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on EOS 5D / Tokina 80-200mm / 서울 남대문로 / Photo by 이우
… 나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呼名, interpellation)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중략) 우리는 경찰의 일상적인 호명과 같은 유형 속에서 그것을 표상할 수 있다. “헤이, 거기 당신!” 이렇게 호명된다면 호명된 개체는 뒤돌아볼 것이다. 이 단순한 180도 물리적 선회에 의하여 그는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호명이 바로 ‘그’에게 행해졌으며, ‘호명된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
( 알 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중에서 )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는 벌거벗은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부를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김이라는 성을 쓰는 가정의 한 성원, 남자, 한국인, 노동자 계층이라는 사회구조 속에 던져지는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에 익숙해 있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이제 하나 둘씩 순차적으로 정해진 내용들을 가지고 그를 부르기 시작한다. “얘야”라고 부르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대답하는 순간, 구체적 개인은 점차 특정한 주체로 구성되기 시작한다. 결국 호명이란 행위를 통해서 사회 구조의 어떤 한 가지 배역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렇게 주체로 호명된 뒤, 구체적인 개인이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에 이데올로기가 표상 체계로 작동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호명된 어떤 주체 형식이 구체적인 개인에게 삶의 행복을 가능하게 해주는가의 문제이다. 사실 알튀세르는 주체가 설정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먼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논의에 따르면 애당초 인간에게 온전한 ‘나의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알튀세르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말년에 알튀세르는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라는 제목을 단 창문의 논문을 통해서 스피노자(Spinoza)적이면서도 니체(Nietzsce)적인, 그리고 에피쿠로스(Epicurus)적인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코나투스(conatus)1)를 타고난,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유지하려는 ‘힘에의 의지’ 2) , 그리고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앞을 비워두려는 힘과 의지를 타고난 개인들이 서로 마주치면서 새로운 의미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클리나멘, clinamen)3). 자신이 속한 구조가 슬픔을 준다면 인간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라도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는 온전한 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존의 의미 체계와는 다른 의미 체계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과거의 의미 체계에 의해 규정된 주체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주체 형식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수수한 결단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친 타자의 타자성이다. 기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주체는 의미를 새롭게 생산할 수 있다.
각주)-----------------
1) 코나투스(conatus) : 스피노자의 개념. 모든 사물들의 현질적인 본질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힘. 자신의 코나투스를 확인하려면 개체는 타자와 마주쳐야 한다. 어떤 타자와 마주쳤을 때 기쁘면 개체의 코나투스가 증가하고, 슬프면 코나투스가 감소된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고정된 힘이 아니라 증가하고 감소하는 역동적인 힘이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가 정신에 관계될 때에는 ‘의지’,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될 때는 ‘충동’이라 생각했다.
2 ) 힘에의 의지 : 스피노자의 정신이 니체에게로 이어져 나온 개념. 니체에게 있어 자신의 힘을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 체계를 생산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이 ‘힘에의 의지’이다.
3) 클리나멘(clinamen) : 에피쿠로스의 우발성 철학에서 나온 개념. ‘최대 한도로 작은 편차, 혹은 기울어짐을 의미한다. 에피쿠로스학파에 따르면 세계가 탄생하기 전에 원자들은 비처럼 평행으로 내리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무수한 원자들 중의 하나가 평행궤도에서 벗어나 옆에서 운동하던 원자와 마주치고, 이렇게 마주친 원자가 옆의 다른 원자와 연쇄적으로 마주치면서 세계가 탄생했다. 원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았다면, 세계는 탄생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