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사50] 이데올로기 : 마르크스 Vs 알튀세르

by 이우 posted Apr 03, 2013 Views 1076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알튀세르.jpg


 

  이데올로기(독일어: ideologie, 영어: ideology)는 사람이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 규정짓는 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의식의 형태를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아이디어(Idea)’와 같은 어원이니 말뜻 자체로는 ‘생각’이나 ‘관념’이다. 그러나 단순한 아이디어와 달리 이데올로기는 여러 가지 생각과 관념이 뭉친 덩어리를 가리킨다.

 

  ① 이론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 : 가장 가까운 말로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한 개별 이론보다는 철학자나 정치가, 경제학자 개인의 포괄적 이론 체계를 가리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애덤 스미스의 분업 이론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지만 자유경쟁 자본주의에 관한 그의 경제 사상 전반은 이데올로기에 해당한다.

 

  ② 가치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 : 가치 중립적인 이론 체계에 비해 약간 가치가 개입된 이데올로기는 흔히 ‘이념’이라고 번역한다. 대표적인 예는 정치 이데올로기다. 이것도 이론 체계처럼 복합적인 이념의 덩어리를 가리키며 대중을 정치적 행동으로 이끌고자 할 때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해방 직후 우리 사회를 얼룩지게 했던 좌익 세력과 우익 세력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그런 경우다.

 

  ③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 :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을 말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지식사회학에서는 특정한 계급의 계층이 자신들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배후에 숨기고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내세우는 이념이나 관념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부르조아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경제성장 정책을 마치 사회 각계각층에 골고루 이익이 돌아가는 것처럼 선전할 때 그 이데올로기는 진실을 은폐하는 허위의식으로 기능한다.

 

  ④ 담론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 : 이데올로기를 추상적인 담론 체계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리오타르는 전통적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거대 담론을 비판하는데,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사실상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리오타르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는 과거와 같은 통합적인 사회 쳬계가 아니다. 과거에는 사회의 각 부분이 단일한 목적 아래 결집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불가능하다. 부분은 전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독자적인 존재와 운동의 방식을 가진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거대 담론으로 세계의 기원과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기획은 파산했다고 본다. 심지어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혁명적 이념?예컨대 마르크스주의?조차 거대 담론의 일반적인 결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역사적으로 실패했으며, 탈현대에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거대 담론은 항상 ‘통합’이라는 목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결국 그릇된 목적론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마르크스주의란 낡은 계몽주의의 기치를 현대에 되살리는 환상이라고 단정한다. 계몽, 자유, 해방 같은 근대의 거창한 이념들은 중세의 신을 대체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⑤ 무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 :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이 아니며 심지어 ‘의식’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이다. 노란 색안경을 쓰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듯이 이데올로기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늘 쓰고 있어야 하고 쓸 수밖에 없는 색안경과 같다. 주체가 이데올로기를 가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주체이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 허위의식

 

마르크스.jpg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란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서 품고 있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념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처음 학문적으로 사용한 것은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자 D.드 트라시의 <이데올로기 개론>(1801)이었다. 그의 이데올로지(관념학)는 관념의 형성과정을 개인의 심리 ·생리적 기반에 결부시키는 것으로서 단편적인 심리적 고찰에 그친다. K.마르크스와 F.엥겔스의 <도이치 이데올로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관념 형태가 사회의 전체적 구조에 계통적으로 관련지어졌고, <경제학 비판>(1959) 서문에서 이데올로기론이 성립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구조를 ‘해부학적’으로 규명했는데, 이데올로기에 관해서도 ① 그것이 본인의 사회적 존재에 따라 결정되며, ② 따라서 필연적으로 계급성 ·당파성을 지니고, ③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그 경제적 착취의 사실과 결부하여 폭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 원칙이 이데올로기론의 근저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관념론적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어느 시대에서나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피지배자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무기로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을 정립했다. 이에 대하여 사회학에서의 이데올로기론은 그것을 특수적이라 하여 ‘보편적 이데올로기’의 견해를 주장한다. <K.만하임>에 의하면 그것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적대하는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입장까지를 이데올로기론적 고찰의 대상으로 하려는 견해라는 것이다. <만하임>은 계급대립을 초월한 인텔리겐치아의 입장에 의해서 보편적 이데올로기의 견해를 지지할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와 같은 인텔리겐치아 자체가 어떤 사회적 기반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어 반드시 ‘보편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발달한 사회심리학적 이데올로기론은 사회적 기반과 이데올로기 중간에 퍼스널리티(personality)라는 매개의 항(項)을 두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이것은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집단의 이데올로기보다도 각 개인의 퍼스널리티 요인을 분석하는 것에 의해서 개인적 이데올로기의 심리적 형성 과정이나 병리현상(病理現狀)을 추궁하는 경우가 많으며,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다. 알튀세르는 네오막시즘적인 측면에서 이들 이데올로기에 접근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 무의식

 

알튀세르.jpg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확립한 경제이론의 독자적인 대상은 무엇인가? <자본>의 대상은 무엇인가? 마르크스의 대상과 그의 선행자들의 대상 사이에 있는 독자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알튀세르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자본>의 부제를 통해 질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을 시도한다. 즉, <자본>은 정치경제학이 스스로 사실들의 명증성을 갖는다고 간주하는 '경제적 사실들'-즉 자신이 어떠한 설명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주어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절대적 여건의 영역-을 대상으로 삼는 바, 이를 통해 이 '주어진 것'들의 명증성을 폐지하는 한편, 이들의 조건에 대한 분석을 가능케 함으로써 기존의 정치경제학과 근본적으로 단절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정치경제학의 (지식의) 대상과 구조를 한편으로 주어진 경제적 현상들―소비, 분배 및 생산―의 동질적 공간과, 다른 한편으로 욕구의 주체로서 인간―경제적 인간으로 주어진 것―에 기반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인류학'을 무매개적이며 직접적으로 관련지우는 것으로 파악한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이 양자의 통일체를 거부함으로써 정치경제학의 대상 자체를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마르크스가 그의 저작을 통해 '고전적 인류학'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소비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이를 경제적 주체의 인간적 본성과 관련시켜 모호하게 정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개별적 소비와 생산적 소비를 구분하여 이로부터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제 1부문과 제 2부문의 구별을 끌어내고, 부문간 비율의 생산구조에 의한 결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가치실현과 자본주의적 축적의 과정 및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법칙에 있어 본질적인 발견을 이룩한다.

 

  또한 사용가치와 '욕구'를 역사와 경제적 기능에서의 효과에 의해 정의함으로써 양자를 외관상 직접적인 양태로 결합하는 듯 보이는 개인적 소비를 통해 한편으로 생산의 기술적 능력(즉, 생산력)과 다른 한편으로 소득의 분배(즉, 잉여가치와 임금으로의 분할형태)를 확정하는 사회적 생산관계들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게 한다. 특히 소득의 분배 문제는 인간을 사회계급들로 분류하게 만드는데, 이 때문에 인류학적인 기초가 설 이론적 지반이 사라지게 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생산과 함께 욕구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인으로서의 분배에 관해서도 마르크스는 두 가지 측면, 즉 소득의 분배(생산관계에 관련된 것)일 뿐만 아니라 사용가치의 분배로 파악하는데, 여기에서 사용가치는 앞서의 분류에 따라 제 1부문(생산수단)과 제 2부문(소비수단)으로 나뉘고 이중에 전자는 소득과도 교환되지 않고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자본가계급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바, 이로써 사용가치 분배의 배후에서 인간의 사회계급으로의 분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즉, 어떠한 경우에서든 그 분할 속에서 생산관계들과 생산 그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로써 소비와 분배를 지배하는 것이 생산이라는 마르크스의 기본적 테제―이들 경제적 '현상들'이 '생산관계들'의 지배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가 인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배와 소비에 대한 생산의 우위는 중농주의만큼 오래되었을 뿐더러 '생산의 경제학자' 리카도(D. Ricardo)에 와서 그 체계적인 형태가 부여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생산의 우위를 주장했다는 것만으로는 마르크스의 독창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알튀세르는 잉여가치와 관련된 논지를 구사하면서, 이와 동일한 견지에서 리카도의 '소득의 분배'를 대체하는 마르크스의 '생산관계' 개념을 부각시킨다. 즉, 마르크스의 독창성은 생산의 우위를 주장하거나 증명한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개념에 대해 구래의 개념이 지시하는 대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의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생산의 개념을 변형시켰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책_for marx.jpg   알튀세르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생산을 노동과정과 생산관계의 통일로 이해하였는데, 알튀세르는 노동과정의 분석에 있어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 즉 노동과정의 여러 조건의 물질적 성질과 노동과정 속에서 생산수단이 갖는 지배적인 역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노동과정의 물질적 조건―마르크스는 이를 '경제적 존재형태'라고 개념화했다―에 대한 강조는 한편으로 모든 종류의 인간주의적·주관주의적·관념론적 노동관(觀)에 대한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른 한편으로 물질적 조건의 재생산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하는 긍정의 역할을 수행한다. (노동과정이라는 '지식의 대상'에 대한) 이같은 마르크스의 과학적 통찰은 특히 생산관계와 관련하여 경제적 분석의 장에서 구체적인 이론적·실천적 효과로 드러나는데, 이것이 앞서 말한 바 있는 불변자본/가변자본, 제1부문/제2부문 등의 개념이다.

 

  한편, 노동과정에서 '노동수단'의 지배적인 역할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조는 경제적 성장의 변형에 종속되는 외적 성질에 대한 '공격양식'을 확립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적 기본범주인 '생산양식' 개념을 성립케 하고, 동시에 상이한 노동수단간의 질적인 차이로서의 '생산성' 개념을 함쎄 구성해냄으로써 역사의 '시기구분' 뿐만 아니라 역사의 개념구성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마르크스는 생산이 자연에 대해 가하는 물질적 공격의 분화적 정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분화적인 통일양식 그리고 그러한 통일의 변이 정도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양식 개념은, 그러나 '인간-자연' 통일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들의 통일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 개념을 통해 생산의 물질적 조건과 함께 생산의 '사회적' 조건을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사회적 생산관계들은 '한편으로 생산의 담당자들과 다른 한편으로 생산의 물질적 수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한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생산의 담지자들 사이의 관계들에 나타난 독자적인 유형'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는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인간과 사물간의 관계와 대비하면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파악하는 인류학적 편향을 정정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역시 생산과정 속의 물질적 요소들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알튀세르는 분배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그에 따르면 분배는 한편으로 생산수단과 다른 한편으로 생산의 담당자들 사이에 고정된 어떤 규칙적인 비율로 이루어지는, 생산의 담당자들에 대한 생산수단의 일정한 귀속관계로 정의된다. 또한 저자는 봉건적 생산양식에 관한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마르크스가 생산에 관련되는 상이한 요소들―노동력, 직접적 노동자, (직접적 노동자가 아닌) 감독자, 생산의 대상, 생산수단 등―의 결합과 상호관련(이것이 곧 생산관계이다)을 통해 상이한 생산양식을 정의하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결합은 (현실적 생산이라는, 결합체의 결과가 갖는 고유한 성질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독자적인 결합양식들―재산, 소유, 처분, 향유, 공동체 등―을 매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바, 현재의 요소들의 상이한 관계들에 대한 독자적인 관계들을 적용하게 되면 정의된 생산양식들의 생산관계들을 구성하는 제한된 수의 구성체들이 생산되며, 이것이 이른바 '사회구성체'이다.

 

책_역사적 맑스주의.jpg  이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개념은 이 '결합'형태들의 변이원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역사주의가 아닐 뿐더러 그 자체로 분석의 독창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앞서의 분석 속에서 마르크스는 현재적인 요소들의 일정한 결합형태가 그 결합의 존속을 위해 불가결한 지배와 종속의 일정한 형태, 즉 사회의 특정한 정치적 양태를 포함하고 있음을 증명했으며, 이러한 정치적 구성체의 필연성과 형태가 기초하는 수준 역시 입증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알튀세르는 생산관계가 법적·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자신의 고유한 실존 조건의 전제로 삼는다는 것과 함께 생산관계가 사회적 총체의 어떤 수준에 위임된 효과성의 정도를 확정시킨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는 다시 생산관계들이 상부구조적 실존조건이 추상되면 자신들의 개념들로는 사유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일정한 생산양식에서 생산관계들에 대한 개념의 정의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상이한 수준 전체나 그 고유한 접합유형(즉, 효과성)에 대한 개념의 정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알튀세르는 소위 '경제적인 것' 그 자체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혁신한다. '경제적인 것'은 직접적 혹은 명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오직 전체구조의 상이한 수준들의 독자적 인 존재와 접합에 대한 정의를 전제로 하는 그 개념의 구성에 의해서만 식별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의 구성은 경제적인 것을 생산양식의 구조 속에 있는 하나의 수준, 심급 또는 영역으로서 엄밀히 정의하고, 그 구조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독자적인 장소, 그 확장 및 그 한계를 정의함으로써 전체 속에서 그 스스로를 정확하게 '분할'하고 '접합'해 냄을 통해 가능하다. 알튀세르는 이것이 생산관계들에 의한 경제의 결정이라는 마르크스의 테제로부터 도출되는 첫 번째 이론적·실천적 결론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주어진 경제적 현상들의 동질적 공간이라는 정치경제학의 전제는 설자리를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두 번째 결론이 도출된다. 알튀세르는 경제를 사회전체의 전반적인 구조 속에서 그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는 하나의 구조화된 영역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장소와 그 자신의 (상대적인)  부분적 자율성 속에서 하나의 부분적인 구조로서 기능하며, 또한 그러한 것으로서 자신의 요소들을 결정한다고 파악하고 있는 바, 이에 따르면 생산관계들의 구조가 이들 장소의 점유자인 생산의 담당자들이 차지하고 수행하는 장소와 기능을 결정한다는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진실된 '주체'는 소박한 인류학이 상정하는 '구체적 개인들'이나 '진실된 인간'이 아니며, 오히려 장소와 기능에 대한 정의자 및 분배자, 즉 생산관계들 그리고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들이 된다. 결국 욕구의 주체로서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인류학 역시 소멸하게 된다.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하면서, 알튀세르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근본적인 수정이 인식론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서유럽의 철학을 지배하는 '지식이론'의 합리적 핵심으로서 현실의 대상에 대한 지식은 '구체적인 것'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아니라 그 이론적 가능성을 위한 절대적 조건으로서 그 대상에 대한 개념의 생산에 의해 얻어진다는 테제를 추출해내면서, 기존의 선형적 인과성의 개념을 매개하는 것을 통해서는 심원한 구조적 복합성에 의해 결정되는 경제적 현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으므로, 정치경제학의 (지식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과성을 설명할 수 있는 상이한 개념(혹은 합리성)이 요청된다고 말한다.

 

책_on ideology.jpg   알튀세르는 이러한 철학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마르크스의 과학적 발견 속에 '실천적인 상태'로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고전철학이 효과성을 고찰하는 두 개의 개념(및 개념체계)을 고찰한다. 첫 번째의 체계는 인과성을 이행적이고 분석적인 효과성으로 환원함으로써 요소들에 대한 전체의 효과성을 고찰할 수 없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체계이며, 두 번째의 체계는 그 요소들에 대한 전체의 효과성을 다루기 위해 상정되었으나 원리적으로 전체가 내적인 본질로 환원될 수 있어 전체의 요소들이 표현의 현상적 형태들에 불과하다는 라이프니쯔의 표현개념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두 개념 모두 구조적 전체라는 전혀 다른 통일성의 유형, 즉 다른 구조에 의한 어떤 한 구조의 결정과 지배적이고 결정적인 구조에 의한 종속적인 구조의 요소들의 결정을 사고할 수 없다. 흔히 '과잉결정'으로 표현되는 이같은 구조적 인과성 개념을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 가치이론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서술'개념 속에 전부 요약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견해 속에서 구조를 경제적 현상들의 외부에 본질이 아닌, 그 효과들 속에서 갖는 내재성의 형태로 정의하였다고 말한다. 즉, 효과들은 구조의 외부에 있다거나 구조에 의해 특징을 각인 받는 하나의 미리 존재하는 대상, 요소 혹은 공간이 아니며, 동시에 구조는 그 고유한 요소들의 독자적인 결합이고 구조의 전체적 실존은 그 효과들로 구성된다는 구조적 인과성의 기본적 내용들을 모두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그러나 마르크스가 이같은 구조적 인과성을 명확히 개념화하지 못하고 다만 이전의 낡은 개념을 매개로 자신의 철학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결코 그로부터 기인하는 모순을 넘어서지 못하였음을 말하면서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극복의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마르크스를 징후적으로 읽어냄으로써 '실천적으로 존재하는' 마르크스의 철학을 개념화함을 통해서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지체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 13
    Apr 2018
    02:30

    [철학]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

    (...) 신의 죽음 또는 죽은 신이 자아(Moi)로부터 자아의 동일성과 관련하여 지니는 유일한 보증을, 말하자면 통일을 이루는 자아의 실체적인 기반을 빼앗아버린다고 말하였다. 즉 신이 죽었기 때문에 자아는 이제 소멸되거나 증발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4624 file
    Read More
  2. 19
    Mar 2018
    12:40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에로스(eros) 혹은 관능(sense)

    (...) 에로틱의 질적인 영역에서 가치전도가 일어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자유주의 아래서 상류사회의 기혼 남성들은 양갓집 규수로 자란 정실부인만으로는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연예인이나 집시 여인, 정부나 매춘부로로 부족분을 채우곤 했다. 사회가 합...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31949 file
    Read More
  3. 13
    Mar 2018
    15:45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선(Good)과 악(evil), 좋음(Good)과 나쁨(Bad)

    (...) 브레이은베르흐와의 서신은 모두 8통의 편지가 전해오고 있는데, 각각 4통씩 1664년 12월에서 1665년 6월 사이에 씌어졌다. (...) 곡물중개상이었던 블레이은베르흐는 스피노자에게 편지를 통해 악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처음에 스피노자는 자신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36139 file
    Read More
  4. 04
    Mar 2018
    17:58

    [철학] 『선악의 저편』 : 남성과 여성

    232.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럽이 일반적으로 추악해지는 최악의 진보에 속한다. (...) 238. (...) '남성과 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여기에 있는 헤아일 길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773 file
    Read More
  5. 01
    Mar 2018
    08:21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도덕(Morals)과 윤리(Ethics) · 정념(passion)

    (...) <너는 저 열매를 막지 말라.> 불안에 사로잡힌 무지한 아담은 이 말을 금지의 표현으로 듣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담이 먹을 경우에 그 아담을 중독시키게 될 과일이다. 그것은 두 신체의 만남,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77404 file
    Read More
  6. 01
    Mar 2018
    06:37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코나투스(conatus) · 욕망과 의지, 감정

    (...) 의식 자체도 원인을 가져야 한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자신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욕구(l' appetit)>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것은 단지 욕망에 대한 유명론적 정의일 뿐이며, 의식은 욕망에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는다고 정확...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0269 file
    Read More
  7. 01
    Mar 2018
    04:46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평행론(parallelism) · 신체와 의식

    (...) 스피노자는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모델, 즉 신체를 제안한다. 스피노자는 그들에게 신체를 모델로 세울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알지 못한다.> 무지에 대한 이 선언은 일종의 도전이다. 우리는 의식에 대해서, 의식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4817 file
    Read More
  8. 28
    Feb 2018
    20:58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철학자의 고독

    (...)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를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40499 file
    Read More
  9. 27
    Feb 2018
    14:28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물 만난 고기떼

    (...) 고도로 집중된 산업이 포괄적인 분배 장치를 갖추게 되면서 유통 부문은 해체되었지만 이 부문은 기이한 사후 생존(Post-Existense)을 시작하게 된다. 거간꾼 직업은 그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중개인의 삶이 되며, 심지어 사...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009 file
    Read More
  10. 27
    Feb 2018
    01:01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프루스트를 위하여

    (...) 재능 때문이든 허약한 체질 때문이든 유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이 예술가나 학자 같은 지적인 작업을 갖게 되면 그는 동료라는 역겨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남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의 독립성을 질투한다거나...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945 file
    Read More
  11. 02
    Feb 2018
    00:08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입술 · 입맞춤 · 기관

    (...) 나는 키스하기에 앞서 우리가 사귀기 전 그녀가 바닷가에서 지녔다고 생각했던 신비로움으로 다시 그녀를 가득 채워 그녀 안에서 예전에 그녀가 살았던 고장을 되찾고 싶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런 신비로움 대신에, 나는 적어도 우리가 발베크에서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1673 file
    Read More
  12. 01
    Feb 2018
    23:45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죽음, 그리고 일상, 생명 에너지

    (...) 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9092 file
    Read More
  13. 15
    Jan 2018
    08:55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슬픔

    (...) 질베르트의 징긋한 얼굴을 보는 짧은 순간에 비해, 그녀가 우리의 화해를 시도할 것이며, 심지어는 우리 약혼까지 제안하는 모습을 내가 꾸며 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상력이 미래를 향해 끌어가는 이 힘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거로...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30181 file
    Read More
  14. 14
    Jan 2018
    19:19

    [문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기억(memorie)과 추억(souvenir), 그리고 작품

    (...) 우리는 집에만 있지 않고 자주 산책을 나갔다. 가끔식 옷을 입기 전에 스완 부인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크레프드신 실내복의 분홍, 하양 또는 아주 화려한 빛깔 소맷부리 밖으로 나온 그녀의 아름다운 손은, 그녀 눈 속에는 있으나 마음 속에는 없는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10722 file
    Read More
  15. 11
    Jan 2018
    09:22

    [철학] 플라톤주의를 뒤집다(환영들)

    (...) "플라톤주의*를 뒤집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니체는 자신의 철학 과업보다 일반적으로는 미래의 철학 과업을 플라톤주의를 뒤집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이 과업을 이루기 위한 방식은 대개 본질의 세계와 외양의 세계 소멸을 의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724 file
    Read More
  16. 18
    Dec 2017
    03:12

    [철학] 『안티오이디푸스』 : 분리와 종합 · 근친상간 · 혈연과 결연 ·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 토지의 충만한 몸은 구별 없는 게 아니다. 괴로워하며 위험하며 유일하고 보편적이기에, 토지의 충만한 몸은 생산 및 생산자들, 그리고 생산의 연결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 위에는 또한 모든 것이 달라붙고 기입되고, 모든 것이 끌어당겨지고 기적을 낳...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4107 file
    Read More
  17. 14
    Dec 2017
    04:23

    [철학] 들뢰즈 :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 · 표현 · 비신체적 변환 · 화행이론

    (...) 들뢰즈와 가타리는 '개인적 언표행위'란 없음을 입중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 '개인적인 언표행위란 없으며, 언표행위의 주체라는 것조차 없다.'(들뢰즈 · 가타리 1987: 79/I 85/156). 결과적으로 언어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며, 언표와 명령-어들...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3361 file
    Read More
  18. 12
    Dec 2017
    06:24

    [철학] 알튀세르의 중층결정 : 구조적 인과성·절합(articulation)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년~1990년)가 개진한 인과성의 세 양상(기계적 인과성·표현적 인과성·구조적 인과성)은 원인과 결과를 이어주는 특정한 사유 방식과 인식론이 연관되어 있다. '기계적 인과성'은 부분과 부분이 일대일 대응관계를 가리키며 근...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0084 file
    Read More
  19. 12
    Dec 2017
    04:08

    [철학] 들뢰즈가 말하는, 욕망 · 대중 · 권력 · 제도

    (...) "미시-파시즘만이 다음과 같은 포괄적인 문제에 대답을 줄 수 있다. 욕망이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은 또 어떻게 억압을 욕망할 수 있는 것일까? 확실히 대중은 권력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은 일종의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5350 file
    Read More
  20. 05
    Dec 2017
    21:35

    [철학] 『안티오이디푸스』 : 기호(記號, sign), 그리고 기표(記標, signifiant)

    (...) 눈은 낱말을 본다. 눈은 읽지 않는다. 이 체계에서 낱말은 지시 기능을 갖고 있을 뿐, 자기 혼자 만으로는 기호를 구성하지 않는다. 기호가 되는 것은 오히려 그 몸 위에서 정의되었고, 낱말에 대한 표기 행위가 쓰인 미지의 얼굴을 그 몸이 드러내는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6719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25 Next
/ 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