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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09]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by 이우 posted Aug 04, 2014 Views 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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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jpg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년 7월 1일 ~ 1716년 11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다. 라이프니츠는 책을 쓸 때 라틴어(~40%), 프랑스어(~30%), 독일어(~15%)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철학과 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이작 뉴턴과는 별개로 무한소 미적분을 창시하였으며,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표기법은 아직까지도 널리 쓰인다. 라이프니츠는 기계적 계산기 분야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파스칼의 계산기에 자동 곱셈과 나눗셈 기능을 추가했고, 1685년에 핀 톱니바퀴 계산기를 최초로 묘사했으며, 최초로 대량생산 된 기계적 계산기인 라이프니츠 휠을 발명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모든 디지털 컴퓨터의 기반이 되는 이진법 수 체계를 다듬었다. 철학에서 라이프니츠는 낙관론으로 유명하다. 라이프니츠는 제한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의 우주라고 결론지었다. 라이프니츠는 르네 데카르트, 바뤼흐 스피노자와 함께 17세기 최고의 3대 합리주의론자 중 한 명이다. 라이프니츠의 업적은 현대 분석철학을 앞당겼지만, 한편으로 그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적인 면도 있다. 라이프니츠는 물리학과 공학에 많은 공헌을 했고, 생물학, 의학, 지질학, 확률론, 심리학, 언어학, 정보과학 분야에서 나중에 나올 개념들을 예견했다. 그리고 정치학, 법학, 윤리학, 신학, 역사학, 철학, 언어학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방대한 분야에 걸친 라이프니츠의 공헌은 다양한 학술지와 수만개의 편지, 그리고 출판되지 않은 원고에서 발견되었다.

  독일을 폐허로 만든 30년전쟁이 끝날 무렵, 독실한 루터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니콜라이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나 대부분 아버지(1652년 죽음)의 장서로 독학했다. 1661년 부활절 학기에 라이프치히대학교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면서 갈릴레오, 프랜시스 베이컨, 토머스 홉스, 르네 데카르트 등 과학과 철학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의 사상에 접하게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일생 동안 이 근대 사상가들과 스콜라주의화한 아리스토텔레스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다. 1663년 5월에 나온 학사학위 논문 <개체의 원리(De Principio Individui>는 루터의 유명론(唯名論: 보편은 실재가 아니라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는 이론)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은 글로 개체의 존재가치를 형식이나 질료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전체존재(entitate tota)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체 존재라는 개념은 뒤에 나온 '단자'(單子, monad) 개념의 첫 싹이었다.

  1666년 <결합법(De Arte Combinatoria)>에서는 문자로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모든 추론과 모든 발견을 수·단어·소리·색과 같은 요소들의 질서있는 결합으로 환원하는 방법을 제시하여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선구가 된 모형을 정식화했다. 1666년 정규과정을 끝낸 뒤 법학 박사학위를 신청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결국 고향을 영원히 떠났다. 자유도시 뉘른베르크의 알트도르프대학교에서 <까다로운 문제(De Casibus Perplexis)>로 박사학위를 받고 뒤이어 교수직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뉘른베르크에 머물면서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 정치가인 보이네부르크 남작 요한 크리스티안을 만났다. 보이네부르크는 라이프니츠를 고용하여 마인츠의 선제후(選帝侯)이자 대주교인 요한 필리프 폰 쇤보른에게 소개했고,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법률과 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차츰 독일 신성 로마 제국을 위협하자,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고 그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대주교 필리프는 루이 14세에게 이집트 원정계획을 제안하려 했다. 필리프는 종교를 구실로 삼았기 때문에 이 원정계획이 교회의 재통합을 앞당길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라이프니츠는 교회의 재통합을 지지하기 위해 <가톨릭 논증(Demonstrationes Catholicae)을 썼다. 이 연구로 라이프니츠는 단자론으로 가는 새로운 발전경로가 된 영혼의 위치를 한 점으로 보는 관점을 세웠고,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 : 어떤 것도 이유없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을 전개했다. 나아가 이 난해한 점이론을 다루면서 그의 사고는 광학·공간·운동 문제로 이어져 1671년 <새로운 물리학의 가설(Hypothesis Physica Nova)>을 출판했다. 라이프니츠는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운동은 정신(신)의 행위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1672년 3월말 라이프니츠는 선제후가 파견한 외교관 자격으로 파리에 갔다. 그해 9월 라이프니츠는 예수회를 반대하는 글로 유명한 얀센주의(수많은 엄격한 도덕 형식을 만들어내는 비정통 로마 가톨릭 운동)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를 만나 교회 재통합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1672년 12월 보이네부르크 남작이 죽고 1673년 2월 마인츠 선제후가 사망하자 후원자를 잃고 곧 파리를 떠났다. 대신 이제는 자유롭게 자신의 학문을 연구할 수 있었다. 재정적 도움을 얻기 위해 계산기를 발명하여 1673년 처음으로 런던을 여행하던 도중 왕립학회에 기증했다.

  1675년말 라이프니츠는 적분과 미분의 기초를 세웠다. 이 발견으로 시간과 공간을 실체로 보지 않게 된 것은 단자론으로 가는 또 하나의 단계였다. 라이프니츠는 연장(延長)과 운동 개념은 상상의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운동의 기본법칙은 단순히 그 성질을 연구함으로써는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연장과 운동은 현상의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와 달리 이 세계가 잘 연결된 꿈이라는 가정은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약 눈에 보이는 운동이 연장 개념 속에 있는 상상적 요소에 의존한다면 운동은 더 이상 단순한 위치 운동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틀림없이 힘의 결과이다. 역학으로 알려진 데카르트의 운동법칙을 비판하면서 라이프니츠는 1676년 운동보존을 운동에너지로 대체하는 동역학이라는 분야의 새로운 정식을 만들었다. 동시에 빛은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경로를 따라간다는 원리에 입각하여 최종목적이나 원인을 지향하는 자연의 질서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정한 수입도 없이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1676년 10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요한 프리드리히에게 일자리를 얻었다. 요한 프리드리히는 1651년 루터교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한 자로서 1665년 하노버 공작이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사서직을 얻었으나 1677년 2월초부터 고문관 자리를 간청하여 마침내 1678년 고문관이 되었다. 라이프니츠가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생계비를 벌어야 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라이프니츠는 왕족에게는 항상 만물박사였다.

  모든 방면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라이프니츠는 교육이 더욱 실용적이어야 하고 아카데미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력압착기·풍차·램프·잠수함·시계 등 갖가지 기계장치들을 연구했고, 완벽한 수송수단을 고안하여 인(燐)으로 실험을 하기도 했다. 또 풍차로 작동하는 물 펌프를 개발하여 하르츠 산맥의 광산개발을 개선했고 1680~85년에는 이 광산에서 여러 번 기술자로 일했다. 라이프니츠는 최초의 지구가 용해 상태였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등 그곳에서 많은 관찰자료를 수집한 덕분에 지질학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라이프니츠는 이처럼 다양한 직업을 가지면서도 수학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 1679년 3월 2진법 체계를 완성했고, 그해말에는 오늘날 일반 위상수학(位相數學 : 일정한 물리적 요소 또는 추상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집합의 선택적 속성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으로 알려진 위상분석의 기초를 제시했다. 역학과 철학 연구도 계속하여 그의 철학은 점차 반(反)데카르트주의로 나아갔다. 이즈음에 1680년 1월 7일 요한 프리드리히 공작이 죽고 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가 그 직위를 계승했다.

  1680~82년 프랑스에서는 낭트칙령 폐지(1685년 10월 18일)의 길을 연 프로테스탄트 박해의 심화로 극심한 내부혼란이 일자, 루이 14세는 평화적인 분위기를 깨고 1681년에 이미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하고 알자스 지방의 10개 도시에 대한 영유권을 요구하는 등 차츰 국경을 넘보기 시작했다. 당시 헝가리 폭동과 투르크의 진격으로 이미 동부지역이 어지러운 상황에 있던 독일 제국에게 프랑스는 실질적인 위험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이프니츠는 군주와 제국에 충성하면서 군주에게 린네르의 생산증가 방법과 물의 염분제거 과정을 제시했고, 문서의 분류를 권고했으며 루이 14세에 대항하는 격문을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썼다. 이 기간에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를 계속 완성시켜 나갔으며, 이를 위해 모든 존재의 보편적 원인 개념을 연구하여 모든 추론을 사고의 대수학으로 환원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시하려 했다. 또 수학을 계속 발전시켜 1681년에는 원과 외접 4각형 사이의 비례관계를, 1684년에는 고체의 저항을 연구했다. 같은 해 미분 해설서 <극대·극소를 위한 새로운 방법(Nova Methodus pro Maximis et Minimis)>(1684)을 출판했다.

  이 무렵에 나온 유명한 저서 <인식·진리·관념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Cognitione, Veritate et Ideis)>에는 그의 인식론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니콜라 말브랑슈가 제시했듯이 사물은 신(神) 안에서는 볼 수 없고 오히려 신의 관념과 인간의 관념 사이에는 엄밀한 관계인 유비(類比)가 있으며, 신의 논리와 인간의 논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1686년 2월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taphysique)>을 썼으며, <악타(Acta)〉> 3월호에 <자연법칙에 관하여 데카르트 및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중대한 오류에 대한 간략한 논증(Brevis Demonstratio Erroris Memorabilis Cartesii et Aliorum Circa Legem Naturae)>이라는 논문을 기고하여 자신의 동역학을 소개했다. 1686년 더욱 발전된 견해를 담은 책을 1권 썼으나, 이 책은 오랫동안 출판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라이프니츠는 필연적이든 우연적이든 모든 참인 긍정명제에서 술어는 주어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을 일반화했다. 이때에는 그의 단자론이 '단자'라는 단어(1695년에 등장)를 사용하지 않은 채 정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1685년 라이프니츠는 브라운슈바이크가(家)의 사가(史家) 곧 '호프라트'(Hofrat : 궁정고문관)에 임명되었다. 그의 임무는 계보(系譜) 연구를 통해 브라운슈바이크가가 이탈리아 왕가인 에스테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하노버가 9번째 선제후임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1687년 11월 라이프니츠는 자료를 구하기 위해 두루 여행했다. 독일 남부를 거쳐 오스트리아에 도착하여 루이 14세가 다시 전쟁상태를 선포했음을 듣고, 빈에서 황제의 환대를 받은 뒤 이탈리아로 갔다. 가는 곳마다 과학자들을 만나 학문연구를 계속하여 천체운동과 물체의 지속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1690년 7월 중순 하노버로 돌아왔으며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1692년 10월 선제후가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죽을 때까지 사가로서 계속 일했다. 그러나 브라운슈바이크가의 계보 연구에만 매달리지 않고 지질학적 사건, 화석 기록 등을 포함한 지구의 역사까지 연구목표를 넓혔다. 유적(遺蹟)과 언어학을 이용하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연구하고, 나아가 과학·윤리학·정치학의 출현과 발전과정, 천골사(薦骨史 historia sacra)의 기초 등을 연구했다. 이렇게 보편사를 계획하면서 라이프니츠는 만물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보편사를 서술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관념들을 새롭게 결합시키는 방법을 고안하여 완전히 새로운 관념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큰 영향을 미쳤다.

  1691년 라이프니츠는 볼펜뷔텔에서 사서로 임명되었으며, 여러 과학잡지에 논문을 기고하여 자신의 발견을 널리 알렸다. 1695년 <새로운 체계(Syst?me nouveau)>에서 자신의 운동 동역학 이론의 일부를 설명하면서 실체들 사이의 관계 및 영혼과 육체의 예정조화를 다루었다. 그에 따르면 말브랑슈가 주장했듯이 신은 인간의 행위를 그의 사고를 통해 산출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신은 영혼과 신체를 조화시키기 위해 일종의 시계태엽을 감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최고의 시계제작자는 처음부터 육체와 영혼이 일치하고 서로 의미를 부여하도록 이 둘을 정확히 결합해 놓았다. 라이프니츠는 1697년 <궁극적 근원에 관하여(De Rerum Originatione)>에서 사물의 궁극적 근원이 바로 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고, 1698년 〈자연 그 자체에 관하여 De Ipsa Natura〉에서는 자신의 동역학 이론으로 자연의 내적 활동을 설명했다. 이 모든 저작을 통해 라이프니츠는 신앙을 해롭게 하는 데카르트주의에 반대했다. 독일 아카데미 설립계획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피 샤를로테(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딸로 1701년 1월 최초의 프로이센 여왕이 됨)의 도움으로 마침내 1700년 7월 11일 독일 과학 아카데미가 베를린에 설립되었다.

  1698년 1월 23일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죽자 아들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왕위를 계승했다. 라이프니츠는 무식하고 촌스러운 난봉꾼 루트비히 왕을 만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자 온갖 구실을 붙여 하노버를 떠나 이리저리 정처없이 옮겨다녔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조피 샤를로테와 그녀의 어머니 조피와의 친분관계였다. 라이프니츠는 또다시 교회 재통합에 착수했다. 베를린에서는 루터교도와 칼뱅교도의 통합이 문제였고 파리에서는 베니뉴 보쉬에 주교의 반대를 무마해야 했다. 1700년에 돌아온 빈에서는 영향력이 큰 황제의 지원을 얻었지만 영국에서는 성공회 신도를 설득해야 했다.

  1700년 영국에서는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이 사망하자 제임스 1세의 증손자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왕위계승 후보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법률가이자 사가인 라이프니츠에게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은 1701년 3월에 시작되어 바덴 조약이 체결된 1714년 9월까지 계속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루이 14세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애국자의 눈으로 전쟁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1700년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고 당대 유럽의 저명한 학자 대다수와 교류하고 있던 터라 철학자이자 과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전유럽에 퍼져 있었다. 이 시기에 라이프니츠는 신의 정의(正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변신론(Th?odic?e)>(1710)을 쓰느라 다른 책은 거의 출판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는 러시아 차르 표트르 대제의 자질에 감명받았고 대제는 1711년 10월 처음 라이프니츠를 초청했다. 그후 1714년 9월까지 빈에 머물면서 황제로부터 '라이히호프라트'(Reichhofrat : 제국고문) 지위를 얻었고 '프라이헤르'(Freiherr : 남작) 칭호를 받았다. 이 무렵 라이프니츠는 <이성에 기초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Principes de la nature et de la Gr?ce fond?s en raison)>를 써서 자연과 은총이라는 두 질서의 예정조화사상을 피력했으며, 1714년 <단자론(Monadologia)>을 써 <변신론> 철학을 집대성했다. 1714년 8월 앤 여왕의 죽음으로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조지 1세라는 이름으로 영국 왕위를 물려받았다. 라이프니츠는 하노버에 돌아와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으면서 또한번 <서구제국의 브라운슈바이크 연대기(Annales Imperii Occidentis Brunsvicenses)>(1843~46) 집필작업에 착수했다. 1716년 6월 바트피르몬트에서 마지막으로 표트르 대제를 만난 뒤, 통풍으로 크게 고생하다가 죽었다.

  라이프니츠는 중간 정도의 키에 등이 구부정하고 어깨가 넓고 안짱다리를 가진 사람이었고, 의자에 앉아 며칠씩이나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1년 내내 유럽을 여행하기도 했다. 라이프니츠는 불굴의 저술가, 광범위한 서신교류가(600명 이상과 교류), 애국자, 세계시민주의자, 위대한 과학자로서 서구문명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다.


 □ <단자론(Monadologia)>(1714년)
 

단자론_필사본.jpg  <단자론(Monadologia)>은 라이프니츠 철학 중 대표적인 형이상학이다. 이 단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철학 체계의 중요한 몇 가지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첫번째 원리는 ‘어떤 명제도 동시에 참이면서 거짓일 수 없다’는 모순율이다. 라이프니츠는 이 모순율을 근본적 진리라고 불렀다. 이 원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달리 증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근본적 진리라고 불렀을 것이다.
 
  두번째 원리는 라이프니츠의 진리에 관한 이론으로 유명한 ‘술어 포함 개념 원리’이다. 이 원리는 참인 명제는 모두 궁극적으로 주어의 개념에 술어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는 명제가 참인 한, 이 문장의 주어인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개념을 분석하면 ‘철학자’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개념에는 ‘철학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 ~한 철학자’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는 명제는 결국 ‘~ ~한 철학자는 철학자이다’가 되고, 이는 ‘A는 A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에 다름 아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와 같이 참인 명제는 궁극적으로 ‘동일률(A는 A이다)’의 명제로 환원된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술어포함 개념 원리이다.
 
  세번째 원리는 충분 이유율인데,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나 발생하는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발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술어포함 개념 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가 참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자이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고, 그가 철학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는 ‘철학자’라는 개념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술어포함 개념의 원리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가 참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개념에는 ‘철학자’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다’가 참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이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술어포함 개념 원리로부터 따라 나오는 충분 이유율은 형이상학, 물리학, 도덕철학 등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라이프니츠는 이 원리를 인간의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네번째 원리는 완전한 신은 그 행위에 있어서도 완전하고, 신은 항상 최선을 지향한다는 것으로 최선의 원리라고 한다.
 
  다섯 번째 원리는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두 개의 대상이 모든 속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 차이를 식별할 수 없다면, 즉 두 개의 대상이 그 속성에서 있어서 완벽하게 같다면, 그 둘은 동일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속성에 있어서 완전하게 닮았음에도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대상이 존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앞에서 말한 최선의 원리와 충분 이유율을 이용해서 다음과 같이 증명할 수 있다.
 
  1)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가 옳지 않다면, 이 세계(W)에 속성은 동일하지만 구별 가능한 두 개의 대상 A, B가 있을 것이다. 
  2) 모든 점에서 W와 동일하지만, A와 B의 위치만 바뀐 가능세계(W')가 있을 것이다.
  3) 신이 W와 W' 중에서 W를 최선의 것으로 선택했다면, 그 선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4) W와 W' 사이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
  5) 따라서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는 성립한다.
 
  이상의 원리들을 토대로 라이프니츠가 그의 형이상학을 전개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의 핵심적인 물음이다. 그는 이에 대해서 지각과 의지를 지닌 활동적인 단위인 ‘단순실체(simple substance)’가 바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실재하는 것을 단순실체라고 주장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복합체는 단순체의 집합이다.
  2) 복합체는 모두 그것의 존재에 있어서 단순체에 의존한다. 
  3) 실체는 그것의 존재에 있어서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기충족적인 것이다. 
  4) 그러므로 부분을 가진 것은 실체일 수 없다. 즉 실체는 복합체일 수 없다.
 

모나드.jpg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실재하는 단순실체를 단자(Monad)라고 불렀다. 실체로서 단자는 단순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눌 수 없다. 더 이상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물리적 대상일 수도 없다. 그러니까 단자는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에 공간을 차지하는 물리적 대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이프니츠는 이에 답하기 위해서 무지개의 비유를 든다. 무지개는 실제로는 무색의 물방울 입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실재 세계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점과 같은 단순한 실체인 단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자들의 표상에 의해서 물리적 대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실체는 복합체일 수 없다는 주장을 증명하는 위 논증에서 ‘실체는 자기 충족적(self-contained)’이라는 전제를 사용한다. 실체가 자기 충족적이란 무슨 뜻일까? 앞에서 설명한 술어포함 개념 원리를 기억하자. 그 원리에 따르면 모든 참인 명제는 주어의 개념에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술어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술어포함 개념 원리에 의해서 어떤 실체가 갖는 개념은 그 실체에 귀속될 수 있는 모든 술어를 포함해야 한다. 즉 X라는 실체 개념에는 X에 귀속되는 모든 술어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실체라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주어에 귀속될 수 있는 모든 술어(‘철학자이다’, 플라톤의 제자이다’, ‘알렉산더의 스승이다’ 등)가 포함된다. 어떤 실체 X의 개념에는 그것에게 과거에 발생했던 모든 것의 흔적이 포함되고 앞으로 발생할 모든 것의 표지가 포함되며, 또한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의 자취까지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실체의 완전한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유일한 개별자로 기술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개별자와도 구별해 주는 개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실체의 개체성(thisness)은 그 실체의 속성 전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실체는 자신의 개념에 의해서 다른 실체와 구별된다. 그리고 실체의 개념에 그렇게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의미에서 실체는 자기 충족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실체로서 단자도 자기 충족적이다. 이렇게 실체로서의 단자에는 우주의 모든 역사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라이프니츠는 단자를 우주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모든 단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주 전체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또한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에 의해서 본성에 있어서 동일한 두 개의 단자는 있을 수 없다. 만약 두 개의 실체, A와 B가 그 개념에 있어서 구별할 수 없다면, 그 개념들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A와 B의 완전한 개념은 그것의 개체성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즉 A와 B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는 바로 그 실체들의 개념에서 발견되어야 그 개념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실체는 자신의 개체성을 보증해주는 완전한 개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완전한 개념을 갖는 실체는 우주에 단 하나뿐이다.
 
  단자가 자기충족적이라는 사실이 함축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주장은 단자들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실체는 자신이 갖는 속성에 대해서, 그 실체가 그러한 속성을 가질 이유를 그 개념 안에 포함하고 있다. 즉 실체의 모든 상태는 실체의 완전한 개념에 의해서 설명되고, 근거가 제공되고, 야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자들 사이에 인과관계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각 단자는 신 이외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단자들은 서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며, 서로 어떠한 인과적 영향도 주고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라이프니츠의 단자가 ‘창이 없다(windowless)’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각 단자가 전체 우주를 비추지만 단자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이프니츠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유명한 괘종시계의 비유를 든다. 매 순간 정확하게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두 개의 괘종시계가 있다고 하자. 그 괘종시계가 매 순간 정확하게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능한 첫 번째 대답은 두 개의 시계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시계가 다른 시계에 영향을 줌으로써 항상 같은 시각을 알리도록 작동한다고 답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능한 대답은 시계공이 매 순간 계속해서 같은 시각을 알리도록 뒤에서 조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답은 두 시계 모두 애당초 빈틈없이 정교하게 제작되어 독립적으로 작동하지만 매 순간 정확한 시각을 알려준다고 답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대답이 가장 설득력 있고, 이 우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주장이다. 즉 신은 애당초 두 개의 실체가 이미 스스로 타고난 고유의 법칙을 지킴으로써 서로 완전한 조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했는데, 이런 사실이 두 개의 실체가 마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아니면 신이 언제나 손수 개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신은 매 순간 각 단자의 지각이 매우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각 단자와 단자의 본성을 창조했다. 요컨대 모든 단자는 완전한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창조될 때 그것의 완전한 본성을 부여 받고 그것에 따라 운동하고, 지각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완전한 신의 예지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18세기 철학자들의 공통된 과제는 자신들의 사상적 배경인 스콜라 철학과 17세기 등장한 기계론적 자연철학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였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철학의 하부구조에 해당하는 논리학을 토대로 신의 완전한 이성이 이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고, 움직이도록 설계하였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을 제시한다. 그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자연법칙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도덕법칙이 어떻게 신의 완전성을 통해서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스콜라 철학의 목적론과 근대 자연철학의 기계론이 결코 갈등관계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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