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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밥 딜런의 대중 예술미학 : 충돌과 뒤섞임, 불확정성과 탈규정성

by 이우 posted Nov 04, 2016 Views 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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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_밥딜런.jpg

    (...) 밥 딜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술'이니 '미학'이니 하며 떠드는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과연 대중 가수인 딜런을 예술가처럼 받아들이고 그의 노래를 예술 세계로 보는 것이 적절한가? 이를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해 보인다. 일관된 작품 세계, 예술가적 태도나 비전, 작품 형식의 새로움 등등. 필자는 여기서 다음 같은 두 가지 정도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그의 노래를 예술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질문은 그의 노래 전체가 하나의 독자적 예술 세계를 형성할 만큼 일관된 비전과 주제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 그의 노래 형식과 공연이 독자적이고 새로운 미학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밥 딜런의 노래 가사를 전면적으로 읽고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들이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한다--노래 각각을 떼어 놓고 보면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 작품을 관통하는 은유와 상징 언어다. 예를 들어 '길'이나 '사랑', '기차', '판사', '무법자'와 같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이 단어들은 일반적인 의미 사용 맥락을 떠나 그의 노래 세계 속에서만 드러나는 특유한 의미로 연결된다.


  '길'은 기성 사회를 벗어나는 자유의 영역이고, '판사'는 '의사' 등과 함께 기성 가치 질서나 그 질서 속에서 유통되는 가치관과 의식을 대변한다. 이러한 어휘들은 그의 노래 세계를 관통하는 큰 주제인 '기성 사회질서를 벗어나는 자유'에 대한 탐구로 귀결된다. 그런 점에서 딜런의 언어는 일반적인 대중음악 가사와는 달리, 마치 시인의 시 세계가 그러하듯, 자신만의 언어로 구축된다. 따라서 우리는 딜런의 예술 세계를 말할 수 있고, 또한 그를 시인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으로 그의 노래 형식과 공연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과 미학적 특성에 대해서다. 사실 밥 딜런의 노래는 대중문화 상품이기 때문에 상품 질서의 성격과 그 한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즉 대중문화가 독자적인 주제나 미학을 추구하려고 해도, 상품화라는 이윤 추구과정에서 이러한 노력은 희석되고 뒤틀리기 쉽다. 달리 말해 대중음악이 진정성이나 예술적 지향을 담아내려 해도 더 많이 팔아야 한다는 요구 앞에 무기력해지기 일쑤다. 그러나 밥 딜런의 특이성은 그의 노래와 공연이 상품이면서도 동시에 이 상품성에 저항한다는 점이다.


  딜런의 노래 세계에서 상품성이 강요하는 획일성이나 맹목적인 인기 추구 논리는 발붙일 곳이 없다. 예를 들어 딜런은 자주 대중이 원하는 노래 스타일이나 음악 트렌드를 거스르는 밥향으로 나아갔다. 1960년대에 그가 포크 음악에서 로큰롤로 나아간 것이나, 1970년대 말에 가스펠 음악을 들고 나온 일은 대표적인 예이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 그는 때때로 관객의 야유를 받으며 공연했다. 사실 그는 어느 공연에서든, 무례하게도(?) 대중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 공연장에서 그가 "여러분의 사랑과 성원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법은 거의 없다. (...)


  그렇다면 밥 딜런의 노래는 미학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밥 딜런의 노래는 시와 노래 사이 경계를 파괴한다. 그의 노래에서 시와 목소리, 음악이 결합하는 방식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이 그의 노래 스타일을 모방하기가 매우 힘들다. 또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 가사를 시로 볼 수 있다고도 하고 그의 노래가 시적이라고도 한다. (...) 그의 노래가 지닌 시적인 힘은 지명이 아닌, 가사가 공연으로 실현되는 과정에서 나온다. 그의 노래를 시라고 한다면 그 시는 지면이 아닌 공연 속에 있다. (...)


  그가 구측한 예술 형식의 특징인 시와 노래의 결합은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을 가로질러 새로운 미학적 공간을 연다. 딜런의 노래는 대중문화에 속하는 대중음악과 고급문화에 속하는 시를 그만의 방식으로 충돌시키고 뒤섞는 과정에서 나온 혼종(hybrid)의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에서 고급 예술로 인식되는 시와 대중문화로 인식되는 노래가 서로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달리 말해 밥 딜런의 예술 속에서 고급 예술인 시는 폭넓은 대중 속으로 나아가고, 대중음악은 상품으로서의 소외를 극복하고 예술성과 실험성을 껴안는다.


  밥 딜런은 고급 예술의 요소를 대준문화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문화 요소를 고급 예술 속으로 끌어들이는 방식과 구분된다. 고급 예술이 대중문화 요소를 자신 속으로 끌어들이는 경우,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간의 서열 구조는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팝 아트(Pop Art) 같은 미술유파를 보자. 할 포스터(Hal Poster)에 따르면, 이 경우 예술가들이 저급문화(대중문화)를 자신의 고급문화(예술) 속으로 끌여들였지만, 결국 나중에 "고급의 범주가 거의 손상 없이 유지"되었다.


  반대로 대중문화가 고급 예술의 요소를 끌어들이는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저급문화 요소를 광고에서 사용하는 경우--냉장고 광고에서 고흐의 그림을 사용할 때처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때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 경계에는 아무 탈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된 고급 예술은 원래 작품이 지녔던 의미와 효과를 상실한다. 즉 원작이 지닌 진지함, 비판성 등 소위 고급문화의 요소들은 거세된 채로 상품 이미지의 일부로 흡수되어 버린다.


  딜런의 방식은 이러한 시도들과 어떻게 다른가? 밥 딜런은 고급 예술이 삶으로부터 고립되거나 대중 예술이 상업주의에 사로잡히는 상황을 경계한다. 딜런은 광고의 예와는 달리 고급 예술 요소를 결코 장식 효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고급 예술이 지닌 작가주의와 진지함 그리고 저항성을 노래라는 문화상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럼으로써 그의 노래는 문화상품이면서도 상업성 배후에 놓인 자본주의 질서와 대랍한다. 그의 노래는 소수만을 위한 것도아니고 대중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딜런은 순수 예술과 상업 문화 양자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진지한 예술성과 대중성으로 결합하는 미학적 민주주의의 방향을 지시한다."


  그러나 밥 딜런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는 것은 딜레마이다. 밥 딜런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로 변화해 왔다. 이 때문에 그의 노래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큰 흐름을 파악하여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밥 딜런을 밥 딜런답게 하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심지어 기존 팬들의 예측이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까지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대중이 새로운 딜런에 익숙해질 만하면, 딜런은 이미 그 이미지를 깨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 있다. (...)


  - <음유시인 밥 딜런-사랑과 저항의 노래 가사 읽기>(손광수 · 한걸음더 · 2015년) p.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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