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거지 계집애에게
A UNE MENDIANTE ROUSE
A UNE MENDIANTE ROUSE
빨간 머리, 흰 살결의 계집애여
네 헤어진 옷 구멍으로
가난과 아름다움이
내비친다.
보잘 것 없는 시인 나에게는
주근깨투성이인
네 허약한 젊은 몸이
사랑스럽다.
넌 소설 속의 여왕이
빌로도 반장화를 신은 것보다
더 멋있게 무거운 나막신을
신고 있구나.
너무 짧은 누더기 대신
길게 주름잡은 화사한 궁정복의
옷자락을 네 발꿈치까지
질질 끌고 있었으면;
구멍 난 긴 양말 대신
난봉꾼의 눈요기 위해
네 다리 위에 황금의 칼이
번뜩이고 있었으면;
옷고름 헐거워
두 눈처럼 황홀하게 빛나는
네 아름다운 젖가슴이 우리네 죄인에게도
드러나 보였으면;
옷을 벗을 때에는
네 팔이 삼가해 망설이고,
장난꾸러기 손가락일랑 고집 세게
뿌리쳐버렸으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진주,
벨로를 흉내 낸 사랑의 소네트가
네게 반한 사내들로부터
끊임없이 네게 바쳐지고,
시 나부랭이나 읊는 자의 종이 되어
갓 나온 시집을 네게 바치고,
계단 아래서 네 신을
우러러보고,
요행을 기대하는 숱한 시동들
영주와 롱사르 같은 무리들은
산뜻한 네 규방 엿보며
즐거워하리!
너는 침대에서 백합보다
더 많은 입맞춤을 받고,
한둘 아닌 발루아의 왕들을 네 율법 아래
꿇게 하리라!
―그러나 지금의 넌
네거리의 어느 음식점 문전에서
버려진 오래된 쓰레기를
구걸하는 신세;
이십구 수짜리 싸구려 보석을
곁눈질하며 가지만,
오! 미안! 나는 그것마저
네게 선물할 수 없구나.
그러니 가거라, 야윈 알몸밖에는
향수도 진주도 금강석도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오 아름다운 계집애여!
- 『악의 꽃』(대산세계문학총서 18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 원제 : Les Fleurs du Mal, 1857년), <파리풍경>, p.215~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