는 길다. 신석기시대부터 석도를 장신구로 차고 다녔고 고구려인들은 주로 신분의 표시로 장도를 패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뿐만 성인에 이른 남녀노소 누구나 장도를 패용해 장도의 사용가치나 기호가치 모두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가치나 기호가치가 높지 않다. 이미 질 좋고 보기 좋은 현대식 칼이 실생활을 장악하고 있으며 장도를 신분이나 미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패용하는 사람은 없다. 임장식 장도장 후보는 장도가 조선시대처럼 실생활에서 사용되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장용으로만 구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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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도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은장도. 임장식 기능보유자 후보는 전통조각기법인 쪼이질 기법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기 위해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린다.


 

    현대에 와서 장도의 사용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징가치는 높은 편이다. 장도찾는 사람이 많아 만들기 바쁘게 팔려나가고 단기강습생 공고를 내면 하루 만에 마감된다. 그렇다면 장도의 가치는 과거 사용?기호 중심에서 상징중심으로 성공적으로 이동시킨 전통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주공예전수관에는 전수교육반(매주 수요일과 목요일)과 단기강습반(월요일과 화요일) 4개반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장도 교육은 일대일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킬 수 없고, 전수관도 건축 당시 기능 전수라는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게 지어져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현재 50여명의 교육생을 지도하기에도 공간은 비좁고 전수자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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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고 임차출 옹의 뒤를 잇고 있는 그의 아들 임장식 기능보유 후보자.
    ② 그가 만들던 은장도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다.
    ③ 화로. 전통 그대로 임장식 기능보유 후보자는 풀무질을 해 도신을 벼른다.
    ④ 손때가 묻은 그의 도구들.
    ⑤ 도가니. 은을 녹여 은괴를 만들고 두드려 얇게 펴낸다.
    ⑥ 모루. 전통 그대로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려 장식을 한다.


    진주의 전수교육관에는 아버지 고 임차출(林且出·76) 옹의 뒤를 이어 아들 임장식 전승자가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고 임차출 옹은 50여년의 세월을 은장도와 함께 살아온 장인으로 장도의 명산지인 울산 병영 출신이다. 형인 장도장 임인출(林仁出) 씨의 공방에서 어릴 때부터 기능을 익힌 임옹은 울산 병영에서 장도를 제작하다가 1969년 진주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임차출 옹은 장도의 도신을 벼르는 기법과 전통적인 문양을 은으로 조각하는 솜씨가 뛰어난 장도 기능 전승자였다. 임차출 옹이 타계하고 임차출 옹 곁에서 장도를 배우고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인으로의 길을 걸었던 아들 임장식이 지난 2001년 기능 보유자 후보가 되어 맥을 잇고 있다.

 

    임장식 후보는 ‘실용가치가 없는 전통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배고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40여 종. 하루에 한 개 정도를 만들 수 있지만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것도 있으며 대작은 1년 넘게 걸린다. 기계로 찍어낸다면 몇 분이면 되겠지만 임 후보는 부친으로부터 배운 전통방식 그대로 칼을 만든다. 전통방식인 풀무작업으로 칼날을 세우고 문양 장식도 전통조각기법인 쪼이질 기법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을 때 주로 조각 칼로 파내는 기법을 사용하면 되지만 임 후보는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두드린다. 사람은 누구나 칼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했던가. 칼이면서도 아름다운 장신구인 은장도를 앞에 두고 일행은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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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석장 정한열(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1호)이 두석 공예. 일행이 만나지는 못 했지만 진주 전수교육관에는 두석장이 입주해 있다. 두석(豆錫)이란 주석(朱錫), 방자 백동(白銅) 등의 합금 금속을 말하며 두석장(豆錫匠)은 두석을 공예품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통영 12공방2)

    진주에서 한 시간여 달려 일행은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 닿았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답게 산과 바다가 가파르게 만나는 풍경이 아름답다. 통영은 소설가 박경리와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 예술인들을 길러낸 예술의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영 12공방이 있던 전통공예품의 산실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통영에는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 장인의 본거지가 12공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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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 통영(統營)이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별칭답게 풍경이 아름답다. 소설가 박경리와 시인 유치환, 시인 김춘수, 음악가 윤이상 등 예술인들을 길러낸 예술의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영 12공방이 있던 전통공예품의 산실이기도 하다.


염장3) 조대용(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기능보유자)
 
    통영 전통공예전수관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영시 무전동에 있다. 다른 전수교육관에 비해 시설이 좋지 못하고 주택지에 위치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전수관은 조대용 염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과 송방웅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두석장 김극천(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과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무형문화재 제55호)가 입주하고 있다.

 

    염장(簾匠)이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발은 햇볕을 가린다는 점에서 커튼과 비슷하지만 바람이 통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조대용 염장은 아버지에게 배워 발을 엮기 시작했다. 무과 급제 했던 그의 증조부가 손수 발을 엮어 철종 왕에게 진상하여 치하를 받았던 내력이 있을 정도로 대대로 염장일을 해온 집안이다. 지금 조대용 염장은 내년 완성 예정으로 서울 종묘에서 사용할 대발을 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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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통영 전통공예전수교육관. 염장, 나전장, 두석장, 소목장이 입주해 있다.
    ② 염장 조대용(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기능보유자)
    ③ 일행들이 조대용 염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④ 손으로 날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서로 비껴 역어 만드는 통영대발.
    ⑤ 날줄을 교차해 그려내는 귀문(龜文).
    ⑥ 통영대발. 생활공간이 급격하게 서양화되면서 발이 커튼으로 대치되었다.


     통영 대발은 시릿대를 사용한다. 시릿대는 왕대보다 질기고 부러지지 않을 뿐 아니라 마디가 매끈하고 섬유질이 가늘어 발을 엮어 놓고 보면 마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조대용 명장은 변형을 막기 위해 겨울에 시릿대를 채취해 놓았다가 일년내내 사용한다. 통영 대발은 실을 꼬아 문양을 넣는데 문양의 모양에 따라 귀문렴(龜文簾)과 고문렴(苦文簾)으로 나눈다. 이 작업은 날줄 하나하나를 일일이 서로 비껴 엮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발이라고 하더라도 귀문령은 1개월, 고문령은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이다.

     발은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오랫동안 발달한 문화였지만 최근 생활공간이 급격하게 서구화되면서 발이 커튼으로 대치되었다. 사용가치가 떨어졌다면 상징가치라도 높아야 할 텐데 발은 아직 그 위상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조대용 염장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만큼 문화가치가 높은 왕릉의 정자각에 분명 발을 걸었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을 달지 않았다’며 사람들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조대용 명장은 전통 명품이 현대적인 디자인과 만나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믿음으로 이뤄낸 성과가 조각보를 이용한 발. 이 발은 조각보를 만드는 침선장과 발을 만드는 염장이 만나 새로운 미학을 만들 수 있다는 모델이 되었고, 전통공예품이 디자인을 만나 기호가치와 상징가치를 획득하고 나아가 사용가치 또한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전통의 발과 전통의 조각보가 만나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발을 보며 일행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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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발의 윗부분. 침선장이 조각보 디자인으로 침선했다.
   ② 조각보를 만드는 침선장과 발을 만드는 염장이 힘을 더해 만든 발.
   ③ 발의 중간부분. 전통적인 통영대발(귀문렴, 龜文簾).


나전장4)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열아홉 청년이 장인이던 아버지의 권유로 나전에 입문하고 10년간 두문불출하며 기술을 연마하고 또 10년간을 전통 나전 작품들을 연구한 끝에 1980년대 이후 한국 최고의 나전칠기 장인으로 자리 잡은 사람, 그가 나전장 송방웅이다. 나전칠기 기법은 자개를 문양대로 통으로 오려내는 ‘줄음질’과 얇게 썰어내어 조각조각 이어서 문양을 완성하는 ‘끊음질’이 있는데 송방웅 나전장은 작업하기 힘든 끊음질 기법만을 고집한다. 이 기법이 전통의 기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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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나전장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② 송방웅 나전장의 설명을 듣는 일행
    ③ 끊음질을 위해 준비된 자개. ‘끊음질’은 자개를 거도(칼)로 짧게 잘라 조각(Chip)을 만들고 이 조각을 문양대로 모자이크하듯 붙여 만든다 .
    ④, ⑤ 끊음질로 만든 나전칠기.


    토태(실톱)가 나전 작업에 등장한 것은 1910년대. 토태가 나오면서 자개를 문양대로 잘라낼 수 있었지만 이전에는 토태가 없었기 때문에 ‘끊음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끊음질’은 자개를 거도(칼)로 짧게 잘라 조각(Chip)을 만들고 이 조각을 문양대로 모자이크하듯 붙여 만든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만큼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인지 송방웅 나전장은 나전칠기가 ‘팔려나가면 기쁘기보다 아쉽다’.

     만약 송방웅 나전장이 나전칠기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현대적인 생산 원칙에 충실하다면 비교적 작업이 쉬운 ‘줄음질’을 선택했을 것이다. 왜 그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버려두고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은 ‘끊음질’을 고집하는 것일까.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이 있지만 원칙과 전통을 고수하는 것, 이것은 이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김금철 소목장5) (무형문화재 제55호 전수 조교)

     통영 전통공예전수관에는 효율이라는 경제 원리를 따르지 않는 장인이 또 있다.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다. 소목(小木)이란 대목(大木)에 상대되는 말로 대목장이 건축이나 공정 감리를 하는 데 비해 소목장은 집안에 쓰이는 장롱이나 궤, 책상, 탁자, 문갑 등 각종 목재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전통의 목가구는 못이나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야말로 짜맞추어낸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해가름장맞춤, 갈퀴맞춤, 겹주먹장이음, 나비장이음 등 정교한 이음과 맞춤 작업이 필요하다. 경제적이지 않지만 못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맞추어 놓으면 못을 사용할 때보다 인장강도가 세배나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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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
    ② 나뭇결이 보이는 바탕면을 감싸고 있는 검은 선은 붓으로 그은 것이 아니라, 흑단과 느티나무, 대나무를 얇게 짜맞추어 넣은 것이다.
    ③~⑤ 소복장이 사용하는 각종 공구들.


    또 선 하나를 넣을 때에도 그려 넣지 않고 나무가 갖고 있는 문양과 색깔을 오묘하게 조화시키고 정교하게 짜맞춘다. 느티나무 나뭇결 무늬를 바탕으로 해서 황색은 옻나무로, 흑색은 감나무 흑심을 얇게 잘라내고 붙여 마치 붓으로 선을 그린 듯 정교하게 기물을 만든다. 10년 정도 건조된 나무를 사용하고 대나무, 배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목단 등 나무의 특성을 모두 익혀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목은 우리나라 전통공예 중에서 공정이 까다롭고 어렵기로 손꼽히는 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작업하다보니 아무리 작은 목가구라도 나무 작업에서부터 완성까지 최소 5개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목장에게 정성과 부지런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김금철 소목장 전수 조교는 당대 최고 소목장 아래에서 16세부터 소목 일을 배웠다. 톱질을 잘 못했을 때 떨어지는 선생님의 호된 꾸지람이 무섭고 힘들었던 소년이 어느덧 40년 경력 소목장이 되었지만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목리를 살려내는 작품들에 매료되어 아직도 일을 배우던 그때처럼 매일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한다.


다시 경계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풀무작업으로 칼날을 세우고 전통조각기법으로 새가 모이를 쪼듯 작은 정으로 수없이 칼을 두드리는 임장식 장도장, 편한 방법을 버려두고 전통을 고집하며 자개를 칼로 짧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모자이크하듯 문양대로 붙여내는 나전장 송방웅,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정교한 이음과 맞춤 작업을 하는 김금철 소목장…. 이들을 뒤로 하고 일행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가치를 중요시하는 현대와 상징을 중요시하는 전통 사이의 경계선. 느림보다는 빠름, 땀과 정성보다는 효율, 작품성보다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용과 교환?기호가치 중심의 이 시대에 왜 이들은 비효율성과 비경제성, 불편함을 인내하고 있을까, 이들의 고집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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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화재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컨설팅> 일환으로 무형문화제 전수교육관을 둘러보고 쓴 탐방기입니다.


   

미주 -------

1) 장도장(粧刀匠) :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의 제작을 담당하던 기능인을 말한다. 장도는 평복에 차는 작은 칼로서, 소도(小刀)·패도(佩刀)·낭도(囊刀)라고도 하는데, 호신과 장신구 겸용으로 사용하는 전통이 오래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손칼로서의 실질적 기능보다는 상징성과 장식성이 강조되어 여인들의 노리개장식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정교하고 화려한 치장의 장도가 다채롭게 제작되었다. 종류는 겉모양에 따라 첨사도·네모도·을자도(乙字刀)·을자맞배기·평맞배기 등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을자도 계통이 가장 일반적이다. 칼자루와 칼집의 표면을 은으로 장식한 것은 은장도, 산호를 이용한 것은 산호장도라 하며, 일반적으로는 먹감나무·대추나무·화류목 등 목재나 쇠뼈를 쓴다. 원래 하나의 장도가 완성되기까지는 소자장(小子匠)·소목장·조각장·백동장(白銅匠) 등으로 분업화된 장인들의 작업을 거쳤는데 현재는 한사람의 장도장이 칼날부터 장식까지 일괄 제작하고 있다.

 2) 통영 12공방 : 통영시의 대표적 12가지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공예품 명칭이 통영 12공방(craft 12)이다. 조선시대 수군 총사령부였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통영에는 통제영에 신발과 망건, 활, 화살촉, 갓, 가구, 금은제품 등 각종 군수품과 공예품을 공급하던 12공방이 있었다. 구한말 통제영은 폐영됐지만 12공방의 맥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나전칠기(송방웅), 두석장(김극천), 소목장(김금철), 대나무발(조대용) 등 명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 염장(簾匠) : 발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발은 여름에는 창문이나 대청에 쳐서 햇볕을 막고 바람을 통하게 하기 위해, 겨울에는 한풍(寒風)을 막기 위해 치는 생활용품이다. 발의 쓰임새는 다양하여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거나 땅에 펴서 농작물을 말리기도 하고, 궁내에서는 수렴청정(垂簾聽政)에 이용될 만큼 독특한 데가 있다. 햇볕을 가리는 데 쓰는 발은 갈대나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엮어 만든다.


 4) 나전장(螺鈿匠) :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붙여 장식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원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맡은 칠장이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옻칠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자 칠장의 존재는 나전장 기능 속에 흡수되었다.


 5) 소목장(小木匠) : 목제 세간을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주로 장롱·궤함·문방구 등 세간들과 가마·수레·농기구 등의 도구류를 만든다. 건축 분야에서는 창호·난간·닫집 등 건물에 부착되는 작은 시설물 제작이 소목장의 역할이었다.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조각장·나전장과 더불어 중상서(中尙署)에 예속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일괄하여 목장(木匠)이라 하였는데, 대신 세분화한 수레장[車匠(거장)]·선장(船匠)·통장(桶匠)·표통장(表筒匠)·마조장(磨造匠)·풍물장(風物匠)·안자장(鞍子匠)·목소장(木梳匠)·목영장(木櫻匠)을 따로 두었다. 조선 초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에 쓰이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후기에 들어와서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고 종류도 늘어나 지역적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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