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사22]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Hegel)

by 이우 posted Feb 13, 2013 Views 1214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Hegel.jpg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년 8월 27일~1831년 11월 14일)은 관념철학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칸트의 이념과 현실의 이원론을 극복하여 일원화하고, 정신이 변증법적 과정을 경유해서 자연·역사·사회·국가 등의 현실이 되어 자기 발전을 해가는 체계를 종합 정리했다.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으며, 1778년부터 1792년까지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후 1793년부터 1800년까지 스위스의 베른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청년기 헤겔의 사상을 보여주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여러 미출간 단편들을 남겼다. 첫 저술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가 발표된 1801년부터 주저 <정신현상학>이 발표된 1807년 직전까지 예나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그 뒤 잠시 동안 밤베르크 시에서 신문 편집 일을 했으며, 1808년부터 1816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후, 1818년 베를린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했다. 주요 저서로 <정신현상학>,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법철학 강요>, <미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이 있다. 1831년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다음은 헤겔이 손수 쓴 자신의 이력서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이 이력서는 1804년까지의 약력을 담고 있다.


    ... 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1770년 8월 27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생. 나의 부모, 아버지 게오르크 루트비히 헤겔, 운송회계사 고문 그리고 어머니 크리스티네 루이제 프롬은 개인교수뿐만 아니라 고대어 및 현대어 그리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치는 슈투트가르트의 공립 김나지움에서 수업을 받게함으로써 나를 학문적으로 교육시키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나는 18세에 튀빙겐의 신학원에 입학하였다. 나는 2년 동안 고전문헌학을 전공으로 하는 슈뉘러(Schn?rer), 철학과 수학을 전공으로 하는 플라트(Flatt), 벡(Beckh) 밑에서 공부를 한 후,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잇달아서 3년 동안 르 브레(Le Bret), 울란드(Uhland), 스토르(Storr) 그리고 플라트의 지도하에서 신학과 관련된 학문을 공부한 끝에 슈투트가르트의 신교 총무원에서 실시한 신학과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과 지원생으로 등록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설교사직을 선택하였으며 신학이 가진 고전문학 그리고 철학과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신학 공부에 충실하였다. 신학과 졸업 후, 나는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들 가운데 실제 설교사직에 별로 구속되지 않는 직업, 이를테면 고전문학과 철학 연구에 필요한 여유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외국에서 상이한 조건 밑에 생활하면서도 짬을 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직업으로서 가정교사직을 나는 베른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찾았으며, 여기에서 내가 결정한 삶의 과제인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얻었다. 6년간 이 두 도시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나는 철학에 마음과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예나대학의 명성은 내 장래를 위해 보다 훌륭히 공부할 수 있고 그리고 교수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는 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었다. 나는 피히테와 셸링 철학체계의 차이점, 전자의 불충분한 점에 관한 논문을 써 그 곳에 지원하였으며, 얼마 후 나의 박사학위논문, 행성들의 궤도에 관하여 (De orbitis planetarum)의 공개 변론을 통한 심사에서 그 곳 심사위원회로부터 교수 허가를 받았다. 나는 셸링 교수와 함께 "철학비판잡지"(Das kritische Jurnal der Philosophie) 두 권을 간행하였으며, 이 가운데 나의 논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서문
  어떻게 상식이 철학을 취급하는가
  고대와 근대의 회의주의에 관하여
  칸트, 야코비 그리고 피히테의 철학
  자연법에 관한 여태까지의 개정

 

  3년 전부터 철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나는 여러 강의를 하였으며, 작년 겨울에는 수많은 학생이 강의를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지난 해 공작 관할의 광물학 협회의 제2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그리고 최근에는 자연 연구 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되었다. 수많은 연구 가운데 철학이 나의 천직으로 굳어졌기에 나는 친애하는 관계 당국으로부터 정교수로 채용되기를 갈망할 따름이다...

 

?E. Moldenhauer와 M. Michel 이 편집한 헤겔 전집 I (1982년, 프랑크푸르트), 582쪽.

 

 

  이 이력서를 쓴 지 1년 후 1805년 헤겔은 예나 대학의 원외 교수 철학자로 채용된다. 1807년에는 헤겔 관념론의 핵을 이루는 <정신현상학>이 출판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생활 면에서 헤겔은 살고 있던 셋방의 주인이 사망한 후 그의 아내 샬로테와 정을 맺어 그녀로부터 아들 루트비히 피셔를 얻지만, 1811년 22살된 처녀인 마리 폰 투허(Marie von Tucher)와 결혼을 한다. 이 사이에 1808년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직을 받아 들인다. 1812년 논리학이 빛을 보게되며,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교수 자리를 옮긴 후 다음 해에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엔치클로패디)을 출판한다. 1816년 드디어 베를린 대학의 피히테의 후임 교수로서 초빙되어 여기서 사망할 때까지 연구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헤겔 철학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독일 관념론의 거성인 칸트 철학에서 출발하여 이를 마무리 지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칸트 철학의 근간은 인식론이며 이를 기초로 하여 칸트는 소위 '심리 철학', 윤리학 그리고 우주론과 신학에 접근하였다. 칸트의 인식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인식의 주체인 '자아'인데, 이 개념은 이미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에 의해서 철학적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의 문제는 칸트에게 물론 지대한 관심을 끌었지만 그는 결코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서 '자아'의 문제를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헤겔_절대정신.jpg

 

 

  자아의 문제와 관련하여 헤겔은 칸트 철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헤겔은 '개념'의 문제, 다시 말해 인간 사유의 산물 자체를 독자적인 그 무엇으로 간주한 것에서 칸트의 인식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인식론에 접근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개념'은 헤겔 철학에서 일종의 '논리적 범주'로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헤겔은 ‘변증법’이란 이름이 살아 있는 한 그 이름을 잊기는 어려울 정도로 변증법적인 사고를 체계화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특히 헤겔의 제자인 맑스를 통해서, 그리고 맑스주의 내의 유수한 철학자를 통해서 헤겔은 헤겔철학의 영역 밖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20세기의 중반기까지, 그리고 일부 지역에선 지금까지도 헤겔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다. 헤겔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피헤테와 셸링을 섭취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제 설정을 세운다.

 

  헤겔 역시 사물 자체와 주체를 분리시키지 않기 위해선 근원적인 통일을 처음부터 설정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피히테는 이 근원적인 통일을 ‘자아’를 통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헤겔이 주목하는 건 오히려 친구였던 셸링의 방법이었다. 셸링 역시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절대자’라고 생각하며, 그런 절대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히테의 생각처럼 자아가 비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비아가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피히테와는 달리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주체-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자연이 곧 주체요 정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셸링이 보기에 자연은 정신이자 동시에 자연 안에 정신 자체의 산물인 물질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자연은 자신을 객체로 정립하는 주체다. 자연은 곧 무한한 활동이다.

 

  헤겔이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이러한 셸링의 발상법에 기대어 있다. 즉 그 자체가 객체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헤겔도 ‘절대자’, ‘절대 정신’이라고 한다. 헤겔에게 절대자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신’이다. 헤겔은 그의 책 <법철학 강요>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현실적인 것’이 눈 앞에 펼쳐진 문명 세계를 의미한다면 ‘이성적인 것’은 인간의 정신을 의미한다. 정신은 스스로를 외화(소외)하여 자연, 사회, 역사 등의 객체(대상)가 된다. 사회나 역사로 전환된 절대정신은 역사의 발전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발전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정신에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이 원환운동, 그러나 끝날 때는 좀더 높은 단계로 고양되는 이 원환운동을 흔히 ‘주장의 부정’이란 말로 요약된다. 이것은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 절대자의 변증법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며, 헤겔의 체계 전체를 특정 짓고 있는 ‘법칙’이다.

 

 

헤겔_진리.jpg

 

 

  헤겔은 대상을 정립하는 게 곧 진리가 아니며, 따라서 지식이 진리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지식이 진리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헤겔에 따르면 지식에 대한 평가 기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의식(시대의식)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고 한다. 이로써 헤겔은 지식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역사적 의식 속에서 진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지구의 운동에 대한 물리학자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 헤겔이 살던 19세기라면 당연히 뉴턴의 고전물리학이 그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반면 중세 초기였다면 천동설이란 지식이 그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의 기준은 이미 성립한 하나의 지식이 제공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이미 옳다고 간주되는 지식이다.

 

  그러나 지식은 진리와 동일시될 수 없다. 적어도 중세에는 천동설이 진리였고 19세기에는 고전물리학이 진리였다고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악순환에 접하게 된다.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는 악순환이다. 결국 진리란 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 자체를 돌이켜 검사하고 정정해 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헤겔은 진리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란 뜻이다.

 

    이로써,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있었던 헤겔로선 또 다른 딜레마를만나게 된다. 진리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가 갖고 있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라는 헤겔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헤겔이 생각해낸 이 진리의 기준 역시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증법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하였다. 헤겔의 이러한 변증법은 후 일 헤겔 좌파 철학자들을 거쳐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 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원래의 상태를 정(正)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反)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며 그 결과 새로운 합(合)의 상태로 변화한다. 이 변화의 결과물은 또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이러한 변화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의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하인리히 샬리베우스(Heinrich Moritz Chalybaus, 1796~1862)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표현 대신, '즉자-대자-즉자대자', 혹은 '긍정-부정-부정의 부정' 이라는 표현을 썼다.

 

 

절대이성

 

  헤겔에게 절대 이성은 변증법에 의해 도달되는 최고의 지점, 즉 더 이상 변화될 필요 없는 최고의 위치를 뜻한다. 얼핏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과 고정화된 절대 정신은 상충되는 맥락이 있지만, 이러한 헤겔 철학의 전제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종말

 

  헤겔은 세계사를 절대정신(이성)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 역시 변증법적 발전을 겪는다고 파악하였으며 그 결과 이성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상태를 역사의 종말이라 명명하였다. 헤겔은 당대 독일이 역사의 종말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였다가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법철학

 

  법은 객관적 정신의 즉자적(卽自的 : an sich) 현실화인 저차원(低次元)의 단계의 것(그 속에는 소유·계약·불법의 부정의 변증법적 삼발전 단계가 있다)으로서, 참다운(보편적) 자유를 목표로 하여 도덕의 단계, 다시 도의태(道義態)의 단계로 변증법적인 발전을 하여 간다. 이 도의태의 단계에서 정신은 사랑(愛)의 공동체인 가족으로부터 그것의 부정인 개인주의적 이익 공동체로서의 시민사회로 전진하고, 다시 시민사회의 부정을 매개로 하여 국가라는 최고의 단계에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여 간다. 이 국가라는 완성 단계에서 정신은 완전한 자기실현(보편적 자유)을 얻는다. 국가를 이념과 현실의 완전한 합치, 최고 최종의 것으로 보는 헤겔의 사상은 국가 절대주의에 빠지고 당연히 국제법 질서까지도 부정한다.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헤겔 철학의 절대지성을 종종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 개념과 연관을 짓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헤겔은 루터교 신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헤겔은 자신의 <역사철학강요>에서 중세 철학에 대한 설명을 건너뛴다. 헤겔 연구가인 클라우스 뒤징(Klaus D?sing)은 헤겔은 철학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신학에 기대었던 중세 시대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고 본다. 헤겔은 신학과 철학을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 국가와 민족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를 통하여 현실에서 '정신의 완전한 실현형태'로서 국가를 제시한다. 이때 국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생활로서, 공동의지 자체로 법, 도덕과 함께 존재한다. 국가는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의지와 주관적인 의지의 통일체이고 이 안에서 공동정신이 성립하는 토대가 되는데, 헤겔에게는 이 공동체의 법칙은 우연한 존재(들)이 아니라 '이성' 그 자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이러한 공동정신이 인간의 현실적 생활이나 심정 안에서 생생히 존재하고 존속하게끔 하는 것이다. 나아가 헤겔은 '국가야말로 절대 궁극 목적인 자유를 실현한 자주독립의 존재'이고, '인간이 지니는 모든 가치와 정신의 현실성은 국가를 통해 주어지'며, '국가는 신의 이념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민족개념 역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헤겔은 국가를 논의하면서, '세계사에서는 국가를 형성한 민족만을 문제로 삼'으며, '한 민족의 정치체제는 그 종교나 예술, 철학, 또는 적어도 그 겉모습이나 사상, 교양일반과 연관되어 하나의 실체, 하나의 정신을 형성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민족의 일반적인 정체성의 기저를 구성하는 민족정신은 국가로 주어진 공동체와 국가기구 하에서 국가정신과 통일되는데, 이를 통해 개인은 '민족의 자식임과 동시에 국가가 발전하는 한, 시대의 자식'이 된다. 이 민족정신 개념은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본질적인 모습이 신으로 형상화되어 숭배받아,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면 그것이 종교이고, 상(像)으로서 직관적으로 표현되면 그것이 예술이며, 인식의 대상이 되어 개념화되면 그것은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교, 예술, 철학은 국가정신과 불가분의 통일을 이룬 민족정신에 의해 태어난 것이므로, 이것들의 현재 형태와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현재의 이 국가형태가 된다.

 

  그러나, 보편적인 문제의식에 관해서는 한 민족에 한정되는 민족정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민족이 단지 존속해 있을 뿐일 때는 이러한 보편적인 문제의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 민족정신이 어떤 새로운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인데, 헤겔은 이러한 현행 원리를 넘어설 수 있는 원리로서 정신을 제시한다. 헤겔은 보편적 정신이 여러 민족들의 자연사를 거치며 습관화된 생활을 넘어서 자기의 작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기를 사고하기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동양 세계와 서양

 

  헤겔은 동양 세계의 원리가 공동정신이 권위로 등장한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서 개인의 돌출행동이 권위에 의해 억제되고, 법률은 민의에 관계없이 오직 외부로부터의 힘에 의해 구성된 강제법이 된다. 즉, 명령을 내리는 의사는 존재하지만 내면의 명령에 따라 의무를 실행할 만한 의사는 존재하지 않고, 정신이 내면성을 획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만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헤겔은 동양세계를 내면과 외면, 법률과 이해력이 미분화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종교와 국가 역시 미분화의 상태에 놓이게 되어서, 동양의 국가들은 전체적으로 신정 정치의 형태를 띤다고 주장된다. 동양 세계는 지역적으로 중국,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네 부분으로 나뉜다.

 

   반면에 헤겔은 그리스 세계를 세계사의 청년기에 비유하며, 이 그리스 세계에서 정신은 비로소 스스로를 의지와 지식의 내용으로 삼는 데까지 성숙하고, 국가, 가족, 법, 종교가 동시에 개인의 목적이 되며, 개인은 그것들과 관계함으로써 개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한다.

 

 

영향

 

  그의 사상은 국가, 종교, 철학을 통일하는 하나의 원리를 지향한다. 그래서 헤겔은 프로이센이라는 국가와 프로이센의 개신교 교리를 자신의 철학과 조화시키고자 했다. 헤겔의 철학은 국가를 절대정신이 구현된 완전한 전체로 보는 것은 물론, 프로이센이야말로 그러한 이상이 잘 실현된 보편국가라고 주장하였다. 국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헤겔의 철학은 프로이센 정부의 입맛에 매우 맞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프로이센 정부는 헤겔 철학을 권장하고 활용하였다. 이러한 헤겔 철학을 비판한 마르크스를 비롯한 청년헤겔학파들이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철학적 역사가 말하는 개인이란 세계정신이다. 철학이 역사를 다룰 때 대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구체적 형태로, 그리고 필연적인 진화를 통해 포착되는 구체적인 대상이다. 철학이 다루는 최초의 사실은 인민의 운명, 에너지, 열정이 아니며, 나아가 사건들의 무형적인 웅성거림도 아니다. 철학이 다루는 최초의 사실은 사건들의 정신 자체, 그 사건들을 생산해 낸 정신이다. ...

 

-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Vorlesungen ?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 VPW)에서


 

 

 

 

 


  1. 13
    Apr 2018
    02:30

    [철학]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

    (...) 신의 죽음 또는 죽은 신이 자아(Moi)로부터 자아의 동일성과 관련하여 지니는 유일한 보증을, 말하자면 통일을 이루는 자아의 실체적인 기반을 빼앗아버린다고 말하였다. 즉 신이 죽었기 때문에 자아는 이제 소멸되거나 증발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4637 file
    Read More
  2. 19
    Mar 2018
    12:40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에로스(eros) 혹은 관능(sense)

    (...) 에로틱의 질적인 영역에서 가치전도가 일어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자유주의 아래서 상류사회의 기혼 남성들은 양갓집 규수로 자란 정실부인만으로는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연예인이나 집시 여인, 정부나 매춘부로로 부족분을 채우곤 했다. 사회가 합...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32037 file
    Read More
  3. 13
    Mar 2018
    15:45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선(Good)과 악(evil), 좋음(Good)과 나쁨(Bad)

    (...) 브레이은베르흐와의 서신은 모두 8통의 편지가 전해오고 있는데, 각각 4통씩 1664년 12월에서 1665년 6월 사이에 씌어졌다. (...) 곡물중개상이었던 블레이은베르흐는 스피노자에게 편지를 통해 악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처음에 스피노자는 자신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6183 file
    Read More
  4. 04
    Mar 2018
    17:58

    [철학] 『선악의 저편』 : 남성과 여성

    232.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럽이 일반적으로 추악해지는 최악의 진보에 속한다. (...) 238. (...) '남성과 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여기에 있는 헤아일 길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778 file
    Read More
  5. 01
    Mar 2018
    08:21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도덕(Morals)과 윤리(Ethics) · 정념(passion)

    (...) <너는 저 열매를 막지 말라.> 불안에 사로잡힌 무지한 아담은 이 말을 금지의 표현으로 듣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담이 먹을 경우에 그 아담을 중독시키게 될 과일이다. 그것은 두 신체의 만남,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77438 file
    Read More
  6. 01
    Mar 2018
    06:37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코나투스(conatus) · 욕망과 의지, 감정

    (...) 의식 자체도 원인을 가져야 한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자신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욕구(l' appetit)>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것은 단지 욕망에 대한 유명론적 정의일 뿐이며, 의식은 욕망에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는다고 정확...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0337 file
    Read More
  7. 01
    Mar 2018
    04:46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평행론(parallelism) · 신체와 의식

    (...) 스피노자는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모델, 즉 신체를 제안한다. 스피노자는 그들에게 신체를 모델로 세울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알지 못한다.> 무지에 대한 이 선언은 일종의 도전이다. 우리는 의식에 대해서, 의식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4853 file
    Read More
  8. 28
    Feb 2018
    20:58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철학자의 고독

    (...)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를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0573 file
    Read More
  9. 27
    Feb 2018
    14:28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물 만난 고기떼

    (...) 고도로 집중된 산업이 포괄적인 분배 장치를 갖추게 되면서 유통 부문은 해체되었지만 이 부문은 기이한 사후 생존(Post-Existense)을 시작하게 된다. 거간꾼 직업은 그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중개인의 삶이 되며, 심지어 사...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041 file
    Read More
  10. 27
    Feb 2018
    01:01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프루스트를 위하여

    (...) 재능 때문이든 허약한 체질 때문이든 유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이 예술가나 학자 같은 지적인 작업을 갖게 되면 그는 동료라는 역겨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남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의 독립성을 질투한다거나...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949 file
    Read More
  11. 02
    Feb 2018
    00:08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입술 · 입맞춤 · 기관

    (...) 나는 키스하기에 앞서 우리가 사귀기 전 그녀가 바닷가에서 지녔다고 생각했던 신비로움으로 다시 그녀를 가득 채워 그녀 안에서 예전에 그녀가 살았던 고장을 되찾고 싶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런 신비로움 대신에, 나는 적어도 우리가 발베크에서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1677 file
    Read More
  12. 01
    Feb 2018
    23:45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죽음, 그리고 일상, 생명 에너지

    (...) 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9104 file
    Read More
  13. 15
    Jan 2018
    08:55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슬픔

    (...) 질베르트의 징긋한 얼굴을 보는 짧은 순간에 비해, 그녀가 우리의 화해를 시도할 것이며, 심지어는 우리 약혼까지 제안하는 모습을 내가 꾸며 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상력이 미래를 향해 끌어가는 이 힘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거로...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30187 file
    Read More
  14. 14
    Jan 2018
    19:19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기억(memorie)과 추억(souvenir), 그리고 작품

    (...) 우리는 집에만 있지 않고 자주 산책을 나갔다. 가끔식 옷을 입기 전에 스완 부인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크레프드신 실내복의 분홍, 하양 또는 아주 화려한 빛깔 소맷부리 밖으로 나온 그녀의 아름다운 손은, 그녀 눈 속에는 있으나 마음 속에는 없는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0725 file
    Read More
  15. 11
    Jan 2018
    09:22

    [철학] 플라톤주의를 뒤집다(환영들)

    (...) "플라톤주의*를 뒤집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니체는 자신의 철학 과업보다 일반적으로는 미래의 철학 과업을 플라톤주의를 뒤집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이 과업을 이루기 위한 방식은 대개 본질의 세계와 외양의 세계 소멸을 의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731 file
    Read More
  16. 18
    Dec 2017
    03:12

    [철학] 『안티오이디푸스』 : 분리와 종합 · 근친상간 · 혈연과 결연 ·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 토지의 충만한 몸은 구별 없는 게 아니다. 괴로워하며 위험하며 유일하고 보편적이기에, 토지의 충만한 몸은 생산 및 생산자들, 그리고 생산의 연결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 위에는 또한 모든 것이 달라붙고 기입되고, 모든 것이 끌어당겨지고 기적을 낳...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111 file
    Read More
  17. 14
    Dec 2017
    04:23

    [철학] 들뢰즈 :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 · 표현 · 비신체적 변환 · 화행이론

    (...) 들뢰즈와 가타리는 '개인적 언표행위'란 없음을 입중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 '개인적인 언표행위란 없으며, 언표행위의 주체라는 것조차 없다.'(들뢰즈 · 가타리 1987: 79/I 85/156). 결과적으로 언어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며, 언표와 명령-어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3379 file
    Read More
  18. 12
    Dec 2017
    06:24

    [철학] 알튀세르의 중층결정 : 구조적 인과성·절합(articulation)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년~1990년)가 개진한 인과성의 세 양상(기계적 인과성·표현적 인과성·구조적 인과성)은 원인과 결과를 이어주는 특정한 사유 방식과 인식론이 연관되어 있다. '기계적 인과성'은 부분과 부분이 일대일 대응관계를 가리키며 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156 file
    Read More
  19. 12
    Dec 2017
    04:08

    [철학] 들뢰즈가 말하는, 욕망 · 대중 · 권력 · 제도

    (...) "미시-파시즘만이 다음과 같은 포괄적인 문제에 대답을 줄 수 있다. 욕망이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은 또 어떻게 억압을 욕망할 수 있는 것일까? 확실히 대중은 권력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은 일종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355 file
    Read More
  20. 05
    Dec 2017
    21:35

    [철학] 『안티오이디푸스』 : 기호(記號, sign), 그리고 기표(記標, signifiant)

    (...) 눈은 낱말을 본다. 눈은 읽지 않는다. 이 체계에서 낱말은 지시 기능을 갖고 있을 뿐, 자기 혼자 만으로는 기호를 구성하지 않는다. 기호가 되는 것은 오히려 그 몸 위에서 정의되었고, 낱말에 대한 표기 행위가 쓰인 미지의 얼굴을 그 몸이 드러내는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725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