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 때문이든 허약한 체질 때문이든 유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이 예술가나 학자 같은 지적인 작업을 갖게 되면 그는 동료라는 역겨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남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의 독립성을 질투한다거나 그의 진지한 의도를 불신한다거나 그를 기득권층이 보낸 밀사로 의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불신은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적개심에서 나온다고 보아도 무방하지만 대체로는 그 자체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적대감은 다른 데 있다. 정신적인 일에 종사하는 것은 그 사이에 그 자체가 실용적인 일, 즉 엄격한 노동 분업에에 입각해 인원 제한을 받는 전문 직종이 되었던 것이다. 돈 버는 일을 명예롭지 못한 것으로 혐오한 나머지 정신적 직업을 택한, 물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벌을 받는 것이다. 그는 프로가 못 되며 경쟁자들이 만들고 있는 위계질서 사이에서 ―그의 학식이 얼마나 깊은가에 상관없이―딜레당트*의 서열을 차지하게 된다. (...)
노동분업의 지양은 사회가 명령한 일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혐오감을 누설하는 것으로서, 각 분야를 이끄는 가장 경쟁력 있는 세력들은 그러한 이디오진크라지*를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의 분화는 사회로부터 위탁받지 않은 일을 행하는 정신을 제거하는 수단이다. 분화된 정신은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훨씬 훨씬 신뢰성 있게 행하는데 그 이유는, 노동분업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일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탁월함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공격 당할 수 있는 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질서'는 이런 식으로 보살펴진다. 대두분의 사람들은 달리 살 방도가 없기 때문에 게임에 동참해야 하며, 달리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동참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바깥에 있어야 한다. (...)
- 『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테오도르 아도르노 · 길 · 2005년 · 원제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a"digten Leben, 1951년) p.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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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당트(delettante) : 미술, 문예, 학술 등을 취미로 애호하는 사람. 호사가(好事家).
**이디오진크라지(idiosynkrasie) :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인에게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반응 형식. 생물학적 원초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