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on EOS 5D / Tamron 17-35mm / 남이섬 / Photo by 이우
… 영어의 person, 프랑스어의 personne, 독일어의 person. ‘사람’을 뜻하는 이 말들은 형태에서 보듯이 같은 어원을 가진다. 모두 페르소나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페르소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참모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략) 페르소나는 원래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이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연극의 등장인물과 성격가지 아우르게 되었고 나중에는 인격이나 사람까지 뜻하게 되었다. (중략)
가면이라는 뜻에서 나왔으니 페르소나는 자칫 가짜 인격을 말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페르소나는 남에게 내보이기 위한 자신의 면모이므로 주로 직업이나 신분, 사회적 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라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을 테고, 경호업체의 직원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보험설계사도 식구들에게 짜증을 내고, 경호원도 자기 어머니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린다. (중략)
융은 페르소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 역할을 부여한다. 융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허위적인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중략) 그러나 페르소나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면 하이드가 될 수 있다. 군대의 장교에게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지만 그렇다고 그 페르소나를 가정이나 사회까지 끌고 갈 경우에는 ‘왕따’가 되거나 ‘마초’로 보이기 쉽다. 페르소나와 자아가 완전히 동일시되면 나머지 인격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아의 숨겨진 측면--융은 이것을 ‘그림자’라고 부른다--이 되어 자아가 발전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남에게 내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게 정상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고 억지로 규정하기보다 양자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
-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들녘,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