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그의 사랑 이론을 상세히 피력했으나, 애니스와 사랑하며 결합되어 있던 27년 동안 이론을 더욱 한층 발전시켰다. 프롬은 1930년대에 프로이트의 충동 이론과 결별을 선언한 이래 인간의 핵심 문제가 충동적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과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성공에 결정적인 것은 사람이 어떤 식으로 다른 사람들,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뇌 연구와 젖먹이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능동적으로 자신의 환경과 관련되어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프롬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나에게 낯선 힘들(사람들, 관계들)로부터의 내적 독립성이 점점 거 키지게금 이러한 능동적 관련성을 형성하려는 인간 내면의 근본적 경향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관련성을 ‘생산적(productive)'이라고 일컬었다. (...)
프롬은 대다수가 더는 핵전쟁의 위험에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을 느꼈다. 그는 이러한 수동성을 삶에 대한 사랑의 고갈로, 개개의 경우에 많은 자살자들에게도 관찰할 수 있듯이 파괴적이고 생명을 멸하는 역학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는 생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사랑의 능력의 일차적인 경향이 대부분 좌절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독일계 유대인인 프롬은 알고 있었다. 그는 나치스의 파괴적 체제에서 달아났지만 강대국들이 벌이는 핵전쟁에서 도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프롬은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했다. 사랑의 능력의 집단적 상실에 대한 첫 번째 저항 반응은 투서와 정치 팸플릿, 공개 기사 및 연설, 또한 친한 상원의원과 개인적 접촉을 이용해 자신의 말을 경청하게 만들고, 삶에 대한 사랑의 집단적 위험과 파괴욕의 강화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
결국 프롬은 앞서 인용한 크랄라 어쿠하트에 보낸 편지에서 암시됐듯이, 인간의 사랑하는 능력을 ‘바이오 필리아(bio-philia)’, 즉 삶을 사랑하고 살아있는 것에 이끌리는 특수한 능력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자체 역동성에 대해 탐구했고, 생명체에게는 생존 추구를 넘어서서 “통합하고 합일하려는 경향”이라는 특징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합일과 통합된 성장이란 모든 생명 과정의 특징이며, 세포뿐만 아니라 감정과 사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967년 미국 잡지 <맥쿨스(McCalls)>에 기고한 <우리가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라는 글에서 프롬은 이렇게 썼다. “삶이 본질상 성장 과정이고 완전해지는 과정이며 통제와 폭력 수단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면 삶에 대한 사랑은 모든 종류의 사랑의 핵심이다. 사랑은 인간, 동물, 식물 안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삶에 대한 사랑은 추상적인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모든 종류의 사랑에 포함되어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핵심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타인을 욕망하고 원하고 집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랑은 아니다.”(...) 인간의 사랑의 능력은 바이오필리아, 즉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이끌림을 기반으로 했다.
- p.199~204, 라이너 풍크의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랑>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