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지위의 세계적인 평등화는 위험이 유발하는 고통 내부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위험지위와 계급지위가 중첩되는 곳에서 국제적 규모로 발생한다. 지구적 위험사회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제3세계의 산업 중심지의 제련소와 화학공장에 붙어 있는 굴뚝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역사상 최대의 산업재해'인 보팔이라는 인도의 도시에서 발생한 독극물 사고는 이 점을 지구 대중의 의식을 일깨웠다. 유해산업은 제3세계의 저임국들로 옮겨가고 있다. 이것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극단적인 빈곤과 극단적인 위협 사이에는 쳬계적인 흡인력이 있다. 위험이 분배되는 선로 변경지대에서 '저발전된 시골의 후미진 곳'에 있는 역들은 특별한 인기를 누린다. 그리고 우리들은 책임감있는 선로 교환원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계속해서 추정할만티 순진한 바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직업을 창출하는 신기술을 시골의 실업인구가 더 잘 받아들인다는 증명된 사실이다.
국제적인 규모에서 물질적 궁핍과 위해에 대한 맹목이 일치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 독일인 개발전문가는 예를 들어 스리랑카의 부주의한 제초제 사용에 관해 이렇게 보고한다. '그 나라에서는 맨 손으로 DDT를 살포하고, 사람들은 그 가루를 하얗게 뒤집어 쓴다.'" 인구 120만 명인 트리니다드의 엔탈리즈 섬에서 총 120명이 제초제 때문에 죽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한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농약을 뿌리고 나서 아프다면 농약을 충분히 뿌리지 않은 것이다.' "(『슈피겔』 1984, 50호:119)
이 사람들에게 파이프와 탱크들이 복잡하게 설치된 화학공장들은 값비싼 성공의 상징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죽음의 위험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그들에게 그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비료, 제초제, 살충제는 무엇보다도 물질적 궁핍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서구 산업국들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30%의 식량 증산을 가져 온, 그리고 몇몇 아시아와 남미 국가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40%의 식량증산을 가져온 '녹색혁명'의 전제조건이다. 매년 수십만 톤의 제초제가 면화밭과 농장에, 담배와 과일농장에 뿌려지고 있다. (중략)
"브라질에는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화학도시가 있다. ... 빈민굴의 주민들은 해마다 함석 지붕을 바꿔야 한다. 산성비가 지붕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 생활한다면 누구의 몸에서나 뽀루지가, 브라질 사람들 식으로 말하자면 '악어 피부'가 돋게 된다. 피해가 가장 심한 사람들은 15,000명이 사는 빈민굴인 촌(Villa Paris)의 주민들로, 그들 대부분은 잿빛 돌을 이용하여 작고 수수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이곳의 수퍼마켓에서는 심지어 가스마스크를 팔고 있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천식, 기관지염, 각종 콧병과 목병, 그리고 피부병에 걸려 있다. 파리시 촌에서는 냄새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한 모퉁이에서는 노천 하수도가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질척질척한 녹색 물줄기가 흘러간다. 닭털을 태우는 듯한 냄새는 철강공장을 가리키며, 썩어가는 달걀 냄새는 화학공장을 뜻한다. 시 당국에서 세운 배출측정기는 작동한 지 1년 반만인 1977년에 고장났다. 그 기계도 분명히 그곳의 오염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이 도시의 역사는 브리질의 석유회사인 페그르프라스가 정유소 예정지로 해안 습지를 선택했던 1954년에 시작되었다. 곧이어 브라질 최대의 철강콘체른인 코시파와 브라질-아메리카의 비료회사인 코페그라스가 도착했으며, 그 뒤에 피아트, 다우 케미칼, 유니온 카바이드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왔다. 브라질 자본주의가 급속히 성장하던 시기였다. 군사정권은 외국 기업을 유치하여 그것에서 환경적으로 해로운 물품을 생산하도록 했다. '브라질은 아직 오염을 수입할 여유가 있다'고 계획부 장관이었던 파울로 벨로사는 스톡홀롬에서 환경회의가 개최되었던 해인 1972년에 큰소리쳤다. 브라질의 유일한 생태적 문제는 빈곤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질병의 주요 원인은 영양실조, 알코올과 담배'라고 페그로프라스의 대변인은 말한다. '사람들이 코파티오에서 올 때 이미 병든 상태'인데, '병이 약화되면 그들은 우리 탓을 한다. 그건 정말 비논리적이다'라고 유이온카바이드의 사장인 파울로 피구에리레도는 말한다. 몇 년간 사응 파울로의 주지사는 오염된 코파카오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으려고 시도해 봤다. 그는 13명의 태만한 환경국 관리들을 해고했으며 배출상황을 측정하기 위해 컴퓨터를 도입했다. 그러나 몇 천 달러의 경미한 벌금으로는 환경위반자들을 괴롭히지 못했다. 올해 2월 25일에 재난이 발생했다. 페그로프라스의 진창을 통해 70만 리터의 석유가 소코 촌의 판자집들이 들어 서 있는 습지로 흘러 들었다. 화염이 2분만에 이곳을 휩쓸어 버렸다.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불에 타 숨졌다.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찾을 수도 없었다. '그 아이들은 열기 때문에 증발해 버렸다'고 한 브라질 관리는 말했다."(『슈피겔』 1984, 50호:110)
"새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물소와 황소와 개들이 거리와 들에 죽어 누웠다. 중앙아시아의 태양 아래에서 그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나자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도처에서 질식된 사람들이 몸을 오그리고 입술에 거품을 물었으며, 경련을 일으킨 손은 땅을 후벼 팠다. 지난 주말까지는 3천명이었으며 새로운 희생자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었다. 당국은 집계를 중단했다. 아마 2만여명의 사람들이 실명할 것이다. 20만명 장도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보팔시에서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묵시론적인 산업재난이 지난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 사이에 발생했다. 독가스 구름이 화학공장을 빠져 나와 65㎢에 걸쳐 두꺼운 장막처럼 내려 앉았다. 그 구름이 다 퍼졌을 때 역겹게 달삭지근한 썩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평화롭기만 했던 도시는 갑자기 전쟁터가 되었다. 힌두교도들은 죽은 자를 화장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고 태웠다. 한번에 25구씩. 화장용 목재가 곧 부족하게 되었다. 등유의 불길이 시체를 핥았다. 회교도의 장례식도 사람들로 붐볐다. 이슬람의 신성한 계율을 깨고 이미 시신이 매장되어 있는 묘지를 개장했다. '한 무덤에 두 사람을 묻는 게 죄라는 건 안다'며 묘지 인부들 중의 한 명이 푸념한다. '알라께서 부디 저희를 용서하시길, 우리는 묘지 하나에 세 사람, 네 사람, 심지어 그 이상도 묻고 있습니다.' "(『슈피겔』 1984, 50호:110)
보팔시에서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묵시론적인 산업재난이 지난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 사이에 발생했다. 독가스 구름이 화학공장을 빠져 나와 65㎢에 걸쳐 두꺼운 장막처럼 내려 앉았다. 그 구름이 다 퍼졌을 때 역겹게 달삭지근한 썩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평화롭기만 했던 도시는 갑자기 전쟁터가 되었다. 힌두교도들은 죽은 자를 화장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고 태웠다. 한번에 25구씩. 화장용 목재가 곧 부족하게 되었다. 등유의 불길이 시체를 핥았다. 회교도의 장례식도 사람들로 붐볐다. 이슬람의 신성한 계율을 깨고 이미 시신이 매장되어 있는 묘지를 개장했다. '한 무덤에 두 사람을 묻는 게 죄라는 건 안다'며 묘지 인부들 중의 한 명이 푸념한다. '알라께서 부디 저희를 용서하시길, 우리는 묘지 하나에 세 사람, 네 사람, 심지어 그 이상도 묻고 있습니다.' "(『슈피겔』 1984, 50호:110)
그러나 물질적 빈곤과는 대조적으로 위해로 인한 제3세계의 빈곤화는 부자들에게도 전염된다. 위험의 증가 때문에 세계사회는 위난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계약을 맺어야 한다. 부메랑 효과는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위해를 없애고자 했지만, 그 뒤에 값싼 식료품을 수입했던 바로 그 부유한 나라들을 공격한다. 제초제는 과일과 카카오와 차 속에 함유되어 고도로 산업화된 모국으로 돌아온다. 극단적인 국제적 불평등과 세계시장의 상호연결성이 주변부 국가들의 가난한 이웃들을 부유한 산업중심국의 문턱으로 이주시킨다. 그들은 국제적 오염의 배양지가 되며, 답답한 중세 도시의 빈민들을 괴롭힌 정염병과 마찬가지로 국제적 오염은 세계공동체의 부유한 이웃들조차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급사회와 위험사회의 불평등은 중첩되며 서로를 조건지운다. 즉 후자는 전자를 생산할 수 있다. 사회적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위험생산을 위한 거의 난공불락의 방어벽과 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여기서 위험에 따른 문화적-정치적 주목과 그 실제적 확산은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계급사회는 계급 간의 격차를 가로질러 주요 관심사가 물질적 필요를 가시적으로 만족시키는 사회이다. 여기서 굶주림과 잉여 또는 강자와 약자가 서로 대치한다. 궁핍은 자기 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한다. 그 직접성과 가시성은 부와 권력이 물질적으로 증명된다는 사실에 부합한다. 계급사회의 확실성은 이런 점에서 가시성의 문화의 확실성이다. 즉 비쩍 마른 굶주림이 통통하게 살찐 포만과 대조된다. 궁전이 오두막과, 광채가 넝마와 대조된다.
생생한 것이 지니는 이 같은 명확한 자질은 위험사회에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인식가능성을 벗어나는 것이 비실제적인 것과 더 이상 일치하지 않으며, 그 대신 유해정도가 더 높은 실제성을 보유할 수조차 있다. 당장의 필요가 이미 알려진 위험요소와 경합을 벌인다. 가시적인 결핍 또는 잉여의 세계가 위험의 지배 아래서 희미하게 사라진다. (중략) 계급사회, 산업 및 시장사회의 문제를 한편으로 하고 위험사회의 문제를 달흔 한편으로 하여 나타나는 문제의 중첩과 경쟁에서는, 관련된 권력관계 및 기준과 일치하여 부의 생산논리가 언제나 승리하며 바로 그 때문에 위험사회가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중략) 제3세계의 계급지위와 위험사회의 중첩 및 증폭현상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울리히 벡 · 새물결 · 2006년 | 원제 : Risikogesellschaft, 1986년) p.8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