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소외

by 이우 posted Jun 20, 2017 Views 9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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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미니마 모랄리아.jpg

  (...) 소외는 바로 사람들 간의 거리가 소멸되는 데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주고받고, 토론하고, 결과를 실행하고, 통제하고 그 통제 틀 안에서 역할을 행하고 하는, 즉 몸과 몸이 부딪치는 관계 속에서만 서로를 묶는 정교한 그물망을 위한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며 한 인간에게 있어 그러한 바낕이 있을 때에만 안도 여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융의 추종자들 같은 반동적 인물들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이어(정신분석학자)의 논문 <에라노스>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어떤 주제에 직설적으로 접근하거나 거두절미한 채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문명의 틀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독특한 습관이다. 대화는 그 대신 본래의 대상 주위를 나선형 모양으로 맴돌 수밖에 없다."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 두 사람 사이를 최단 거리로 결합시켜주는 것은 그들이 마치 점들이나 되는 양 그 점들을 연결하는 직선이 된다. 오늘날은 건물 바닥에 시멘트를 부어 한 덩어리로 만들듯이, 인간들 사이를 메워주는 접착제는 그들을 함께 묶는 압박으로 대체된다. 다름은 더 이상 이해되지 않는다. 점심을 먹으면서 사업상의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부인의 건강과 안부를 묻는 몇 마디 말처럼 목적의 질서를 벗어나 있는 것들도 이 질서 속에 편입된다. 사업 얘기만 주책 없이 늘어놓아서는 안된다는 터부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무능력은 사실 같은 것이다. 교수형 당한 사람의 집에서 그 밧줄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은 장사이기 때문에 장사라는 것을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위 민주라는 이름으로 허례의식이나 구식 예절, 쓸모 없는 대화―쓸데없는 잡담이라고 의심 받는 것이 아주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를 없애버리는 행위나 분명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용인하지 않는 인간관계의 투명성 뒤에는 벌거벗은 야만성이 도사리고 있다. (...)

- <미니마 모랄리아>(테오도르 아도르노 · 길 · 2005년 ·  원제 :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a"digten Leben, 1951년)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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