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on EOS D60 / Canon EF 50mm / 낙동강변 / Photo by 이우
… 지젝은 마르크스/앵겔스의 ‘왜곡된 의식’ 혹은 ‘허위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만으로는 소위 ‘탈이데올로기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해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본다. (중략) 지젝*은 이데올로기란 자신이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행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은 ‘앎’이 아니라 ‘행함’이다. 우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그들인 것이다.
지젝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서의 세 가지 변기 사용법을 예로 든다. 전통적인 독일식 변기에는 물을 내릴 때 대변이 사라지는 구멍이 앞쪽에 있어서 대변 냄새를 맡고 무슨 병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 변기에는 그와는 반대로 구멍이 뒤쪽에 있다. 즉, 물을 내리자마자 대변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돼 있는 것이다. 끝으로 영국식 변기는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의 통합형, 혹은 중재형이다. 즉 물통에 물이 가득차 있어서 대변이 물 속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점검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영/북/독이라는 지리적 3항에서 세 가지 실존적 태도를 최초로 읽어내고자 했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반성적 철저함(보주주의)’과, 프랑스는 ‘혁명적 조급성(혁명적 급진주의)’, 그리고 영국은 ‘온건한 공리적 실용주의(온건한 자유주의)’와 짝지어질 수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 변기 사용 방식과 상응한다. 해서, 우리가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탁상에서 떠들어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잠시 화장실에 들르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곧장 이데올로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들까지 동원하며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갖는 가장 은밀한 태도조차 이데올로기를 ‘발언’하고 ‘실천’한다는 것. 그러니 누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하는가? …
- 이현우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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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Slavoj ?i?ek)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철학, 맑스주의 정치를 독창적으로 결합하여, 인문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부분에 개입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정신분석 이론가이자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주요 저서로는 <까다로운 주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 하나이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나눌 수 없는 잔여>, <이라크>, <삐딱하게 보기> 등 다수가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구 유고연방)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로서 들뢰즈를 잇는 철학계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젝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철저히 칸트. 헤겔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특히 지젝은 히치콕 해석으로 미국 등에 알려졌고, 영화광이다. 그의 영화평은 아주 독특하다. 현재의 영화평론가들은 좋건 싫건 지젝을 읽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