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다이너마이트 니체 : 아, 이 위험하고 아름다운 '여성'

by 이우 posted May 23, 2017 Views 1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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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란 무엇인가. 니체는 우선 여성 자체를 남성적 '계몽'과 대비한다. '계몽'이란 한 마디로 여성을 남성화하려는 시도이다. 계몽된 여성, 학문적 여성은 여성으로서 퇴화한 여성이다. 여성에게 학문(과학)은 본성상 맞지 않다. 학문의 권태로움이나 무례함은 여성에게는 끔찍한 것이다. 게다가 여성에게는 계몽하기 힘든, 다시 말해 문명적으로 길들이기 힘든 성향이 많다. "여성에게는 현학적인 것(세세하게 따지는 것), 표면적인 것, 교사 같은 것(까다로운 것), 작은 주제넘은 것, 작은 방종, 그리고 작은 불손함 등이 감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여성이 무언가를 '말하고', '쓴다면', 그것은 '자신을 꾸미기 위해서'이거나(자신을 꾸미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속한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지배'를 위한 것이지 '진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진리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우리 정신의 '근본 의지'가 그렇듯이, 여성은 지배하기 위해 확대하고 축소하고 꾸며댄다. "여성의 큰 기교는 거짓말이요, 최고 관심사는 가상과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계몽'이니 '이성'이니 '말'이니 하는 것들은 결코 여성적이지 않다. 니체는 더 고발적으로 말한다. "나는 '여성'은 여성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여성의 친구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여성'에 대한 침묵을 가르쳤던 사람은 '늙은 여인'이다. "기이한 노릇이다. 여성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차라투스트라인데도 여성들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옳으니! 그런 일은, 여성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작은 진리', 즉 '여성에게 가려거든 채찍을 잊지 말라"는 말을 선물한다. 재미 있는 것은, 늙인 여인이 작은 진리가 "너무 소리치지 않도록" "입을 막으라"고 했다는 점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늙은 여인'은 언뜻 여성에 관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이 옳은 이유가 '여성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에 관한 진리에 대해서는 "입을 막으라고 했다"고 했다. (...)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모든 말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하나의 말'은 진리가 아니다. 즉 여성에 대한 '하나의 말'을 보편적 진리인 양 떠들어대는 말들은 여성이 내뱉을 때조차 독단적 남성의 말이다. (...)

  그러나 불행히도 여성 자신조차 여성을 착각한다. 이것은 '여성'이 '여성적인 것'애 너무 가까워일 수도 있다. 여성은 스스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진실을 너무나 확신할 때가 있다. 그러나 여성적 진실을 믿는 한에서는 '하나의 말'을 보편적 진리인 양 던지고 싶어하는 독단적 남성을 닮는다. 여성이 진리, 깊이, 정의에 대한 편견에 빠져들 때, 다시 말해 오류와 위장, 거짓의 중요성을 망각할 때 이런 ㅇ리이 일어난다. 마치 생존에 있어 오류와 위장, 거짓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한 생명체처럼 위험한 일이다.

  니체의 여성비판, 특히 당대 페미니즘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착각, 여성이 여성 자신에게 갖는 독단성을 비판하고, 계몽과 진리에 관심을 가질 뿐 삶의 육성, 즉 '섭생'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 아이를 '육성하는' 지혜를 잃어버린 여성을 문제 삼았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착각은 말할 것도 없다. '영원히-여성적인 것, 남성들은 여전히 그러한 것을 '믿는다'. 이를테면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고 했다. 하지만 절대적 헌신을 상징하는 영원한 여성은 남성의 유치한 몽상일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남성이 자신의 '이상'을 투여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 남성이 구원자로 상상하는 '여성이 여성적인 것'이란 "남자들만이 믿는 공상된 가치일 뿐이다." 오히려 '고상한 여성'이라면 이런 의미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란 '영원히 남성적인 것'임을 알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니체에 따르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란 '꾸밈'과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성은, 여성(진리, 자연, 본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니체는 <선악의 저편> 서문에서 '진리'에 대한 '철학자'의 잘못된 태도를 '여성'에 대한 '독단적 남성'의 태도에 비유한 바 있다. 237절은 이 비유를 다시 연상시킨다. 니체에 따르면 "이제까지 남성들은 여성들을 어떤 높은 곳에서 그들에게 잘못 내려온 새처럼 취급했다. 그것은 섬세하고 상처받기 쉽고 거칠며, 경이롭고 감미롭고 영혼이 넘치는 어떤 것"이었다. 남성들은 모두 이 새를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새를 놓치거나 죽여 버렸다.

  '여성'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법, '여성을 통해 자신의 아이'를 낳는 법을 보여준 것은 아시아의 남성이었고, 또 '아시아를 휼륭하게 계승한 그리스'였다. 그리스 남성들은 혹독한 경쟁과 훈련, 강제 속에서만 여성(진리, 자연, 본성)을 다룰 수 있고 또 여성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차라투스트라>의 '늙은 여인'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에게 갈 때 우리는 '채찍'을 준비해야 한다. 무용수가 자유로운 발끝을 그렇게 얻었듯이 여성은, 자연은, 진리는 그때 우리에게 아이를, 즉 '새로운 우리 자신'을 낳아줄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오늘날 '여성'에게는 이런 면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무르익게 하고, 우리의 아이를 낳아줄 비밀, 신비, 자연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여성의 퇴화'는 물론 '남성의 퇴화'와 관련이 있다("남성 안에 잇는 남성을 더 이상 원하지 않고 남성이 크게 육성되지 않을 때"). '여성의 퇴보'와 '남성의 어리석음'은 동시대의 산물이다. 니체에 따르면,오늘날 자립한 여성, 해방된 여성이란 자립을 위해 점원이 되어야 하는 여성, 즉 "점원으로서의 여성"일 뿐이다. 현대의 여성은 '왜소한 남성'이 되고 말았다.

  제7장을 마무리하는 것은 '여성'이다. 내 생각에 니체는 '도래하는 철학자', '미래의 철학자', '우리, 새로운 신앙을 가진 자'만큼이나 '여성'을 사랑한다. 물론 모든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랑하는 여성은 이런 여성이다. "여성에게서 존경과 때로는 공포마저 일으키는 것, 그것은 남성의 자연보다 더 '자연적인' 그녀의 자연이며, 이러한 것으로는 진정으로 맹수같이 교활한 유연함과 장갑 아래 숨겨진 호랑이 발톱, 이기주의의 단순함, 교육시키기 어려운 속성과 내적인 야성, 욕망과 덕성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 폭넓은 것, 방황하는 것이 있다. (...) 이와 같은 여러 공포에도 불구하고 이 위험하고 아름다운 고양이인 '여성'에게 동정을 갖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여성'이 더 고통받고 상처받기 쉬우며, 사랑을 욕구하고 환멸하게끔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은 매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우리에게 다른 역사가 가능한가. 니체는 '유로파'와 '뿔 달린 짐승'의 우화로 우리에게 희망과 우려를 전한다. "오, 유로파여! 유로파여! 너에게는 언제나 매력 있었으며 너를 거듭 위험에 빠뜨리던 뿔 달린 동물을 우리는 알고 있다! 너의 낡은 우화가 다시 한 번 '역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 <다이너마이트 니체-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읽다>(고병권 · 천년의상상 · 2016년) p. 28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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