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험사회 : 위험 사회의 도래 · 대항담론과 대항지식

by 이우 posted Dec 08, 2018 Views 16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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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당연한 시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세계보건기구가 홍역의 완전박멸을 선언하는 그 순간, 에즈볼라광우병이니 O-157이니 하는 신종 병역들이 화려하게 등단하여 그 같은 선언을 전혀 무색하게 만든다. 근대화의 길을 숨가쁘게 달려와 이제 '풍요 사회'를 이룩었다고 자축하는 순간, 마른 목을 축일 바가지의 맑은 물조차 남아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전기 문명에 도취되고 화려한 소비 문화에 빠져드는 순간, 이 같은 도취와 탐닉을 위해 자칫 인류를 멸종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핵발전소들이 도처에서 설치된다.

  이런 문제점들이 '후진'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일까? 썩어가는 한국의 하늘과 물을 보고는 한숨 지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푸른 하늘과 들을 보고 부러워하지 말기를.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 고갈될 운명인 물질자원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므로. 이것이 미국을 통해 단적으로 예시되는 현대 풍요사회의 문명사적 역할이다. 이 역설을 현대사회의 본성이다. 후진과 선진의 대비 구도 속에서, 이 역설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여전히 부차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다루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같은 사정 때문에 현대 사회의 역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자기증식하게 된다. (중략)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 인류는 역사상 유래없는 생산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명실상부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혁명의 시대'와 '제국의 시대'를 거치며 확립된 근대 산업사회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인류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다. 그리고 포드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요의 시대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지구적 환경 위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풍요의 이면에서 무언가 거대한 문제가 체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류는 가대한 체계적 위험을 무릅쓰는 대가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게 된 것이 아닐까?

  본래 위험(Risk)이라는 용어는 17세기 스페인의 항해술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 위험을 감수하다, 암초를 뚫고 나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로부터 위험이란 부를 얻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난관이라는 함의를 갖게 되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위험은 잠재적인 부수효과이자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역사의 무대에 새로 등장한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에 그처럼 많은 모험가들이 나타나고, 자본의 탐욕스러운 시장확보 전쟁이 곧잘 영웅적 모험담으로 묘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부(富)란 그런 '위험'을 감수했을 때에만 수여되는 트로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낭만의 시대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 짧은 시기가 봄꽃 지듯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산업사회를 실제로 뒷받침해 온 것은 기술-과학의 발전과 이것에 기반한 군사-경제력이었다. 이른바 합리화 내지는 근대성으로 널리 알려진 이 같은 발전의 과정에서 부는 체계적으로 확대재생산되었고, 그와 동시에 위험은 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우연적 난관에서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정상적 개연성으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부의 추구와 그 분배의 문제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우연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겼던 산업사회가 그 정점에서 맞이하게 된 것은 구조적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험사회'이다. (중략)

  독일의 사회학자인 올리히 벡은 <위험사회>(1986년)에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추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위험 사회로서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현대의 위험은 방사선과 같이 인간의 평상적인 지각능력을 완전히 벗어난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위험의 분배 및 성장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위험의 사회적 지위가 나타난다. 셋째, 위험의 확산과 상업화는 자본주의의 발전논리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대신에 자본주의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다. 넷째, 부는 소유할 수 있지만 위험으로부터는 그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다섯째, 사회적으로 공인된 위험은 특수한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다. 지금까지 비정치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정치적인 것으로 변한다.

  위험이 지각 범위를 벗어나고 산업의 논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면서 현대 산업사회는 위험사회로 이행된다고 율리히 벡은 주장한다. 위험사회는 현대 사회가 존재론적으로 재앙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대의 위험은 체르노빌을 통해 이미 그 재앙의 실상을 명확히 드러냈다. (중략) 녹색혁명을 통해 인류는 엄청난 식량증산을 이룩하는 반면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세월을 통해 이룩된 생물종의 다양성을 순식간에 붕괴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다름 아닌 바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생태 위기라는 새로운 '인위적'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현대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현실 인식에 기초하여 벡이 주장하는 성찰적 근대화란 이처럼 '중요 사회'를 향한 근대화 과정이 '위험사회'로 귀착되는 과정을 뒤집고 반전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산업사회의 원리들 자체를 성찰하여 산업사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중략)

  성찰적 근대화의 과정은 다양한 부문에서 다양한 대항담론과 대항지식의 형성을 촉구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각종 쓰레기의 처리나 핵발전의 문제는 여기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듯이 이 문제들은 언제나 전문지식으로 합리화된다. 전문가들이 연구해 본 결과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또는 조만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정치-행정의 발표를 늘 접하고 있다.

  대항지식을 제시하는 것은 이 같은 정치적 관행에 맞서는 것이다. 정치와 전문지식이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문지식의 연옥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기존의 전문지식에 맞설 만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위험사회의 사회운동이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양한 분화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새롭게 자신을 세우려는 모든 것은 낡은 것의 핵심을 공격해야만 한다. 여기서 산업사회를 지탱해 온 궁극 원리인 '진보'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진보에 대한 무한 신뢰야말로 현대 문명을 화산 위에 세운 원동력이었다. (...)

   -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울리히 벡 · 새물결 · 2006년 · 원제 : Risikogesellschaft, 1986년), <역자 홍성태의 서문> 중에서,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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