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권력에의 의지』 : 헌사·머리말

by 이우 posted Dec 12, 2020 Views 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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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의의지.JPG


  권력에의 의지
  모든 가치의 가치 전환의 실험

  세계는 무한히 해석 가능하다.
  모든 해석이, 생장의 징후이거나
  몰락의 징후인 것이다.
  통일 일원론은 타성(惰性)의 욕구이며,
  해석의 다수성이야말로 힘의 징후이다.
  세계의 불안하고 혼미한 성격을 부인하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1.
  위대한 사물이 바라는 바는, 그것에 관하여 사람이 침묵하거나,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이>란, 말하자면 <냉소적으로> 혹은 <무구(無垢)하게>라는 뜻이다. 

  2.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 세기의 역사이다. 나는, 그 다가오는 것을, 더 이상 별 다른 모양으로 오거나 할 수 없는 것을, 즉 니힐리즘(Nihilisme)의 도래를 쓰고 있다. 이 역사는 지금에 와서는 이미 이야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필연성 자체가 여기에 적용하기 시작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미래는 벌써 백여 가지 징후 가운데 드러나 있으며, 이 운명은 도처에서 자신을 고시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유럽 문화는 오랜 것으로 이미 10년 또 10년마다 더해 가는 긴장의 고문(拷問)으로 인하여 하나의 파국을 향하기라도 하듯 움직이고 있다. 불안하고 난폭하게, 허둥대면서, 마치 그것은, 종말을 의욕하면서, 너는 그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그 자신을 뒤돌아보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분류(奔流, Storm)와 흡사하다.

  3.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와는 반대로,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 이외에는 지금껏 아무 것도 해오지 않은 자이다. 말하자면 그는, 그 자신의 이익을 옆으로 밀쳐 두고는, 바깥으로 벗어나는 가운데, 인고 가운데서, 주저 가운데서, 낙오 가운데에서 발견한 본능으로부터의 철학자이자 은둔자로서, 이미 미래의 온갖 미로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 적이 있는, 모험하고 실험하는 정신으로써, 닥쳐오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에는, 과거를 끊임없이 되돌아 보는 예언조(豫言鳥)의 정신으로서, 유럽 최초의 완전한 니힐리스트로서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니힐리스트는, 니힐리즘 자체를 벌써 그 자신의 내부에서 종말까지 극복해 놓고 있어서―그것을 그 자신의 배후에, 그 자신의 발 아래에, 그 자신의 외부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4.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 미래의 복음서가 명명되어야 할 표제의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고 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Macht, 모든 가치의 가치 전환의 실험)>―이 정식(定式, formel)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원리와 과제에 관한 일종의 반대운동이다. 이것은, 어느날엔가 미래에는 저 완전한 니힐리즘을 해소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전제하고, 오로지 그것에 기초하여 그것에 유래할 때에만 올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다. 도대체 왜 니힐리즘의 도래가 지금이야말로 필연적일까? 그것은, 우리의 지금까지의 여러 가지 자체가 니힐리즘 가운데서 그 최후의 귀결에 도달하기 때문이며, 니힐리즘이야말로 우리의 위대한 여러 가치나 여러 이상에 대해 철저하게 고안된 이름이기 때문이다―이를 <여러 가치>의 가치가 본래 무엇이었는가를 간파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니힐리즘을 먼저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날엔가는 새로운 여러 가치를 필요로 한다.

 - 니체 『권력에의 의지』(청하. 1992년) 제1권 유럽의 니힐리즘. <헌사>, <머리말> 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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