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생명 · 공동체 · 노동력 교환 · 재산의 공유

by 이우 posted Jul 18, 2018 Views 1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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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닭 잡아와." 어린 농부는 지체 없이 달려가서 애를 쓰다가 닭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손쉽게 닭의 양 발을 붙잡은 농부는 곧 점심거리가 될 닭을 엄마에게 넘겨 주었다. 구미는 닭의 다리를 묶고 옆으로 눕혔다. 나는 의아했다. 구미가 닭을 그 상태로 내버려두고 다른 부엌일을 하러 가버렸기 때문이다. 구미가 닭의 존재를 다시 언급한 것은 한 시간쯤 뒤에 집에 온 자신의 아샤오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닭이 있어." 말을 듣자마자, 구미의 아샤오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차렸다. 그는 고기용 손도끼를 가지고 신속하게 닭을 잡았다. (중략) "왜 아샤오가 올 때까지 닭을 잡지 않고 기다렸어요?" 내가 구미에게 물었다. "우리 모쒀 여자들은 절대 살생을 하지 않아요. 구미가 답했다. "우리는 죽은 사람도 절대 만지지 않고 장례를 지내려고 시체를 염할 때에도 일절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농부가 닭을 잡으러 달려갈 때부터 닭을 잡아 난롯가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 모쒀인 특유의 생활방식이 깃들어 있었다. 방금 직접 지켜본 이 장면은 모쒀족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를 요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회에서는 여성을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하는 힘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삶과 빛의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여성의 신성한 의무라고 믿었다. 이 사회에서 삶과 빛을 맡는다는 건 죽음과 거리를 둔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엔 동물을 잡거나 직간접적으로 시체를 다루는 일이 전부 포함되었다. 더럽다고 여겨지는 일은 남자들이 도맡아 했다. (중략)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똑같은 장면을 보게 되곤 했다. 가축을 도살할 때면 여성들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서 눈을 가렸고, 남자들이 동물을 죽이고, 속을 정리한 뒤에 고깃덩어리를 만들어서 여성들에게 건네 주었다. (중략) 여성이 차지한 특별한 지위에 얽힌 이야기들이 더 많이 숨어 있어 있었다. (중략)

  가장으로서, 구미는 농장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경작과 농사 일정을 계획하고, 어떤 동물을 몇 마리나 기를지 전부 결정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체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 가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 구미는 대부분의 농사일을 해냈다. 낫을 들고 돼지를 먹일 꼴을 베어 바구니에 짊어지고 돌아와, 풀을 손으로 갈가리 찢어서 다진 감자와 쌀겨를 섞은 뒤 돼지에게 먹였다. 이렇게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먹이고, 경작하고 추수하고, 쌀과 옥수수, 감자를 저장하고, 집안의 식사를 모두 책임졌다. 여기서의 식사에는 가족 구성원뿐 아니라 기르는 동물까지 전부 포함된다. 그러니 구미가 가계의 재정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맡은 것이 놀랄 일도 아니다. (중략)

  "나 내일 모내기 할 건데, 와서 볼래?" 다음날 구미의 집으로 가자, 여러 명의 여성들이 구미의 마당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찐빵과 차로 아침 식사를 끝낸 참이었다. "시작하자." 구미가 머리에 긴 천을 감으며 말했다. 구미와 여덟 명의 친구들은 긴팔 옷에 작업용 바지를 입고서는 맨발로 집 뒤에 있는 논으로 향했다. 이들은 구미가 이전에 농장 구석에 심어둔 모를 한 움큼씩 붙잡고 물을 댄 논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철벅거리며 논으로 걸어들어간 뒤에 일렬로 섰다. 마치 큐 신호를 맏은 듯이, 사람들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히곤 일렬로 깔끔하게 들고 있던 모를 심었다. (중략) 세 번째 열에 다다랐을 때, 목청 좋기로 유명한 구미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다른 목소리가 민요가락에 합류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서로를 북돋았다. 이 강인한 여성들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계속해서 일했다. 구미는 일손을 돕는 친구들을 먹일 새참을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달려 갔다. (중략) 점심을 먹고 난 이들은 이제부터 몇 시간 동안 더 일해서 오늘 하루 동안 들인 수고를 마무리하기 위해 논으로 돌아갔다. (중략) 이들은 땅거미가 질 무렵에 구미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중략)

  "친구들이 어떻게 이렇게 기꺼이 도와주는 거야?" 설거지를 마친 구미에게 내가 물었다. "친구들과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서로 도와주었어. 올해는 우선 내 농장을 시작으로 해서 일이 끝나면 저기 저 친구 농장 일을 도울 거야." (중략) 노동력을 교환하는 혁신적인 방법에 깃든 공동체 정신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중략) 모쒀족을 둘러싼 공동체 정신은 아주 강력하다. 그래서 도움은 종종 어떤 이유를 요구하지 않고 셈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주어지곤 한다. (중략)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특이한 방식을 거쳐 공동체가 소유하는 재산이라는 관념을 낳는다. (중략) 처음으로 이 개념을 겪은 건 구미가 이웃에게 달려가 소금 두 자루를 '빌리던' 광경을 보았던 때로 기억한다. 그 다음에는 한 남자 친구가 자신의 삼촌 집에 가서 숯을 한 짐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집에서 바비큐를 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집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숯을 들고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어떨 때에는 숯보다 더 큰 것도 공공재로 취급된다. 어느 날 구미의 집에서 이웃 남성이 찾아와 구미 가족이 사용하는 오토바이 열쇠를 달라고 했다. 남성은 시내에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갈 교통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기지는 잠시 주춤하는 기색도 없이 열쇠를 넘겨 주었다. 남성은 오토바이를 타고 신속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안 물어보고 오토바이를 빌려준 거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내가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애초에 거절하는 선택지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양 기지가 답했다. "나였어도 똑같이 했을 거야." 기지가 덧붙였다. 비로소 나는 공공재산의 개념이 소금 한 자루에서 오토바이까지, 즉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걸쳐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모쒀인들의 실생활에서 재산의 공유라는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긱접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여전히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관찰자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재산 공유의 의미가 확실하게 와닿았던 순간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때였다. 일전에 나는 주변을 이동할 때 쓰기 위해 새 차를 샀다. 는 인근 호수 부근의 튼튼해 보이지만 무너지기 쉬운 산길과 미끄러운 진흙탕 길 위를 잘 다녔다. 루구호를 장기간 떠나게 되었을 때, 차를 남겨놓고 가야 했기에 나는 좋은 친구인 한 남성에게 차 열쇠를 맡겼다. 당시 나는 이 차 열쇠가 어쩌다 차에 시동을 거는 데 쓰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남성이 내게 그 친구가 내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더라는 말을 전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시 한 번 루구호에 떠날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차를 사용해도 되는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너는 내 차를 써도 돼. 하지만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안 돼!" 나는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 차 가지고 호숫가 주변으로 관광객들 데려다주고 그러지 말아줘. 보험 적용이 안되거든." "걱정하지마." 열쇠를 넘겨 받으며 그가 답했다. (중략) 그런데 루구호로 돌아온 뒤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길 위에서 내 차를 목격했다는 증언을 늘어놓았고, 그들 역시 한 차 가득 실린 관광객들과 함께 호숫가 주변을 차로 돌았다는 것이다. 차 열쇠를 건네받은 친구는 차를 썻을 뿐만 아니라 내 차가 자기 것인 것처럼 행동했다. 친구는 차를 공동체에 속한 재산으로 여겼고 내 지침은 완전히 무시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공유 재산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 일련의 일들은 내 화를 돋웠다. 나의 모숴 친구에게, 누군가의 재산을 사용하는 데 제한을 두는 일은 이기적일뿐더러 그가 공동체 재산에 대해 가진 감각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나는 개인이 가진 재산에 대해 이들이 모이는 격의 없는 태도를 내면화해보고자 무진 애를 썼음에도 도무지 소유물에 대한 애착을 떼어버릴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루구호에서 보낸 시간이 몇 년이나 되었지만 내가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내 물건을 쓸 때면 여전히 속 깊은 데서부터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

-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추 와이홍 · 흐름출판 · 2018 ·년  · 원제 : The Kingdom of Women(2017년) <4. 모쒀인을 알아가다> p. 9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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