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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광기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by 이우 posted Oct 18, 2011 Views 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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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non EOS D60 / Tokina 80-200mm / 남이섬 / Photo by 이우

 

 

 

 

  ... 1945년 이전의 역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그 모든 친일 행적에, 훼절이나 변절의 이름을 붙여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팔았다’고 판단 내리기는 쉬운 일이다. 실제 1930년대쯤 말이 되면 조선의 거의 모든 지배층이 일신이나 일가의 영달을 위해 친일화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판단은 여지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식인이다. 소위 상징의 생산에 종사하는 지식인의 행위까지 모든 것을 ‘밥’의 논리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중략)

 

  191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미국에서는 ‘중국인 추방령(Chinese Expulsion Act)’이 효력을 발휘하고 황인종에 가해지는 여러 시민권의 제한이 가해졌다. 또 호주에서는 황인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백(白)호주 정책’이 한참 시행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시아 각 민족의 자립 논리를 아시아 인종의 생존 논리에 복속시킨 일제의 어용 이데올로기가 조선지식인을 매료시켰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에 맞춰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도 미국의 아프간 마을과 이라크 도시에 대한 야만적인 폭격처럼 여전히 인종주의, 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정책이 판을 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우리는 노골적인 인종주의적인 표현이 적어도 주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위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중략) 문제는 한때 90% 이상의 미국인들이 아프간 마을에 대한 폭격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집단적 광기를 벗어나려면 때로 거의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전세계를 휩쓴 인종주의의 격렬한 광기는 조선의 지성인 사회에도 매우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중략)

 

  일제의 현실적, 상징적 권력과 타협을 모색했던 대다수 조선인 지성인들 사이에 가장 쉽게 착근된 인종주의적 광기는 다름 아닌 범아시아주의였다. 즉, 황인종과는 대동단결하고 백인종과는 결사 투쟁을 하자는 논리였다. 바로 그 논리는 ‘황민화’와 ‘전시 총동원’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되었다. (중략)

 

  공격적인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색채가 상당히 퍼져있던 1848년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및 헝가리 등지의 혁명을 목도했던 한 영국 작가의 말대로 19세기 중반의 유럽에는 인종 감정이란 저주가 내려져 있었다. 러시아를 맹주로 한 슬라브 인종의 대동단결과 독일 인종에 대한 결사투쟁을 주장하는 러시아의 어용적인 이데올로기인 ‘범슬라브주의’, 프로이센을 맹주로 한 독일 인종의 대통합과 대 슬라브, 라틴계 결사투쟁을 부르짖는 ‘범게르만주의’, 전 미주에 대한 미국의 보호 필요성을 역설하는 ‘범미주의’ 등 유럽에는 인종주의적 광기가 이미 체계화, 제도화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광기를 생산하는 직업 역시 상당히 간단할 수 있다. ...

 

  ... 1880년, 이동인은 일본의 범아시주의자들의 기관지인 <흥아회보고>에 아주 흥미로운 글을 기고한다. 이동인에 의하면 인도를 점령하고 아편전쟁을 벌이며 중국까지 범한 백인종의 맹주, 영국이야말로 모든 아시아인들의 공적(公敵)이었다. 이를 견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들의 연대’라는 것이 이동인의 짧은 기고문의 결론이었다. (중략) 늘 착하고 희생만 당하는 그리고 서로 연대해도 좋은 동양적인 우리(일본, 조선, 중국)와 극악무도하고 침략만 일삼아 무조건 타도해야 할 그들(서양) 사이의 구별짓기가 이미 이루어진 셈이다. (중략)

 

  ... 미국 선교사나 외교관과의 제휴 속에 만들던 <독립신문>이었지만, 거기에서마저 ‘유럽 안에서 서로 싸우곤 하는 유럽인들이 다른 인종을 대할 때 서로 단결하듯이, 아시아인들도 철저하게 단결해야 한다’는 식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유학시절에 미국인들의 인종주의에 눌려 서구인들의 대한 강력한 복수의 욕망의 갖고 있었던 윤치호가 <독립신문>을 인수한 뒤에는, 그보다 훨씬 이색적인 ‘동양공조론’과 ‘일본맹조론’이 지상에 게재되었다. (중략) 일본이라는 정보원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가졌던 친미적 지성인들까지 일본을 동양의 거울, 동양의 맹주, 구라파를 능가할 수 있는, 그리고 후진적인 우리를 이끌어줄 형제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미적 지성인의 실정이 이러했다면, 1900년대의 일본 유학파들의 의식은 어땠을까? 도일 유학생과 접촉이 많았던 안중근 의사 역시 1904년의 러일전쟁을 보며 일본이 백인 러시아를 막아 동양 평화에 이바지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을 정도였다. (중략) 개화와 문명을 지향했던 조선의 신진 지식인들이 왜 하필이면 일본에서 건너온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적인 전염병에 쉽게 감염될 수 있었을까? 가장 손쉬운 설명은, 개화와 문명이라는 단어 자체를 만들어낸 일본 메이지의 북구강병의 근대화 프로젝트의 위력을 지적하는 것이다. 범아시아주의 즉 ‘일본의 신장된 국력에 위한 동문동종(同文同種)의 아시아인들의 구제’는 부국강병과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근대화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억해둬야 할 것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갖는 기반이 취약했다는 것이다. (중략)

 

  대동아전쟁이 벌어지고, 국민 총동원이 실시되었던 시기에 부르조아는 물론 지성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귀축미영(鬼畜美英, 귀신과 가축 같은 미국인과 영국인)’의 박멸을 외쳤던 것은 초기 개화파의 흥아회와의 로맨스로 시작된 ‘이식된 광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 박노자의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 사상사, 200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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