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1 : 역사란 무엇인가?

by 이우 posted Feb 20, 2017 Views 17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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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지나간다. 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잡을 수 있다. "진리는 우리에게서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켈러(Gottfried Keller, 1819년~1890년)의 말은 역사주의가 추구하는 역사의 이미지를 표현해 주는데, 바로 이 지점이 역사적 유물론자에 의해 혁파되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매 현재가 스스로를 그 이미지 안에서 의도된 것으로 인식되지 않을 경우 그 현재와 더불어 사라지려 하는 과거의 복원할 수 없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중략)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중요한 과제는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다. (...) 유물론적 역사 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역사보다 바로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뚜렷이 구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가산(加算)적이다. 그것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데 급급한다. 유물론적 역사 서술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구성(構成, Konstruktion)의 원칙에 근거를 둔다. 사유(思惟)에는 생각들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들의 정지도 포함된다. 사유는 그것이 긴장으로 가득찬 상황 속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의 단자(單子, monad)로 결정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적 대상에 다가가되, 그가 대상을 맞닥뜨리는 곳에서만 다가간다.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지, 달리 말해 억압 받은 과거를 우연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그는 균질하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 과정을 폭파하여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대를 끄집어내기 위해 그 기회를 포착한다. (...)

  역사주의는 역사의 계기를 사이에 인과적 결합을 세우는데 만족한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 정황도 그것이 원인이라는 이유로 이미 역사적 사실 정황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 전황이 되는 것은, 사후에, 수천 년의 세월이 동떨어져 있을지 모를 사건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의 순서를 마치 염주처럼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일을 중단한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과거의 특정한 시대와 함께 등장하는 성좌 구조를 포착한다. 그는 그렇게 해서 메시아적 시간의 파편들이 막혀 있는 '지금 이 시간'으로서의 현재의 개념을 정립한다. (...)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발터 벤야민 선집 5 · 발터 벤야민 · 길 · 2008년) p.33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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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U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1940년)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nflies Benjamin, 1892년~1940년)의 마지막 소고 . 「역사철학 테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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