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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칼폴라니 『거대한 변환』 : 빈민구제법·스피남랜드법, 1795년

by 이우 posted Jul 29, 2020 Views 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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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사회는 사회를 시장의 들러리로 삼으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저항했다. 노동시장이 없는 시장경제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노동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은 특히 영국의 농촌문명 같은 경우 전통적 사회의 골조를 허물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795년부터 1834년 사이에 영국의 노동시장 창출은 스피남랜드(Speenhamland)법을 통해 저지되었다.

  사실, 노동시장은 새로운 산업체계에서 마지막으로 조직된 시장이고, 이 최후의 단계를 밟은 것은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이어서, 일반사람들조차 노동시장이 없는 것보다는 그것이 있어서 생겨나는 재난이 더 참을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결국 자유노동시장은 그것을 창출하는 데 이용된 비인간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모든 관련자에게 재정적으로 유익하다고 판명되었다. 그렇지만 결정적 문제점이 곧바로 나타났다. 자유노동시장의 경제적 이익은 그것이 초래한 사회파괴를 벌충할 수 없었다. 다시 노동을 보호할 새로운 규제가 필요했지만, 이번에는 노동을 시장 메커니즘 그 자체의 기능으로부터 보호할 규제였다. 노동조합이나 공장법과 같은 보호제도들은 가능한 한 경제적 메커니즘의 요청에 따라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장의 자기 조정작용을 방해하고 급기야는 그 체제 자체를 파괴했던 것이다. (중략)

  영국에서 토지와 화폐는 노동보다 먼저 가동되었다. 노동자는 사실상 자기 교구에 유폐된 셈이어서, 노동자의 물리적 이동에 대한 엄격한 법적 제한 때문에 전국적 노동시장은 형성될 수 없었다. 1662년 정주법(Act of Settlement)이 정한 이른바 교구 농노제의 규칙은 1795년에 와서야 완화되었다. 같은 해에 스피남랜드법 혹은 <급부금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이 완화조치는 전국적인 노동시장의 확립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이 스피남랜드법이 의도하는 것은 정반대였다. 즉 그것은 튜더 왕조나 스튜어트 왕조로부터 내려온 온정주의적인 노동조직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1795년 5월 6일, 불황이 심각하던 당시에 뉴버리 근처 스피남랜드의 펠리칸 장에 모인 버크셔 치안판사들은 임금부조금의 액수는 빵의 가격에 연동해서 정해야 하며, 따라서 빈민 개개인의 수입에 관계없이 최저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치안판사의 유명한 권고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즉, 일정한 품질의 빵 1갤런이 1실링하는 경우에는 모든 빈민과 근면한 사람은 그 자신의 노동 혹은 가족의 노동 또는 구빈세로부터 급여에 의하여 일주일 3실링을 생계비로 지급 받고, 처와 가족의 부양비로 1실링 6펜스를 지급받는다. 1갤런의 빵이 1실링 3펜스 하는 경우에는 매주 4실링을 지급받고 1실링 10펜스가 부가된다. 오를 때마다 본인 몫으로 3펜스, 가족 몫으로 1펜스씩 더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주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피남랜드의 수치가 채용되었다. 이것은 긴급조치로서, 비공식적인 형태로 도입되었다. 그것은 보통 법률이라고 불리었지만 그 수치 자체는 결코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생존권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혁신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834년에 폐지되기까지 경쟁적 노동시장의 확립을 방해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폐지 2년 전인 1832년 중산계급은 새로운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이러한 방해요인의 제거를 겨냥하여 권력을 밀어붙였다. 사실 임금 시스템스피남랜드에서 목격했던 생존권의 철폐를 절대적으로 요구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새로운 경제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도 임금을 위해 노동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중략)

  모순은 명백했다. 스피남랜드법은 구빈법의 자유로운 운용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구빈법은 입법취지에 역행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법체계에서 빈민은 취득하는 임금에 관계없이 노동을 강요당했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만이 구제될 자격을 얻었다. 결국 임금부조라는 형태의 구제는 의도되지도 실행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스피남랜드법 아래에서는 임금이 법률로 정해진 일정액의 가계소득에 미달하는 한 고용되어 있어도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임금을 받는가와 무관하게 수입은 같았기 때문에 노동자는 고용주를 만족시키는 데에 실제로 관심이 없었다. 수입이 기준 임금액과 다른 경우란 실제로 지불되는 임금이 규정액을 초과할 경우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시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고용주는 어떤 임금으로도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가 아무리 적게 지불하여도 지방세로부터 보조금이 노동자의 소득을 규정액으로 끌려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수년 내에 노동의 생산성은 저하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고용주에겐 규정 액수를 초과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핑계가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의 강도, 즉 노동할 때의 주의력이나 효율은 일단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시늉만 하는 노동과 구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노동이 여전히 강제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원외구제(outdoor relief)가 일반화되었으며, 구제소에서 구제하는 경우조차 소내에 있는 자에게 강제되는 일거리는 이제 노동자라는 이름조차 무색할 정도가 되었다. (중략)

  이만큼 보편적으로 평판이 좋았던 방법은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부모들은 자녀양육에서 해방되고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용주는 자의적으로 임금을 감액시킬 수 있었고, 노동자는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관계없이 기아로부터 해방되었다. (중략) 장기적으로 그 결과는 소름끼칠 만한 것이었다. 대중의 자존심이 타락하여 임금보다도 구빈을 바랄 지경이 되었고, 공공기금으로부터 보조받는 임금은 바닥을 모르는 듯이 내려가서 더욱 더 세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지방사람들은 서서히 빈민화되어 갔다. '일단 세금에 의존하게 되면 항상 세금에 의존한다'는 금언은 실로 진리였다. 급여금제도의 장기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초기 자본주의의 인간적·사회적 퇴락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중략) 노동시장 없이 자본주의를 질서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 (중략)

  스피남랜드 아래서 사회는 두 개의 적대세력으로 갈라졌다. 한편은 온정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시장 시스템의 위험에서 노동을 보호하려는 세력이었으며, 다른 한편은 시장체계 아래서 토지를 포함한 생산요소를 조직하고 대중으로부터 이전의 지위를 박탈하여 노동을 판매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도록 강요하려는 세력이었다. 고용주라는 새로운 계급이 창출되고 있었지만 그에 대응하는 피고용자계급은 스스로를 조직할 수 없었다. 엔클로저 운동의 새로운 거대한 파도가 토지를 가동시키고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산출시키고 있었으나 한편으로 구빈법의 문란이 노동을 통한 생계유지를 방해했다. 당시의 사람들이 대중의 반기아상태와 이에 병행하는 생산의 경이적 상승이라고 하는, 일견하여 모순된 현상에 걸려버렸던 것은 당연했다. 1834년까지는 어떤 조치도 스피남랜드법의 유지보다는 낫다는 것이 사려 깊은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받아들인 일반적 확신이었다. 러다이트(Luddite)들이 시도하려 했듯이 기계가 파괴되든지 아니면 정상적인 노동시장이 창출되든지 양자 중 택일을 해야 했다. (중략)

  1834년 구빈법의 수정은 노동시장에 대한 이러한 장애를 제거했다. 결국 생존권이 폐기된 것이다. 그 법률의 과학적 잔혹성은 1830년대나 1840년대 대중의 감정에 큰 충격을 주어서, 당시의 맹렬한 항의는 후세 사람들의 눈에 어른거릴 정도였다. 원외구제폐지되었기 때문에 더욱 곤궁해진 빈민 대다수는 참혹한 그대로 방치되었고 더욱 비참하게 고생하던 사람들 중에는 수치스런 나머지 구제소로 들어갈 수 없었던 '수혜자격을 갖춘 빈민'들도 있었다. 아마도 근대사상 이 이상 무자비한 사회개혁이 실행되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구제소 입소 심사를 한답시고 진정한 빈곤의 기준을 제공하는 체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짓뭉갠 것이었다. (중략)

  이제 노동빈민은 안 보이는 메커니즘의 압력에 의해 그러한 계급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스피남랜드법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동물처럼 보살핌을 받아왔다면, 이제 그들은 모든 불운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스피남랜드법이 퇴폐적인 안락한 고통을 의미한다면 이제 노동자는 사회 속에서 보금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스피남랜드법이 이웃, 가족, 농촌환경 등의 가치를 혹사시켰다면 이제 사람들은 가정과 친족으로부터 분리되고 그 뿌리를 절단 당하고 가치 있는 모든 환경으로부터 단절되었다. 요컨대 스피남랜드법이 가만히 있는 데에서 생기는 부패를 의미했다면 이제 위험은 몸을 노출시키는 데서 오는 죽음의 위협이었다. 1834년에 비로소 영국에 경쟁적 노동시장이 확립되었다. (...) 
  
- 『거대한 변환 : 우리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 · 칼 폴라니 저 · 박현수 역 · 대우 학술 총서 · 1991년 · 원제 :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f Our Time, 1957. p.1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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