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on EOS D60 / Canon EF 50mm / Computer Aid / photo by 이우
…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 이익 추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산물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공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또 얼마나 증대시킬 수 있는지 알지 못 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는 가운데 사회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Vs
… 과연, 우리가 아는 것처럼 경제체제는 성장과 이익, 국부(國富)만을 위한 것인가.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는 자신의 역저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 of Our Time)>>에서 트로브리안드 군도 주민들의 기이한 교역 풍속을 소개한 바 있다. 한 쪽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주민에게 흰 조개껍질 팔찌와 붉은 조개껍질 목걸이를 선물하기 위해 10년이 걸릴지 모르는 항해를 떠나면, 다른 쪽에서도 반대 방향으로 비슷한 항해를 떠나는 전통이 그것이다. 이 항해는 재화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교역임이 분명하지만 호혜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윤 추구를 위한 오늘의 투자협정과는 너무나 다른 이런 교역을 문화인류학은 <선물경제> 또는 <상징적 교환>이라 명명한다. 여기서 교환되는 것은 화폐, 이윤이 아니라 사랑, 존경, 연대 등이다.
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싣고 10년이 걸릴지도 모를 항해를 떠나는 트로브리안드 주민. 오늘의 자유무역 관점에서는 말이 되지 않으나 상징적 교환은 인류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웃 마을에서 초대한 손님이 더 이상 먹지 못해 토할 때까지 음식물을 대접하기 위해 북태평양 연안 인디언들이 경쟁하듯 벌인 ‘포틀래치’라는 잔치도 한 사례다.
경제적 이성이 이런 행위를 ‘합리적’이라고 할 리는 없다. 그러나 환경에 따라서는 이윤 창출 방지가 오히려 생존의 지혜가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피그미족은 누가 큰 수확을 올리면 칭찬은커녕 질책부터 했다고 한다. 사는 곳이 척박하여 개인이 사적으로 땅의 생산력을 착취하면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경계한 때문이다. 지금 인류가 처한 환경은 어떠한가? 교역과 교환이 경쟁적으로 일어나서 과잉생산이 부추겨지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모두 경제적 이성에 충실한 나머지 상품교역과 화폐교환에 눈먼 결과라 하면 과장일까?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를 지배할 경우 사회 자체가 해체된다며, 인도가 영국 식민지가 된 뒤 기근이 더 자주 들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홍수나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도 신분에 따른 의무, 씨족적 연대, 곡물시장 통제 등이 대규모 아사를 막아주었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자 그런 사회적 안전망이 해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폴라니가 경제주의라고 부르는 경제학은 20세기 중반의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이다. 인간이 직면한 희소성의 현실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느냐는 형식론적 문제 설정이 신고전파의 경제 문제이다. 즉 경제 문제는 합리적 선택 내지는 계산의 문제인 것이며 그러한 논리는 수학적 차원 수단의 문제로 환산되는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는 경제가 곧 최적화라는 신고전파의 경제 개념을 부인한다.
“경제학은 사람을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으로 추상한다. 그러나 이는 서구에도 없는 동물이다. 아무 데도 없는 경제인간이라는 허깨비가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데에서 경제학은 출발한다. 사람의 살림은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만큼 경제도 사회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폴라니의 생각이었다. 경제는 사회 속에 ‘묻혀’ 있는 것이 당연하고 시장사회의 문제는 경제가 사회에서 벗어나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 실체적 의미는 간단히 말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자연과 동료들에게 의존하는 것이고 인간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
- 이우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안인들’ 서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