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장1) 이형만(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기능보유자)
① 이형만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② 일행에게 나전칠기 제작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이형만 나전장
③ 그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공구들.
④ 나전 도안을 조개껍질에 붙이거나 떼어낼 때 사용하는 인두
⑤ 나전을 붙이는 아교가 중탕되어 이형만 나전장 옆에 놓여 있다.
⑥ 패각을 다듬는 이형만 나전장의 작업대. 실톱이 가지런하다.
그의 서재에는 그가 직접 그린 400여점의 문양이 보관되어 있다. 이 문양이 나전일의 출발점이다. 이 문양을 전복껍질 위에 붙이고 문양대로 얇게 썰어내면서 일이 시작된다. 썰어낸 패각을 아교로 원하는 위치에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해 잘 말린 다음, 사포로 옻칠을 걷어내면 마침내 나전이 그 화려한 빛을 드러낸다. 전복껍질을 사들이는 일에서부터 모양을 그리고, 깎고, 다듬고, 칠하는 등 약 45여개 공정을 거쳐야 나전칠기가 나온다. 아무리 작은 나전이라고 하더라도 6개월은 걸린다고 하니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경제성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자연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지금은 재료 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제주와 통영을 중심으로 전복껍질이 나왔지만 예전과 달리 현재 국내산을 거의 사용할 수가 없다. 환경이 오염되고 먹거리로 무차별 채취되다 보니 두께가 얇아 나전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나전을 위한 대부분의 전복은 동남아시아나 뉴질랜드 등에서 들여온다. 이형만 나전장은 국내산보다 빛이 좋지 않아 늘 마음에 걸린다.
나전칠기는 조개껍질을 다듬어 장식하는 나전과 옻칠을 하는 칠 기술이더해 만들어지는 생활용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집은 인상적이다. 방마다 장롱, 화장대, 장식장 등 나전이 화려한 빛을 자랑하고 있고, 입식의 현대성 주방은 나전과 옻칠이라는 전통기법이 만나 은은한 붉은 빛을 뛴다. 이 주색(朱色)은 강렬하지 않아 불편하지 않고 자연의 색이라 아늑하다.
① 패각에 도안을 붙인다
② 도안대로 패각을 잘라 나무에 붙이고, 옻칠을 한다.
③, ④ 잘 말린 뒤 사포로 문질러 낸다.
⑤ 서서히 드러나는 나전의 빛깔
⑥ 완성품
①, ② 나전장의 안방에 놓인 나전칠기 화장대과 나전장
③, ⑤ 일상적인 생활 소품에도 나전이 화려한 빛을 드러낸다.
④ 옻칠을 한 주방,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⑥ 이형만 나전장의 서재.
최종호 교수와 함께한 화두(話頭), ‘가능할까’
공예부문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만든 유형물인 전통 공예를 시장에서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무형의 전통 기법 보존(conservation)과 계승은 그리 힘들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까?’ 일행은 이 물음을 앞에 두고 2009년 한국무형문화재 실태 조사를 했던 한국전통문화학교 최종호 교수와 밤늦도록 마주 앉아 있었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의 법적인 문제에서부터 국제 기준 등을 브리핑한 최종호 교수는 세계 무형문화유산 선정의 네 가지 요소인 재질·디자인·기법·장소, 우리나라의 문화재 기준인 역사·학술·예술·경관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우리나라 전수교육관 운영의 문제점을 브리핑했다. 그는 대도시에 위치한 전수교육관과 타 지역에 위치한 전수교육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하고 공예기술 분야의 전수교육의 경우 ‘전수 교육의 활성화’, ‘사회 교육의 활성화’, ‘시설물 관리 활성화’, ‘재정확보 방안 수립’ 등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특히, 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중요무형문화재공예작품 유통센터(가칭)’를 건립하여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행은, 전수교육관 시설물 관리에서부터 보수, 기능 전수자 공예품의 마케팅과 상품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의 기법과 기록 방법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간이라는 시설과 환경, 전수교육관 운영 프로그램, 공예품의 마케팅과 상품화 전략, 그리고 나아가 무형문화재 기능인의 기록을 남기는 일…. 무형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유형의 전통공예품을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갑론을박(甲論乙駁)하기도 했다.
▲ 우리는 욕망의 집어등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한다. ‘돈’에 명멸되어 있는 현대인은 ‘상징’보다는 ‘교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마저 사용가치화해야 하는 우리 모두는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선에서 서성거린다.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
현대철학자 보드리야르2)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사용가치(use value)’, ‘교환가치(exchange value)’, ‘기호가치(sign value)’, ‘상징가치(symbol value)’를 가지며,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상품’, ‘기호’, ‘상징’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3)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를 예로 보자. ‘도구’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다이아몬드는 가장 견고한 광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할 수 있고 이때 다이아몬드는 ‘사용가치’를 가진다. ‘상품’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물품과 교환할 수 있는 ‘교환가치’를 가지고, 기호의 가치로 바라보면 다이몬드는 가난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부자들의 신분 표시로 사용될 수 있다. 즉 ‘나’는 상류계층에 속하고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결혼 예물로 주어질 때는 ‘사랑’을 의미하는 ‘상징가치'를 가진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사물의 가치 중에서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다. 어떤 사물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질 때, 조금 더 양보해서 기호 가치를 가질 때 그 사물은 현대사회에서 유용성을 획득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장이 만들어내는 전통공예품은 어떨까. 오래전 분명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유용성이 사라졌다. 만약 전통공예품이 과거처럼 실생활 속에 쓰이고(사용가치), 다이아몬드처럼 다른 사물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용이나 교환이라는 유용성을 잃어버린 전통공예품의 가치는 최종호 교수의 브리핑처럼 역사·학술·예술·경관적 가치이며,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전통미와 생활 문화를 함축하는 상징가치다.
①, ②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장송모 자기장. 이제 그의 나이는 여든 둘이다.
③, ④ 손때 묻은 장송모 자기장의 책상
⑤ 문 틈으로 보이는 빙렬자기
⑥ 일행이 장승모 자기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자기장4) 장승모(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
강원도 횡성에서 도자전수교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장승모 자기장(강원도 무형문화재 제6호 기능보유자)은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상징가치를 획득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가 만든 자기는 여러 차례 국빈(國賓) 선물용으로 사용되었고, 중국 북경의 청화대학 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smithonian) 자연사 박물관, 일본 북해도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니 이때 그의 공예품은 사용·교환·기호의 가치가 아니라 상징의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가치의 중심에는 장승모 자기장이 평생을 걸쳐 재현해낸 전통 균열자기(均裂瓷器)가 있다. 표면에 잔잔하게 금이 간 ‘균열자기’는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존재했지만 현대에 와서 사라져버린 우리의 전통자기 중의 하나다. 도자를 만드는 태토(도자를 만드는 재료인 흙)는 네 가지의 흙이 사용되고 유약은 10여 가지의 돌가루가 사용된다. 이를 비율에 맞게 잘 섞어야 균열자기를 얻을 수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기술이 바로 도자공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이 균열을 재현하기 위하여 도자공 장송모는 강진과 양구 등 방방곡곡 흙을 찾아 다녔고 옛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들을 뒤졌다. 그 덕분에 전통 자기를 만드는 전통기법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의 도자 역사 등 관련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다.
① 장송모 자기장과 그의 빙렬백자. 조선시대 사금파리에 그려졌던 초충도가 그려져 있다.
②~⑤ 전수교육관 내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장송모 자기장의 작품.
그는 전수교육관을 찾는 방문객에게 우리나라 도자의 역사는 물론 일본의 도자 역사와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하며 ‘일본이 현대 도자의 메카로 알려졌지만 전통 도자는 우리나라가 최고’며 ‘일본 전역을 다 돌아보아도 청자처럼 깨끗하고 백자처럼 소박한 자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또, ‘여주·이천이 중심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강원도가 원류라는 사실도 잊지 말라’며 지역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약 48년 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연하게 물레질을 시작했다는 장송모 자기장은 82세. 일제강압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모진 역사를 겪은 그가 그 긴 세월동안 부등켜 안은 것이 자기였다.
그는 자신이 재현한 균열자기에 ‘빙렬백자(氷裂白磁)’라 이름 붙였다. 이 빙렬백자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했던 도자를 만들던 것처럼 강원도의 백토(白土)와 자목(柴木)을 사용해 무광택에 비취색과 회색, 그리고 흰색의 중간색을 띠고 있다. 도자공 장송모는 백토를 찾다가 발견한 조선시대의 사금파리에서 발견했던 초충도(草蟲圖) 문양을 그려 넣었다. 은은하고 청아(淸雅)한 분위기의 백자와 단아한 그의 초충도는 궁합이 잘 맞다.
▲ 전통 자기의 재현을 위하여 도자공 장송모는 강진과 양구 등 방방곡곡 흙을 찾아 다녔고 옛 가마터를 다니며 사금파리들을 모았다.
그의 도자를 놓고 그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가치나 사용가치, 그리고 고상한 미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기호 가치’로만 인식한다면, 우리의 문화정체성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전통공예품이 ‘도구’, ‘상품’, ‘기호’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 이른바 ‘돈’이 되면 좋겠다는 시선도 있겠지만 상징가치가 없는 상품화는 위험하다. 전통공예품이 ‘도구’, ‘상품’, ‘기호’라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강조되다 보면 그 동안 지켜온 전통성과 작품성, 그리고 예술성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사용·교환·기호, 그리고 상징의 경계에서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용’과 ‘교환’, ‘기호’이라는 경제적 가치만을 갖는 것일까? 이것은 보드리야르, 피에르 부르디외 등 현대 프랑스 철학가와 사회학자들이 관심 있게 다루어온 화두(話頭)였다. 사실 ‘나’를 비롯한 우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은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에 울고 웃는 현대인이 ‘상징’보다는 ‘교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의 고유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고유성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이다. 교환가치로 인식하는 차와 집은 교환할 수 있지만, 이동수단이라는 차의 고유성과 거주지라는 집의 고유성만을 놓고 보면 교환할 수 없는 것이다.
고유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5) 소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공예품 또한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생활 문화의 미적인 함축이라는 그 고유성 위에 ‘사용’과 ‘교환’, ‘기호’라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지, 상품 가치를 위해 고유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용’과 ‘교환’ 가치가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치를 높이는 방법, 나아가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의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좋은 대표적인 방법이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도구’, ‘상품’, ‘기호’라는 상품가치로 유형의 공예품에 전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에 시선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아무리 많이 유통된다고 하더라도 전통공예품의 전통성·예술성·작품성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 숙소에서 만난 꽃양귀비. 고유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는 교환할 수 없는 것, 교환을 위한 등가물을 갖지 않는 소중한 것이다.
장송모 도자공이 운영하고 있는 횡성전통도자 전수교육관은 체험 프로그램의 활성화와 투어(tour) 등의 프로그램이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실습실, 강의장이 갖추어져 있고 숙식이 가능한 생활관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건이 좋은 편이다. 여기에 장송모 자기장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약 12,800명(약 320회)이 다녀갔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얻어내는 이익이 전체 운영 경비의 약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수익을 높여 전수교육관 운영경비로 사용한다면 전통공예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더라도 자립적인 전수관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①~④ 건조실. 물레질을 마친 자기들이 잘 말라가고 있다.
⑤~⑥ 전통가마. 그 옆에 땔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①, ② 전수관내 실습실. 전수관을 방문하는 체험 프로그램 잠가자들이 물레를 돌라며 자기를 만들 수 있다.
③~⑥ 체험 프로그램들이 만든 작품. 마르고 나면 가마에 넣어 자기를 완성하고 잘 포장하여 체험자들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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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화재청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컨설팅> 일환으로 무형문화제 전수교육관을 둘러보고 쓴 탐방기입니다.
미주 -----------------
1) 나전장(螺鈿匠) :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붙여 장식하는 기능인을 말한다. 원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맡은 칠장이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옻칠의 사용이 점차 적어지자 칠장의 존재는 나전장 기능 속에 흡수되었다.
2)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 7. 27일~2007. 3. 6)는 대중과 대중문화 그리고 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의 이론은 특히 미국의 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0년 프랑스 남부 딩겐에서 태어났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하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1958년 알제리 전쟁에 징집되었으며, 전후에는 알지에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였다. 그 후 파리 대학에서 레이몽 아롱의 조교 생활, 릴 대학에서의 강사를 거쳐, 1964년 30대 전반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교수이자 연구주임으로 취임했으며, 교육문화사회센터(1969년에 유럽사회학센터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름)를 창설하여 소장 연구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추진했다. 1975년 학술 연구 잡지인 <사회과학연구학보>를 창간,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예술, 문학, 민족, 언어, 취향, 스포츠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1981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강좌교수에 임명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알제리의 사회학(Sociologie de Algjerie)>(1961), <상속자들(Les Heritiers)>(1964), <중간예술(Un art moyen)>(1965), <예술 애호(L'amour de l'art)>(1966), <재생산(La Reproduction)>(1970),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구별 짓기(La Distinction)>(1979), <실천 감각(Le sens pratique)>(1980),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Questions de sociologie)>, <말하기의 의미(Ce que parler veut dire)>(1982), <국가 귀족(La Noblesse d'Etat)>(1989), <자유교환(Libre-Echange)> (1994), <실천이성(Raisons pratiques)>(1994) 등이 있으며, 이 외에 수많은 논문들이 있다.
3)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4) 자기장(瓷器匠) : 자기를 만드는 기능인을 말한다. 자기는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인 도자기(陶瓷器, Porcelain)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1,300℃ 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것을 도기(陶器 earthernware/pottery)라고 하며 1,300∼1,500℃에서 구운 것을 자기(磁器, porcelain)라고 한다.
5)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