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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의미(意味)란 무엇인가

by 이우 posted Sep 09, 2013 Views 12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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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나 기호를 인식하는 가장 큰 오해가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인 지시체(referent, 실제 강아지)와 기호나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송아지라는 의미) 간에 상호 상응하거나 일치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언어학자인 소쉬르 언어학이 밝혀낸 것은 기호와 지시체 간에는 어떠한 유사관계나 일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소쉬르는 기호와 지시체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말한다.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와 기의(시니피에, signifie)로 나눈다. 기표는 ‘표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며, 기의는 ‘표시되는 것’이란 뜻이다. 기표와 기의가 자의적이라는 말은 예를 들어 내가 ‘연필’이라고 말할 때 이 기표는 물리적인 물체인 ‘연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물건을 가리키기 위하여 ‘지우개’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 약속을 정해 ‘지우개’라고 부르기로 하면 된다. 기호가 자의적이라면 어떤 것을 가리키기 위해 어떤 말과 글을 사용해도 상관이 없어야 한다. 정말 그럴까?

 

 

 

아르놀피니의 약혼_반아이크.jpg

 

 

 

  이 그림은 반 아이크(Jan van Eyck)의 < (The betro of Arnolfini)>에 등장하는 강아지다. 기묘한 표정의 상인 아르놀피니와 이미 배가 남산만큼 부른 약혼자의 발 밑에서 얼쩡대는 것을 끌어 왔다. 그런데 아직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두 가지 평범한 제목을 생각 중이다. 하나는 <강아지>. 다른 하나는 <개새끼>. 이 두 기호는 동일한 지시체를 갖는다. 둘 다 작은 개를 뜻한다. 그러나 같은 지시체를 갖는 이 두 기호는 너무도 다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하지 못해서 섞어 썼다가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기호는 자의적이기에 어떤 걸로 써도 별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기호를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자의적이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이미 사회적으로 부여된 의미 때문일까? 동일한 지시체를 갖는 두 기호가 이렇게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1)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 활동은 랑그(langue, 언어)와 파롤(parole, 화언, 혹은 발화)로 나누어진다. 파롤은 “나는 밥을 먹었다”라고 말할 때 내 성대를 울려서 나오는 물리적인 파장을 말한다. 나는 분명 다른 사람과는 다른 음색과 음량, 음파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말을 알아 듣는다. 그것은 이 말이 누가 어떤 목소리로 동일한 규칙에 따라 동일한 순서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이 규칙 전체가 랑그다. 예를 들어 500명의 학생들에게 이 말을 해보라고 하면 저마다 다른 500개의 파롤이 행해지지만 그 모두는 오직 하나의 랑그만 갖는 것이다.

 

  그런데 규칙이란 것은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따를 때 성립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규칙을 만든다는 것은 규칙이 없는 것과 같고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랑그는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언어 활동이란 사회적 규범이며 하나의 사회적 제도라는 말과 같다.2) 이 말은 곧 책을 읽는 것은 랑그를 읽는 것, 즉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읽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며 만약 다른 사회적 규범과 제도 속에 있다면 같은 언어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언어학에 따르면, 기호의 의미는 기호사용 규칙과 다른 기호의 의미를 알아야 정해진다. 약속된 기호의 체계를 모르면 기호의 의미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사용할 수도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최초로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mother’이란 단어를 알려고 해도 그게 무슨 말인지 다른 조선인이 가르쳐줄 수 없고, 그의 친구인 영국인도 ‘mother’에 해당하는 조선어를 모르니 가르쳐 주지 못 한다. 사전을 찾으니 ‘mother’은 ‘a female parent of a child or animal’이라고 나온다. ‘mother’보다 더 난감한 기호들이 죽 이어져 나오니 이 사람은 이걸 또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구조주의자 언어학에 따르면 결국 언어규칙과 다른 단어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지 않다면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그것을 배워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때 실증주의 언어학자들은 ‘mother’이란 말을 가리키면서 말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지시적 정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의 어머니를 가리키면서 ‘mother’이라고 말했을 때 이 조선인은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혹시 ‘여자’ 혹은 ‘나이든 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어머니’라고 알아들었다고 하자. 그러나 ‘now’나 ‘when’, ‘general’이란 말은 어떨까? 이 역시 ‘지시적 정의’를 사용하여 알려줄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가 사물의 이름이라는 것부터 부정한다. 사실 언어는 ‘그리고’나 ‘언제’처럼 이름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의 용법(use)이라고 한다. 즉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mother’, ‘now’, ‘when’, ‘general’ 등 모든 단어들은 영국인이 사용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고 그걸 어떤 경우에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배움으로써 그 단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구조언어학과 실중주의 언어학의 간극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리는 전혀 새로운 견해이다.

 

  예를 들어 여기 ‘water’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만약 어린아이에게 물병을 가리키면서 “water”이라고 했다면 ‘이건 물이야’라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고, 이 단어를 배운 꼬마가 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water”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물 줘’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반면 홍수가 나서 지붕 위에 피신했던 사람이 “water”d라고 소리치면 그건 아마 ‘물이 여기까지 왔다. 이젠 죽었구나’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차이는 동일한 단어가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3)

 

  이것은 언어의 의미가 구조언어학에서 말하는 랑그처럼 완결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실천적인 맥락에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규칙이 불변적인 것으로 있고 그것이 언제나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 자체가 가변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실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 규칙과 술집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 규칙, 어린이와 놀면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 규칙이 달라지고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일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고대 노예제에서 이 말은 노예가 채찍과 족쇄, 제도 등에 의해 강제로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주와 계약을 맺고 그 계약에 따라 자의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기존의 이와 같은 의미론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사유했다.4) 하나는 ‘지시 작용’에 기반하는 이론으로서 이는 실증주의 철학에 입각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 기호의 의미란 그것의 지시 대상이며 기호는 세계로부터 일정한 대상을 개별화해 지시하는 존재이다. 다른 하나는 ‘현시 작용’에 기반하는 이론으로서 이는 현상학에 입각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의미란 기본적으로 주체 또는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란 주체의 신념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존재이다. 마지막 세 번째의 의미론은 ‘기호 작용’에 기반한 이론으로서 이는 구조주의 철학에 입각한 의미론이다. 이에 따르면 의미란 기호들 사이의 차이들에 의해서 형성되며 기호들이란 한 체계의 요소들을 형성한다.

 

  들뢰즈는 사건이란 지시될 수 없다고 본다. 붉음과 푸름은 지시될 수 있지만 붉음에서 푸름으로 되는 생성 자체는 지시될 수 없다. 지시란 지시 대상의 일정한 개별화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또 들뢰즈는 의미란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의미란 존재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며, 주체의 구성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들뢰즈는 의미란 기호 작용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사건이란 존재 세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기호 체계 바깥의 그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이 세 가지 의미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건으로서의 의미라는 그의 의미론을 가지고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긍정하고자 한다.

 

  들뢰즈는 의미를 사건과 동일시하며, 사건이 발생할 때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들뢰즈는 이런 입장에서 전통적인 의미론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동시에 자신의 의미론으로 기존 의미론을 새롭게 정초하려고 한다. 플라톤에게 사건이란 순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비실재적인 것이다. 사건이란 비실재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비실재적인 것, 즉 ‘환각(phantasma)’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뮬라크르’라는 말이 사용된다. 플라톤에게 사건이란 이해 불가능한 것이며, 형상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스토아학파에게 사건이란 물체의 표면 효과이며 ‘말로 표현되는 것(lekton)’이다. 축구 선수가 공을 넣는 순간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 사건은 다음날 아침 스포츠 신문에 언어화되어 실리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스토아학파의 사건의 개념을 받아들여 사건을 자연과 문화의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철수의 입에선 나오는 소리는 물체적 차원에서는 일종의 음파이지만, 그 음파는 문화라는 장(場)을 향해 퍼져나가는 순간 하나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건이란 물체의 표면이자 문화의 밑바닥, 즉 자연과 문화의 경계면 상에서 발생한다. 들뢰즈가 ‘형이상적 표면’이라고 부르는 이 경계면이 모든 문화의 선험적 조건을 형성한다. 사뮬라크르-사건은 이 표면에서 솟아오른다.

 

  들뢰즈는 바로 이 시뮬라크르, 사건, 의미를 사유하고자 했다. 즉 영원한 것을 찾으려는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서구의 사유가 사유의 변방으로 밀쳐 놓은 시뮬라크르를 사유하고자 한다. 시뮬라크르들은 순간적이다. 나플레옹이 왕이 된 것은 그의 머리에 왕관이 얹히는 순간이고, 한 사람의 야구 선수가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는 그가 친 공이 펜스를 넘기느냐 못 넘기고 잡히느냐에 달렸다. 우리의 삶은 시뮬라크르들로 구성되며, 이 시뮬라크르들이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준다. 서구 사유는 이 시뮬라크르들을 형상의 빈대편에 위치시켜 저 먼 지하로 추방했으나 현대 사유는 시뮬라크르의 복권을 꿈꾼다.

 

  들뢰즈는 의미를 ‘명제 안에 존속하는 순수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순수 사건이란 잠재적 사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사건이다. 다시 말해, ‘떨어뜨렸다’, ‘떨어뜨릴 것이다’, ‘떨어뜨릴 수 있다’ 등이 아니라 ‘떨어뜨리다’라는 부정법으로 표현되는 사건이다. 이 순수 사건이 현실화되면, 그 사건은 명제로 표현된다. 이때 순수 사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명제 안에 존속하게 된다. 들뢰즈는 이 명제 안에 존속하는 순수 사건이 바로 의미라고 본다. 지시 작용, 현시 작용, 기호 작용은 이런 과정 이후의 일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론적인 틀이 있다. 형상 이론, 유기체론, 원자론, 지속 이론 등이 이들이다. 특히 선호하는 존재론적 틀이 있다면, 그것은 곧 ‘계열’의 사유이다. 들뢰즈는 사건이란 계열화됨으로써 의미로 화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사건의 그대로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다. 자동차사고가 났을 때 자동차의 물리적 변화나 사람 세포에서의 변화는 자연적 과정이며 그것 자체만을 추상해 생각했을 때에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이미 존재하는 문화장 내에서 계열화되며, 계욜화되는 순간 의미를 갖게 된다. 물리적 변화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지만, 문화 세계 내에서 계열화됨으로써 의미로 화하는 것이다. 사건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면에서 발생한다.

 

  들뢰즈는 이러한 계열화 중에서 특히 ‘합언(connexion)’, ‘선언(disjonction)’, ‘연언(conjonction)’ 세 가지를 중시한다. 합언은 작은 계열들이 모여 큰 계열을 이루는 경우이고, 선언은 계열들이 발산하는 경우이며, 연언은 수렴하는 경우이다. 합언은 생산과 대응하며, 선언은 배분과, 연언은 소비와 대응한다. 계열들이 모이면 구조를 형성한다. 때문에 들뢰즈에서의 구조란, 레비스트로스에게서처럼 체계적이고 닫힌 구조가 아니라 계열들이 얼기설기 모여 형성하는 열린 구조이다.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그것은 동시에 계열화된다. 즉 일정하게 방향지워진다. 이 방향지어짐을 통해 사건은 의미가 된다.

 

  한 사회, 한 시대에는 그 사회, 시대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일정하게 계열화하는 통념이 존재한다. 거지가 깡통을 발로 차면서 옮길 때, 경찰은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본다. 그러나 그 거지에게 그 행위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행위일 뿐이다. 경찰은 거지에게서 발생하는 사건을 통념에 비추어 계열화하지만 그 사건은 계열화가 아닌 다른 계열화도 잠재적으로 내포한다. 사회의 통념을 우리는 ‘doxa’라고 한다. 이 통념을 거스르는 계열화를 우리는 ‘paradoxa’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존재론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일정한 코드, 즉 일정한 방향과 통념을 벗어나 무의미와 역설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무의미와 역설을 현실화할 수 있는 원초적인 힘을 들뢰즈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밖(외부, 즉 사회나 주체가 구성하는 의식, 실천 등)에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의 의미는 환경·문맥·상황·사용과 실천에 따라 달라지고, 라캉에 따르면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한 채 그 위로 미끄러’져 기표 자체로는 의미에 닿지 못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책을 통해 읽게 되는 모든 텍스트는 책이 외부와 만나서 이루어지는 주름’인 것이다. 이처럼 기호로 구성된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토론 지형은 기표와 기의가 다르지 않다 여기고 텍스트 안에서 의미를 찾아 왔다. 이런 지형 안에서 책을 읽게 되면 책 속에 담긴 의미는 현재가 아니라 지난 과거일 뿐이며, 책에 담긴 의미와 지금의 나의 문제,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는 별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책 읽기는 과거의 문제이며 앞으로도 도래하지 않을 미래일 뿐인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속 텍스트의 의미를 지금 이 순간 현재 시간에 연결해 재해석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현재 나와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내일로 접속하는 일이다. 이미 씌어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체적인 의미를 다양한 의미로, 고착된 의미를 탈주와 유동으로, 규정된 의미를 운동으로 바꾸는 것이다.

 

 

 

 

 

* 주(註) ..................................................................................................

 

 1)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그린비. 2012) 280p.
 2)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정리함.
 3)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그린비. 2012) 297~300p
 4) 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1969)를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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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5

    [미학] 『현대미학 강의』: 보드리야르 '역사의 종언', '예술의 종언'

    (...) 비록 마르크스주의와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지만, 보드리야르의 사유의 바탕에는 아직 정치경제학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령 그의 '시뮬라시옹' 개념은 은은하게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성' 개념을 배음으로 깔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품경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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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3
    Apr 2017
    03:40

    [사회]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 마조히즘 · 사디즘 · 사랑

    (...) 대인간적 융합에 대한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고 인류를, 집단을, 가족을, 사회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이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발광 또는 파괴―자기 파괴 또는 타인 파괴―가 일어난다. 사랑이 없으면 인간성은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39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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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0
    Apr 2017
    19:47

    [사회] 무관심의 절정 : 현실과 이성의 해방 · 무관심

    (...) 장 보드리야르 : (...) 사상이 도전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실험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히려 다른 게임의 법칙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영역을 탐험하려고 애쓰는 사상의 경험입니다. 니힐리즘이 더 이상의 가치도, 현실도, 기호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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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
    Apr 2017
    18:47

    [사회] 무관심의 절정 : '초과 상태의 세계'에서 '글쓰기'와 '존재한다'는 것

    (...) 필리프 프티 : 당신은 매번 글쓰기가 현실의 시간에 대항하는 형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장 보드리야르 : (...)글을 쓴다는 것은 화면과 텍스트, 이미지와 텍스트의 직접적인 분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의 시선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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