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놀이와 명예 : 포틀래치 Vs 선물 의례

by 이우 posted Apr 01, 2017 Views 19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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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으로 승리가 있다. 승리하기는 경쟁자 혹은 적수를 상정한다. 혼자서 하는 놀이에는 승리가 없으며 그 놀이에서 거둔 소기의 효과를 가리켜 승리라고 할 수도 없다. '승리하기'는 무엇이고 '승리했다'는 무엇인가? 승리하기는 경기 결과에서 남들보다 우수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런 우수함의 증거는 승리자에게 전반적인 우수함의 외양을 안겨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게임 하나를 이긴 것 이상의 결과를 거둔다. 다시 말해 존경과 명예를 얻는 것이다. 이 존경과 명예는 그가 소속된 그룹에 이득이 돌아가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놀이의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한다. 승리의 성공은 개인으로부터 집단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특징은 더 중요하다. 경쟁적 '본능'은 권력 욕망이나 지배 의지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 일등이 되어서 그로부터 명예를 얻는 것이다. 그런 성공으로 인해 개인 혹은 집단의 집단의 권력이 높아지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겼다는 사실이다. 이겼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런 가시적 · 물질적 소득이 없는 경우로는 체스 게임의 승리를 들 수 있다. (...)

  민족지학은 아메리카 북서해안인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거주하는 인디언 부족의 기이한 관습을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그 관습은 통칭하여 포틀래치(potlatch)라고 한다. 콰키우틀 부족에서 발견되는 전형적 형태의 포틀래치는 엄숙한 대축제였다. 여기에는 두 그룹이 참가하는데 먼저 한 그룹이 상대 그룹에게 위엄과 의례를 담아서 엄청난 규모의 선물을 한다. 선물의 목적은 자기 그룹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선물을 받은 상대방 그룹은 일정한 기간 내에 그 선물에 상응하는 답례 선물을 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많은 답례를 해야 한다. 이런 기이한 증여의 축제가 그 부족의 모든 공동체 생활, 가령 의례, 법률, 예술 등을 지배한다. 탄생, 죽음, 결혼, 성인식, 문신새기기, 묘혈의 건립 등 중요한 사건들은 포틀래치를 시행하는 계기가 된다.

  추장은 집을 지을 때나 토템 기둥을 세울 때 포틀래치를 보낸다. 포틀래치 행사 때 가족이나 씨족은 가장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신성한 노래를 부르면서 가면들을 내보이고, 의무(疑巫)들은 그들이 씨족의 혼령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광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의 분배이다. 축제를 여는 자는 씨족의 재산을 탕진한다. 그리고 축제에 참가한 다른 씨족은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을 탕진해야 하는 의무를 떠안게 된다. 만약 상대방 씨족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들은 이름, 명예, 씨족 표시와 토템, 심지어 민간적 · 종교적 권리마저 빼앗기게 된다. 그리하여 부족의 재산은 아주 모험적인 방식으로 '지체 있는' 집안들 사이에 유통된다. (...)

  포틀래치에서 한 그룹은 엄청난 선물로 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그런 재산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놀랍게도, 그들의 재산을 파괴해 버린다. 이러한 파괴 행위에는 연극적인 의례와 오만한 도전이 수반된다. 이 행위는 언제나 경기의 행태를 취한다. 한 추장이 구리판을 깨트리거나 담요 더미를 불태워 버리거나 카누를 파괴하면, 상대방 추장은 그와 동일한 숫자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구리판, 담요, 카누를 파괴해야 한다. 추장은 깨트린 구리판 조각을 상대 추장에세 보내면서 그것을 명예의 표시로 과시한다. 콰키우틀과 유사한 부족인 틀린키트족의 경우, 추장이 상대 추장을 제압하기 위해 다수의 노예들을 살해하면, 상대 추장은 위신을 지키려면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자기 노예들을 살해해야 했다. (...) 포틀래치와 그와 유사한 관습은 승리하기, 우월해지기, 영광, 위신, 마지막으로 복수하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

  그 의례가 벌어지는 정신적 세계는 영예, 위엄, 허장 성세, 도전의 세계이다. 의례 행위자는 기사도와 영중주의 세계에서 살며 그곳에서의 저명한 이름, 문장(紋章), 빛나는 가계가 더욱 돋보인다. 이곳은 노고와 근심, 이해타산, 실용적 재화의 획득이 지배하는 일상적 세계가 아니다. 그룹의 명예, 더 높은 지위, 우월성의 표시를 열망하는 세계이다. (...)

  말리노프스키가 명저 <서부 태평양 제도의 아르고 호 선원들>에서 그 지역의 쿨라 제도를 생생하게 설명한 이래, "선물 의례"의 놀이적 특성이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주민들과 그 이웃 섬들의 무역 행태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쿨라는 일정한 시기 뉴기니 동부에 있는 섬들중 어느 한 섬에서 정반대의 두 방향(남쪽과 북쪽)으로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그 목적은 관련된 섬들 사이의 상호 교역이다. 거래되는 상품은 경제적 가치가 있다거나 생활 필수품은 아니고 소중한 장식품 등 사치스러운 물건들이다. 가령 붉은 조개껍질로 만든 목걸이와 하얀 조개껍질로 만든 팔찌 등이다. 이런 물건들은 서양의 보석처럼 이름을 갖고 있다. 쿨라 제도에서 그 물품의 소유권은 한 그룹에서 다른 그룹으로 잠시 넘어간다. 그리고 현재 소유권을 갖고 있는 그룹은 일정한 시간 내에 쿨라 체인 안에 들어 있는 다른 섬의 그룹에게 그 물품들을 넘겨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물품들은 신성한 가치를 갖고 있고, 주술의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언제 처음 획득하였는지 따위의 족보를 갖고 있다. 어떤 물품은 너무나 귀중해서 그것이 선물의 사이클 내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이 제도는 축제와 주술이 곁들여진 각종 요식 행위를 상호 의무와 신뢰의 분위기 속에서 수행한다. 풍성한 환대를 베풀며 의례가 끝난 후에는 모든 사람이 충분한 몫의 명예와 영광을 얻었다고 느낀다. 항해 그 자체는 종종 위험이 가득한 모험이다. 쿨라 제도에 참가하는 섬들의 문화적 보물들이 클라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런 보물로는 카누의 장식 조각품, 관련 섬들의 시가(詩歌), 명예와 풍속의 법규 등이 있다. (...) 이들의 경쟁은 아주 순수한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문명권 사람들이 준수하는 유사한 관습보다 훨씬 더 순수하다. 이런 성스러운 의례의 뿌리에는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구가 깃들여 있다. (...)

-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요한 하위징아 · 연암서가 · 2010년 · 원제 : Homo Ludens : a study of the play element in culture, 1938년)  p.11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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