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EOS D60 | Tamron 17-35mm | 경북 구미 동락공원 | Photo by 이우
미디어(media)란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매개물을 의미하는 것이고, 매스(mass)란 말은 하나의 덩어리로 지각되는 물체나 인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매스(mass)를 '대중(大衆)'이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우리말 대중이라는 말은 피플(people)과 매스(mass)의 2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플(people)로서의 대중이 적극적·합리적인 집합체라면, 매스(mass)로서의 대중은 피플(people)에 비하여 수동적·비합리적인 집합체입니다.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 1841~1931, 프랑스의 심리학자·사상가)’은 ‘대중은 비합리성·망동성(妄動性)·경신성(輕信性)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면서 심지어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대중을 매스(mass)라고 합니다. 즉, 매스(mass)로서의 대중은 합리적이지 않고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media)를 두고 피플 미디어(people-media)라고 하지 않고 매스 미디어(mass-media)라고 하는 것은 이 매체들이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피플(People)이 대상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비합리적인 매스(mass)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했을 때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두고 '바보 상자'라고 부른 것은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닙니다. 텔레비전 앞에서 사람들이 수동적·비합리적인 '바보' 가 되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었지요.
특히 매스미디어는 언어, 회화, 사진, 음악 등 인간의 감각과 지각에 영향을 주는 모든 표현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매스에게 어떤 사실이나 사상 등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매스미디어가 특정 사상이나 정신, 질서 체계를 노출하게 되면 매스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특정 사상이나 정신, 질서 체계를 주입받게 됩니다. 만약, 영화가 흥행과 상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 관객들이 원하는 재미와 즐거움, 감동이라는 오락성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면 관객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피할 수밖에 없고 현재 질서체계, 즉 동일성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수동적·비합리적인 매스는 미디어의 영향을 받고 현 사회 질서, 동일성에 복종하는 대중이 됩니다. 매스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종하는 대중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대사회학이나 현대철학에서는 대중(大衆)은 일시적·부분적·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한 사회가 계획적·지속적(持續的)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매스미디어의 이런 속성은 곧잘 정치적으로 이용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때 우리 사회에 회자되었던 ‘3S 정책’이었습니다. ‘3S 정책’이란 대중을 우매하기 만들기 위하여 스크린(Screen, 영화), 섹스(Sex) 그리고 스포츠(Sports)를 교묘하고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정책을 의미합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정부는 스크린, 섹스 그리고 스포츠를 교묘하고도 체계적으로 운영하여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대중을 우민화시켰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런 정책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파극’도 여기에 속합니다. 감동 있고, 재미있고, 거기에다가 인기도 좋았던 ‘신파’는 식민지인의 울분을 눈물로 대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비합리적이고 망동적인 대중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복종적인 대중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매스미디어를 재미있고 즐거워야 하는 오락 기능으로만 대하는 순간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상업성에 포획된 매스미디어는 재미있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매스미디어는 다시 매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순환구조가 생겨납니다. 그러는 사이에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세계의 빈곤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이 영화에 담긴 영국-미국-독일-일본으로 이어지는 이 축의 궤적을 용인하게 됩니다. 이를 경계해서 미학자 ‘자네트 월프’는 <미학과 예술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예술 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할 때 인식과 의지에 기초’하지만 ‘윤리나 정치 같은 인식과 의지의 문제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윤리나 정치 판단에 자신도 모르게 개입하게 된다’며 '아름다운 것은 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와 예술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문자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인식과 의지에 기초한다. 즉 지식과 윤리, 정치 등이 예술작품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일정한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사실과 윤리나 정치 같은 인식과 의지의 문제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그것들을 무시함으로써 윤리나 정치 판단에 개입하게 된다. 아름답기 때문에 옳고 맞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 자네트 월프 (<<미학과 예술사회학>>(이론과실천. 1988년·1997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