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사적인 삶이 어떠한가는 그 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거주는 이제 불가능하다. 우리가 성장한 전통적인 '집'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그러한 '집' 안에 있는 안락함의 자취는 모두 인식에 대한 배반으로, 단란함의 흔적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가족 공동체로 매도된다. 백지 상태로로부터 만들어 놓은 기능적인 현대 주거들은 무식쟁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주거 상자이며, 어쩌다 소비 영역에 흘러들어온, 거주자와는 무관한 공장이다. 이러한 집들은 이제는 독립적인 삶에 대한 동경마저 추방해 버린다. 현대인은 동물처럼 땅바닥 가까이 자기를 원하며,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에 예언적 마조히즘을 담고 있는 독일 잡지를 내놓으며, 침대와 함께 깨어 있음과 꿈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그렇게 밤을 보낸 자들은 항상, 무슨 일을 원해서든, 아무런 저항 없이 출동 준비 상태에 있으며 눈은 반짝거리지만 아무런 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근사하지만 공동구매한 초현대식 주택으로 기어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을 산 채로 미라로 만든다. 호텔이나 가구 딸린 아파트로 이사감으로써 거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드는 것은 이민자의 강제 조건을 처세를 위한 규범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
"집 소유주가 아니라는 점은 나의 행복"이라고 이미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썼는데 오늘날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 도덕이다. 여기에, 개인이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갖게 되는―그가 아직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면―곤혹스러운 관계가 약간이나마 드러난다. 사유재산은 소비재가 잠재적으로 너무나 넘쳐흐르기 때문에 어떤 개인도 소비재를 제한하는 원칙을 고수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 개인에게 속할 수가 없으며,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종속 관계에 빠지지 않으려면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모순을 분명히 자각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소유를 버리자는 명제는 파괴로, 즉 아무런 애정 없이 사물들을 멸시하는 태도로 나아가며 이러한 멸시는 필연적으로 인간들에 대해서도 등을 돌리도록 만든다. 반면 소유를 인정하는 안티테제는 입으로 내뱉는 순간 이미 검은 마음을 가지고 소유를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만다. (...)
- <미니마 모랄리아>(테오도르 아도르노 · 길 · 2005년 · 원제 :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a"digten Leben, 1951년) p.5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