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학문과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善, agathon)이다. 이 점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政治, politike)에 특히 가장 많이 적용되는데, 정치의 선은 정의이며, 그것은 즉 공동의 이익이다. 다들 정의는 일종의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윤리학>에서 내가 설명한 정의의 철학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정의는 특정한 사물들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조정하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는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무엇에서 평등 또는 불평등인가 하는 점이다. 이 역시 하나의 난제로, 정치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필요하다.
아마도 다른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고 남들과 같다 해도 어떤 점에서는 시민들 사이에 차이가 난다면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차이가 나면 정의와 평가도 차이가 나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맞는다면, 어떤 사람이 피부색이 좋거나 키가 크다거나 그 밖에 다른 장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권리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는 분명 잘못이 아닐까? 다른 학문이나 기술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재능이 대등한 피리연주자가 여려 명 있을 때 집안이 더 좋은 자에게 더 좋은 피리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안이 좋다고 해서 피리를 더 잘 연주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을 더 잘하는 자에게 더 좋은 도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누군가 피리 연주 기술에서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지만 좋은 가문과 좋은 미모에서는 훨씬 열등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이런 탁월함들, 즉 좋은 가문과 미모가 피리 연주에서의 탁월함들을 지닌 자들을 능가하는 것 이상으로 그를 능가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더 좋은 피리는 피리 연주에서의 탁월함들을 지닌 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부와 좋은 집안이라는 탁월함에 있어서의 우월성이 피리 연주에 기여해야 하는데, 피리 연주에서는 부와 좋은 집안의 탁월함들이 피리 연주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정치에서도 이런저런 불평등을 내세워 공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분명 합리적이다.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리다고 해서 그것이 누구는 더 많이 갖고 누구는 더 적게 가질 이유는 못 된다. 더 빠른 사람이 상(賞)을 받을 곳은 육상경기다. 공직을 요구하는 자들은 국가 존립에 필요한 부문들에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명문 자제들이나 자유민이나 부자들이 공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직자들은 자유민이어야 하고 납세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전적으로 노예들만으로도 구성될 수도 없지만, 전적으로 빈민들만으로는 더더구나 구성될 수 없다. 그러나 부와 자유민 신분이 필요하다면 정의감과 전사로서의 탁월함도 필요하다. 국가는 부와 자유민의 신분 없이는 존립할 수 없고, 정의감과 전사로서의 탁월함 없이는 잘 다스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
-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도서출판 숲·2009년) <제3권 시민과 정체에 관한 이론 · 제12장 정의와 평등> p.167~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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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Politeia)』 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국가의 정의란 지배자 계급의 주덕(主德)인 '지혜', 수호자 계급의 주덕인 '용기', 생산자 계급의 주덕인 '절제'가 완전하게 조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 주덕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각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만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지배자 계층은 지배자의 덕인 '지혜', 수호자에게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생산자 계급에게는 '절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정의였다.
... 그때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었네.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이들을 아주 행복한 사람들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 국가는 사실상 그들의 것인데도 그들은 전혀 국가의 덕을 보지 못하니 말예요. 다른 사람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크고 멋진 저택을 짓고, 그런 저택에 어울리는 가구를 수집하고, 신들에게 개인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방문객을 맞고, 선생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금과 은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수호자들은 마치 용병 수비대처럼 시내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 같고, 그들이 하는 일이라야 도시를 지키는 것이 전부예요" (...)
그래서 내가 말했네. "(...)우리가 국가를 건설하는 목적은 한 집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최대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걸세. 우리는 그런 국가에서 정의를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네. (…) 우리도 농부들에게 자포를 입히고 황금 장신구를 들러주며 마음 내킬 때 농사를 지으라고 말할 줄 안다네. 우리도 도공이 불가의 긴 의자에 기대 앉아 잔을 돌리며 술잔치를 벌이라고 말할 수 있네. 그러나 자네 키시는 대로 하게 되면, 농부는 농부가 아니고 도공은 도공이 아닐 것이며, 국가 구성원들은 어느 누구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할 것이네. 우리가 국가를 건설하는 목적은 한 집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최대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걸세. 우리는 그런 국가에서 정의를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네. (…) 우리도 농부들에게 자포를 입히고 황금 장신구를 들러주며 마음 내킬 때 농사를 지으라고 말할 줄 안다네. 우리도 도공이 불가의 긴 의자에 기대 앉아 잔을 돌리며 술잔치를 벌이라고 말할 수 있네. 그러나 자네 키시는 대로 하게 되면, 농부는 농부가 아니고 도공은 도공이 아닐 것이며, 국가 구성원들은 어느 누구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할 것이네. ...
- 『국가』(플라톤 · 도서출판 숲 · 2013년 ·원제 : Politeia) <제4권> p.208~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