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on EOD5D / Tamron 17-35mm / 양평 걸리버 파크 / Photo by 이우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성서, 누가복음 10장)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절-33절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던 행인이 강도를 만나 옷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었다. 강도들은 거의 다 죽게 된 그 사람을 버려두고 갔고, 마침 지나가던 제사장도 그를 발견하고는 그냥 피해 갔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의 상처를 싸매주고 자기의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봐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특별한 부담이 없는데도,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다. 프랑스 형법에는 ‘위험에 처해 있는 자를 구조해 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구조치 않는 자는 처벌한다’라는 규정이 있는데, 이러한 법규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대표적이 사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행위를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로 처벌한다.
프랑스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5년 이하의 구금 및 50만 프랑의 벌금에 처한다(신형법 223-6조 2항). 폴란드에서는 본인 또는 본인과 가까운 사람들을 노출시키지 않고 구조할 수 있는데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에 처한다(247조). 이밖에 독일·포르투갈·스위스·네덜란드·이탈리아·노르웨이·덴마크·벨기에·러시아·루마니아·헝가리·중국도 구조거부행위를 처벌한다.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을 충분히 구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해 주지 않으면 처벌된다. 노인이나 영아, 직계존속, 질병 등의 사유로 부조(扶助)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호할 법률상·계약상 의무가 있는 자가 그들을 유기한 때에는 유기죄로 처벌받는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도덕적인 위반 사항을 도덕적·사회적 비난에 맡기지 않고 법률상의 강제처벌과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본분을 저버린 자에 대해 도덕적으로만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현대사회가 점차 냉혹하며 흉포해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도덕이 무력할 때 법의 강제를 통해 비인간화된 사회와 규범에 대하여 새로운 도덕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을 타율적으로라도 갖게 하려는 것에서 제정되었지만,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자율적으로 결정할 도덕적 영역을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시민들의 생활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고, 칼 야스퍼스는“도덕을 법제화하면 억압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덕'에 속해야 할 것을 법에 맡기는 것이 일이 과연 타당하며 바람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