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물 만난 고기떼

by 이우 posted Feb 27, 2018 Views 1703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미니마모랄리아01.jpg

  (...) 고도로 집중된 산업이 포괄적인 분배 장치를 갖추게 되면서 유통 부문은 해체되었지만 이 부문은 기이한 사후 생존(Post-Existense)을 시작하게 된다. 거간꾼 직업은 그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중개인의 삶이 되며, 심지어 사적 영역 전체가 수수께끼 같은 장사성―이것은 도대체 거래할 것 없을 때조차 온통 장사꾼 기질을 드러내는데―에 먹혀버린다. 안정감이 없는 이 모든 사람들―실업자들뿐 아니라, 자신에게 투자한 사람들의 분노를 언제든 끓어오르게 할 수 있는 명사들까지―은 자신의 장사꾼 자질을 동원해 온갖 간계와 술책으로 살살 빌고 꾀어 온 사방에 널려 있는 사장님들께 자신을 천거할 수 있으리라 믿는데 거기에는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순수한 관계란 없을 뿐 아니라, 통할지 안 통할지 사전 검열하지 않은 감정의 움직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매개와 유통의 범주인 '관계'라는 개념이 본래의 유통 부문, 즉 시장에서보다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위계 구조 속에서 번창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전체 사회가 위계적이 되면서 음울한 '관계'라는 것이 온 사방에―오직 자유가 있는 듯이 보이는 곳에조차―ㅡ흡혈귀처럼 달라 붙어 있다. '체계의 비합리성'은 개개인의 경제적 운명에서뿐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기생적 심리에서도 표출된다. 예전에, 직업과 사생활이라는 악명 높은 구별이 존재하던 시절에는―사람들은 그런 구별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 하지만―사적 영역에서 어떤 잇속을 챙기려는 무례한 침입자라는 의심의 눈총을 받았다, 오늘날 어떤 목표에도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 시적인 삶에 칩거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낯설고 거만한 자로 여겨진다.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의심을 받는다. 사람들은 무자비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응수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란 것을 믿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 해체되는 데 따른 상황으로부터 자신의 직업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모든 사람과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랑 받는 사람이며, 어떤 비열한 행위도 인간적으로 눈감아주며 표준화되지 않은 정서는 감상적이라고 단호히 배척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력의 모든 수로와 배출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며, 권력의 가장 비밀스러운 판결문을 잘 헤아리고는 이것을 기민하게 소통시킴으로써 밥벌이를 한다. 모든 정치 진영, 심지어 기존 체제에 대한 거부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영에서조차 발견되는 이런 족속은 독특한 형태의 느긋하고 교활한 순응주의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사심이 없는 너그러움과 타인의 생활에 대한 애정어린 이해심을 보이면서 사람들을 매수한다. 그들은 재치 있고 영리하며 순발력이 뛰어나다. 그들은 해묵은 장사꾼 기질을 최신의 심리학으로 때깔나게 포장한다. 그들은 팔방미인이며, 사랑에도 능하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그들은 충동적으로 남을 속인다기보다는, 기만 자체가 그들의 원칙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잉여가치'라 평가하지만 이 잉여가치를 다른 누구에게 선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신'에 친화력과 증오를 배합한다. 그들은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유혹이기는 하지만 가장 사악한 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항'의 마지막 도피처, 전체 메커니즘의 요구로부터 아직 자유롭게 남아 있는 '시간'을 교활하게 장악해서는 욕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뒤늦은 개인주의는 '개인'에게 아직 남겨져 있는 좁은 틈새에마저 독을 섞어 넣는다.(...)

  - 『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테오도르 아도르노 · 길 · 2005년 · 원제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a"digten Leben, 1951년) p.38~40









  1. 18
    Sep 2020
    03:37

    [철학]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 주체와 주체화, 자아의 문제

    (...) 자아는 이제 그의 계열이, 그 계열의 수만큼의 우발적인 사건들이 되어 가로질러짐에 틀림없는 그런 모든 자아에, 다른 역할에, 다른 인격에 개방되게 된다. '나는 샹비주이고 바딩게이며 프라도다. 나는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이름인 것이다.' (중략)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702 file
    Read More
  2. 19
    Aug 2020
    03:42

    [문학] 사르트르 첫 장편소설 『구토』 : 말과 사물,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 질서와 무질서, 즉자·대자·대타존재

    (...) 나는 침묵을 지키고 어색하게 웃는다. 여종업원이 내 앞에 있는 석회빛이 나는 카망베르(노르망디 지방 산 치즈) 한 조각이 놓여 있는 접시를 갖다 놓는다. 나는 방 안을 죽 훑어본다. 심한 역겨움이 나를 사로 잡는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1656 file
    Read More
  3. 29
    Jul 2020
    00:45

    [사회] 칼폴라니 『거대한 변환』 : 빈민구제법·스피남랜드법, 1795년

    (...) 18세기 사회는 사회를 시장의 들러리로 삼으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저항했다. 노동시장이 없는 시장경제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노동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은 특히 영국의 농촌문명 같은 경우 전통적 사회의 골조를 허물어버리는 것이...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373 file
    Read More
  4. 24
    Jul 2020
    06:14

    [사회] 칼폴라니 『거대한 변환』 : 노동과 토지, 화폐의 상품화

    (...) 경제가 사회관계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관계가 경제체계 속에 파묻혀 있다. 경제체계가 특수한 동기들을 바탕으로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여 독립된 제도들로 조직되면, 사회는 경제체계가 독자적인 법칙에 따라 기능하도록 허용하는 방...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539 file
    Read More
  5. 29
    Jun 2020
    18:04
    No Image

    [사회] 실용과 효율의 함정 : 싱가포르

    (...) 싱가포르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가능할 만큼 한정된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인구 3백만으로 중국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수상 이광요*는 싱가포르의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여 ‘완벽’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이광요는 실용주의자였...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7373
    Read More
  6. 28
    May 2020
    15:02

    [철학] 푸코 『지식의 고고학』 : 언표(言表)의 정의· 언어행위 분석

    (...) 식물학적 분류표는 언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구(語句)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계통학적 나무, 회계 장부, 대차대조표들은 언표들이다. 어구들은 어디에 있는가? 더 나아갈 수 있다. n차의 방정식, 굴절법칙에 관한 대수식은 언표로 간주되어야 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244 file
    Read More
  7. 25
    May 2020
    15:56

    [철학] 푸코 『지식의 고고학』 : 개념의 형성·계열화·도표화·조직화

    (...) 아마도 린네(Carl won Linne)의 작품 속에서 또한 리카드로의 작품이나 포르-르와왈의 문법 속에서 사용된 개념군들은 하나의 복합적인 총체로서 조직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개념군이 형성하는 연역적 건축물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321 file
    Read More
  8. 24
    May 2020
    22:29

    [철학] 푸코 『지식의 고고학』 : 언표행위적 양태들의 형태·지위, 장소, 위치 ·계열

    (...) 질적인 기술(記述)들, 전기적 이야기들, 기호들의 지표화, 해석, 그리고 문헌적 검증, 유비에 의한 추리, 연역, 통계학적 계산, 실험적 검증, 그리고 많은 다른 형태의 언표들, 이들이 우리가 19세기의 의학적 언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467 file
    Read More
  9. 23
    May 2020
    00:57

    [철학] 푸코 『지식의 고고학』 : 언설·담론·에피스테메(episteme)

    (...)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이 관련되는영역에 있어, 일찍부터 경범죄의 범주에 속하는 일련의 대상들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살인, 그리고 자살, 치정사건, 성적인 경범죄, 여러 종류의 절도, 부랑죄, 그리고 그 후 이들을 통해서 상속권, 신경증을 야기실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222 file
    Read More
  10. 17
    May 2020
    17:05

    [사회] 위험사회 : 국제적 불평등 · 제3세계의 계급지위와 위험지위

    (...) 위험지위의 세계적인 평등화는 위험이 유발하는 고통 내부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위험지위와 계급지위가 중첩되는 곳에서 국제적 규모로 발생한다. 지구적 위험사회의 프롤레타리아트는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2130 file
    Read More
  11. 17
    May 2020
    15:10

    [사회] 위험사회 : 부메랑 효과 · 공공수용

    (...) 상당한 정치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위험의 분배 유형이 지구화에서 포함되어 있으면서 아직은 그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조만간 위험은 위험을 생산하거나 위험에서 득을 보는 사람들도 따라잡을 것이다. 위험은 사회적 부메랑 효과를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326 file
    Read More
  12. 07
    May 2020
    12:40

    [철학] 『에티카』 : 정서의 기원과 본성 · 코나투스(conatus)·정신과 신체

    (...) 정서와 인간의 생활 방식에 관하여 기술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통적인 자연법칙을 따르는 자연물이 아니라 자연 밖에 있는 사물에 관하여 논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로 그들은 자연 안의 인간을 국가 안의 국가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0967 file
    Read More
  13. 07
    May 2020
    03:45

    [철학] 『에티카』 : 정신의 본성과 기원 · 제1종의 인식(표상), 제2종의 인식(이성), 제3종의 인식(직관지)

      (...) 매우 빈번하게 인간의 자태를 경탄하면서 관찰한 사람은 인간이라는 명칭 아래에서 직립한 자세의 동물로 이해한다. 이에 반하여 인간을 다르게 관찰하는는 데 습관이 된 사람은 인간에 관하여 다른 공통된 표상을 형성할 것이다. 즉 인간을 웃을 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475 file
    Read More
  14. 04
    May 2020
    23:12

    [사회] 『1차세계대전사』 : 식민지 시대, 파렴치한 이 영국인을 보라!

    (...) 1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신중함이나 공조의 선의가 제 목소리를 냈더라면 최초의 무력 충돌에 앞선 5주간의 위기 동안 어느 때라도 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던 사건들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고, 첫 번째 충돌...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64492 file
    Read More
  15. 30
    Apr 2020
    08:49

    [철학] 『자본론』 : 상품의 등가형태·등가물·등가교환

    (...) 상품 A(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자기와는 다른 종류의 상품 B(저고리)의 사용가치에 표현함으로써, 상품 B 그 자체에 하나의 독특한 가치형태, 곧 등가물이라는 가치형태를 부여한다. (중략) 저고리가 등가물로 표현되고, 아마포가 상대적 가치로서 표...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9900 file
    Read More
  16. 29
    Apr 2020
    07:09

    [철학] 『자본론』 : 상품과 노동의 이중성·분업·사용가치와 교환가치·유용노동·labor와 work

    (...) 어떤 물건은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그 물건의 사용성이 노동에 의해서 중개되지 않는 경우에 그러하다. 예를 들면 공기, 처녀지, 자연의 초원이나 야생의 수목 등이 그러하다. 어떤 물건은 상품이 아니면서 유용하...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670 file
    Read More
  17. 23
    Apr 2020
    00:57

    [철학] 『마르크스 평전』 : 브루노 바우어·포이어바흐·막스 슈티르너, 그리고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는 법학과에서 에두이르트 겐스,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브루노 바우어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특히 개신교 신학자 브루노 바우어는 자유주의 운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의 방대한 교양, 경구들에 대한 감각, 빈정거림과 대담성은 자연히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076 file
    Read More
  18. 20
    Apr 2020
    04:04

    [사회] 『다윈에 대한 오해』 : 『인간의 유래』에 나타난 성(性)의 선택

    "성선택의 영향으로 발달된 것이 분명한 구조와 본능이 여럿 존재하는데, 경쟁자와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한 수컷의 공격 무기와 방어 수단이 그것이다. 수컷의 담력과 호전성, 다양한 장식, 목소리나 도구를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방식, 냄새를 분비하는 분비...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227 file
    Read More
  19. 18
    Apr 2020
    23:38

    [사회] 『다윈에 대한 오해』 : 다윈에게 나타난 전체주의·계몽주의·식민주의

    (...) "사회적인 동물의 경우, 자연선택은 때때로 공동체에 이로운 변이의 보존을 통해 개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뛰어난 개체를 다수 포함한 공동체는 수적으로 증가하며 덜 유리한 다른 공동체보다 우세하다. 그리고 이는 그로 인해 각기의 구성원이 같...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448 file
    Read More
  20. 18
    Apr 2020
    19:15

    [사회] 『다윈에 대한 오해』 : 맬서스 『인구론』과 『종의 기원』에 나타난 자연선택설

    (...) 공간과 자원을 공유하는 생물 종의 수적 성장을 제한하는 요소가 각 환경에 존재해야 하며, 이는 필연적인 연역이다. 무한 가속된 증식 경향과 여러 종 사이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균형 간의 대립 관계에서 외재적 조절 기제, 즉 각 종의 번식 충동과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784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