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 주체의 죽음, 해체와 탈중심화

by 이우 posted Nov 12, 2019 Views 1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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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주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현대철학의 쟁점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현대철학은,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절대화된 주체, 이성적 주체, 세계 의미 부여자로서의 주체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등은 근대철학, 특히 그 가운데서 독일관념론 전통을 통해 강조된 주체를 해체하거나 탈중심화한다. 따라서 주체와 관련된 철학에서 강조하던 명증성의 문제, 지각의 문제, 의식의 문제 등이 권력의 문제, 욕망의 문제, 텍스트의 문제로 대치된다. 이와 같은 경향에는, 한편으로는 현상학과 실존철학,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의 과학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던 실증주의적, 분석철학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서양철학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깔려 있다.


  주체의 해체와 탈중심화에는 서양철학에 깔려 있던 자아 중심적 사고를 노출하는 일과 서양철학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이론 이성의 우상을 파괴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해체 후 무엇이 올 것인가"하는 것이다. 만일 절대화된 주체가 죽었다면, 또는 죽여야 한다면 그 이후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의 철학은 포스터모더니즘 이후의 철학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 레비나스는 무엇보다 서양의 자아 중심적 철학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서양철학은 '다른 이(타인, 타자)에 대해 거의 체질적으로 거부 현상을 보이는 철학으로 '다른 이'와 '다른 것'을 나(자아)로 환원하거나 동화하고자 했다고 그는 보고 있다. 이것은 결국 나의 개념적 인식이나 실천적 행동을 통해 '다른 이'와 '다른 것'을 지배하는 경향을 지배하는 전쟁의 철학, 전제주의의 철학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비나스는 서양의 자아 중심적 철학에 대립해서 다른 이의 존재를 존경하고 다른 이와 함께 하는 '타자성의 철학' 또는 '평화의 철학'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안한다.


   여기에는 전통철학이 무시한 여러 주제들, 예컨대 쾌락과 신체성, 노동과 거주, 여자와 아이의 존재, 고통의 문제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레비나스는 주체성을 '타인을 받아들임(l'hospitalite)' 또는 '타인을 대신한 삶(la substitution)' 등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삶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가지면서도 이 세계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책임을 통해 이루어짐을 레비나스는 강조하고 있다.  (중략)


  그의 철학은 후설과 하이데거를 통해 형성되었지만 그들의 세계관과 삶에 대한 이해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후설과 하이데거, 그리고 레비나스가 즐겨 쓰는 현상학적 용어들(예컨대 지향성 시간, 존재, 초월, 신체성, 언어)을 잘 분석해보면 다같이 현상학 전통에 서 있으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철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비나스는 누구보다도 인간의 고통과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진 철학자이며 고통받는 자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매우 강조한다. (...)


-  『시간과 타자』(에마누엘 레비나스 · 강연안 · 문예출판사 · 1996년 · 원제 : Le Temps et L`Autre, 1947년) <옮긴이의 말>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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