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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소비의 사회 : 대중예술과 팝아트

by 이우 posted Apr 09, 2017 Views 1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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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본 바와 같이, 소비의 논리는 기호의 조작으로 정의된다. 창조의 상징 가치도, 상징적인 내면적 연관도 그곳에는 없다. 소비의 논리 전체가 외면성에 존재한다. 사물은 객관적 목적성과 기능을 상실하고 여러 가지 사물의 좀더 폭넒은 조합의 한 항목이 된다. 이 조합 속에서 사물의 가치는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게다가 사물은 상징적 의미와 수천 년간 지속된 의인화된 지위를 잃고 여러 가지 파생적 의미작용의 언설(言說) 속에서 남김없이 고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파생적 의미작용도 역시 서로 관계있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즉 그것들이 생겨난 모든 의미작용을 통합할 수 있는 문화 체계의 틀 속에서 남김없이 고찰된다. (...) 사물에 관한 언설에는 일상과는 다른 언설이 존재한다. 그것은 예술의 언설이다. (...)


  팝아트는 우리가 말하는 기호와 소비의 논리에 근거한 현대예술의 한 형식인가 아니면 단순히 유행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것 자체가 순수한 소비대상인가? 이 두 개의 의문은 모순되지 않는다. 팝아트는 그 자체가 순수하고 단순한 사물이 되어버림으로써 사물의 세계를 다른 상태로 바꾼다는 것은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 역시 그런 양면성을 갖고 있다. (...) 팝 이전의 모든 예술은 '심층적인 세계상'이라는 것에 근거한 데 반해, 팝은 기호의 내재적 질서에 동의하려고 한다. 즉, 기호의 산업적 대량생산, 환경 전체의 인위적 · 인공적 성격, 사물의 새로운 질서의 팽창해버린 포화상태, 아울러 그 교양화된 추상작용에 동화하려 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팝은 아메리카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물의 소재(성조기에의 집착도 포함해서)에서든, 실용적이고 낙천적이며 경험주의적인 행동에서든, 자타가 '인정하는' 몇몇 문학예술 옹호자와 수집가들의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이 명백한 아메리카 심취에서든 이 말을 보증하고 있는데, 이로한 논의는 일면적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해 보자. 가령 팝이 완전히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해도 팝아티스트들은 자기 자신의 논리에 따라서 이 예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만드는 사물이 "미국 영어를 말해도" 그 사물들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이 신화 이외에는 다른 진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은 이 신화적 언설을 완성시키고 자지 자신도 그곳에 편입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 팝아티스트들은 실제로 눈에 비친 그대로 사물을 그린다. 왜냐하면 사물은 '공장의 조랍라인에서 막 나온 기성(旣成)의 기호로서, 신화적으로 기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사무드이 전달하는 대문자에 의한 약자(signes), 마크, 선전문구를 선호하면서 그리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것밖에 그리지 못한다. 그것은 노이도 리얼리즘도 아니며 소비사회의 명백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 즉 사물과 제품의 진짜 모습은 그것들의 마크라는 것이다. (...)


  팝의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혼란 속에 빠져 있는데, 눈에 보인 사물들의 단순한 나열(소비사회의 인상파와 같은 것이다)로 이루어진 일종의 행동주의에, 자아와 초자아를 벗기고 주변 세계의 무의식을 재발견하려는 선(禪) 및 불교의 몽롱한 신비주의가 부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기묘한 혼합물도 역시 아메리카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데올로기에는 중대한 애매함과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주위 세계를 있는 대로 보게 하지 않고, 즉 조작 가능한 기호의 인위적인 무대, 감각 및 시각 대신에 시차적 지각 및 의미작용의 전술적 조합이 작용하는 전적으로 문화적 인공물로 보게 하지 않고, 계시된 자연과 본질로 보게 함으로써 팝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함의를 갖기 때문이다.


  첫째, 팝은 통합된 완전한 사회의 이데올로기(현재의 사회=자연=이상사회)이다. 둘째로, 팝은 예술의 신성한 과정을 완전히 재생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팝의 기본적 목표는 사라져 버린다. 팝은 평범함의 예술이고자 한다. 평범함이 숭고함이라는 범주의 현대판인 하나의 형이상학적 범주가 아니라면, 그 평범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물은 사용되고 무엇에 쓰일 때에만 평범한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갖게 되면 곧바로 평범하지 않게 된다. (...)


  가장 급진적인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Andy Wahol)도 역시 작품 제자상의 이론적 모순과 작품이 그 진짜 대상을 예상하는데 따르는 여러 곤란이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캔버스는 이 의자나 저 포스터와 똑같이 완전히 일상적인 사물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고 있다. "현실은 매개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현실을 환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 위에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우리의 문제 모두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의자(또는 햄버거, 자동차의 흙받이, 핀업의 얼굴)의 일상성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 의자가 놓여 있는 상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특히 비슷한 또는 약간만 다른 모든 의자를 차례대로 늘어놓는 계열적 맥락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성이라는 것은 반복 속에서의 차이다. 의자를 이 상황에서 떼어 놓고 캔버스 위에 그릴 때, 의자의 모든 일상성이 박탈되고 동시에 캔버스도 일상적인 사물로서의 일체의 성격을 잃는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태는 잘 알려져 있다. 예술은 일상적인 것 속에 매몰(캔버스=의자)되어서는 안되며, 일상적인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서 파악(캔버스상의 의자=실제 의자)해서도 안된다. 내재성과 초월성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하다. (...)


  간단히 말하면 일상성의 본질도 평점함의 본질도 존재하지 않는 일상, 일상성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비주의적인 아포리아(aporie)이다. 워홀(그리고 그밖의 사람들)이 이 예술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것은 예술 및 예술창조의 정의 그 자체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제작 행위의 수준에서도 똑같은 신비주의적 향수가 보인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앤디 워홀은 말하는데, 그는 실제로 스텐실, 실크스크린 등을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그런데 예술에서 기계적이라는 것을 자부하는 것만큼 나쁜 오만은 없으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창조자의 지위를 누리는 자에게서 대량생산의 기계적인 동작에 몸을 맡기는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태도는 없다. (...)


  그들의 일관된 요구는 예술의 사회학적 · 문화적 정의라는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문제를 앞에 놓고 그들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무력함이야말로 그들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다. 팝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활동으로부터 성스러움을 추방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회는 그들을 신성화한다. 예술의 주제와 제작 활동에서 성스러움을 추방하려는 그의 시도는 제아무리 과격한 시도라고 해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예술의 예찬과 현시(顯示)에 이른다. 회화가 성스러운 초기호(超記號, super signe : 서명이 들어간 하나밖에 없는 사물, 고귀하고 주술적인 거래의 대상)가 되지 않으려면 작품의 내용과 작자의 의도만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다. 그러한 사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문화창조의 구조 그 자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다른 모든 산업의 경우와 같이 회화시장의 합리화만이 회화를 세속화하고 일상적인 사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그렇게 되면,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든가, 예술창조라는 옛날부터 꾸며낸 이야기의 단계로까지 후퇴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계속 그림을 그리든가 그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 (...)


  팝은 현실적인 것을 가지지 않고 의미작용의 수준만을 가지고 있다. 팝에는 실제적인 공간이 없다. 캔버스의 공간, 상이한 기호로서의 요소들의 나열 및 그것들의 상호관계로 만들어진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시간은 독해의 시간이며, 그것은 사물 및 그 이미지를 어떤 이미지 및 그것이 반복된 이미지와 구별하는 지각의 시간, 이미지에 맞추어서 또 현실의 사물과 그 작위적 인공물의 관계에 맞추어서 정신을 교정하고 순응시키는 작업에 필요한 시간이다. (...)


  팝이 특히 팝적인 시도로서 행하는 활동은 우리의 '미적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팝은 '차가운(cool)' 예술이다. 미적 도취, 감정적 또는 상징적 합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구상적 관련, 도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호기심에는 어린 아이의 호기심이나 발견의 소박한 기쁨 같은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팝을 소비사회의 에피날(Epinal, 에피날은 프랑스 동북부에 위치하는 보주 지방의 중심지로 19세기초부터 민중 판화 제작으로 유명함) 판화집이나 기도서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팝이라고 하는 판화집은 앞에서 서술한 코드해설 등의 지적 반사기능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팝아트는 대중예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중문화의 에토스는 바로 애매하지 않은 리얼리즘 및 직선적인 서술(반복 수준의 굴절이 아니라), 비유와 장식성, 그리고 도덕적 변화와 결부되어 있는 정서적 합일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팝아트가 구상(具象) 예술로 오해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소비사회의 유색판화집 및 소박한 연대기 등의 완전히 유치한 수준에서다. (...)


   - <소비의 사회>(장 보드리야르 · 문예출판사 | 1992년 · 원제 : La societe de consommation, 1970년) p.18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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