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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탐방_ 흙과 나무, 그리고 바람의 은유

by 이우 posted Oct 02, 2011 Views 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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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rt is but imitation of nature
 - Lucius Annaeus Seneca -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라는 말은 라틴어 ‘아르스(Ars)’와 그리스어 ‘테크네(Teche)’에서 유래했다. ‘아르스’는 예술이나 학술을 뜻했고, ‘테크네’는 기술, 즉 물건이나 집, 선박 따위를 만드는 기술 또는 땅을 측량하거나 청중을 사로잡는 기술을 뜻한다. 이 개념은 로마 시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의 여명인 르네상스 때까지 이어졌다. 오랫동안 가하학자의 공식이 화가의 그림과 동등한 예술적 가치로 연결되었고 건축가가 곧 예술가였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詩)가 기술(Techne, 테크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뮤즈(음악의 신)의 영감에서 나온다 하여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고대 소피스트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상상력만 갖고 하는 일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서양 근대철학이 생성되기 이전의 예술(Art)은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서양식 역사 구분의 ‘근대’는 인간이 자연에서 독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주체를 대상과 독립시키고, 자아와 비아, 과학과 예술을 각각의 영역으로 독립시킨 근대철학이 만들어낸 인식의 결과였다. 이른바 과학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근대적 인식은 마침내 몸과 정신,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을 제각기 독자 영역으로 독립시켰고 여기에 경제 시스템이 접목되어 사람들의 삶을 콘베어벨트화했다. 삶이 행복한가, 혹은 행복하지 않은가의 의심 없이 진행된 이 ‘홈 패인 공간1)’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되는 개별성으로 남았고, 예술은 예술로, 기술은 기술로만 남았다.

 


우리 모두 꽃이다


     탐방단은 화가 남천 송수남2)이 선물로 내어준 자신의 저서 <<우리는 모두 행복한 꽃이다>>(이야기꽃, 2009)를 읽으며 길을 떠났다. ‘우리 모두 꽃을 닮았다’가 아니라 ‘꽃이다’라고 확정해 놓고 송수남 화백은 시치미를 떼듯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졸고 있다. 버스 안에는 작은 꽃, 큰 꽃, 파란 꽃, 노란 꽃…. 꽃들로 가득하다. 꽃들은 책을 읽거나 졸고 있거나, 혹은 김 서린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거나 각양각색으로 피어 있다. 한 차례 폭설이 지나간 후라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앞 도로에는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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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눈길을 걸어 경기도 이천 백사면의 남용호 작가를 만나러 가는 탐방단. (우) 일행과 함께한 송수남 화백. 툭툭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그의 말을 뒤집어 보면 여러 가지 의미들이 숨어 있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Tokina 80-200mm )

 


      사람을 두고 ‘꽃’이라니! 이것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탈근대적 예술 원리로서의 ‘미메시스(mimesis)’다. 얼마 전 영화배우 박중훈이 방송에 나와 미국의 연기학교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파도'를 연기하라는 과제를 냈고, 박중훈은 손을 움직여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그렸다. 어떤 학생은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이리저리 벽에 부딪히고 넘어졌다. 그 학생은 직접 파도가 되어 몸 전체로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연기했던 것이다. 손을 흔들며 파도를 그린 것을 근대미학에서 말하는 재현으로서의 ‘모방(이미테이토, imitatio)’이라면, 온 몸으로 파도를 연기하며 자신이 파도가 된 것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탈근대적 예술 원리로서의 ‘미메시스(mimesis)’다. 흔히 미메시스를 '모방'이라고 번역하지만 미메시스 개념은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표상하기' 혹은 '인식론적 재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카멜레온이 주위 환경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닮기'다. 근대의 회화에서 말하는 주체에 의한 객체의 묘사가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없는 존재론적 연결을 말하고 있다.

 

     오늘 탐방단이 찾아가는 우리 전통문화가 ‘자연의 미메시스(mimesis)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자연의 원리를 재현하면서도 현대의 기술문명처럼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연과 가까워지고 닮아간다. 자연에서는 돌이 바람에 으스러져 흙이 되고, 흙이 나무를 기르고,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도공은 흙을 구워서 돌로 되돌리고, 한지장은 나무를 쪼개 흙으로 되돌리고, 악기공은 나무를 깎고, 소리꾼은 성대(聲帶)에 공기를 넣고 빼며 소리를 낸다. 자연의 순리(順理)를 거스르는 역리(逆理)지만 도공은 흙을 닮아가고, 한지장과 악공은 나무를, 소리꾼은 바람을 닮는다. 나(주체)와 너(대상), 자아와 비아,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닮아가면서 통합된다. 오늘 탐방단이 찾아가는 것이 이것이다. ‘흙’과 ‘나무’, 그리고 ‘바람’의 ‘미메시스(mimesis)….



흙_ 도예가 남용호 공방3)


     일행이 눈길을 걸어가 만난 남용호 작가가 불쑥 던진 말 또한 ‘내가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가 나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바람을 흔든다는 역리(逆理)이자, 기막힌 미메시스(mimesis)다. 돌이 바람에 흩어져 흙이 되었는데, 그 흙을 반죽하고 구워내어 다시 돌로 되돌리겠다는 도예는 자연의 순리(順理)를 거슬러 보겠다는 것이어서 역리(逆理)이고, 그렇게 만든 돌이 도리어 자신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존재론적 닮아가기, 즉 ‘미메시스’다.

 

     흙을 반죽하고 물레 위에 올려 형태를 만들고, 가마로 구워내 다시 돌로 되돌리겠다는 도예, 그것도 천년 세월이 지나도 색을 잃지 않는 청자나 백자처럼 그릇 하나로 자연을 거슬러 보겠다는 역리인 만큼 그 일이 편하지 않다. 작업의 시작은 흙을 구하고 그 흙을 반죽하는 것. ‘요즘은 기계로 반죽하니 많이 편해졌지만 흙을 밟을 때는 허벅지가 씨름꾼 못지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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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자신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가 나를 만든다'는 남용호 작가는 흙을 닮아가고 있었다. (우) 작업장에 말라가고 있는 남용호 작가의 도예 작품.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물레를 돌리며 ‘물레일은 중심을 맞추는데서 시작하고 중심에서 끝난다’며 쉬운 척하던 그가 그릇의 두께가 고르지 않다며 탐방단 앞에서 채 마르지 않은 그릇을 반으로 잘라버리는 바람에 탐방단은 연신 ‘아까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까워하지 말라’며 웃던 작가는 옆에 놓인 반쯤 마른 그릇을 엎어 놓고 굽을 만들기 시작했다. 굽은 서양의 그릇에는 없는 극히 동양적인 형태. 작가는 굽을 만들며 그릇을 두들기고, 그릇은 바람을 흔들며 소리를 들려준다. 이 소리는 그릇의 두께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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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삶이 그렇듯 ‘중심만 맞추면 되는 일’이라며 일행 앞에서 물레일을 보여주는 남용호 작가. (우) ‘굽이 두터우면 무게가 달라진다’며 탐방단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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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그릇을 잘라버린 남용호 작가. 탐방단은 ‘아까워’ 소리를 질렀다. (우) 공방 2층에 마련된 전시실. 작가의 표정이 따뜻하고 아늑한 흙을 닮아 있다.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흙을 다시 돌로 되돌리는 이 역리자(逆理者)에게 있어 흙은 노동의 원인이자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가 도자기를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삶을 완성하니 작가는 자연스럽게 흙을 닮아간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가 지천이라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그의 집 앞에는 어른 허리께 정도 오는 연못이 눈에 덮여 있다. 직접 판 이 연못에 6월에서 9월 사이 목련이 피어나면 배를 띄워 논다는 남용호 작가. 흙일을 하며 자연을 역리하는 그에게 물은 순리를 가르쳐주는 편안함인가보다. 가마에 불을 넣을 때 찾아와 장작 하나씩을 넣어달라던 그의 얼굴은 편안하고 따뜻한 흙과 닮아 있다.



나무_ 여주 한지체험학교4)


      종이를 만든다는 것은 나무를 쪼개어 얇게 펴는 일이다. 흙은 나무를 기르고 나무는 쓰러져 흙이 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자연의 시간을 거꾸로 함축한 역리가 종이(紙)다. 역리니 종이를 만드는 일 또한 편치 않다. 그것도 우리 전통의 공법대로 한지를 만드는 일이다 보니 일일이 수작업 할 수밖에 없고 닥나무를 고집해야 한다. 낫 한 자루를 들고 닥나무를 베면서 노동이 시작되어 찌고 벗기고, 죽을 만들고, 종이를 뜨고 말리며 장인은 늙어간다. 닥나무 찌기, 껍질 벗기기, 말리고 흑피 벗기기, 잿물 내리기, 닥죽 만들기, 흐르는 물에 씻기, 티 고르고 두들기기, 황촉규(풀) 혼합하기, 종이 뜨기, 물 빼기, 말리기, 다듬기 등 그 과정만 해도 길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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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경기도 여주 한지체험학교를 방문한 탐방단이 한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우) 한지장 이근성이 우리 전통의 외발뜨기로 한지를 뜨고 있다. 이렇게 뜬 얇은 한지는 달빛처럼 맑고 투명하지만 천년을 갈 정도로 질기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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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한지체험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삼지 닥나무. 눈 위에 맺은 꽃봉오리가 인상적이다. (우) 한지 제작 공정을 체험하고 있는 탐방단.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Tamron 17-35mm )

 

 


     그래서인가. 50여년을 우리 전통의 외발뜨기로 살아온 한지장 이근성의 종이 뜨는 모습은 흡사 세월을 뜨고 있는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이 한지 이야기를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박중훈/강수연 주연)로 만들며, 종이 뜨는 모습을 ‘달빛을 길어 올린다’고 했으니 한지장은 정말 달빛을 얇게 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종이가 하루에 300여장. 실용을 기준 삼는 현대에서 이 나무의 역리는 효율적이지 않다. 천년을 가는 한지라 하더라도 가격에서 기계식 종이를 따를 수 없으니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최근 조선왕조실록을 복원할 계획으로 실록을 기록할 종이로 한지를 선택했으나 정부가 줄 수 있는 비용은 한지업체로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이것이 전통과 현대의 간격이고 고민거리다.

 

      한지는 닥나무의 미메시스다. 그래서 이 곳 여주한지체험학교의 흙은 닥나무를 키운다. 이미 3년 전부터 닥나무 및 삼지닥나무 재배단지를 조성했고 그 중 일부 수십만 그루를 이곳 체험학교에 분재해 놓았다. 엄동설한 눈 위에서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어린 삼지닥나무가 인상 깊다. 삼지닥나무는, 줄기와 가지의 인피섬유(靭皮纖維)가 강인하고 탄력성이 크며, 광택이 나 고급지의 원료가 된다. 가을에 가지를 베어내어 삶아 껍질을 벗기고 이것을 두들겨서 섬유를 풀어 종이를 뜨는 원료로 사용한다. 섬유의 길이가 일반 닥나무보다 짧아 가공이 쉽고, 종이는 질이 좋고 튼튼하며 충해(蟲害)도 잘 받지 않아 고급 용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닥나무는 바람을 맞아야 살 수 있다. 바람의 온도차가 클수록 더욱 좋다. 한 여름 뜨거운 바람에 흔들리다가 겨울 찬 바람을 맞아야 질기고 튼튼한 섬유를 얻을 수 있고 그 나무로 만든 종이라야 천년 간다는 한지를 만들 수 있다. ‘땅은 우리에게 준 하늘의 선물. 사계절이 뚜렷하다 보니 섬유가 질기고 그 위에 한지공의 노동이 더해져 세계 최고의 종이가 만들어진다’는 설명에 바람에 흔들리듯 꽃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_ 남도 명창 왕기석5)


     판소리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미메시스다. 삼합, 가양주 등 전주 한식상을 앞에 둔 일행에게 예정에도 없던 바람 소리가 들렸다. 대숲에 바람 불듯 성대(聲帶)에 바람을 넣고 빼며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벼락 치는 남도명창 왕기석의 소리 <사철가>, <사랑가>, <심청가>는 북 장단에 휘몰아치다가 늘어지고 늘어지다가 잠겼다.

 

     “...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勝花時)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寒露霜風)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黃菊丹楓)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 오면 낙목한천(落木寒天)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설백(月白雪白) 천지백(天地白)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 (후략) ...”

( 단가 <사철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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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갑자기 벌어진 소리판. 왕기석 명창이 심청가를 창하고 있다. (우) 사철가로 명창의 소리에 답하고 있는 탐방단 김지은. (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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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행이 머물렀던 전주한옥마을 세화관. 그 한켠에 잊혀져가는 전통 생활용품들이 걸려 있어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심청가를 부르다가 목이 마른 명창이 은근슬쩍 ‘심봉사 물을 벌컥 마시며’라는 아니리(판소리에서 이야기하듯 소리하는 부분)를 넣고 발림(몸짓)하듯 실제 물을 마시는 그 현장성은 판소리의 특징이다. 최근 우리 가요계에 소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랩(Rap)은 우리 판소리와 닮아 있다. 랩의 본류는 자메이카. 자메이카의 흑인들이 힙합 리듬과 비트에 춤을 추고 노래나 시를 읊조린 것이 랩이다. 랩은 목적은 ‘내가 남에게 무엇인가 전하고 표현하는 것’이어서 규정된 형식이나 룰이 없고 판소리처럼 현장성이 강하다. 랩은 하층민이나 빈민 흑인들이 주로 불렀고 판소리 또한 마당이나 길에서 모여 판을 부르며 부르던 서민의 노래였다. 서양의 판소리가 랩이며, 랩의 한국판이 판소리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랩은 알지만, 판소리는 모른다. ‘소리가 판을 만나면 판소리고, 놀이가 판을 만나면 놀이판이 되는 것인데, 무대가 아니라 지금처럼 열린 자리에서 함께 소리하는 것이 바로 판소리’라며 ‘자꾸 그 판이 없어져 안타깝다’는 왕기석 명창의 말에는 아쉬움이 가득 들어 있다. ‘판’은 현대 공연의 무대처럼 닫혀 있지 않다. 관객과 공연자가 구분되지 않고 함께 섞여 판이 벌어진다. 분명 공연을 하는 자와 관람을 하는 자가 따로 존재하지만, 굳이 공연자와 관람객을 나누지 않는다. 판소리의 특징 중 하나인 ‘아니리’도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하는 사람이 목이 마르면 슬쩍 아니리를 끼워 넣고 물을 마신다. 노래라는 장르와 노래 부르는 자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판소리나 <사철가>와 같은 단가는 지역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이본들이 존재한다. 같은 바람이지만 대나무 숲에 부는 바람과 자작나무 숲에 부는 바람, 한옥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다르듯….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토막으로 끊어 <사랑가>를 따라 부르던 일행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감격에 휩싸였다. 스피커로 재현한 소리와 판에서 직접 듣는 소리의 깊이가 이렇게 다르다니! 명창 왕기석의 소리에 탐방객은 연신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넣었다. 명창의 소리에 탐방단 김지은이 다시 사철가로 답했다. 시김새(목청을 떨거나 음을 꺾는 소리)가 둔하지만 이 바람 소리 또한 시쳇말로 ‘엣지’ 있다. 판소리는 잘 부르거나 못 부르거나에 상관없이 누구나 멋을 살릴 수 있는 건드러진 바람소리였다.



다시 바람_ 무형문화재 악기공 고수환6)


    전주한옥마을에서 문풍지 흔드는 바람 소리를 판소리 듣듯 들으며 얼핏 잠이 들었던 탐방단이 아침에 만난 것은 또 다른 바람의 미메시스, 무형문화재 소리명인 고수환이 만든 국악기 가야금의 바람 소리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지만,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악기공의 손길이 닿은 나무는 도리어 바람을 흔든다. 12줄의 현이 공기를 흔들어 바람을 만들고 앞판인 오동나무와 뒷판인 밤나무 사이를 맴돌다가 달과 해, 그리고 구름을 의미하는 공명통을 통해 나오는 가야금의 바람 소리는 깊었다. 가야금 소리에 반해 평생을 가야금을 만들었던 고수환 명인의 말처럼, 그 소리는 사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나의 줄에서 튱겨 나온 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또 다른 음들이 선율을 타며 뒤따른다. 전자적으로 재현(모방, imitatio)된 가야금 소리만 듣던 탐방단은 그 깊은 소리(미메시스, mimesis)에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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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전통 국악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고수환 명장. (우) 그가 만든 가야금과 거문고.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Tokina 80-20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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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일행들에게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는 악기공 고수환. 실제 듣는 가야금 소리는 전자적으로 재현된 소리와 다르게 매우 깊고 넓다.  (우) 가야금과 해금, 그리고 거문고. 나무는 악기공을 만나 도리어 바람을 흔든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Tokina 80-200mm )

 


     가야금 또한 전통과 현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으로 12줄이었던 가야금은 현대 음악이 들어오면서 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장인들에 의하여 18줄, 25줄로 음역을 넓혔다고 한다. 25줄은 마치 서양의 하프와 같이 서양의 12음계를 정확하게 재현해 낼 수 있어 배우기는 쉽지만 전통적인 가야금 소리와는 음색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12줄 가야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줄을 누르는 판기술이 중요한 데 비하여 25줄은 판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연주가 가능해 학생들이 선호하게 되고, 그러면서 소리의 깊이와 음색이 자꾸 얕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가야금 연주는 ‘접금(경첩을 사용하여 가운데 접을 수 있도록 한 가야금)’이라 하여 줄을 분리하고 가야금을 접어서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연주했는데, 현재는 12현, 18현, 25현 등 4~5개의 가야금을 자동차에 싣고 다니면서도 과거에 비해 훨씬 바빠졌으니 과연 현대를 사는 우리는 행복한 것인가”라는 명인의 이야기가 골목을 빠져나오는 일행의 가슴에 남았다.



다시 나무 _ 목공예가 김종연7)과 한지공예가 김혜미자8)


     일행은 다시 나무의 미메시스 목공예가 김종연과 한지공예가 김혜미자를 만났다. 나무는 가야금이나 거문고처럼 홈이 패여 바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신을 깍아 형태의 미학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 삶고 풀어졌다가 얇게 뭉친 나무(종이)는 한지공예가의 손에서 쌈지와 보석함, 조명 등의 생활용품이 되어 다시 사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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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일행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목공예가 김종연. (우) 그의 작품 <허수아비>. 허수아비는 새를 쫓기 위해 서 있지만 새가 없다면 허수아비도 존재하지 못한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전주한옥마을에서 목우헌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목공예가 김종연 작가는 나뭇결을 아는 나무꾼이며, 그 안에 삶의 의미를 숨겨 놓을 줄 아는 장인이다. 그는 나무의 심재의 색깔과 결, 나이테를 맞추어 오목하게, 혹은 볼록하게 따로 파내어 짝을 맞추었고,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었다. 그의 작품 ‘새를 사랑한 허수아비’는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허수아비의 임무(미션, Mission)은 새를 쫓아내기 위한 것. 그러나 새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하는 순리와 역리의 중간에 허수아비가 있다. 그의 이 존재론적 생각은, 팔을 벌린 허수아비의 가슴을 파고 그 안에 새를 조각해 넣은 이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새를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허수아비, 어쩌면 그것이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거슬러야 하는 우리 삶의 은유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닥나무를 쪼개고 헤쳐서 만든 한지를 접어 다시 나무로 되돌리는 것이 한지공예다. 일행이 좁은 골목을 돌아 만난 한지공예가 김혜미자. 이 작가의 삶 또한 역리의 힘듦 속에 있었다. 한지함을 만들려면 한지를 여러 장 합지해 두꺼운 종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단순해 보이는 과정마저 쉬운 일이 아니다. 풀을 많지도 적지도 않게 먹여 얇은 한지를 한장 한장 배접하고 종려나무 뿌리로 두들기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겹쳐 붙이고 다시 두들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최소 50여장을 붙여야 함이나 상자를 만들 수 있는 제법 두툼한 종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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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정취 있는 골목을 돌아 한지공예가 김혜미자를 찾아가는 일행. (우) 한지공예가로서의 삶 이야기와 한지공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한지공예가 김혜미자.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그녀는 망궁이붓(타솔)로 30번 두드리고, 접착에 사용하는 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찹쌀을 정성스럽게 가루를 만들고 거기에 물을 붓고 8개월을 보관해 풀을 만든다. 풀의 농도는 한 컵에 한 수저를 규칙으로 삼는다. 한 장이 제대로 안착될 때까지 3시간을 기다려 다시 작업해야 하니 작업이 걸리면 긴 잠을 자지 못하고 집을 비울 수조차 없다 완벽하게 건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지를 붙이면 후에 탁이 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접한 한지는 매우 질기고 단단하다. 그 위에 옻칠을 하게 되면 물에 닳아도 훼손되지 않아 음식 그릇이나 찻그릇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나무가 한지장에 의해서 물에 풀어져 종이가 되었는데, 그 종이는 한지공예가의 손이 닿아 다시 딱딱한 나무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역리를 위하여 작가는 70여년의 삶을 보냈다.



흙으로 돌아오다_ 옹기장 이현배9)


     흙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바람의 미메시스를 만났던 탐방단은 옹기장 이현배를 만나며 다시 흙의 미메시스로 돌아왔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 사는 옹기쟁이 이현배는 ‘옹관(甕棺)’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옹관이라면 옹(甕)으로 만든 관. 즉 흙으로 만든 관,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릇이다. 옹관이라니! 기가 막힌 일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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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탐방단에게 옹관을 설명하고 있는 옹기공 이현배. 요즘 그는 옹관에 빠져 있다. (우) 공방 마당에 아무렇게 놓아둔 옹기들. 전시장에 정렬된 작품과는 다른 색다른 풍취를 느낄 수 있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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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옹기장 이현배가 만든 옹기들이 잘 말라 가고 있다 (우) 패이고 비뚤어진 옹기가 마당 한켠에 놓여 있다. 질서화하지 않은 투박함에서 일탈의 맛이 느껴진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얼마 전 영산강 유역에서 옹관을 구웠다고 믿어지는 가마가 발견되고, 가마 크기가 예상보다 작아 옹관을 굽던 가마가 맞다, 아니다 말들이 많았다. 옹기쟁이 이현배는 그 확인을 위해 실증작업에 나섰다가 옹관에 빠져버렸다. 그의 마당에는 방치된 듯한 옹기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누군가 옹기의 값을 묻자 값을 모르겠다며 난감해 하던 이현배 작가…. ‘옹관은 영산강 유역에서만 사용되던 관’이었다고 말을 시작한 이 옹기공은 ‘그 모양이 둥근 알을 닮았으니 인간이 알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卵生神話)’라며 ‘당시 사람들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믿었으니, 알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옹관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양화가 송수남이 ‘왜 옹기쟁이가 옹기는 안 만들고 연구를 하느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지만, 옹기장은 그 말에 아랑 곳 없이 ‘문화체계로 본다면 대형토기는 옹기로 이어지고, 소형 토기는 자기로 이어졌다. 옹관은 옹기 중에서 가장 크다’며 옹관 사랑을 그대로 드러냈다.

 

     2008년 옹관 가마를 재현한 그는 지금 옹기 가마와 옹관 가마의 함수 관계 연구에 빠져 있다. 자기 가마는 가마 안에 열을 보관하기 위해 불구멍을 다 막지만, 옹기 가마는 열을 흘려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옹기 가마는 뒤 화구들이 모두 열려 있고 20호의 가마 모두가 열린 채 연결되어 있다. ‘옹기 가마는 가마 안에 최대한 많은 옹기를 넣어야 잘 구워지고 열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옹기는 파손되고 마는데, 옹관은 어떨까’라는 것이 최근 그의 화두다. ‘어떻게 먹고 살려구요?’ 순리자가 물었을 때, 이 역리자는 답하지 못했다.

 

     옹기가 기본적으로 크고 무거운데, 그보다 더 큰 옹관을 만들고 있으니 그의 역리 또한 만만치 않다.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자기에 비해 옹기는 원래 흙이 잡스럽다’며 ‘남의 일 하듯이 하면 즐겁다’며 웃던 순박한 그의 얼굴이 길을 나서는 일행을 따라왔다.



전통이라는 삶의 메타포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가. 나무가 흔들려 바람이 흔들리는가’. 어느 노스님이 던진 화두에 젊은 스님은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고 했다가 혼쭐이 나고, 다음날 나무가 바람을 흔든다고 했다가 다시 타박 당한다. 바람인가, 나무인가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젊은 스님을 보며 노스님은 말했다. ‘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궤변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에는, ‘나무와 바람’으로 대변되는 세상을 바라보는 의미 있는 시각이 숨어 있다. ‘나’라는 주체와 ‘나무’와 ‘바람’이라는 대상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주체인 ‘나’지만, ‘나’는 대상인 ‘나무’, ‘바람’과 연결되어 있다. 흙과 나무, 바람의 미메시스를 찾아 떠났던 이 여행에서 우리가 만났던 것은 ‘나’라는 주체와 ‘대상’이라는 외부 사물을 대립시키지 않는 우리의 전통의 생활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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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옹기장 이현배의 옹기 가마. 흙을 돌로 되돌리겠다는 역리(逆理)이지만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삶을 자연스럽게 한다. (우) 옹기공 이현배의 공방을 나서는 탐방단. 처마 끝에 고드름이 달려 있다. (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우리의 전통문화는 나무가 바람을 흔들고,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또 ‘내’가 나무와 바람을 흔드는 ‘존재론적 닮기’다. 서구 근대화 사상이 ‘나’(주체)와 ‘너’(대상), 몸과 정신,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을 분리시켜 놓고 대립시켰다면, 우리 전통문화는 분리된 영역을 다시 통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역리(逆理)해 이기(利器)를 만들면서도 자연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 이것이 효용과 실리로 무장한 현대에서도 잊으면 안 될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일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이 은유(隱喩)는 자아와 비아, 몸과 정신,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로 독립시키고 분리시켜 바라보는 서구화된 시선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

      1) <홈 패인 공간>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대한 가장 통속적인 오해들 중의 하나>에 나오는 개념이다. 삶에는 기하학적인 공간, 물리적적인 공간, 도시 공간, 논리적 공간 등 많은 공간이 존재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홈 패인 공간>은 공간 종류가 아닌 공간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다. <홈 패인 공간>은 자동차길이나 수로처럼 홈이 파여져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선 오직 주어진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 옆으로 '샐' 수가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단일한 방식으로만 행동하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질주하거나 아니면 낙오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인 <홈 패인 공간>의 속성이다.

 

      2) 1938년생. 전통산수화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현대조형성을 추구해온 그는 상업주의, 권위주의가 만연하던 70년대 말 한국화의 위기 상황 앞에서 ‘새로운 환국화의 정립’이라는 기치 아래 한국화의 생명력 회복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수묵화 운동의 주역이다.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 초대 개인전을 비롯하여 30여회의 개인전, 동경국제비엔날레, 상파올루 비엔날레, 국제현대수묵화전 등 여러 단체전을 열었으며,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중앙일보미술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3) 1958년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수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의를 하며 경기도 이천 자신의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4) 여주한지체험학교는 40여년을 한지연구 및 우리 종이 살리기만을 고집해온 박성만 대표, 그리고 47년 한지 뜨기로 평생을 살아온 한지장 이근성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직접 기르고 채취한 닥나무를 이용해 전통방식인 외발뜨기는 물론 쌍발뜨기, 타파뜨기 등 일반 한지 공장에서 체험하기 힘든 여러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

     5) 왕기석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남해성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으며, 1980년부터 국립창극단에 몸을 담고, 춘향가의 이도령, 심청가의 심봉사 역 등을 통해서 대표적인 창극배우로 명성을 얻었고, 그 외 80여 편의 창극에서 주역을 맡아왔다. 1984년 국립국악원 전국 국악 경연대회 대상, 1999년 KBS 서울국악대경연 판소리 장원, 200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명창부 장원을 하였으며, 2004년에는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에서 다섯 시간 동안 심청가를 완창하기도 했다. 현재 국립창극단 지도위원, 목원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에 있으며,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후학양성에도 노력하고 있다.

     6) 무형문화재 제12호. 가야금 소리에 반해 가야금, 거문고, 아쟁과 해금 등 국악기를 만드는 데 평생을 보냈다. 현재 전주시 금암동 전주국악기를 운영하고 있다.

     7) 목공예가. 한국미술대전, 전라북도 미술대전, 춘향미술대전, 전라북도 공예품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공예대전 100인 초대전 등에 참가했고 전라북도 미술대전, 온고을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주한옥마을에서 목공예 공방 목우헌을 운영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8) 한지공예가. 전주기전대학 문화전통과 교수, 전주한지문화축제 조직위원, 익산한국공예공모전 심시위원, 원주한지공옉오모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9) 옹기장. 경희대학교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 힐튼호텔,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근무했지만 흙이 좋아 박나섭 옹기장, 김정옥 사기장 등에게 사사하여 옹기장이가 되었다. 갤러리 마루 등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전통예 UN전시회 등 수차례 단체전에 참가했다. 2008년 동아시아 SEAL에서는 그의 작품 ‘달항아리’와 ‘전골 솥’이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 인증을 받았다. 2009년 울산 세계옹기엑스포 조직위원으로 역임했고 (사)민족생활문화연구원, 전라북도 문화관광 비전협의회 운영위원, 천년전주명품 온브랜드 운영위원, 천년전주사랑모임 운영위원이다.


      ...........

     *이우 곽원효 : 소설 <죽>으로 복현문학상, 문학평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복현문화상을 수상하고, 詩 <강변에서>로 제1회 강변시인학교 백일장 장원으로 당선했다. 사사 <<구미공업단지 15년사>>, <<구미상공회의소 10년사>>를 집필했고 저서로 <<언어는 문부시다>>가 있다. 현재 독서경영회사 (주)행복한상상 팀장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  이 원고는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발간 <공예사랑>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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