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사르트르와 카뮈가 본 미국 사회

by 이우 posted Jul 31, 2019 Views 1428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책_파리좌안.jpg


  (...) 1945년 초부터 1946년 여름 사이에 사르트르 미국을 두 번 방문했다. 합쳐서 거의 6개월을 보냈고 뉴욕에 여자 친구도 있었고, 전국을 돌며 최고 명문대학 여러 곳에서 강연했다. (중략) 사르트르는 미국에 심취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 문학, 영화, 재즈에 빠져 지냈다. 스타인벡, 헤밍웨이, 더스패서스, 시느디 베쳇, 루이 암스트롱, 콜 포터, 조지 거슈윈, 듀크 엘링턴 등만 해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미국인과 미국을 좋아 했고, 특히 친숙한 미국 대중문화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사랑과 흠모는 그답게 명철한 분별력을 동반했다.

  그는 프랑스 독자에게 미국을 소개하고픈 충동을 느꼈고, 1946년 여름에 발행한 <<레 탕 모데른>>의 첫 합본호에서 미국의 결점까지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미국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특별히 의뢰한 여러 기고문과 사르트르의 거짓 없고 단호한 서문이 담긴 잡지의 발간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순응주의적 행복 속에서도 이름 없는 불분명한 불안에 쫓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비참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비참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그들 내면과 주변에 비참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평등 신화가 있는가 하면 인종 분리가 있다. 자유 신화가 있는가 하면 여론 독재가 있다. 경제 자유주의가 있는가 하면 전 대륙에 걸쳐 활동하는 얼굴 없는 다국적 기업들이 누구한테도 속하지 않는 국가 내 국가처럼 작동한다. 미국에는 혼외정사를 금하는 수천 가지 금기 사항이 존재하는가 하면, 또 대학 안뜰 구석에는 다 쓴 콘돔 수천 개가 잔뜩 버려져 있고, 길가에는 그 수많은 자동차가 전조등을 끈 채 주차해 있고, 성교하면 만사를 잊겠다고 그 수많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 전에 독주 한 잔을 원한다. 신학현실, 과 그 집합적 상징성 사이에 존재하는 그와 같은 간격은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중략)

  만화에 관한 데이비드 헤어의 기고문은 새로운 미국 만화 영웅을 분석했다. "전쟁이 창조한 새 미국 영웅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폭력적이고 여러 의미에서 시적인 것에 반대되는 천박한 존재다. 그러나 이것은 거부하기 어려운 환상, 힘, 창의성의 소산물이며 지성의 생산물은 결코 아니다." (중략)

  전후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작가와 지식인 중에서도 알베르 카뮈는 독특한 경우에 해당했다. 그는 미국에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객실도 몇 개 없는 화물선 오리건 호를 타고 열흘 간의 항해 끝에 드디어 뉴욕 항구에 들어서는데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선상에서 쓴 일기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안개를 배경으로 맨해튼 고층빌딩들이 서있다. 내 심장은 고요하고 건조하며 아무 감흥도 없는 구경거리를 보는 느낌이다."

  그의 무감흥은 때때로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강연으로 보낸 5주는 어리둥절함의 연속이었다. 친절하면서도 소홀하고, 환대하면서도 무심하고, 사소한 일에 열중하고, 심각함을 꺼리는 미국인들이 그에게 너무 이질적으로 보였다. 그는 재빨리 요령을 익혔다. "대화의 비결은 소위 잡담, 즉 아무 의미 없는 얘기를 하는 기술에 있다." 그는 일기에서 자기가 지금 "미친 사람들 틈에 있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들 틈에 있는지, 삶이 이곳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안이하거나 눈에 보이듯 정말 그렇게 어리석은지, 한 명 대신 열 명을 고용하고도 서비스에 개선이 없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지, 미국인을 겸손하다고 해야 할지, 자유롭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순응적이라고 해야 할지" 궁금해 했다.

  그는 문고리 모양에서 비타민 정제의 인기에 이르기까지 뉴욕과 파리,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뭐든 메모했다. '문화계에서 대량 소비되는 스카치위스키소다수, 사치스러움형편없는 취향, 특히 그런 형편 없는 취향이 드러나는 넥타이. 동물 사랑, 아침에 과일 주스를 마시는 습관, 밤에 불이 켜지는 수백만 개의 창문, 뜨거운 목욕, 비타민제, 베이컨달걀을 파는 약국. 그에게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이상한 곳, 별로 풀고 싶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는다.

  -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아녜스 푸아리에 · 마티 · 2019년 · 원제 : Left Bank: Art, Passion, and the Rebirth of Paris 1940-50) <7. 제3의 길> p.226~231









  1. 13
    Apr 2023
    22:35

    [사회] 슬리보예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공산주의는 해결책의 이름이 아니라 문제의 이름이다

    (...)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디에 서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법으로 기대어 있는지 모른다. 서울의 어린이 박물관 근처에 이상한 동상이 있다. 동상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아주 외설적인 모습일 수 있다. 어린 소년들이 일...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5 file
    Read More
  2. 03
    Mar 2023
    15:51

    [사회]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가격 경제(혹은 시장경제)입니다. 이는 곧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여러 시장의 작동에서 나오는 여러 가격으로 통제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유형의 재화에 대해 시장이 존재합니다. 모든 종류의 상품에 대해서는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0
    Read More
  3. 01
    Mar 2023
    22:37

    [사회]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위험-토지 시장과 노동 시장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이상으로 삼아 근접하고자 했던 시장경제란 자기조정을 원리로 삼는다. 이는 본질적으로 토지, 노동, 화폐의 시장들로 구성된 단일의 시장체제이다. (중략) 시장경제에서 비롯되는 위험은 여러 위험은 바로 시장경제의 확립을 위...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90
    Read More
  4. 17
    Feb 2023
    18:07

    [사회]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 문명과 문화

    (...) 문명이란 나이프, 포크, 스푼을 어떻게 구해올 것이냐의 문제이며, 문화란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문명이란 이를테면 도서관이나 혼인 관련 법률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의 문제이며, 문화는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이냐의 문제입니...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22
    Read More
  5. 06
    Jan 2023
    17:53

    [사회]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 시장 자유주의

    "세상은 마치 모든 개인들의 일상 활동에서 그들을 생산자와 소비자로 고립시켜 버리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처럼 작동한다. 이 개인들은 시장을 위해 생산하며, 시장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다. 이들이 제 아무리 자신의 동료들에게 봉사하기를 열렬히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8 file
    Read More
  6. 29
    Jul 2020
    00:45

    [사회] 칼폴라니 『거대한 변환』 : 빈민구제법·스피남랜드법, 1795년

    (...) 18세기 사회는 사회를 시장의 들러리로 삼으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저항했다. 노동시장이 없는 시장경제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노동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은 특히 영국의 농촌문명 같은 경우 전통적 사회의 골조를 허물어버리는 것이...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373 file
    Read More
  7. 24
    Jul 2020
    06:14

    [사회] 칼폴라니 『거대한 변환』 : 노동과 토지, 화폐의 상품화

    (...) 경제가 사회관계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관계가 경제체계 속에 파묻혀 있다. 경제체계가 특수한 동기들을 바탕으로 특별한 지위를 획득하여 독립된 제도들로 조직되면, 사회는 경제체계가 독자적인 법칙에 따라 기능하도록 허용하는 방...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539 file
    Read More
  8. 29
    Jun 2020
    18:04
    No Image

    [사회] 실용과 효율의 함정 : 싱가포르

    (...) 싱가포르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가능할 만큼 한정된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인구 3백만으로 중국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수상 이광요*는 싱가포르의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여 ‘완벽’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이광요는 실용주의자였...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7373
    Read More
  9. 17
    May 2020
    17:05

    [사회] 위험사회 : 국제적 불평등 · 제3세계의 계급지위와 위험지위

    (...) 위험지위의 세계적인 평등화는 위험이 유발하는 고통 내부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위험지위와 계급지위가 중첩되는 곳에서 국제적 규모로 발생한다. 지구적 위험사회의 프롤레타리아트는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2130 file
    Read More
  10. 17
    May 2020
    15:10

    [사회] 위험사회 : 부메랑 효과 · 공공수용

    (...) 상당한 정치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위험의 분배 유형이 지구화에서 포함되어 있으면서 아직은 그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조만간 위험은 위험을 생산하거나 위험에서 득을 보는 사람들도 따라잡을 것이다. 위험은 사회적 부메랑 효과를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326 file
    Read More
  11. 04
    May 2020
    23:12

    [사회] 『1차세계대전사』 : 식민지 시대, 파렴치한 이 영국인을 보라!

    (...) 1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신중함이나 공조의 선의가 제 목소리를 냈더라면 최초의 무력 충돌에 앞선 5주간의 위기 동안 어느 때라도 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던 사건들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고, 첫 번째 충돌...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64499 file
    Read More
  12. 20
    Apr 2020
    04:04

    [사회] 『다윈에 대한 오해』 : 『인간의 유래』에 나타난 성(性)의 선택

    "성선택의 영향으로 발달된 것이 분명한 구조와 본능이 여럿 존재하는데, 경쟁자와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한 수컷의 공격 무기와 방어 수단이 그것이다. 수컷의 담력과 호전성, 다양한 장식, 목소리나 도구를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방식, 냄새를 분비하는 분비...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1227 file
    Read More
  13. 18
    Apr 2020
    23:38

    [사회] 『다윈에 대한 오해』 : 다윈에게 나타난 전체주의·계몽주의·식민주의

    (...) "사회적인 동물의 경우, 자연선택은 때때로 공동체에 이로운 변이의 보존을 통해 개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뛰어난 개체를 다수 포함한 공동체는 수적으로 증가하며 덜 유리한 다른 공동체보다 우세하다. 그리고 이는 그로 인해 각기의 구성원이 같...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451 file
    Read More
  14. 18
    Apr 2020
    19:15

    [사회] 『다윈에 대한 오해』 : 맬서스 『인구론』과 『종의 기원』에 나타난 자연선택설

    (...) 공간과 자원을 공유하는 생물 종의 수적 성장을 제한하는 요소가 각 환경에 존재해야 하며, 이는 필연적인 연역이다. 무한 가속된 증식 경향과 여러 종 사이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균형 간의 대립 관계에서 외재적 조절 기제, 즉 각 종의 번식 충동과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784 file
    Read More
  15. 31
    Jul 2019
    08:43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사르트르와 카뮈가 본 미국 사회

    (...) 1945년 초부터 1946년 여름 사이에 사르트르는 미국을 두 번 방문했다. 합쳐서 거의 6개월을 보냈고 뉴욕에 여자 친구도 있었고, 전국을 돌며 최고 명문대학 여러 곳에서 강연했다. (중략) 사르트르는 미국에 심취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 문학, 영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4281 file
    Read More
  16. 31
    Jul 2019
    06:15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보부아르가 본 미국 사회

    (...) 리처드 라이트는 미국 순회강연의 첫 행선지인 뉴욕에 오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환영하고 그녀와 정치를 논할 일을 고대했다. 그녀는 미국 여행을 위해 열을 내며 짐을 쌌다. 생애 처음으로 그녀는 경솔하게 행동했고 그 때문에 자신이 미웠다. 미국 여...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5117 file
    Read More
  17. 30
    Jul 2019
    23:19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사회민주주의·초현실주의, 혹은 추상미술

    (...) 1945년 10월 총선에서 프랑스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으며, 알베르 카뮈는 <<콩바>> 독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이 없으므로 비공산 계열 사회주의자들에게 투표하기를 촉구했다. 그는 샤를 드골을 존경했지만 평화의 시기에 군 장성이 정치에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555 file
    Read More
  18. 21
    Jul 2019
    19:54

    [사회]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 수집가

    (...) 이러한 아케이드의 내부 공간은 종종 시대에 뒤쳐져가는 업종들의 피신처가 되는데,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장사도 그러한 공간에서 왠지 낡고 허름한 분위기를 띠게 될 것이다. 이곳은 기업 상담소와 흥신소의 소굴로, 이들은 2층의 갤러리에서 내리비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8061 file
    Read More
  19. 13
    Jul 2019
    15:05

    [사회]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1940년~50년 파리의 풍경

    (...) 『파리 좌안 1940-50』은 1905년~30년 사이에 태어나 1940~50년 사이에 파리에서 살고, 사랑하고, 싸우고, 놀고, 활약했으며 그때 내놓은 지적, 예술적 산출물로 지금까지 계속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심지어 옷 입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7865 file
    Read More
  20. 08
    Dec 2018
    18:40

    [사회] 위험사회 : 위험 사회의 도래 · 대항담론과 대항지식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당연한 시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세계보건기구가 홍역의 완전박멸을 선언하는 그 순간, 에즈볼라나 광우병이니 O-157이니 하는 신종 병역들이 화려하게 등단하여 그 같은 선언을 전혀 무색하게 만...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6536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