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은 계산할 수 없는 것, 신뢰할 수 없는 것, 비합리적인 것으로서 터부시된다. 이로부터 초래된 지성의 짧은 호흡은―이것은 의식의 역사적 차원이 해체되는 데서 극에 달하는데―종합적 통각(統覺) 작용의 붕괴를 간접적으로 초래한다, 칸트에 따르면 이 능력은 '상상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 즉 회상에서 분리될 수 없다. '상상력'은 무의식의 소관으로 넘겨지고 인식 이론에서는 판단력이 결여된 유치한 퇴화된 기관으로 배척되지만, 오직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판단의 절대적 원천인 대상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이 추방되면 진정한 인식 행위인 '판단'도 추방되는 것이다. 지각으로 하여금 갈망이나 예상을 못 하게 막는 통제 장치가 '지각'이라는 것을 아예 거세시켜 버리면 지각은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는 쳇바퀴 속에 갇히게 된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성의 희생을 초래한다. 고삐 풀린 생산 과정이 최우선되고 '무엇을 위하여'를 묻는 이성이 사라지면 이성이 스스로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지면서 외부의 권력에 굴복하게 된다. 그러면 이성 자체는 도구로 전락하고 그것을 다루는 기능인들의 사유 장치는 사유를 막는 목적에만 사용되며 이성 또한 이러한 기능인들과 유사하게 된다. 감정의 마지막 흔적마저 제거될 경우 사유에 유일하게 남는 것은 절대적인 동어 반복뿐이다. (...)
- <미니마 모랄리아>(테오도르 아도르노 · 길 · 2005년 · 원제 :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a"digten Leben, 1951년) p.166~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